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새로운 시 쓰기 3 / 이지엽
나. 솟구치는 생명력에의 경의,혹은 생태환경시
일전에 나는 1990년대 북한 서정시의 몇 국면을 살핀 일련의 글들 중에서 북한시의 건강한 서정성과 만날 수 있는 21세기 우리의 시학을 미래에 대한 예견 중 솟구치는 생명력에의 경의를 가장 먼저 거론한 바 있다. 남한시에 있어서 분단비극을 바르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박봉우의 <휴전선>있었다. 전쟁에 참전한 당사자들보다는 전쟁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보다 객관적인 시간이 마련되고, 그 비극적 인식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했다. 일관된 세계관이 일사불난하게 전개될 수도 없었고 , 더욱이 보수와 진보의 대결적 구도에서 빚어진 혼란과 시적 모더니티의 추구로 인한 탈 전통화 기류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대전제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성장한 민의를 바탕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요구가 증대하자 1991년 30년 만에 기초단휘인 군의회와 시. 도의회 의원에 대한 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1995년 6월 27일에는 기초단위 단체장, 시장. 도지사등 광역단위 단체장, 기초의회의원, 광역의회의원등을 선출하는 선거가 실시됨으로써 전면적인 지방자치제가 부활되었다.
1993년 문민 정부의 출현과 지방자치시대의 부활은 남한의 문학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문단에서 높은 목소리를 내던 시인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기도 했다. 이념의 적이 실시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빈자리를 채우고 나선 것이 생명시였다. 이 생명시는 크게 두 갈래의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환경 파괴를 고발하는 부면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의 놀라운 치유력과 경이로움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전자가 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후자는 환경오염이 상대적으로 덜 심한 중소도시와 농촌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삼한 적 하늘이었는가 고려 적 하늘이었는가
하여튼, 그 자즈러지는 하늘 밑에서
"확 콩꽃이 일어야 풍년이라는디,
원체 가물어놔서 올해도 콩꽃 일기는
다 글렀능갑다"
두런두런거리며 밭을 매는 두 아낙
늙은 아낙은 시어머니, 시집온 아낙은 새댁,
그 새를 못참아 엉금엉금 기어나가는 것은
샛푸른 샛푸룬 새댁,
내친김에 밭둑 너머 그 짓도 한 번
"어무니,나 거기 콩잎 몇장만
따 줄라요?"
(오실할 년, 콩꽃은 안 일어 죽겠는디 콩잎은 무슨 콩잎?)
옛다, 받아라 밑씻게 콩잎
멋모르고 딱다보니 항문에서 불가시가 이는데
호박잎같이 까끌까끌한게 영 아니라
"이거이 무슨 밑씻개?"
맞받아치는 앙칼진 목소리,
"며느리밑씻개"
어찌나 우습던지요
그 바람에 까무러친 민들레 홀씨
하늘 가득 자욱하니 흩어져 날았어요
깔깔거리며 날았어요
대명천지,그 웃음소리 또 멋도 모르고
덩달아 콩꽃은 확 일었어요
- 송수권,「땡볕」전문
송수권의 일련의 작업들은 우리 나라의 풀과 꽃과 온갖 생명체들, 이를테면 순 우리 것에 대한 생명을 불어 넣기라도 할 수 있는데 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노을』, 『들꽃 세상』등을 비롯하여 인용한 「땡볕」이라는 작품도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 위에 있다.
설화적 요소를 질박한 언어를 통해 탄력있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이긴 자의 몫이지만 시인의 시선은 낮은 곳을 늘 향해야 한다고 했다던가. 문화 기층의 눈물과 애환을 건강함과 해학으로 바꾸어내는 서사성은 무엇보다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나는 사랑합니다, 텃새, 잡새, 들새, 산새 살아넘치는
우리나라의 숲을, 그 숲을 베개 삼아 찌르륵 울다 만 찌르레기새도
우리 설움 밥투정하는 막내딸년 선잠 속 딸국질로 떠오르고
밤새도록 물레를 감는 삐거덕, 삐거덕, 물레새 울음 구슬픈
우리나라의 숲길을 더욱 사랑합니다.
