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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사진과 인문학/파미르 고원

배롱꽃 / 나무의 유적

by 丹野 2022. 8. 26.

 

 

 

 

 

 

 

 

 

 

 

 

 

 

 

 

 

 

 

 

 

 

 

 

 

 

 

 

 

 

 

 

 

 

 

 

 

 

 

나무의 유적 / 김경성

 

 

 

얼마나 더 많은 바람을 품어야 닿을 수 있을까

몸 열어 가지 키우는 나무,

그 나뭇가지 부러진 곳에 빛의 파문이 일고 말았다

둥근 기억의 무늬가 새겨지고 말았다

기억을 지우는 일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어서

끌고 가야만 하는 것

옹이 진 자리,

남아있는 흔적으로 물결무늬를 키우고

온몸이 흔들리도록 가지 내밀어

제 몸에 물결무늬를 새겨넣는

나무의 심장을 뚫고

빛이 들어간다

가지가 뻗어나갔던

옹이가 있었던

자리의 무늬는, 지나간 시간이 축적되어있는

나무의 유적이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무늬의 틈새로 가지가 터진다, 잎 터진다, 꽃 터진다

제 속에 유적을 품은 저 나무가 뜨겁다

나무가 빚어내는 그늘

에 들어앉은 후 나는 비로소 고요해졌다

 

 

- 시집 『와온』 문학의 전당,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