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1901-1976의 생애 및 작품세계
■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1901-1976의 연보年譜
1904년 11월 3일 조르주 앙드레 말로 파리에서 태어나다
1905년 앙드레 말로의 아버지 페르낭 말로와 어머니 베르트 라미와 결별
1906년 봉디 초등학교 입학
1909년 할아버지 자살하다
1915년 투르비고 고등학교 입학
1918년 콩로르세 고등학교에 입학을 거절당하고 진학을 포기
1919년 르네-루이 두아용 출판사에서 편집인으로 일하다
1920년 최초의 평론 “입체파 사고의 기원”을 <라 코네상스>지에 발표하고, 로트레아몽과 앙드레 살몽에 관한 평론을 <앙시옹>지에 싣다.
1921년 심보 크라 출판사에 문학편집장으로 취임. 최초의 작품 <종이달>을 출간하고 “길들인 고슴도치”, “학살극 소방관 일기” 등과 같은 짧은 글들을 발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등지를 여행하고 클라라 콜트슈미트와 결혼.
1922년 지드, 고비노, 막스 자코프 등에 관한 평론들을 발표. 기상천외한 이야기인 “프랑스 정원의 고무 토끼들”과 갈라니 전시회 카다로그의 서문을 기고.
1923년 부인 클라라, 친구 루이 슈바송과 함께 인도네시아로 가서 반테아이 스레이 사원원정대를 조직. 부조 절취범으로 고발되어 3년형을 받다.
1924년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다. 잡지 <아코르>에 "코끼리 코 우상을 위한 글"을 게재.
1925년 클라라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다. 폴 모넹과 함께 <랭도쉰드>를 창간. 발행 정지된 후 <랭도쉰드 앙세네>로 재창간. 12월 프랑스로 귀환.
1926년 <서양의 유혹> 출간.
1927년 “곰인형을 위한 글”(<900>), “카나리아 군도 여행”(<콩메르스>), “유럽의 젊음에 관해”(<에크리>) 등을 발표.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예술 서적 담당.
1928년 <정복자>와 <이상한 왕국>을 출간. 페르시아여행.
1930년 <사막의 왕국>의 첫 권으로 소개했던 <왕도>를 출간.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여행. 아버지 페르낭 말로 자살하다.
1931년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방문하고, 중국, 일본, 미국 등지를 여행하다. <정복자>에 관해 말로와 트로츠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나다.
1933년 로앙에서 트로츠키와 만나다 <인간조건>으로 콩쿠르 상 수상. 딸 플로랑스 태어나다. 여류작가 조제트 클로티와 만남. 어머니 베르트 라미의 죽음.
1934년 앙드레 지드와 함께 디미트로프 석방을 위한 탄원서를 지참하고 베를린을 방문하다. 에두아르 코르닐리옹-몰리니에와 함께 사바 여왕의 고도를 찾아 에멘 사막 상공을 비행하다. 이집트에 기착하다. 8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1회 소비에트 작가 총회에 참석. 아젠스타인, 고르키, 파스테르나크, 스탈린 등과 만남.
1935년 <경멸의 시대>출간. 국제작가회의, 타일만 위원회 등에 참석. 로렌스 대령과의 만남.
1936년 6월 21일 런던의 열린 작가협의회 사무국에서 연설. 스페인 내전에 참전. 에스파냐 항공대 창설. 메들린, 마드리드, 톨레드, 테루엘 전투에 참여. 네루와의 만남.
1937년 스페인 공화국파 지원을 위한 모금 운동 차 미국을 방문. <희망> 출간. 잡지 <베르브>에 "예술 심리학" 1권을 발표.
1938년 스페인에서 <시에라 드 테루엘> 촬영.
1939년 <프랑스 문학 명부>에 라클로에 대한 논문 발표. 2차대전이 발발하자 전투부대에 지원.
1940년 초 프로방스에서 징집.
1940년 상스 부근에서 포로가 되다. 몇 달 후 에 프랑스 남부로 탈출. 조세트 크로티가 11월에 파리에서 출생한 아들 패에르 고티에를 데리고 말로와 합류.
1941년 남부 프랑스에 거주 지드, 라캉, 사르트르 등이 방문. 초기 레지스당스에 참여 요청을 거부. <천사와의 싸움>과 <절대의 악마>(로렌스 대령에게 헌정)의 집필에 몰두.
1942년 말에 코레즈로 거처를 이주.
1943년 <알텐부르크의 호두나무들>(<천사와의 싸움>의 1부)을 출간. 둘째 아들 뱅생 출생. 레지스탕스들과 접촉.
1944년 베르제르 대령으로 변신하여 로, 도르도뉴, 코레즈 지방의 항독대원 1천5백 명을 지휘. 부상을 당한 후 독일군에게 체포되다. 모의 처형을 당하는 공포를 경험하다. 툴루즈에서 수감된 후 독일군의 전격적인 철수에 따라 자유의 몸이 되다. 그의 두 이복형제가 채포 되어 수용소에서 모두 사망한다. 알자스-로렌 여단을 창설하여 뮐르즈와 스트라수브르커까지 진격한다. 11월에 조제트 클로티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다.
1945년 1월 파리에서 열린 국가해방운동총회에 참석. 알자스-로렌 여단과 재 합류해 독일까지 진격. 8월 10일 드골 장군과 만남. 장군의 기술고문이 되다. 1월 21일 정보부 장관에 임명. 1945년 12월 29일 국민헌법회의에 참여.
1946년 1월 20일 드골의 토임과 함께 장관직 사임. <그러면 그것뿐이었던가> (<절대의 악마>의 발췌본)과 <영화 심리학개요> 출간. 11월 4일 소르본 대학에서 “인간과 문화”에 대해 강연.
1947년 드골이 프랑스 공화국 연합(RPF) 창립. 말로, 선전위원으로 참여. <프라도 박물관의 고야 데생>과 <예술심리학> 1권인 <상상의 박물관> 출간.
1948년 클라라와 이혼한 후 동생 롤랑의 미망인 마들렌과 결혼(마들렌과 롤랑 사이에서는 알랭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주간지 <르 라상블라망> 발간. <예술창조> 창간. 말로와 제임스 빈험의 긴 대화를 기록한 <드골을 위한 상자>가 출판됨.
1949년 잡지 <정신의 자유> 창간. <전대의 동전> 출간.
1950년 <사투르누스> 출간. 여름동안 파라티부스를 앓다.
1951년 <침묵의 목소리> 출간.
1952년 <세계 조각에 관한 상상의 박물관> 출간. 그리스, 이집트, 인도, 이란 등을 여행.
1954년 <성스러운 동굴의 부조들>과 <기독교 세계> 발간.
1957년 <신들의 변신> 출간.
1958년 앙리 알레그의 작품 <문제>가 압류되자 말로는 로제 마르텡 뒤가르, 프랑수아 모리악, 장 폴 사르트르 등과 함께 대통령에게 공권력이 고문행사를 처벌하도록 촉구하는 편지에 서명하다. 드골 정권의 무임소 장관으로 임명되다.
1959년 문화 장관으로 임명되다.
1960년 멕시코 방문. 아프리카 방문. 슈바이처 박사와 만남.
