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가면
김경성
물속에 갇힌 나무가 있었다
물결이 나무를 휘감으며 흘러갔다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가지를 늘어트려서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어떤 말들을 써 내려갔다
하냥 물꽃이 피었다
봄부터 품어온 연두가 시간의 켜를 입고
빛을 받은 이파리의 문양은 수만 가지 색을 품고 있었다
물 비침이 없는 날이 많아졌다
나무는 얼음판에 먹지를 대고
이파리 한 장 없는 그림자로 길을 찾고 있었다
갇힌 것은 나무가 아니라 강물이었다
천천히 봄이 오고
얼음 가면이 사라지며 출처를 모르는 물길이 숨을 고르면서
나무의 몸속에 있는 푸른 귀를 불러냈다
강가에 수풀이 일어서는 무렵
허리가 휜 여뀌꽃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며
꽃무늬 낙관을 낭창낭창 찍고 있었다
(월간<모던포엠> 202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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