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의 속 길 / 김경성
왜, 그 순간 물 빠진 저수지의 속 길이 생각났는지 몰라
가뭄 끝, 바닥이 드러난 저수지
각질이 일어난 저수지의 발바닥쯤이었을까, 지문이
다 지워진 손바닥이었을지도 모르지
저수지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였던 거야
목젖 근처에서 뻗어나가는 길 강둑까지 이어져 있었지
물속에 잠겨 있는 동안 그가 걸어 다녔던 길이었을까
둑에 갇힌 채
제 속에 담긴 것들의 전생을 읽거나
한없이 뛰어드는 붙잡을 수 없는 것들 끌어당겨서
길의 끝에 올려놓았을지도…
이른 아침 부리를 씻어내는 새들이
먼 곳에서부터 그어놓은 어떤 기류의 끝자락이며
어린 새들의 처음, 목을 적시는
저수지 안쪽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는
길의 끝이 아니고 길의 시작이었으니
모든 것 다 퍼내고
아프게, 제 속의 것 다 드러내야 보이는
송진 같은
저수지의 속 길
『와온』, 문학의 전당,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