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가시 올금 연지 */ 김경성
소주됫병 속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다
끊어낼 수 없는 유전자는 언제나 대기 중이고
마음속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저 비의를
예측할 수 없어 아득하다
숨길을 막고 있는 병마개는 언제쯤 열리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백 년 동안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이
작은 풀꽃이 세상을 끌고 왔다
잘 영근 씨앗을 병 속에 넣어두고
봄을 기다렸던 사람은
꽃봄을 만나지 못하고 먼 길 떠났다
당신의 심장에 손을 대면 두근거림이 전해오듯이
씨앗을 넣어두고 말문을 닫은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그 마음 알고 싶어 병 속 깊이 들여다보며
씨눈을 찾아본다
봄이 오면 가득히 피어나고 싶어서
단단하게 몸을 여민 씨알들
개밥바라기별 옆에서 잠에 들면
꽃이 피어나는 꿈이라도 꿀 수 있을까
씨앗은 병속에 갇혀 있고
씨앗을 담아 둔 사람은 가고 없지만
물볕 든 그 마음은
수장고 앞마당 풀밭에서
초록색의 물결로 말하고 있다
*파주 수장고 소장품 민속 19300
소주됫병에 '씨가시 올금 연지'라 적힌 종이가 부착되어 있음
-계간 <상상인> 2024년 가을호
김경성 / 1962년 전북 고창 출생. 2011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와온』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모란의 저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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