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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와온』

저수지의 속 길

by 丹野 2020. 10. 5.

 

 

저수지의 속 길 / 김경성

 

 

왜, 그 순간 물 빠진 저수지의 속 길이 생각났는지 몰라

 

가뭄 끝, 바닥이 드러난 저수지

각질이 일어난 저수지의 발바닥쯤이었을까, 지문이

다 지워진 손바닥이었을지도 모르지

저수지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였던 거야

목젖 근처에서 뻗어나가는 길 강둑까지 이어져 있었지

물속에 잠겨 있는 동안 그가 걸어 다녔던 길이었을까

둑에 갇힌 채

제 속에 담긴 것들의 전생을 읽거나

한없이 뛰어드는 붙잡을 수 없는 것들 끌어당겨서

길의 끝에 올려놓았을지도…

이른 아침 부리를 씻어내는 새들이

먼 곳에서부터 그어놓은 어떤 기류의 끝자락이며

어린 새들의 처음, 목을 적시는

저수지 안쪽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는

길의 끝이 아니고 길의 시작이었으니

모든 것 다 퍼내고

아프게, 제 속의 것 다 드러내야 보이는

송진 같은

저수지의 속 길

 

 

『와온』, 문학의 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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