1961년 4월 22일 알제리 식민지 유지를 지지하는 군사반란에 반발하다.
1962년 앙드레 말로 사저에서 알제리 반군파에 의한 폭발사건 발생.
1965년 마오쩌둥과 만남.
1966년 디카에서 레오폴 생고르와 함께 제1회 세계흑인예술축제 개막연설. 마들렌 말로와 헤어짐.
1967년 <반회고록> 출간.
1969년 드골 사임 후 장관직 사임. 루이즈 드 빌모랭과 함께 베리에르-르-뷔송에 거주. 레지 드브레의 석방을 청원키 위한 “볼리비아 대통령에게 드리는 편지”에 모리악, 사르트르 등과 함께 서명.
1970년 <검은 삼각형> 출간. 11월 19일 드골 사망.
1971년 <추도사>, <베어지는 떡갈나무들> 출간. 소피아 빌모랭과 함께 케이프 노우스로 선상 여행. 파키스탄과 전쟁 중인 방글라데쉬 자원봉사 제의.
1972년 지중해 선상여행.
1973년 인도, 방글라데쉬, 네팥 여행.
1974년 <흑요석 초상>, <라자르>, <비현실> 출간. 일본과 인도 여행.
1975년 <길손> 출간.
1976년 <동아줄과 생쥐>, <고성소이 거울>, <시간의 초월> 출간 11월 3일 크레테유의 알리-몽도르 병원에서 사망.
1977년 <덧없는 인간과 문학>, <초지연> 출간.
■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1901-1976의 생애
어머니와 할머니와 이모 등은 남자가 없는 집안에서 자란 앙드레 말로에게 쉴새없이 맞부딪는 존재였다. 사내답게 행동하려는 말로를 구속하거나 붙잡는 끈적거리는 손이었다. 그녀들은 어디서나 "검은 베일을‘ 쓰고 죽은 아이들 생각으로 늘 슬픔에 젖어 있는 과부들로 기억되었다. 그 뿐이 아니다. 플랑드르 출신의 건장하고 잘 생긴 아버지 페르낭은 난봉꾼에다가 투기꾼으로 "우리가 죽고 난 후에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지 누가 알아" 라며 자살한다. 2차 대전 당시 수용소에서 죽어간 이복형제들과 애인 조제트, 조제트와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 뱅상과 피에르-고티에, 이복형제 롤랑의 미망인 사이에 둔 아들에 이르기까지 말로가 겪어낸 육친들의 죽음 목록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 이 같은 개인사 안팎에서 벌어졌다. 이런 죽음의 현장은 오히려 말로의 생과 예술을 부추기는 원동력이었다. 말로는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생에 집착했다. 출판사 편집장, 희귀본 거래자, 문화재 발굴범, 작가, 반 식민운동과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끈 혁명가, 영화감독, 초대 문화부장관 등 여러 이름이 말로를 뒤따라 다녔다. 죽음과 생이 결합된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변신 목록이 이런 사실을 입증한다. 스물 두 살의 말로는 증권투자로 부인 클라라의 재산을 완전히 날려버린다. 그리고 1923년에 클라라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떠난다. 그는 여기에서 인생의 전환기를 만난다.
예술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안목, 그리고 호기심을 갖춘다. 그의 인도네시아 여행은 "캄보디아 및 시암 지역 고고학탐사"였다. 그러나 결국 문화재 도굴범으로 몰려 징역 3년을 구형 받게 된다. 프랑스로 돌아간 클라라의 구명운동과 젊은 변호사 모냉의 도움으로 간신히 석방된다. 그런데 이 국제적 해프닝으로 인해 구치소에서 한동안을 지냈다. 말로는 구치소에서 아시아를 유린, 파괴, 약탈하는 정복자들의 오만에 분노한다. 그리고 식민지 당국에 아첨하는 언론의 행태에 눈을 뜬다. 이것을 계기로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 첫걸음이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혁명을 선동하는 <렝도쉰느>의 창간이었다.
* 행동하는 20세기 최고 지성
1925년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서양의 유혹」「정복자」등을 출간하면서 발빠른 행보를 보인다. 그 가운데 1933년「인간의 조건」으로 콩쿠르 상을 수상하면서 프랑스 문학대사로 선출되어 트로츠키와 만난다. 불가리아 조국전선을 이끌던 디미트로프의 석방을 위해 앙드레 지드와 함께 베를린을 방문한다. 시바 여왕의 고도를 찾아 예멘 사막 상공을 비행하기도 한다. 그는 1934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1회 소비에트 작가 총회에 참석하여 아이젠스타인, 고리키, 파스테르나크, 스탈린 등과 교우가게 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베르제르(양치기라는 뜻) 대령으로 변신하여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끌다. 그는 드골 장군을 만나 정보부장관에 임명된다. 드골이 퇴임하자 장관직을 그만뒀다. 그는 1958년 드골이 다시 권좌에 복귀하자 최초의 문화부장관이 된다. 일흔 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까지 30여 편이 넘는 소설과 예술 비평서를 집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한다. 혼란한 세상에서 인간의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가치로서 지성, 천분, 희생, 위대함, 성덕 등을 내세웠던 소설가이자 정치인, 예술평론가로서 정열적인 삶을 살았던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행동주의작가였다.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이론가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죽음"이라는 테마를 통해 앙드레 말로라는 한 지성의 삶을 재조명했다. 실업가의 아들로 1901년 파리에서 태어난 앙드레 말로는 튀르비고 고등학교를 거쳐 동양어학교東洋語學敎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몇 편의 환상적인 작품을 쓰기도 했다. 그는 1923년 캄보디아와 북부 라오스에서의 고고학 답사에 참가함으로써 아시아와 접촉하게 되었다. 베트남을 거쳐 중국 대륙에까지 이르는 이 극동답사여행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나아가서는 서구인으로서의 자신과 서구문명에 대한 고뇌에 찬 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이와 동시에 그는 혁명과의 만남이라는 매우 뜻 있는 경험을 갖게 된다.
이 경험으로 <정복자> <왕도> 에서 비롯되어 <인간의 조건> <해몽의 시대> <희망>을 거쳐 <알탕부르의 호두나무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품을 썼다. 이른바 행동과 반항의 문학은 갖가지 형태하의 혁명을 영속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다. 2차대전 후 드골 장군의 내각에 참여한 이후로 말로는 행동과 소설을 떠나 예술철학에 전념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절이 아니라 인간과 그의 운명에 대한 기나긴 명상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는 행동 속에서 찾았던 인간의 기본적 조건을 예술작품 속에서 계속 찾는다.
<예술심리학> <침묵의 소리> <상상적 박물관> 등의 저서가 있다. 1967년 <반회고록>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는 현대문학과 사상의 거인으로써 여전히 빛을 발하며 군림하고 있는 작가이다. 앙드레 말로는 19세 때 문학을 시작했다.《종이달lunes en papier, 1922》로 문단에 데뷔했다. 앙드레 말로의 작품세계의 특징은 작품 속에 행동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점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행동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문학 평론가 브와데프르Pierre de Boisdeffre는 앙드레 말로를 `지와 용기`를 겸비한 20세기 최대의 작가라고 말한 바 있다.
