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비행지도

by 丹野 2019. 8. 13.

 

 

비행지도

  

김경성

 

그는 하루 동안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화분에 뿌려놓은 해바라기와 귀리의 새싹이 그의 몸처럼 푸르다

해바라기 씨앗의 껍데기가 봄볕에 포슬거린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내가 걸어 다니는 속도만큼 그도 따라와 주기를 바랐을 뿐

무엇을 원하지는 않았다

내가 느린 걸음으로 걸을 때면 그도 느리게 걸었다

내가 두 손으로 보듬으며 그의 등에 입을 맞출 때면 발톱으로 내 손등을 할퀴었다

손등 위에 붉은 길을 긋는 것이 그가 멀리 날아갈 수 있는 길의 지도였음을

날개의 깃털을 자르고 난 후에서야 알았다

 

거실에서 쉼 없이 날아다니는 모란앵무 날개의 깃털을 잘랐다

천랑성에서부터 흘러온 길을 따라서 날아가고 싶었던

비행지도가 사라졌다

날지 못하고 새장 속에서 날갯짓할 때마다

우수수 길이 떨어진다 

 

날개가 품고 있었던 길을 삼킨 모란앵무의 울음 속에 

천랑성으로 가는 길이 있다

삐우욱 쓔우

찌으르륵

삐자자작작

쑤와락락

 

 

 

 

 

-『미네르바』2013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