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김경성
새들의 길에는 횡단보도가 없다
김경성
지금도 산굽이 흘러내려 오고 있는 천년 산성에 올라
높이 나는 새를 보았다
강 건너 풍문이 새들의 길을 따라 넘어오고
산성 아래 고택의 문확돌에 서 있는 나무는
제 몸속에 있는 물결을 풀어서
새들의 발톱에 걸어두고
나른하게 날갯짓하던 나비무늬 경첩은
접은 날개 속에 더듬이를 밀어 넣었다
생의 무게만큼 닮아버린 문지방을 더는 넘어서는 사람이 없다
산성에 오르고 있는 것들은
다만 눈물처럼 툭툭 피어난 찔레꽃,
젖은 눈 수런거리며 칭칭대는 지칭개꽃
검은등뻐꾸기는 비 그친 숲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며
산성 아래 붓꽃 핀 연못으로 내려가
꽁지깃을 적셨다
새가 날아갔던 길을 가로질러서 산성에 올라섰다
움푹 팬 구멍은 산성 길의 눈(眼)에
빗물이 고여서 그렁거리고
무언가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갔는지
가슴 안쪽에도 붉은 길이 생겼다
새들의 길이 내 안으로 흐르고 있었다
계간『애지』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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