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생 / 김경성
내가 밥을 먹는 동안, 가까이 있던 것들이 멀어져갔네
종아리를 스치던 미루나무 우듬지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도 이제는 닿을 수 없는 허공
비에 적신 머리채를 흔들거나 제 키보다 더 긴 그림자를 들었다가 놓네
소꿉친구는 기차를 타고 떠났네
화사花蛇가 벗어놓은 흰 허물 펄럭거리는 자리마다
푸른 잎을 부르는 석산화 울음 끝이 붉었네
청어를 사러 간 아버지는 둥근 집으로 들어간 후
대문의 빗장을 여우 콩 줄기로 닫아걸었다네
해질 무렵이면 청어를 굽는지 산자락이 자욱하네
씨앗 터지듯 몸을 뚫고 나온 아이들마저 더는 내 팔을 베고 잠에 들지 않는다네
수저를 들었다 놓으면서 한 모금씩 마신 물이
가슴 가득히 차올랐는지
이마에는 물결무늬가 새겨졌네
접속하지 못하는 내 안의 나마저 낯선 내가 되어 저만큼 앉아 있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나와 가까이 있는 것들이 점점 멀어져가네
- 시집『와온』문학의전당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