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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와온』

쓸쓸한 생

by 丹野 2020. 10. 5.

 

 

 

쓸쓸한 생 / 김경성

 

 

내가 밥을 먹는 동안, 가까이 있던 것들이 멀어져갔네

 

종아리를 스치던 미루나무 우듬지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도 이제는 닿을 수 없는 허공

비에 적신 머리채를 흔들거나 제 키보다 더 긴 그림자를 들었다가 놓네

 

소꿉친구는 기차를 타고 떠났네

화사花蛇가 벗어놓은 흰 허물 펄럭거리는 자리마다

푸른 잎을 부르는 석산화 울음 끝이 붉었네

 

청어를 사러 간 아버지는 둥근 집으로 들어간 후

대문의 빗장을 여우 콩 줄기로 닫아걸었다네

해질 무렵이면 청어를 굽는지 산자락이 자욱하네

 

씨앗 터지듯 몸을 뚫고 나온 아이들마저 더는 내 팔을 베고 잠에 들지 않는다네

 

수저를 들었다 놓으면서 한 모금씩 마신 물이

가슴 가득히 차올랐는지

이마에는 물결무늬가 새겨졌네

접속하지 못하는 내 안의 나마저 낯선 내가 되어 저만큼 앉아 있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나와 가까이 있는 것들이 점점 멀어져가네

 

 

 

- 시집『와온』문학의전당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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