흔히 대부분의 작가들이 지성은 있으나 용기가 없어 창백한 인텔리로 머물렀다. 용기는 있으나 지성이 결집되어 돈키호테적 만용의 문객으로 그치는 경우이다. 비평가 브와데프르는 “행동하는 지성인”이라고 한 작가에 대한 최상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연보에서 보듯이 말로는 실제로 지성과 용기를 겸비한 작가였다. 75년에 걸친 한 평생 동안 그는 숨가쁜 모험과 지적 고민으로 자신과 세계를 껴안고 운명과 대결하지 않은 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든 젊은이들의 눈에 그는 하나의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보였고 그들이 본받고 싶은 `모형`으로 생각되어졌다.
그는 일찍이 무기를 손에 들고 스페인 내란의 포연 속을 달렸다. 레지스탕스의 전사로서 고문과 총살형의 극한 상황을 살면서 죽음과 대결했다. 알사스 로렌느 여단을 지휘하여 북 부 프랑스를 탈환했다. 문화상이 되어 파리의 모든 건물들을 강제로 세척시켰으며 드골과 함께 조국의 대내외 정책을 직접 결정하면서 역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 또 그의 전 생애가 운명과의 오만한 싸움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죽음`과 `역사`와 `운명`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 모든 것을 능동적으로 떠맡았다.
그는 이른바 사람들이 밥먹듯이 쉽게 올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부인한다. 따라서 그는 사랑의 허망함을 그린 18세기 작가 라클로Pierre A. Laclos를 크게 평가한다. 차라리 에로티시즘을 하나의 형이상학으로 승화시킨다. 그리고 사디슴의 창시자인 사드Donatien A. Sade백작을 선구적 현대인으로 본다.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흔히 고독한 가운데 사물을 명철하게 꿰뚫어 본다. 모든 것을 초월한 상태에서 헛되이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려 한다. 따라서 <왕도의 길 La Voie Royale>에서부터 원래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조건에 대한 형이상학이 작품의 내부적 주제였다. <희망> 이후의 그는 그의 작품에 행동인을 내세우기보다는 하나의 성찰인, 또는 예술인을 등장시켜 인간과 세계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좀더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표작은 <인간의 조건>, <희망>, <왕도>, <예술의 심리> 등이다. 이 가운데 중국 상하이上海를 무대로 1927년 3월 말의 북벌군北伐軍 진군에 호응한 노동자의 일제봉기와 4월 12일의 북벌군사령관 장제스蔣介石에 의한 반혁명쿠데타이다. 그리고 상하이가 해방된 다음날, 어제 아군에 의하여 총살당하는 공산주의 청년들의 군상群像을 그려낸 <인간의 조건>은 1930년대 반 파시즘운동의 투사로서의 말로의 변모를 분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말로는 이 작품으로 1933년에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
* 참여와 투쟁 또는 혁명가革命家로서의 삶
말로는 절망을 피하기 위해 행동을 제안한다. 처음에 그것은 모험일 따름이었다. 그 뒤 행동은 혁명에 헌신한다. 혁명에서 사람들은 박애 정신을 발견한다. 인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타인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 조건>의 등장 인물인 카토우는 그의 동료들을 위해 희생한다. 그들에게 그가 산 채로 화형 되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 자신의 청산가리를 준다. 1933년부터 말로는 파시즘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그는 <모멸의 시대>에서 수용소를 묘사한다. <희망>에서 스페인 내란을 그려낸다. 그 자신 프랑코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공화국 비행대를 조직한다. 그 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레지스탕스에 뛰어들어 여단의 지휘자로 프랑스 해방군에 참여한다.
* 인문학적人文學的 의의
말로Malraux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철학적 니힐리즘의 연장 속에서 여러 전란을 거친다. 그리고 정신적 무정부 상태에 빠진 서구문명의 위기를 통찰한다. 그러한 절망과 불안을 행동으로 싸워 나갔다. 그의 문학은 그러한 행동의 집념이 집약해 놓은 <인간의 운명과 죽음>의 천착이다. 생사를 가름하는 절망과 공포의 극한 상황 속에 처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부조리한 생에 대한 절박한 의식을 표출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과 투쟁하면서 죽음과 마주하는 인간의 위대성을 동시에 그렸다. 그것은 바로 <인간조건>을 극복하려는 고통스러운 노력이다.
* 행동에 의한 인간인식, 인간조건의 초극
1933년에 발표된「인간조건 La Condition humaine」은 혁명의 와중에 있는 중국을 무대로 한다. 혁명군은 1927년 상해에서 정부군을 몰아내고 장개석이 지휘하는 국민당을 맞아들인다. 이는 다시 국가주의 파와 공산주의 파로 양분 대립하게 된다. 장개석이 속한 정부군과 공산당 사이의 폭동, 쿠데타로 이어지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살인행위, 폭력과 광기, 혁명, 에로티시즘, 아편, 자기희생의 영웅적 행동 등의 문제에 사로잡힌다. 각 인물들은 죽음과 견디기 힘든 인간조건의 비극성을 극복하려는 절망적이고 고독한 투쟁을 벌인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인간은 운명에 그저 조명되거나 희생이 아니라 죽음에 과감히 도전하고 능동적으로 운명에 뛰어들게 된다.
말로Malraux는 이 작품 속에서 바로 그처럼 행동에 의하여 인식하는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인간조건을 초극하고자 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Malraux가「인간조건 La Condition humaine」에서 그려 나간 것은 정치적 혁명의 측면이 아니라 그가 인간조건에 대해 성찰해 나간 형이상학적인 차원의 문제였다. 즉 말로Malraux의 행동주의는 단순한 참여의 성격을 넘어서 있다.
■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1901-1976의 작품세계
파리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난 말로Malraux는 동양어학교를 나온 후 1923년 고고학 조사연구의 일원으로 인도차이나로 건너가면서 모험적 행동을 시작한다. 그는 이 탐험여행을 토대로 하여 「왕도La Voie royale(1930)」을 집필한다. 중국에서 몸소 체험한 정치적 혁명을 소재로 하여 「정복자Les Conquerants(1928)」을 완성하였다. 상해혁명을 중심으로 한 「인간조건La Condition humaine(1933)」를 발표하여 콩코르Goncourt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인정받게 된다.
중국에 다녀오고 난 후에 반나치주의, 반유태인 탑압운동 등 정의를 위한 투쟁의 선두에서 활동한다. 그리고 나치 전제에 대해 고발하고 증언한「모멸의 시대Le Temps du mepris(1935)」를 발표하였다.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을 때에는 공화정부군의 지휘관으로 참전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한「희망L"Espoir(1938)」를 내놓았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다시 정규군으로 실전에 가담한다. 그 숨막히는 전란 속에서 서구정신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인간의 운명에 대해 성찰한「천사와의 싸움La Lutte avec l"ange」를 집필한다. 그러나 독일군에 의해 압수됨으로써 그 일부가「알렌부르크의 호두나무들Le Noyer de L"Altenbourg(1948)」라는 제명 하에 빛을 보게 된다. 조국과 서구문명을 수호하기 위한 이러한 일련의 투쟁을 거쳐 그는 전후 드골 대통령 밑에서 문화부장관으로 일하였다. 고대 예술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여 예술철학을 논한「침묵의 목소리Les Voix du silence(1951)」,「상상의 박물관Le Musee imaginaire de la sculpture mondiale(1952~54)」, 「신들의 변신La Metamorphose des Dieux(1957)」를 완성시켰다.
