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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21세기의 새로운 시 쓰기 4 / 이지엽

by 丹野 2012. 1. 31.

 


21세기의 새로운 시 쓰기 4 / 이지엽

 

 

 

 

 

다. 소시민의 건강한 일상성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치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전문

 

 

 

 

 

 

 

 

 

 

 

 

 

 

 

 

 

지난 홍수에 젖은 세간들이

골목 양지에 앉아 햇살을 쬐고 있다

그러지 않았으면 햇볕 볼 일 한 번도 없었을

늙은 몸뚱이들이 쭈글쭈글해진 배를 말리고 있다

긁히고 눅눅해진 피부

등이 굽은 문짝 사이로 구멍 뚫린 퇴행성 관절이

삐걱거리며 엎드린다

그 사이 당신도 많이 상했군

진한 햇살 쪽으로 서로 몸을 디밀다가

몰라보게 야윈 어깨를 알아보고 알은 체한다

살 델라 조심해, 몸을 뒤집어주며

작년만 해도 팽팽하던 의자의 발목이 절룩거린다

풀죽고 곰팡이 슨 허섭쓰레기,

버리기도 힘들었던 가난들이

아랫도리 털 때마다 먼지로 풀풀 달아난다

여기까지 오게 한 음지의 근육들

탈탈 털어 말린 얼굴들이 햇살에 쨍쨍해진다.

 

 

 

- 최영철,「일광욕하는 가구」 전문

 

 

 

     이상국의 「국수가 먹고 싶다」와 최영철의「일광욕하는 가구」에는 낮은 곳에서 발견하는 삶의 아름다움이 있다. 소시민들은 삶에 의해 속임을 당하거나 쉽게 마음을 다친다. 그것을 누가 위안해 주는가.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 주는 국수 한 그릇의 위안을 시 한 편이 줄 수 있는가,”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에게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에게 이상국은 늘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의 시를 보여주고 있다.

 

 

     최영철의 「일광욕하는 가구」는 아프고도 아름다운 시다. 자신이 한 번 쓰러진 경험이 이런 시를 쓰게 했을 것이다. 가구는 다른 것과 달리 홍수에 젖게 되면 쭈글쭈글해져서 버리기 십상이다. 그는 그러나 이것을 “그러지 않았으면 햇볕 볼 일 한 번도 없었을”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서로 상한 가슴들이 따뜻하게 나누는 이들의 애기를 엿듣는다. “살 델라 조심해” 서로 걱정해주는 대목에서는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의 따뜻한 호흡이 느껴진다. 이름 없고 소외된 곳에서 “탈탈 털어 말릴 얼굴들이 햇살에 쨍쨍해” 지듯 소시민의 건강한 일상성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소시민이기에 이들은 아픔을 껴안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누가 천당을 꿈꾸려 하는가

누가 극락을 꿈꾸려 하는가

천당은 너무 깨끗하여,

극락은 너무 아름다워

세상보다 살기 힘들다

예수는 집 앞

개천을 흐르고

부처는 호박 잎

뿌리를 타고 흐른다

세상 사람들의

시끄럽고 지저분한 숨소리가

예수이고 부처임을

문득 깨닫는 시간

잠 안 오는 밤

 

 

 

 

-황인원, 「잠 안 오는 밤」전문

 

 

 

예수도 부처도 옆에 있음을 깨닫느 시간이라면 행복할 시간인데도 시인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것이 어쩐지 공허한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소시민이 안고 있는 불안 의식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죽은 뒤에도 비가 오지 않았다 모래밭은 뜨거웠다

비치파라솔 아래 피서객들이 수박껍질처럼 뒹굴고 있었

다 내 몸의 수분이 자꾸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죽어서

도 잊지 못할 풍경들이 많았다 모래 밖으로 얼굴을 내밀

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이들이 물가에서 뛰놀았다 퇴

근길의 동부간선도로, 해 저문 강가의 타워크레인은 보

이지 않았다 비치파라솔 아래 단잠에 빠진 아이의 종아

리엔 음료수 자국이 물뱀처럼 얼룩져 있었다 개미지옥에

발목이 붙잡힌 몇몇 사내들이 물에 빠진 아이처럼 허우

적거렸다 모래밭에서

 

자꾸만 발 밑의 모래가 움직여 내 몸이 어디론가 흘러가

곤 했다 이러다간 내 몸이 流失되는 게 아닌가, 나는 두

려움에 몸을 떨었다 ㅡ 사실, 나는 살아있는지도 몰랐다

ㅡ 누가 자꾸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대답을 할 수 없

었다 입 안에 모래가 가득했다 가끔씩 허리춤에서 무선

호출기가 울었다 아직도 저 도시의 누군가가 나를 기억

하는 모양이었다 바다가 감자꽃 빛깔로 저물고, 피서객

들이 서둘러 내 곁을 떠났다 아무래도 저 도시를 오래 비

워둘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내, 이렇게 죽어서도 도시를 멀

리 떠나 있지 못하는 것처럼

 

 

 

-오정국, 「모래무덤」전문

 

 

 

 

 

이 작품의 모래 무덤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자꾸만 발 밑의 모래가 움직여 내 몸이 어디론가 흘러가곤 했다”에서 느낄 수 있듯 유실되어 마모되어 가 현대인의 소외된 자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누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어도 답을 할 수 없ㄴ느 암담한 상황을 피서객이 떠난 바닷가의 모래밭을 배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아마 소시민의 이러한 불안의식과 암담함은 시가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이 고립감이 시를 쓰게 하는 힘이 되고, 그 속에서 건강한 서정성을 찾고자하는 노력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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