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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와온』

응고롱고로*

by 丹野 2020. 10. 5.

 

응고롱고로*

 

김경성

 

 

응고롱고로에는

매장당하지 못하고

풀밭에 그림자 늘이고 있는 짐승의 뼈가 있다

아침이 밝아오기 전에 초원을 달렸을,

그러나 지금은 목덜미에 깊은 상처를 입고

다리가 찢겨 속도를 잃어버린,

더 이상 바람의 소리도 듣지 못하고

빛도 감지하지 못하는

어린,

임팔라를 물고

하이에나 한 마리 물가로 걸어오고 있다

죽음과 생을 잇고 있는 심줄 끊으려고

욕망의 칼날 얼마나 세웠을까

핏빛 흔적 지우려 진흙탕 속에 뒹굴어보지만

죽음의 냄새는 사라질 수 없는 법, 독수리 두 마리

임팔라 위를 맴돈다, 햇빛은 강렬하다

하이에나 목덜미에 묻어 있는 핏물 또한 진하다

플라밍고 떼,

내리꽂히는 빛줄기 깃털에 꽂고

물기 잃어가는 호수 부리에 물고 있다

타조가 쏟아놓고 간 둥근 알 풀밭에 박혀있다

깃털 푸른 새, 날갯죽지 속에 부리를 넣고 있는 사이

하이에나의 뒷모습 점점 흐려진다

뿔도 돋지 않은 임팔라 눈을 감아버렸다

한번 들어오면

세상의 빛과 단절하기 전에

언덕을 넘어갈 수 없다는

지상에서 가장 농밀한 저밀도의 바람이 부는

응고롱고로, 잔등에 기대고 있는

저 빛나는 유적들

 

 

 

 

 

*응고롱고로- 탄자니아 북부의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있는 사화산의 분화구.

마사이어로 '거대한 구멍'을 뜻한다.

 

 

 

 

- 시집 『와온』 문학의 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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