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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21세기의 새로운 시 쓰기 2 / 이지엽

by 丹野 2012. 1. 31.

 

 

21세기의 새로운 시 쓰기 2 / 이지엽

 

 

 

 

 

 

가. 문명비판의 정신사적 몸부림

 

 

    그렇다면 21세기의 새로운 시쓰기는 무엇일까, 시인은 무엇에 고민을 해야 하며 어떠한 시적대상에 대해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 21세기의 우리시단의 지배 담론은 무엇이 될 것인가. 눈치를 보며 시를 쓸 하등의 이유는 없지만 시인된 자는 이런 정신세계의 흐름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21세기에 우리 시단에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문학의 징후에 대해 살펴보고 어떠한 시 창작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시인의 태도에 대해 얘기 하도록 하겠다.

 

 

할수만 있다면 어머니 , 나를 꽃 피워주세요

당신의 몸 깊은 곳 오래도록 유전해온

검고 끈적한 이 핏방울

이 몸으로 인해 더러운 전쟁이 그치지 않아요

탐욕이 탐욕을 불러요 탐욕하는 자의 눈앞에

무용한 꽃이 되게 해주세요

무력한꽃이 되게 해주세요

온몸으로 꽃이어서 꽃의 운하여서

힘이 아닌 아름다움을 탐할 수 있었으면

찢겨져 매혈의 치욕을 감당해야 하는

어머니,당신의 혈관으로 화염이 번져요

차라리 나를 향해 저주의 말을 뱉으세요

포화 속 겁에 질린 어린아들의 발 앞에

검은 유골단지를 내려놓을게요

목을 쳐주세요 흩뿌리는 꽃잎으로

벌거벗은 아이들의 상한 발을 덮을 수 있도록

꽃잎이 마르기 전 온몸의 기름을 짜

어머니, 낭자한 당신의 치욕을 씻길게요

 

 

- 김선우, 피어라,석유」전문

 

 

   김선우의, 피어라,석유!」는 문제적 작품이다. 이 시는 '석유'가 가지고 있는 '탐욕'과 '파괴'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다. '석유'는 '검고 끈적한 핏방울'이다.  그것은 오래전에 무기화 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 이라크 전쟁도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공공연하게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화자는 시의 전개에 따라 "꽃 피워주세요" → "무력한 꽃이 되게 해 주세요" → "차라리 나를 향해 저주의 말을 뱉으세요" → "목을 쳐주세요"로 점점 더 강경하고 단호한 의식으로 바꾸어 간다. 자기혐오나 패배의식이 점점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 혐오는 본래의 태생이 죄스럽다는 원죄의식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몸으로 인해 더러운 전쟁이 그치지 않아요"라는 인식이다. '이 몸'은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탐욕'이고, 탐욕은 언제나 더한 탐욕을 불러일으키므로 그들 앞에'무용한 꽃', '무력한 꽃'이 되게 해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더 이상 씨앗의 기능을 할 수 없는 꽃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아름답지 않게, 섹시하지 않게 보이지 않는 꽃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탐욕은 불길 같은 것이어서 우리의 혈관은 화염으로 타오르게 된다. 불의 시대, 파괴의 시대, '검은 유골단지'의 시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우리들의 피가 굳기 전 그 피로 '벌거 벗은 아이들의 상한 발'을 덮거나 '어머니를 위해 낭자한 치욕'을 씻어드리는 일이다. 자신의 마지막까지도 모두 타자를 위해 던지겠다는 것이다. 몸이나 정신이나, 그 죄를씻기 위해, 이런 속죄양의식을 담고 있으면서  우리가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문명 비판에 관한 정신이다.

