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禁書를 쓰다
나호열
그날 밤 나를 덮친 것은 파도였다
용궁 민박 빗장이 열리고
언덕만큼 부풀어 오른 수평선이
내 몸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빨래줄에 걸린 집게처럼
수평선에 걸려 있던 알 전구가
몸의 뒷길을 비추었다
상처가 소금 꽃처럼 피어 있는 뒷길은 필요 없어
거칠지만 단호하게 일회용 밴드는 말을 막았다
두껍기는 하나 알맹이가 없는 책은
온통 상처를 감쌌던 일회용 밴드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아무도 읽기를 바라지 않는 나는 금서이다
상처를 어루어만져 줄 네가 필요하다는 말은
달콤한 만큼 거짓말이다
거짓말이 가득한 책
온 힘을 다해 부둥켜 안았던 파도는
날이 밝자 저만큼 물러가 있지 않은가
몸을 떠난 상처는 또 무엇을 그리워해야 하는 지
해는 뜨기도 전에 졌다
<웹진 시인광장 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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