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유적 / 김경성
얼마나 더 많은 바람을 품어야 닿을 수 있을까
몸 열어 가지 키우는 나무,
그 나뭇가지 부러진 곳에 빛의 파문이 일고 말았다
둥근 기억의 무늬가 새겨지고 말았다
기억을 지우는 일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어서
끌고 가야만 하는 것
옹이 진 자리,
남아있는 흔적으로 물결무늬를 키우고
온몸이 흔들리도록 가지 내밀어
제 몸에 물결무늬를 새겨넣는
나무의 심장을 뚫고
빛이 들어간다
가지가 뻗어나갔던
옹이가 있었던
자리의 무늬는, 지나간 시간이 축적되어있는
나무의 유적이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무늬의 틈새로 가지가 터진다, 잎 터진다, 꽃 터진다
제 속에 유적을 품은 저 나무가 뜨겁다
나무가 빚어내는 그늘
에 들어앉은 후 나는 비로소 고요해졌다
- 시집 『와온』 문학의 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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