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읽는 순서
김경성
그렇게 많은 비늘을 떼어내고도 지느러미는 한없이 흔들린다
물속의 허공은 잴 수 없는 곳이어서
헤엄을 쳐도 늘 그 자리에서 맴돌 뿐
휘감아 도는 물속의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당신이 그리울 때마다 비늘 꽃을 피워 올렸다
붉은 몸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오르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뜨거움이 차올라서 목울대에 걸릴 때면
비늘 한 장씩 내려놓다가 한꺼번에 쏟아놓으며
길을 찾아서 갔던 것이다
석 달 아흐레 동안만 눈을 뜨고 당신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감기지 않는 눈을 덮은 비늘, 마지막 한 장 떼어내며
당신의 눈 속에 들어가 있는 나를 찾았을 때
뼈 마디마디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여울에 화살처럼 박히던 소나기도 제 갈 길로 가고
뭉게구름 물컹거리며 돋아 오르고 있었다
비늘 다 떨구고 뼈만 남은 가시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을 움켜쥐었다
- 시집『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2017년
명옥헌을 다녔던 때 썼던 배롱나무 시를 다시 꺼내 읽어본다.
올해는 닿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카메라를 가지고 갔지만 끝내 가지 못했었다.
엄마 태워다 드릴게요.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기적처럼 이번 여행길에 저, 황홀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었다.
폭포처럼 비가 쏟아졌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비에 젖는 줄도 모른 채 붉은 말을 받아 적었다.
아름다움의 결이 내 안에 있었는지
아름다움의 결을 내 안으로 들였는지
눈물이 났다. 그냥 눈물이 났다.
모든 것이 다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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