 

  사실 '불이나'에너지'는 얼마나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어 왔는가. 그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류는 엄청나게 큰 변화를 이루어냈고 아름답게 계승해 왔다. 그러한 에너지가 언젠가는 고갈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수단이었던 그것이 종국에는 목표로 바뀌게 되었다. 그것이 권력이 되고 신이 되었다. 우리의 몸이 화염으로 번지는 것은 당연한 일, 문명이 가져다준 어쩔 수 없는 비극인 셈이다. 그런 문명을 향해 시인은 외치고 있다. '목을 쳐 주세요'라고 '온몸의 기름을 짜'상처를 덮겠노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부르짖는 이음성은 시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점은 매우 중요 하다) '어머니'나 '아이'의 가족사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이소리는 세계를 향해 부르짖는 소리다. 진정한 문명비판은 지금 여기의 역사성을 지니면서도 세계적인 속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사실 진정한 시의 가치와 위의는 어디에 있는가. 문명 비판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트럭 행상에서 오징어 10마리를 사서

내장을 빼내 다듬었다, 빼낸 내장을 복도의 쓰레기 봉투에

담아 한 켠에 치워 두었다, 이튿날 여름빛이

침묵하는 봉투 속으로 들어가 핏기 없는 육체와 섞이는 동안

오징어 내장들은 냄새로 항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마가 져 나는 지붕 위의 망각을 내리지 못하고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헛된 녹음에 방문을 걸고 있을 때

살 썩는 냄새만이 문틈을 타고 스며들고 있었다

복도에는 고약한 냄새만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방안 가득 풍겨오는 냄새를 밭으며 냄새에도 어떤 갈피가

있을 거라는 생각, 더 정확히는 더러운 쓰레기를 힘겹게 내다

버려야 할 것이라는 생각과 싸우고 있다

 

비로소 나는 복도의 문을 열었다

비가 멎고, 싸우고 난 뒤의 불안한 평온이

사방이 퍼져 있었다, 공기가 젖은 어깨를 말리고 있었다

발자국에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막 열쇠로 지옥 같은 문을 잠그고 돌아설 때쯤

핏기 없은 냄새가 심장까지 파고 들었다

무덤에서 냄새의 뿌리로 태어난 수많은 구더기들이

시간의 육체 속으로 흩어져 갔다

 

 

 

 - 박주택, 시간의 육체에는 벌레가 산다」전문

 

 

 

 

시장 광장 한쪽에

너, 모래뭉치 중년 거지

낡은 트럼펫 위에

가만히 가 있는

손, 두 손가락 없는

 

구릿빛 금관이 바람을 뱉네

입에 들어오는

허공 한 장의

파도소리

때려도 달아나지도 않는

늙은 나귀가 울고

 

두 손가락은 사람이나 밥

그불같이 깊은 곳을 눌러버렸나

 

발밑에,

망고 두 개 든 가방이

생의 찢긴 지페 사이로

놓여 있네

 

 

- 황학주, 체냐 시편15 - 라무 섬에서」전문

 

 

 

   현대문명은 그것이 전자의 작품처럼 정신세계를 향하든, 후자의 작품처럼 현실의 문제로 놓여 있든 이미 우리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이 문제를 결코 초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자의 작품은 답답하게 읽힌다. 쓰레기를 당장에 갖다 버리면 될것인데 그러지 못한 이유는 비가 오기 때문이고 게으르기 때문이다. 물론 시인은 이것을 일부러 의도하고 있다. 비가 오는 것은 외부적인 것이고 게으른 것은 내부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덤에서 냄새의 뿌리로 태어난 수많은 구더기들"은 이러한 내부 문제가 곪아터진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된다. 현대인들은 아무튼 이"시간의 육체"를 거느리며 살아간다. 아니 그것에 종속되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후자의 시는 외국 여행 중에 본 내용을 담고 있다. 낡은 트럼펫을 부는 중년거지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생의 찢긴 지폐 사이"의 삶은 고단하고 초라하다. 고단하고 초라한 삶은 문명의 다른 모습이고 그것은 세계적이다. 김선우의 피어라,석유!」에서 보듯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흩어진 피투성이 국지전들이 하나 둘

뭉치다가 더 엉망진창으로 헐뜯다가

어느 시점에 저리 정중한 4각의

정상회담으로 뒤바뀌는가.