이처럼 말로Malraux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철학적 니힐리즘의 연장 속에서 여러 전란을 거친 정신적 무정부 상태에 빠진 서구문명의 위기를 통찰한다. 그러한 절망과 불안을 행동으로 싸워 나갔다. 그의 문학은 그러한 행동의 집념이 집약해 놓은 <인간의 운명과 죽음>에의 천착이라 말할 수 있다. 생사를 가름하는 절망과 공포의 극한 상황 속에 처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부조리한 생에 대한 절박한 의식을 말로Malraux는 예리하게 표출시키면서 자신의 운명과 투쟁하면서 죽음과 마주하는 인간의 위대성을 동시에 그려 나간다. 그것은 바로 <인간조건>을 극복하려는 고통스러운 노력인 것이다.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1901-1976)는 행동의 사도였다. 그 자신 여러 사건에 참여했다. 그는 참여 작가로서 그의 작품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말로는 절망을 피하기 위해 행동을 제안한다. 처음에 그것은 모험일 따름이었다. 그 뒤 행동은 혁명에 헌신한다. 혁명에서 사람들은 박애 정신을 발견한다. 인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타인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이다.
■ 주요작품
* 왕도로 가는 길
1930년, 말로의 나이 29세 때 발표된 이 작품이다. 그의 인도차이나 탐험여행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것이다. 말로는 1924년 인도차이나 고고학 탐사반의 일원으로 캄보디아의 밀림 속을 헤치고 다녔다. 이와 같은 그의 체험이 작품 속에 잘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소설의 무대 또한 바로 인도차이나의 밀림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 소설이 바로 말로 자신의 기록 문학적 르포르타지reportage는 아니다. 말로는 자기의 체험에다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했다. 이른바 `형이상학적 비극` 속에 끌어넣어서 인간실존의 세계를 함께 살았다.
소설은 전부 4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부는 다시 3~5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소설의 첫 등장인물인 클로드 바네크는 젊은 동양 학자로서 캄보디아와 라오스 사이의 밀림 속에 묻혀 버린 옛 왕도의 길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 세워진 고대 사원들을 찾아 떠난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를 떠나 인도차이나행 배에 오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명이라는 허울을 쓰고 썩어 가는 유럽을 떠나기 위한 구실이었다. 가정생활에 묻혀 자칫 빠지기 쉬운 소시민적 일상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였다.
곧 청년 클로드에게 고고학이나 고대 조각품을 팔아서 얻는 이익금보다 모험과 그에 따른 시련 자체가 더 중요했다. 인도차이나행 배 위에서 그는 페르캉이라는 정력적인 한 독일인 모험가와 사귀게 된다. 그와 몇 마디를 나누고서부터 곧 그 사나이의 철학과 행동에 매료당한다. 페르캉은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캄보디아 밀림 지역을 지켜줄 수 있는 기관총을 살 돈을 마련하려한다. 그는 실종된 친구 그라보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떠나는 준비과정이 제 1부를 구성하고 있다
* 정복자 Les Conquerants
1928년 발표했다. 가린은 유럽 문명에 절망하여 중국으로 건너간다. 1925년 영국 제국주의에 항거하여 일어난 광둥혁명廣東革命에 뛰어들어 지도자의 한 사람이 된다. 그는 침식을 잊고 말라리아와 이질의 고통을 이겨낸다. 그리고 중국의 해방을 위하여 집요한 투쟁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이끄는 것은 불행한 민중의 구제나 사회정의가 아니다. 사실은 위험한 행동 속에 자신의 힘의 극한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생명감을 충족시키고 연소시킨다. 그래서 모스크바의 코민테른에서 파견된 직업적인 혁명가로서 전체를 위하여 개인을 희생시키는 보로딘과 대립하게 된다. 이 특이한 가린의 인간상이라든가 힘에 대한 의지의 포로가 되어 인생에서 항상 도박과 모험을 찾아 헤매던 젊은 날의 고독한 허무주의자의 말로를 엿볼 수 있다.
* 희망 L"Espoir
1937년 발표했다. 1936년 에스파냐 내란이 일어나자 공화파共和派를 돕는다. 국제의용군에 참가한 작자의 체험을 살려서 쓴 작품이다. 따라서 르포르타주적的인 색채가 농후하다. 몇몇 중심인물은 총동맹의 지휘자이며 인간적인 커뮤니스트인 마뉘엘과 교회의 인습적인 허위와 타락을 증오하는 가톨릭 신자인 히메네스 대령과 작자 등이다. 국제공군 지휘관 마냥의 고독한 명상과 집단적인 투쟁 사이의 대립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생생하다. 전편을 통해 에스파냐의 민중과 나아가서 인류 전체의 희망이 면면히 흐른다. 이 작품의 일부는 작가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감독하여 영화화(1939)되고 1945년에 공개되었다.
* 인간의 조건 La Condition humaine
1933년 발표했다, 그 해 콩쿠르 상賞을 받은 작품이다. 장제스蔣介石가 공산당을 이용하여 상하이에서 북방군벌을 몰아내고 즉각 공산당을 탄압한 1927년의 상하이 쿠데타를 배경으로 한다. 연대적인 행동의 중심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테러리스트 첸陳과 집단적 행동과 우애정신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혼혈아 기요淸과 강철같은 의지를 지닌 혁명가 카토우와 같은 주요 인물이다. 이 외에 기요의 아버지이며 아편중독자인 대학교수와 권세욕과 에로티시즘의 화신 같은 자본가와 공상과 기행 속에서 현실을 잊으려는 성격 파탄자와 공산당에 대한 증오에 불타는 비밀 경찰서원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모두가 고독의 그늘이 짙은 인물들이다. 말로는 그의 고정관념이었던 허무주의적인 고독감에서 탈출하려는 인간의 필사적인 모습을 그렸다.
