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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와온』

통명痛鳴

by 丹野 2020. 10. 5.

 

보광사 만세루 / 프라하

 

 

 

통명痛鳴 / 김경성

 

 


1

보광사 만세루에 앉아

몸의 비늘을 모두 벗겨내고 목어 뱃속으로 들어갔다

비릿하게 흘러가는 것들 숨 잦도록 되새김질하면서

제 몸을 나누어서 창살이 되는 나무는 빛과 바람으로 세상을 넘나들고

제 속을 아프게 파내고 북이 되는 나무는

온몸으로 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창호지 바른 산, 겨울 볕에 탱탱했다

새들은 고사목 껍질 속의 유충을 삼키며

나무의 흰 뼈에 부호를 쓰는지 텅텅 텅 텅 소리로 산문을 흔들고

목어의 몸을 빠져나온 나는

돌아올 발자국을 남기며 길을 걸었다

 

3

새들은 어떤 슬픔이 있어

죽은 나무의 잠을 깨우고 죽어도 죽지 않는 나무는 온몸으로 울음 쏟아내는가

나무의 몸을 빌려 집을 짓고 살았던 새들은

아직도 떠나지 못한 채

바람의 행로를 타면서

죽은 나무의 전언을 기다리고 있다

 

 

4

푸른 핏줄 불끈불끈 피 돌았던 나무의 몸속으로

먼 길을 떠난 새들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해는 아직 산을 넘지 못했는데

고사목 흰 뼈에 음각하는 새의 부리와 깃털을 그만 보고 말았다

찔레 덤불에 붉은 핏방울 뚝뚝 떨어지도록

고사목의 마른 울음소리가 깊다

 

 

 

- 시집 『 와온』 문학의 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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