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김성로 화백님
묵언마을(1)에서의 작품제작 시연
김성로
어제 저녁부터 내리는 빗줄기가 하루종일 대차게 내렸다. 아침부터 간단히 그림도구를 정리하고 묵언마을로 나선 길. 안성 땅 묵언마을에는 5월 한 달간 묵언마을 초대 개인전 중이다. 고속도로 주변의 산들이 푸르름으로 싱싱하고 흰 아카시아꽃들이 무더기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오전 11시 30분경. 자리를 펴고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무엇을 그릴까?’ 지루하게 느껴지는 빗소리로 묵언마을의 황토방 전시장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다.
묵언마을의 기운이 달라져 있었다. 지난번에는 살짝 들떠 있었는데, 오늘은 조용하고 차분하다. 잠시 묵상을 하다가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음이 가는 곳에 그 형상이 있으니 단지 떠오르는 이미지를 약간의 조형성을 살려 구성하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의 묵언마을에는 자아,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안타까움이 깔려있었다. 예전에 마라톤 국가대표였으며 당시 한국의 신기록을 깨트렸다는 분이 오셔 ‘마라톤은 자기와의 외로운 싸움’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림도 그러하고, 산다는 것 모두가 그러하다. 나는 그림을 그리며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나의 그림은 남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나 자신의 본질을 향한 나와의 끝없는 대화이다. 아무것도 아닌 듯 하지만 그려놓은 형상을 어루만져본다. 거기 따스한 느낌이 전해져오지 않으면 다시 바꾸어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계속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스님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그냥 지켜보고만 계셨다. 마음과 마음의 교류는 말이 없으므로 더욱 수월해진다. 아무런 구체적인 형상이 그려져 있진 않지만 이미 모든 내용은 공간 속에 가득 채워져 있다. 묵언마을에는 외로운 영혼이 있었다.
원을 하나 그리니 스님이 빙그레 웃으신다. 지개야 스님도 모든 것을 보셨다. 슬그머니 일어나셔서 묵언마을 식구 한 분과 상담을 하러 가셨다. 그 외로워하는 영혼을 공감하시기 위함이리라. 하나하나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그려나갔다. 여기서부터는 그림이 다소 설명적이다. 소통과 교감의 문제이므로 가급적 알아보기 쉽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방송학과 대학생 두 명이 졸업작품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며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촬영을 하던 한 학생이 서울에는 전시장도 많고, 보다 효과적인 공간들이 많은데 왜 이곳에서 전시하며 그림을 그리느냐고 묻는다. 사실은 어떤 곳이든 마다치 않는다는 게 솔직한 대답이겠지만, 이곳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무엇을 표현하는 것인가요?”
설명을 하고자 하니 말이 얽히기 시작한다.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아니다. ‘만다라?’ 그러면 만다라를 설명해야 하고, 인드라망을 설명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그림과 거리가 더 멀어진다.
“새를 그리고, 사람을 그렸지. 사람들이 외로워하고, 사랑을 느끼고, 사유 하고, 꽃 한 송이가 피었고…, 모든 것은 서로 다른 듯 하지만,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지. 한 사람이 슬퍼하면 다른 사람도 슬퍼지고, 한 사람이 사랑을 느끼면 다른 사람도 사랑을 느끼고…….”
마침 오늘 묵언마을에서 자살영가 무료천도제를 봉행한다고 하여 여러 시인들이 시낭송, 퍼포먼스를 공연했다. 행사 준비로 주변이 어수선하여 들뜬 기운을 가라앉히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구천을 떠도는 영가들이 있다면 그림을 통하여 조금이라도 평안과 가벼움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존재의 실상은 밝은 빛
어떤 것에도 더렵혀지지 않으니
두려움과 어리석음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니
생성 소멸 또한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것은 상황과 조건으로 만들어진 물거품과 같은 것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다시 태어나 새로워지나니
그 중 어떤 것을 나라고 칭할 수 있을까?
살아 존재하는 것, 죽어 영혼이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대자연의 평화와 안식의 세계에서 참으로 당당하소서.
5월 16일의 묵언마을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림 속에 나라는 현상과 주변의 모습들을 표현하여 존재의 실상을 표현하려 하였다.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하노라니 인간이 만든 어떤 것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다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지나지 않는다.
김성로
1957년에 태어났으며 개인전 및 해외전(미국, 중국, 일본, 아르헨티나, 베트남 등)을 열었다.
현재 어유문학제를 기획 운영하고 있으며, 어유중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이다.
-출처 / 시와산문 그리고 시와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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