-송수권,「우리나라의 숲과 새들」
시인의 가슴에는 우리나라의 숲이 언제나 살아 넘치고 있다. 그것이 밋밋하고 단순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밥투정하는 막내딸년 선잠 속 딸꾹질'로 살아남고 '밤새도록 물레를 감는 삐거덕, 삐거덕' 소리로 살아 있는 것이다. 이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소리를 통해 시인은 건강한 서정의 물줄기를 우리에게 쏟아 부어주고 있는 것이다.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 이우걸,「팽이」전문
무심히 지나치는
골목길
두껍고 단단한
아스팔트 각질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새싹의 촉을 본다
얼랄라 저 여리고 부드러운 것이!
한 개의 촉 끝에
지구를 들어올리는
힘이 숨어 있다.
- 나태주 「촉」전문
이우걸의 「팽이」와 나태주의 「촉」에서도 우리는 이 서정의 힘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팽이」에는 뼈를 깍는 자기 정련의 과정을 통해 자아를 확립해 나가는 의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접시꽃 하나'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거친 환경을 뚫고 올라온 생생한 생의 의지가 응축되어 있는 존재다. 「촉」역시 "두껍고 단단한 아스팔트 각질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의지의 산물이다. '여리고 부드러운'촉 한 끝은 생명의 정수리인 셈이다. 그것이 지구를 살리게 하는 힘이다. 환경이 파괴된 속에서도 건강하게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전자가 인간 욕망의 제어와 노력을 통해 자연의 무한한 생명력을 불러 왔다면 후자는 자연 스스로에게 내재된 자생력을 통해 치유의 불가사의한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축산은 영락없는 독수리 형상이다.
날개 크게 펼쳐 하늘 허공을 돌며
먹이를 낚아채기 직전, 저 거침없는 몰입의 긴장을
나는 느낀다, 무진장 무진장 눈이라도 퍼붓는 날이면
흰 날개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이고
산의 들숨 날숨 따라가다 나도 함께 숨을 멈추고 만다.
명창의 한 호흡과 고수의 북 치는 소리 사이
그 사이의 짧은 침묵 같은, 잠시라도 방심한다면
세상 꽉 붙들고 있는 모든 쇠줄들
한순간에 끊어져 세차게 퉁겨 나가버릴 것 같은,
팽팽한 율에 그만 숨이 자지러지는 것이다.
겨울산을 면벽 삼아 수좌들 동안거에 들고
생각 놓으면 섬광처럼 날아와 눈알 뽑아버릴
독수리 한 마리 제 앞에 날려놓고
그도 물잔 속의 물처럼 수평으로 앉았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잔 속의 물 다 쏟고 마는
그 자리에 내 시를 들이밀고, 이놈 독수리야!
용맹스럽게 두 눈 부릅뜨고 싶을 때가 있다.
나도 그들처럼 죽기를 살기처럼 생각한다면
마주하는 산이 언젠가는 문짝처럼 가까워지고
영축산은 또 문짝의 문풍지처럼 얇아지려니
그날이 오면 타는 손가락으로 산을 뻥 찔러보고 싶다.
날아라 독수리야 날아라 독수리야
산에 구멍 하나 내고 입바람을 훅 불어넣고 싶다.
산 뒤에 앉아 계신 이 누구인지 몰라도 냉큼 고수의 북채 뺏어 들고
딱! 소리 나게 산의 정수리 때려
맹금이 날개로 제 몸을 때려서 하늘로 날아가는 소리
마침내 우주로 날아오르는 산을 보고 싶은 것이다.