그리고 다시 등은 더 거대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끔찍함으로의 열림

그것이 중도에 어느 시점에 또 저리 미려한

지상 최대의 계단을 이루는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 우린 망했다.

 

 

- 김정한, 빅4」전문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도 소용없으리라. 동상은 또 세워지고

파괴될 것이다. 거대한 코와 눈이 너무 흉하게.

 

 

- 김정한, 파괴된 동상」전문

 

 

  그런 의미에서 김정환의 작업은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현대 문명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빅4」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문제를 아이러니 기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동구 공산권의 몰락을 파괴되어지고 있는 동상을 통해 감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파괴된 동상」또한 문명비판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누가 성층권 따위에

관심과 세금을 내겠는가

유사 이래

이제까지의 희망은

지구 안에서의 희망이다

망한다면,

시인의 직관이 틀리지 않는다면

사람이야 말로

지구의 매독이다

이 매독이야 말로

지구를 비닐로 미장할 것이다

 

 

- 박용하, 희망」부분

 

 

 

밤이면 나는 컴퓨터 속으로

슬며시 잠입한다

머리에 검은 두건을 쓰고

바지 단을 졸라매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조회 받으며

칼 냄새 자욱한 무림의 땅으로 들어선다

 

적도 동지도 없는 쓸쓸한 눈 덮힌 벌판으로

발을 내딛으면 어둠속에서 소리없이 열리는 길

등 뒤에서 나를 노리는 자들의 발소리

바람 속에 숨어 나를 노리는 살의를 경계해야 한다

한번 실패는 죽음이다

 

인디언처럼 적의 머리가죽을 벗기고

불쑥 튀어 오르는 적의 가슴을 단칼에 베려

내공을 키우는 밤

죽음은 어디서나 한 방울의 피처럼 가볍다

 

여기서도 검객의 이름이 필요하다

잿빛 쟈칼 , 붉은 여우,  칼빛 사랑, 바람의 신화

컴퓨터 화면마다 튀어 오르는 핏자국들

숨을 멈추고 손끝에 기를 모아 단칼에 내리쳐야 한다

머리뼈를 가르는 묵직한 장검의 소리

피냄새를 맡으면 퍼들거리며 날개가 돋아나는 칼날

목숨들이 한줄기 칼 빛으로 사라진다

 

나는 밤이면 검은 두건을 쓰고 칼을 차고

금기의 땅으로 들어선다

누구도 이 무림의 땅에서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장검을 차고 피의 온기로 달빛이 맑게뜨는 밤

달빛 위를 걸어가는 밤

길위에서 나는 수시로 죽음에게 검문 당한다

 

 

 

- 서안나, 나는 날마다 죽음에 검문 당한다전문

 

 

 

 

   희망이란 작품도 제목과는 상반되게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린다.  "사람이야 말로 지구의 매독이다"는 독설은 자아 밖에

세계에 대한 대립과 갈등의 다른 표현이다. 더구나 "지구를 비닐로 미장할 것"이라는 예언은 우리를 암담하게 한다. 난 날마다 죽음에 검문 당한다」는 사이버 공간을 현실로 재현 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사이버 공간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 속에서는 우리가 생각도 못한 끔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는 공간만을 빌려왔을 뿐이지 위악적이고 불확실한 오늘날의 현실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나가고 싶다

초록의 문을 열고 싶다 나는

또 나가고 싶잖은 마음이 인다

또는 잠시 나가 패랭이나 캐서

화분에 심어보고 싶다

이 위태로운 어질어질함

 

누가, 바깥에서 문고리를 잡는다

밖에서...누가

내방의 어두운 유리창을 닦는다

 

 

- 이하석,  밖」전문

 

 

 

 

   이 시에 나타난 "밖"이 곧 그 불확실성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위태로운 어질어질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이"위태로운 어질어질함"과 어두운 유리창 밖의 세계가 다른 무엇보다 21세기 시학의 가장 큰 담론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사해준다고 볼 수 있으며,  우리 시학을 포함한 세계사의 시학 중심부에 놓일 수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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