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을 지우고
김경성
무언가를 써야 한다면
어느 먼 곳에 있는 이름을 가져와야 하나요
폐사지에서 몇 백 년 동안 누군가를 기다리는
5층석탑이라고 써도 될까요
화르르 바람에 물려 입술문자를 쓰는 꽃잎이 되어
시간을 잃고 함께 흘러가는 오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멀리 앉아 바라보는 탑 너머로
펄럭펄럭 낮게 날아가는 쇠백로처럼
자꾸만 어딘가로 흘러가는 마음 움켜잡았습니다
무릎 꿇고 엎드려서 바라보는 꽃황새냉이는
왜 그렇게 흔들거리는지요
탑돌이를 하던 사람들의 마음 소리를 들었던
탑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습니다
끝내 그 말을 듣지 못하고
정거장 이정표도 없는 갓길에서 너무 늦게 오는 버스를 타고
낯선 마을 모퉁이를 돌 때마다
예감처럼 보이는 그 무엇을 보고는
어떤 이름이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66한국시인> 2024년 가을호
김경성
전북 고창 출생 .
2011년 《미네르바》 등단 .
시집 『모란의 저녁』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와온』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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