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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천 마리의 새떼가 날아올랐다

by 丹野 2019. 8. 13.

     

     

     

     

     

    천 마리의 새떼가 날아올랐다    

                                            

                                                  김경성

     

        

      

     

    천 마리의 새떼,  

    떡잎 펴고 발돋움하는 유채밭에서 

    검은 흙에 부리를 넣었다가 꺼내며  

    밭의 숨구멍을 열어주고 있었다 

    어떤 씨앗은 새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서 몸을 숨기고 

    미처 꺼내지 못한 씨앗은 뿌리를 내리는지 

    돌멩이도 비켜 있었다

       

    천 마리의 새떼가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새들이 허공에 날개를 넣고 부벼댈 때  

    깃털 사이로 빠져나가는, 혹은 깃털을 타고 흐르는 바람의 소리 

    슈샤사사삭 슈스사쓰스 수사스스스 

    지상의 겨드랑이를 타고 흘러가는 바람의 소리가 저러할까 

    새들의 몸을 빠져나온 바람이 결을 이루며  

    유채 떡잎에 부딪혀서 기우뚱거릴 때 

    나는 가야 할 길을 잊어버린 채 

    새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새의 날개에 손을 얹지 못하고   

    펴지지 않는 날개만 자꾸 만지작거렸다

     

     

      

    언덕까지 날아갔다가 되돌아온 새들이  

    밭의 이마와 가슴에 새싹 같은 부리로 입을 맞추며    

    해국 꽃이 피었다고 꼬리를 까딱거리더니  

    날개 펼쳐서 만든 그물을 펼치며 바다 쪽으로 날아갔다

         

    내 안에서 살포시 머리를 내미는 씨앗 한 톨,

    어느 틈에 온몸을 휘감더니 비로소 새들이 날아가는 쪽으로 몸을 튼다

     

      

    - 계간『시인정신2014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