- 정일근「날아오르는 산」전문
정일근의 「날아오르는 산」에도 이 생명력에 대한 추구를 강렬하게 소망하는 서정자아의 마음이 잘 형상화되고 있다. 자연이 부동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고 더욱이 우주로 날아오르는 무한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은 환경이 점점 파괴되어 가는 도시에서는 도저희 만날 수 없는 인식이다. 시인은 '죽기를 살기처럼 생각'하면서 산에 가까워지려고 한다. 그래서 정말 큰 독수리가 되어 제 몸을 때리며 우주로 날아오르고 싶어한다.
사내는 거친 숨 토해놓고 바지춤 올리고
헛기침 두어 번 뱉어 내놓고는 성큼,
큰 걸음으로 저녁을 빠져나간다
팥죽같은 식은땀 쏟아내고는 풀어진
치마말기 걷어올리며 까닭 없이
천지신령께 죄스러워서 울먹거리는,
불임의 여자, 퍼런 욕정의 사내는
이른 새벽 다시 그녀를 찾을 것이다
냉병과 관절염과 디스크와 유방암을
앓고 있는 여자. 그을음 낀 그녀의 울음소리
이내가 되어 낮고 무겁게 마음을 덮는다
한때 그 누구보다 몸이 달고 뜨거웠던
우리들 모두의 여자였던 여자.
생산으로 분주했던 물기 촉촉한 날들은
가고 메마른 몸 속에 온갖 질병이나 키우며
서럽게 늙어 가는, 폐경기 여자.
그녀는 이제 다 늦은 저녁이나 이른 새벽
지치지도 않고 찾아와 몸을 탐하는
사내가 노엽고 무서워진다
그 여자가 내민 밥상에서는 싱싱한
비린내 대신 석유내가 진동을 한다
- 이재무,「갯펄」전문
이재무의 「갯펄」에는 솟구치는 생명력에의 경의를 보여주는 시편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나 좌표를 엿볼 수 있다. 이 시는 생각보다는 단순하지는 않다. 밀물 혹은 썰물과 개펄을 남자와 여자로 의인화 한 재미성만으로만 읽혀지지 않는다. 물이 빠져나간 뒤의 여자는 이제 더 이상 생산해 낼 수 없는 "서럽게 늙어 가는, 폐경기 여자"다. "냉병과 관절염과 디스크와 유방암을 앓고 있는 여자"며, "메마른 몸 속" "싱싱한 비린내 대신 석유내가 진동을" 하는 여자다. 말하자면 이"개펄"은 남자의 욕망에 의해 짓밟힌 공간이며 오염되어 썩어가는 공간이다. 시인은"개펄"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해 인간의 가없는 욕망과 파멸 위에 놓인 질긴 생명력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할머니는 쌍것이었다 죽어도 쌍것이었다
논이 되어 밭이 되어 허리 구부리고
살았을 뿐
시집은 시집이어서 하자는 대로
살림은 살림이어서 하자는 대로
절대로 쌍것인갑다, 여자인갑다 했을 뿐
"그건 안되겠어라우" 한마디 못하셨다
하긴 전쟁터에 지아비 보낼 때도
곧 오마 하는 소리 들었을 뿐
감히 나가 볼 생각 못했다
하긴 혼자 되어 깔 비고 손 비고
똥장군까지 질 때에도
감히 개가는 꿈도 꾸지 못했다
할머니는 여자였다 죽어도 여자였다
하나 있는 손녀 시집가는 길위에서
오늘도 "남편 말에 복종 잘하고......'하신다
두 번 세 번 눈물 찍으며 당부하신다
- 오봉옥,「놀끈 - 남녀차별」전문
그러기에 생명력의 생생한 광휘를 논할 때 으레 자연만을 지칭하는 범주를 벗어나 인간에게까지 그 범주를 늘이는 것은 당연한 추세일 것이다. 남성의 입장에서 쓴 성차별의 문제를 다룬 이 작품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하다. 생명력의 환희를 넘어서 그 생명의 개개들이 안고 있는 생존의 문제와 생태 환경의 심각성은 앞으로도 우리 문학의 주요 담론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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