남성의 남성다움은 예나 지금이나 격렬한 행동 속에 존재한다. 여러 유형의 행위 중 혁명운동에 투신하는 남성상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다. 이런《인간의 조건》은 그의 다른 소설《정복자》와 함께 중국혁명을 다룬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소설은 1925년 광동혁명 이후 장개석에 의한 1928년의 4,12 쿠데타를 배경 삼아 희생된 행동파 남성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손문의 이념에 의한 군사정권 타도를 위한 국공합작이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장개석은 확산되는 공산주의 세력을 미리 제거코자 쿠데타를 일으킨다. 장개석은 총부리를 돌려 사회주의자들에게 돌려 대량학살과 체포한다. 이를 4,12쿠데타로 부른다. 테러리스트 천陳은 무기 중개상을 암살한다. 그리고 양도증으로 동료들과 함께 군부정권으로 넘어갈 무기를 빼내는데 성공한다. 러시아인 혁명가 카토우, 북경대학 교수와 일인 사이에 태어난 기요淸와 그의 일본인 아내 메이 등이 천의 동료들이다. 빼앗은 무기를 공산당원들에게 배분한다. 장개석군이 상해로 진입하면 군부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폭동에 돌입하기로 예정된다. 공산혁명의 진로는 순조로운 듯이 보였다
* <인간의 조건>과 중국혁명
1933년 발표되자마자 문단 및 일반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 해의 콩쿠르상의 영광을 차지한 <인간의 조건>은 위에서 지적한 말로의 경향을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작가 자신이 그 와중에 휘말려 들어갔던 중국혁명이다. 그러나 작가의 관심은 결코 정치적 시사성에 있었던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시사성을 뛰어 넘어 인간의 삶의 보다 근원적인 상황, 즉 삶의 조건에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일차적으로는 현실적 역사 속에서 전개되는 드라마인 만큼 우리는 이 작품 속에서 문제되어 있는 중국혁명의 한 에피소드에 대하여 잠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세기 말에서 금세기 초에 걸쳐 중국남부 지방에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한다. 봉건적인 청조淸朝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서구세력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운동이 일어난다. 급기야 손문의 영도하에 국민당이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1922년 청조는 무너졌다. 그러나 손문은 통일된 공화국을 수립하지 못하였다. 양자강 이북의 땅은 여러 무위들의 지배 하에 들어가 있었다. 한편 1차대전 후 이 혁명운동에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국공산당이다.
건국초기 손문의 용공적인 정책에 힘입어 점차 세력을 확충해 나간다. 국민당과 제휴하기도 한다. 이런 공산주의자들은 장개석이 주도권을 이어 받은 후로 차츰 민족주의자들과 갈라서기 시작했다. 장개석은 그 해 9월에 양자강 중류의 공업중심지인 한구를 점령하였다. 곧바로 뒤이어 상해를 향해 진격하였다. 상해는 당시 손민방의 수중手中에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반대세력은 장개석 군대의 진격에 때를 맞추어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손민방에 의해 무참히 진압되고 말았다.
그 후 공산당은 주은래를 그곳으로 보내어 영조를 중심으로 반대세력을 재규합시겼다. 1927년 3월말 장개석 군대가 상해에 접근한다. 주은래는 이 무렵 전형적인 레닌식式 폭동을 일으켜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상해를 그들의 투쟁으로 점령한 혁명 세력은 당의 명령에 따라 장개석과 제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끝내 공산세력을 무자비하게 숙청하였다. 그들의 본거지인 한구에서 축출하고 만다. 1934년 모택동의 이른바 대장정이 기도될 때까지 공산주의자들은 중국남부에서 지하에 숨게 된 것이다.
* 참여문학
<인간의 조건>의 시대적 배경은 대강 상술한 바와 같다. 더욱 정확하게 상해에서 반란폭동에서부터 공산주의자들의 처형에까지 이르는 중국혁명의 한 에피소드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역사적 사건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하나의 소설적 변형이다. 가령 주인공 기요Kyo는 주은래라는 실제인물의 소설화되었다. 작중인물로서 이들은 부르조아 출신의 높은 교양을 갖춘 직업적 혁명가라는 공통점과 아울러 후자(주은래)가 순수한 중국인인데 비해 전자(기요Kyo)는 서구인과 일본여인과의 혼혈아라는 주목할 만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기요Kyo는 중국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 속에서 주은래의 역사적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그의 혁명가로서 문제의식, 인간적 고뇌와 성찰은 특유한 것으로 도처에서 작가 자신의 대변자의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이 비록 단순한 르포르타주는 아니라 할지라도 역사가운데 현실적으로 펼쳐지는 생생한 사건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중국의 해묵은 제건제도와 서구선진의 식민주의에 대항하려는 혁명의지를 도외시한다면 이해되기 어렵다.
혁명은 기요Kyo와 가토우Katow 두 주인공에 의해 대변된다. 혁명의지는 작가와 나아가서 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위한 이른바 선전문학의 부류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가운데 이데올로기적 성찰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또 일정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그것은 매우 복잡하고 극적인 대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혁명운동에 있어서 운동력인 순수한 혁명의지와 효율성을 위한 집단적 행동의 심연성은 때때로 상극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조건>은 이 혁명적 의지와 숙명사이의 대립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한편으로 반란자들의 순수하고 영웅적인 의지가 있다. 또 한편으로 혁명의 현실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적과의 협력을 결론지을 수밖에 없는 당의 명찰성이 있다. 작가는 그 어느 편에 결정적으로 기울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혁명의 필연적인 두 명제와 같은 것이다. 작품은 이 숙명적인 갈등을 긴장 어리고 결론 없는 대화의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인간적 비극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는 위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갈등에 있다기 보다 오히려 그 가운데 엮어지는 인간적 비극에 있다. 말로는 현대소설을 가리켜 <인간의 비극성의 뛰어난 형태>라고 말한다. <인간의 조건>은 고대비극의 소설적 재현임에 틀림없다. 이 작품 속에서 중국혁명은 역사적 현실성에 불구하고 어떤 보편적인 혁명이다.
따라서 현대인은 자신을 선택하고 성취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숙명을 제시한다. 그뿐 아니라 이 혁명은 마치 고대 비극처럼 인간에게 도전하고 위압하는 초월적인 폭력과 같다. 무엇보다 먼저 지적할 것은 "인간고독"의 주제... 작품 첫머리를 여는 첸Tchen 의 암살기도와 음반에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분간하지 못하는 기요Kyo의 경험을 통하여 도입된다. 그리고 인간의 절대적 고독의 주제는 작품 전체에 걸쳐 계속 흐른다. <우리는 타인의 목소리를 귀를 통해 듣는다. 그러나 자기의 목소리는 목구멍으로 듣는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목구멍으로 듣는 것과 같다. 이때 우리의 존재란 <일종의 절대적 긍정, 광인의 긍정>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비할 바 없는 괴물>인 나와 한낱 대상에 불과한 타인사이에의 교류, 합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각기 자신 속에 갇혀 자신의 집요한 목소리를 외치다가 스스로 파멸되어 갈 따름이다. 그러나 기요KYO 와 가토우Katow를 통해 말로는 고독의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인간적 우애의 가능성을 꾸준히 추적한다. 그것은 동일한 목표를 향한 투쟁의 대열 속에서 움트며 최후의 희생을 통하여 성취된다. 이 작품 속에 엮어지는 온갖 드라마는 고독에 처한 인간들의 고뇌이다. 마침내 기적과 같은 우애 속에 일체가 되는 지고의 순간을 향해 서서히 무르익는다. 말로는 이 합체의 순간을 죽음 속에 설정함으로써 어떤 모호성을 남기고 있다. 그것은 운명에 대한 승리임과 동시에 패배이기 때문이다.
말로가 기요Kyo와 가토우Katow 두 사람에게 하나의 특전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 다른 작중인물들이 끝내 고독의 숙명적인 쇠사슬에 묶인다.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두 주인공은 <비할 바 없는 괴물>로 머무른다. 그리하여 새로운 역사 가운데 창조하고자 하는 미래로 말미암아 자신이 선택한 운명을 뛰어 넘는다. 결국 말로는 소설화된 현대적 비극인 이 <인간의 조건>가운데 인간운명의 두 측면을 혁명이라는 극한상황을 통하여 포착한다. 모든 존재를 한결같은 위력으로 짓누른다. 한 편으로 이에 저항하며 항상 위협받는 인간적 가치를 쟁취하려는 자유의지가 있다. 기요Kyo와 가토우Katow의 행동은 죽음으로 종결지어짐에 불구하고 하나의 승리이다. 또한 모든 것을 앗아가는 운명적 흐름 속에서 성취되는 영원의 몫이다.
