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생각하다
황정산
신발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그 갑작스런 공포를
초등학교 교실에서 두 번, 술집에서 한 번
상갓집에서 또 두 번 그리고 꿈속에서 무수히 많이
신발을 잃고 난 요의(尿意)를 느끼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어찌 돌아왔을까?
그래도 난 여기 와 있다
신발은 매번 발에 맞지 않는다
약간 작은 신발에 엄지발가락은 멍들고
발뒤축은 까져 진물 흐른다
헐거운 발목이 빨아들인 모래는
수많은 이빨이 되고 형극이 되고
발에 맞는 신발도 있었다 딱 한 번
비싸게 주고 산 미제 트레킹화
양복에 신고 나갔다 웃음거리가 된 후
더는 신지 못했다
하늘을 나는 꿈을 꿀 때
내가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꿈속에서 때로 물속에 잠겨 허우적거리다
신발을 벗어들거나
입에 물기도 했다
신발이 없으면 내가 없다
그래도 나의 신발은 아직 없다
―계간 《문파》 2024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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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산 / 1993년 《창작과 비평》 평론 등단. 2002년 《정신과 표현》 시 등단. 시집 『거푸집의 국적』 저서 『주변에서 글쓰기』 『쉽게 쓴 문학의 이해』 『소수자의 시 읽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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