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나의 방
김경성
붉은 칸나 꽃 색을 다 거두고
넓은 잎에 그림자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
바람 불 때마다 안개를 묻힌 듯 아득해진다
새 한 마리 검은 그림자를 끌고 왼편으로 날아간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듯
너무나도 선명한 그림자
맑은 햇빛이 태워버렸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는 그저 바라본다
당신은 멀리 있고 칸나는 너무 가까이 있어
점점 더 타오르는 칸나의 붉음을 어찌하지 못해
치마를 돌돌 말아서 무릎 위에 올려놓고
몸을 잘 접어 키 큰 칸나아래 누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오후
한 생을 다 살아버린 듯
칸나 아래 누워서 칸나의 붉음을 입는다
달아오른 마음까지도 온통 칸나빛이다
-월간 <모던포엠>202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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