* 덧없는 인간과 문학(1977) / 앙드레 말로 / 푸른숲 / 320쪽 / 15000원.
소설가, 예술가이자 정치가였던 앙드레 말로의 깊은 사유의 성과물이다. 인간의 유한성과 그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 예술의 영원성에 대해 풀어나간다. "유한한 인간의 정열"로서 예술의 개념을 정의 내린 그는 다양한 명저들과 작가들의 정신세계를 예술 세계와 연결시켜 분석했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상상계에 대해 풀어놓은 글의 전개 속에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경험이 우러나와 지적탐구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회의주의에 영향 받은 그는 생텍쥐페리, 사르트르, 카뮈와 함께 행동하는 프랑스 지성으로 통한다.
20세기 혼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식민지 인도차이나를 거쳐 중국 공산 혁명의 현장을 목격한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으며 2차 대전 당시에 알사스 로렌 지방의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프랑스 드골 정부의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는 등 그야말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말로의 삶은 다양한 사유만큼 인간을 탐구하고 인생을 고심한 과정이다. 그의 삶을 거치는 모든 사유들이 녹아있다. 끊임없이 인간의 영원성을 탐구하고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예술의 영원성을 말한다. 14편의 에세이를 통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 연극, 미술, 영화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명사 전체에서 예술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예술, 유한한 인간의 영원한 정열
앙드레 말로의 시대, 다시 말해서 20세기는 서구 문명의 위기였고 종교의 쇠퇴는 뚜렷했다. 이를 대체하려던 과학기술 문명은 공허한 약속에 불과했다. 경제공황과 전쟁의 잔인함 속에서 인간은 너무나 작고 가벼워졌다. 예정된 죽음, 그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보잘 것 없었다. 그 유한성으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삶은 더욱 불확실해졌다. "모두에게 예약되어 있는, 그래서 그 누구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죽음" 이라는 숙명." 당시 이런 회의주의는 유럽에 만연해 있었다. 앙드레 말로는 이 고뇌의 현장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있었다.
인도차이나에서 중국 공산 혁명과 스페인 내전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달려갔다. 이런 말로는 20세기 역사의 현장에서 인간과 그 인간이 만드는 역사의 "변형"을 지켜본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부조리와 맞닥뜨린다. 그 부조리, 곧 숙명이라고 하는 한계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에 자신의 그런 행동 역시 자신의 죽음과 더불어 덧없이 끝나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행동을 한층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보다 본질적인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예술에서 그 의미를 발견한다.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이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 예술의 영원성". 이것이 그가 끝없이 집착했던 고뇌의 주제이자, 그가 인간을 두고 내린 결론이었다.
인간은 창작행위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창작품에 불어넣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예술작품은 작가 사후에 계속 살아남아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한다. 여기에 불교의 윤회설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까 결국 예술품은 예술가의 영혼을 간직한 채 영원한 삶을 계속해나간다는 의미다. <앙드레 말로의 불교적 윤회의 의미>와 <앙드레 말로의 작품에 나타난 예술적 창조의 의미>라는 논문들을 통해 말로의 사유를 분석했다. 이러한 사유 외에 말로의 숱한 사유의 변화를 함께 기록하고 있다. 죽음이 삶과 연결되듯이 말이다.
이처럼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는 불확실하다" 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말로는 이 책에서 다양한 예술작품들과 작가들의 예술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세시대의 종료행렬로부터 현대의 티브이TV에 대한 열광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리고 연극과 소설 장르가 이루어낸 위대한 예술적 성공에 대해 말한다. 인류의 예술적 변천 과정에 개입한 과학과 매체와 영화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림, 조각, 이야기, 극, 영화 모두 인간의 창작, 즉 인간의 상상계를 포착한다. 무엇보다 소설이 그것을 가장 다양하고 강하게 표현할 수 있다. 말로는 "글 쓰는 것만이 삶을 연장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계속해서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나갔다.
■ 저서 및 사후문헌
* 종이달(1920) / 앙드레 말로
* 코키리 코 우상을 위한 글(1921~1923) / 앙드레 말로
* 서양의 유혹(1926) / 앙드레 말로
* 정복자(1928) / 앙드레 말로
* 기이한 왕국(1928) /앙드레 말로
* 왕도 (1930) / 앙드레 말로
* 인간조건(1933) / 앙드레 말로
* 모멸의 시대(1935) / 앙드레 말로
* 희망(1937) /앙드레 말로
* 알텐부르크의 호주나무들(1948) /앙드레 말로
* 절대의 악마(미간행) / 앙드레 말로
* 악마의 지배 / 앙드레 말로
* 명부의 거울 / 앙드레 말로
* 추도사 / 앙드레 말로
* 유럽의 젊음에 관하여 / 앙드레 말로
* 수기 / 앙드레 말로
* 시바의 여왕 / 앙드레 말로
* 지리학의 모험 / 앙드레 말로
* 예술 심리학 / 앙드레 말로
* 르네상스의 심리학 / 앙드레 말로
* 동양과 서양의 표현방식에 대하여 / 앙드레 말로
* 영화 심리학 초안 / 앙드레 말로
* 베르므 / 앙드레 말로
* 상상의 박물관(1947) / 앙드레 말로
* 예술창조(1948) /앙드레 말로
* 절대의 화폐(1949) / 앙드레 말로
* 침묵의 목소리(1954) /앙드레 말로
* 세계조각의 상상의 박물관 /Ⅰ. 조상술(1952) Ⅱ. 신성한 동룩의 저부조(1954) Ⅲ. 기독교세계(1955) / 앙드레 말로
* 신들의 변신(1957) / 앙드레 말로
* 반회고록(1967) / 앙드레 말로
* 명부의 거울(1976) / 앙드레 말로
* 밧줄과 생쥐 / 앙드레 말로
* 잘려나간 떡갈나무(1974) /앙드레 말로
* 흑효석 머리(1975) / 앙드레 말로
* 라자르(1974) / 앙드레 말로
* 지나가는 손님(1975) / 앙드레 말로
* 검은 삼각형 / 앙드레 말로
* 비현실 / 앙드레 말로
* 신들의 변신 / 앙드레 말로
* 시간의 초월(1976) / 앙드레 말로
* 신비평 / 앙드레 말로
* 말로, 존재하기와 말하기(1976) / 앙드레 말로
* 초자연(1977) / 앙드레 말로
* 덧없는 인생과 문학(1977)
* 메시지, 기호 그리고 개구쟁이들(1986) / 마들린 말로와 자크 다마즈가 출간.
