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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사진과 인문학/파미르 고원

여여하다 #3

by 丹野 2022. 8. 29.





















새떼가 날아간 후 빛 여울지는 갯벌에 앉아서 빛의 농도를 재고 있었습니다.
수평선 쪽 열린 하늘이 눈부셨습니다.

문득, 한 마리 새가 날아왔습니다.
어두워지며 물이 들어오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바람과 새와 노을과 바닷물과 갯바닥이 마지막 빛을 내는 그 틈에 앉아서
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뷰파인터에 들어오는 저, 새의 몸에 초점을 맞추느라 얼마나 숨을 참았던지요.
새는 가만히 있지 않고 저, 저물녘 풍경을
갯바닥에 수를 놓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제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요? 잃어버린 말은 또 무엇일까요?
이 바다에 얼마나 더 와봐야 알 수 있을까요?
가고 또 가면 그 무언가 제 심장 속의 말들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단 한 번도 똑같은 풍경을 보여주지 않고 흘러갑니다.




























새가 날아갔습니다.
날아가서 새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새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봅니다.
새가 날아가며 날갯짓으로 내려준 빛 가루를 봅니다.
무언가를 오래 깊게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떤 황홀이 말을 걸어옵니다.
소리 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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