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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839

발해(渤海)의 한 우물터에서 / 윤준경 중국의 동굴 고산거의 오래된 우물 / p r a h a 발해(渤海)의 한 우물터에서 / 윤준경 그때 작았던 것들은 커지고 그때 컸던 나는 점점 작아져서 이제는 길길이 우거진 수풀 사이 물벌레의 서식처일 뿐인데, 내 위에 뜨던 달과 별, 스치던 바람과 나에게서 나르시스를 찾던 많은 소년과 소녀의 얼굴을 기억.. 2009. 1. 26.
바그다드 카페 / 윤준경 바그다드 카페 윤준경 사실 바그다드는 카페일 수 없다 한창 전투중인 그곳에서 어찌 그대를 만나고 행복한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한단 말인가 바그다드카페 바로 위 그대를 만나는 찻집은 언제 불바다가 될지 모르는 위험지구다 그럴싸한 통나무집에 고향 도랑물을 끌어다 붕어를 기르는, 순이 닮은 .. 2009. 1. 26.
석류石榴 / 홍해리 줄 듯 줄 듯 입맛만 다시게 하고 주지 않는 겉멋만 들어 화려하고 가득한 듯 텅 빈 먹음직하나 침만 고이게 하는 얼굴이 동그란 그 여자 입술 뾰족 내밀고 있는. - 홍해리 「석류石榴」 사물 혹은 여인의 향기 사물은 마력의 산물이다. 사물은 하나의 우발적 생산물이 아니다. 사물은 읽기다. 사물은 느.. 2009. 1. 26.
뜨지 못하는 자의 변명 / 윤준경 나 좀체 뜨지 않네 뭍에서도 물에서도 허우적거리네 나는 왜 혜성처럼 뜨지 못할까 별세계에도 물세계에도 이 지상의 낮은 변죽에도 나는 없네 그때 뜰걸 그랬나? 사랑하는 경아로, 가슴에 A자 하나 품고 인생 한바퀴 뒤집어 볼 걸 그랬나 뭇 가슴에 냉소의 불을 질러볼까 높이 떠오른 그대들이여 그대.. 2009. 1. 26.
서안에서는 사람이 빛난다 / 김윤배 서안 / p r a h a 서안에서는 사람이 빛난다 김윤배 서안을 밟았던가 혹 서안이 나를 밟고 지나간 것은 아니던가 모래 바람 내 안 가득하니 시간의 켜켜에 깃들인 뼈들 메마른 기침을 한다 여름 아지랑이 속의 서안은 타클라마칸을 향해 가는 가물가물한 통증이었다 황토 분진의 서안이 조용히 사막을 향.. 2009. 1. 23.
슬픔을 사육하다 / 고성만 슬픔을 사육하다 고성만 눈코입 오목조목한 여자를 얻어 재우고 입히고 먹이고 학교 보내고 싶어 그 여자 결혼하여 그 여자 닮은 딸 낳으면 저녁 문간에 걸어둔 가녀린 등불 하나 왜 가끔 심청 생각이 나나 몰라 젖동냥 길러주신 아비 께 눈물 밥 지어 올리고 상머리에 앉아 이것은 밥이고 이 것은 반.. 2009. 1. 23.
석포리 가는 길 / 김윤배 석포리 가는 길 김윤배 석포리 가는 길은 바람길이다 바람이 길을 내고 길은 바람 속을 흔들리며 간다 서해가 내륙 깊숙이 찌르고 들어와 비수로 박힌 석포 들판, 이미 많은 길들에 사타구니를 열어주었으니 길이 다른 길을 달고 달아나 석포리의 길은 늘 바다의 날카로운 끝에 선다 바람 속의 길은 위.. 2009. 1. 21.
새는 날아가지 않는다 / 김명리 새는 날아가지 않는다 김명리 구름 사이로 한 자락 햇빛이 어린 새의 앞날을 이끌었을까 유월의 저무는 숲이 돌연 화농의 새소리로 술렁거리고 산그늘 스치는 새 날개 끝자락이 교목의 잎새마냥 빳빳해진다 더없이 따뜻한, 더없이 보드라운, 죽은 새끼의 날개털 여태 휘날리는 텅 빈 둥지 위 노래기 .. 2009. 1. 16.
봄날 / 고성만 봄날 고성만 처녀 선생님 무슨 쪽지를 가져다주고 오라고 심부름시 킨 봄 자잘한 유리조각 반짝이는 대기 속을 물고기같이 헤엄 쳐 건너 면사무소 얼굴이 벌개진 청년에게 전해주고 나오 는 날 곗돈 떼어먹은 홍아네 몸쓸 병에 걸렸다는 솜틀집 식모 살러간 정이 누이 이야기가 오가는 정류장에 앉아 .. 2009. 1. 14.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 / 김명리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 김명리 휘젓던 꽃샘바람 그치고 볕 좋은 날 잘 익은 너르바위에 식탁을 차린다 인적 드문 이곳, 금빛 골짜기 유릉 숲 사이론 푸른 해오라비 날고 물소리가 해묵은 커튼처럼 드리워지고 아무래도, 덮쳐오는 봄빛은 치한의 눈빛처럼 이글이글해 만개한 산철쭉 두근거리는 바위틈.. 2009.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