■ 국내출판도서
* 왕도로 가는 길| 앙드레 말로 | 지식공작소
* 인간의 조건 | 앙드레 말로 | 지식공작소
* 상상의 박물관 | 앙드레 말로 | 동문선
* 정복자 | 앙드레 말로 | 청목사
* 덧없는 인간과 예술 | 앙드레 말로 | 푸른숲
■ 논문목록
* 앙드레 말로의 소설에 나타난 회화성 / 한국불어불문학회 / 1995
* 앙드레 말로 미학과 예술의 문제 / 한국미학예술학회 / 박준원 / 2002
■ 참고논문
* 비극적 운명과의 싸움 / 김치수 / 이화여대
1. 절망의 시대
앙드레 말로(Andr Malraux)가 프랑스 현대소설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아무도 그 정확한 경계를 지을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다. 여기에서 독창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작가 자신이 생텍쥐페리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거부하는 수단으로서 행동의 삶을 찬양"하는 소설을 썼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작가에게 죽음을 거부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소설을 쓴다는 일이겠지만, 말로에게 소설은 작가의 죽음과 같은 개인적인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죽음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죽음과 부딪침으로써 인간의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서양이라는 거대한 문명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인간"에 대한 물음이며 동시에 "인간"으로서 남아 있기 위한 탐구인 것이다.
이미 『왕성의 길』에서 "신 혹은 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자기 영혼과 어떠한 관계를 갖는 것인가?"라는 자기 자신의 윤리적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 위에 군림하고 있던 절대적 존재가 사라진 시대에 인간은 인간 스스로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의 세계이며,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우는 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자아의 인식은 어쩌면 "신은 죽었다"라고 외친 니체의 죽음(1900년)과 "삶이란 과연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말로의 출생(1901년)이 교차하고 있는 데서부터 싹틀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로의 질문은 절대적 가치가 사라진 시대에 인간이 구축해야 할 가치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독교 문명권에서의 작가의 고통과 가치 추구는 어쩌면 우리처럼 비기독교적인 문명권에 살고 있는 경우 대단히 허구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가치와 인간의 관계를 보다 보편적인 의미로 확대시킬 때 그것은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 현실성을 띨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말로가 성인으로써 체험한 시대는 서구의 정신이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경험했던 시대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시절"과 제1차 세계대전이 지나간 뒤에 등장한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서양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재검토, 인도차이나의 식민지 전쟁과 스페인의 내란, 중국의 국공분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과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운동 등이었다. 이 모든 것은 서양의 입장에서 볼 경우, 절대적인 가치인 신의 죽음 이후 인간이 경험하게 된 혼란의 양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H. S. 휴스 같은 사람은 이 시대를 절망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절망의 시대에 말로는 인간의 인간다움으로서의 존재를 그 절망과 함께 사는 데서 찾고 있다. 여기에서 절망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절망에 무관심하다는 것도 아니고 절망 속에 자신을 내던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 절망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는 일이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절망과 직접적으로 부딪치며 싸우는 것이다. 이러한 싸움에서 그는 자기 자신의 마음의 밀실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모험을 감행한다.
2. 행동하는 지식인
말로의 생애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부인 클라라 말로와 함께 인도차이나로 떠나기 이전 시기이다. 1901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리세 콩도르세를 다닌 다음 동남아시아로 떠난다. 이 여행 이전의 생애에서는 동양어학교에 잠깐 나간 것과 클라라 말로와 결혼한 것만이 알려져 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말로가 1923년 동남아시아로 떠난 것은 고고학 답사대를 이끌기 위한 것이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같은 인도차이나 반도를 여행하게 된다. 1924년 그는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인 캄보디아 숲 속에서 저양각(底陽刻) 조각을 발굴함으로써 고적을 손상시켰다는 죄목으로 프랑스 식민지 당국에 체포되었는데, 사실은 그가 베트남의 독립운동조직인 베트남청년연맹에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는 프랑스에 있던 앙드레 지드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운동으로 석방되었다. 1925년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서 광동(廣東) 정부의 지도자들과 만나고 1927년 프랑스로 돌아온다. 1932년 N.R.F.에 「파미르의 고딕식 불교작품들」에 관한 설명을 게재했다.
이어서 앙드레 지드와 함께 베를린에 가서, 나치당원들에게 체포된 불가리아의 디미트로프 석방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세계 반 파쇼위원회의 위원장과 유대인 탄압에 대항하는 국제연맹의 위원장이 되어 독일의 나치와 이탈리아의 파시즘에 대항하는 투쟁을 벌였다. 1936년 스페인 내란에 국제여단 소속 공군의 조직자이며 지도자로 스페인의 공화파를 위해 참전하여 메들린 전투 승리의 주역이 된다. 그리고 미국에 건너가서 스페인의 공화파를 옹호하는 일련의 강연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939년 그는 기갑부대원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자신이 지휘하던 부하들과 함께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에 성공, 1942년부터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한다. "베르제 대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그는 여러 레지스탕스 단체들을 지휘했고, 알자스로렌 여단의 선봉에서 알자스 전투에 참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말로는 그의 정치적 운명을 드골 대통령과 함께 하였다. 1945년에서 1946년까지 드골 정부에서 공보부장관을 지낸 그는, 1947년부터 1952년까지 드골파 정당의 열렬한 옹호자로 남아 있었다. 1958년 드골이 재집권하자 문화부장관이 되었다가 1968년 드골이 하야하자, 그도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러한 그의 생애를 보면 앙드레 말로는 20세기 전반부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의 순간마다 역사적이며 실존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다.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이 옳지 않다는 판단이 섰을 때 그는 베트남청년연맹에 가담함으로써 프랑스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섰다. 또한 중국의 혁명운동에 뛰어들어 인류의 정의를 구현하고자 했으며, 스페인 내란에서 공화파를 위해 전투에 참가하여 부상까지 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히틀러의 나치즘에 대항하여 조국 프랑스를 위해 싸웠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애 자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로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가지고 역사의 현장에 뛰어든 것이다. 그 때문에 말로는 흔히 영웅주의의 신봉자이며, 모험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고자 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생텍쥐페리의 표현에 의하면 대문자로 쓴 "인간"의 회복이라는 휴머니즘의 마지막 기수였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를 신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규정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삶의 경험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시도한 그의 정신이, 신이 존재하지 않게 된 유럽의 고민을 대변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역사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인간의 삶과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의 근본적인 사상은 죽을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난 인간의 존재 이유를 탐구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끊임없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정열적인 자기 확인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과 싸웠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애를 토대로 하여 다섯 권의 소설이 씌어졌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고적답사 경험이 『왕성의 길』(La Voie royale, 1930)에 나타나 있고, 광동 시절에 경험한 영국에 대항하는 중국인의 봉기가 『정복자』(Conqu rants, 1928)의 배경이 되었으며, 상해에서 벌어진 국공연합의 봉기와 국공합작의 실패 과정이 『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 1933)에 그려져 있고, 스페인 내란의 전개가 『희망』(L" Espoir, 1937)의 주된 줄거리이며, 나치 독일의 침략에 대항하여 참전한 기갑부대의 이야기가 『알탕부르의 호도나무』(Les Noyers de l"Altenburg, 1943)의 제1부를 구성하고 있다.
말로는 자기 자신의 삶의 체험을 소설로 완성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씌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과 싸우는 과정에서 씌어진 것이며 그 현실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하기 위해서 씌어진 것이다. 실제로 말로 자신이 뛰어든 역사의 현장에는 20세기의 세계가 안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었지만, 말로 자신이 드러내고자 한 것은 어느 이데올로기로 기울어짐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소용돌이에서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그 의 소설 속에는 극단적인 상황을 살고 있는 주인공이 수없이 등장한다. 암살을 하기 위해 폭탄을 안고 차에 뛰어드는 첸이나, 사형집행인이 죽이려고 하는 광인의 몸을 막아주기 위해 팔을 뻗는 키요(『인간의 조건』), 파시스트적 모험가로서 저항과 증오의 감정으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가린느(『정복자』), 자신의 부상당한 다리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섹스에서 자신의 생명을 확인하고자 하는 페르캉(『왕성의 길』) 등은 물론이고,『희망』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작중인물이 전쟁이라는 극한상황과 절망 속에서 자신을 이기기 위한 싸움을 벌인다. 이들의 싸움은, 말하자면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기 위한 싸움인 것이다.
3. 『희망』
그러나『희망』에 나오는 작중인물들을 관찰해보면, 그들은 독자의 눈에 비치는 가장 외형적인 모습부터 말로의 인물 세계에서 맡고 있는 기능의 차원에서 서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작중인물은 네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작중인물을 특징화시키는 기법으로, 육체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다. 『희망』은 그 이전의 소설들과 비교해볼 때 작중인물들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 발전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작중인물들의 육체적 특징을 다른 작품에서보다 더욱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중인물의 외모에 대한 주목은 소설의 인물에 개성을 부여하는 편리한 방법이며 동시에 그 작중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데 편리한 방법인 것이다. 『희망』에서는 흔히 어떤 인물이 처음 등장할 경우 그 인물의 외모에 관한 초상이 그려지는데, 그 때문에 그 인물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 같은 효과를 얻는다. 물론 이러한 기법은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도 사용되기는 하지만 말로의『희망』에서는 조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는 수십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어서 이러한 외모상의 차이가 그 많은 인물들을 구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기에는 물론 안경이라든가 콧수염이라든가 파이프라든가 머리 모양처럼 인물의 여러 가지 외모가 문제되고 있다. 가령, 마뉘엘의 밝은 눈과 어두운 표정, 크시메네스의 하얀 머리칼과 짙은 검은색 눈, 하이메의 검은 머리칼에 키 큰 아메리카 인디언 같은 모습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그 인물 개개인의 습관을 보여준다. 가령 크시메네스의 절뚝거림과 가는귀먹음, 하이메의 눈멈, 마넹의 나뭇가지 들고 다님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특징 외에도 말로는 이 작품에서 작중인물들을 동물과 비교함으로써 인물 하나 하나의 특징을 살리고 있다. 크시메네스는 "절름거리는 오리"의 모습을 하고 있고, 마넹은 "하마의 축 처진 입"을 가지고 있고, 세뤼지에는 "실내에 갇혀서 미친 듯이 날뛰는 나비"와 닮았고, 로페즈는 "금강잉꼬"와 흡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인물들의 묘사는 스페인의 문화나 역사와 관계 있는 모습을 띠기도 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인물은 세르반테스의 주인공과 비교되거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의 초상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교되고 있다. 그것은 말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술에 대한 정열이 스페인의 예술가를 연상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인물 개개인의 육체적 특징은 그 이전의 소설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그의 이전 소설에서 인물의 육체적 특징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은 목소리였고 인물들이 가장 많은 고통을 받은 것은 "늙음"과 "질병"과 "고통"의 비극성이었다. 반면에 『희망』에서는 육체적 특징으로서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육체적 특징이 인물 개개인의 정신적인 표지이거나 지적인 상태를 나타내주고 있다. 물론 스페인 내란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사상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사상자들이란 이 작품에서 불가피한 결과로서, 그리고 "스스로 찾아나선 위험"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그렇지만 죽음이라는 개념과 연결된 고통이 여기에서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도 아무리 용기 있는 작중인물까지도 그 고통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스칼리라는 인물은 "죽음이란 심각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고통은 심각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일종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전쟁의 초기(즉 소설의 앞부분)에서 쓰러진 전투원들의 모습은 전쟁이라는 일종의 의식(儀式)을 연상시키고 있다. 반면에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중인물들의 부상과 죽음은 보다 강렬해지고 있다. 당사자들에게는 부상과 죽음이 초기보다는 훨씬 익숙한 것이지만 독자에게는 보다 고통스럽게 보인다. 얼굴이 으깨진 가르데트, 다리가 부러진 타이유페르, 팔이 부러진 미로, 파열탄의 폭발로 발에 부상을 당한 스칼리 등의 모습은 읽기에 고통스런 것이다.
여기에서 "역사란 살아 있는, 아직 살아 있는 육체 앞에서는 별게 아니다" 하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들 부상자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유는 그 부상 자체의 끔찍함에도 있지만, 보다 큰 이유는 동료들에 대해 굉장한 집념을 가지고 접근하는 마넹이 으깨진 육체를 소유한 동료들을 다시 발견한다는 데 있다. 이미 부상당해서 앞을 못 보는 아들 하이메를 가지고 있는 알베아르가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가 일그러지는 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말로는 마넹을 현장에 가게 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들의 육체가 으깨지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이 소설의 중심 인물들인 가르시아, 마넹, 마뉘엘은 수많은 위험 속에서도 불사신처럼 살아남으면서 육체에 부상을 입지 않는다.
이러한 외형적인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된 서술 가운데는 작중인물들의 국적이나 출신 계층을 나타내는 옷의 묘사도 들어 있다. 가령 무정부주의자인 푸이그는 검은 색깔의 스웨터를 입고 있으며 "가죽으로 된 윗저고리와 강한 권총-낭만주의적인 측면이 없지 않은 차림-을 차고 더럽고 피투성이의 터번을 쓰고 있다". 마뉘엘은 "막연한 몽파르나스풍을 지니고" 있는데 그 차림이 "옷차림 상으로는 부르주아 출신이 아니라는 환상"을 주고 있다. 또 체격 좋고 불그스레한 스페인인 가르시아는 인텔리이기는 하지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익살스럽고" "다정한" 사람이며 안경을 쓰지 않았다. 또 프랑스의 한 항공노선 책임자였던 마넹은 "직공장"이나 "가구제조상"의 모습을 하고 있고, 미술비평가 출신의 스칼리는 "귀에다가 샤프연필을 꽂고 있는 모습이나" 상체에 비해서 다리가 너무 짧은 모습 때문에 "미국의 희극 배우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모의 서술이 작중인물들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로와 발자크의 다른 점이다. 말로는 인간이란 스스로 맡은 책임에 의해서 변모하는 것임을 믿고 있다. 그러한 예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마뉘엘의 경우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뉘엘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스키를 타러 다니기 위해 자동차를 샀던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미래의 자신이 변모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언젠가는 평화가 올 것이다. 그리고 마뉘엘은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마치시에라 지방에 스키를 타러 가기 위해서 자동차를 샀던 자신이 오늘날의 전투원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몰랐던 것처럼, 그 자신도 모르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중략) 마뉘엘은 처음으로, 인간들의 피보다 더 무겁고 땅 위의 인간의 현전보다 더 불안한 것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인간의 운명의 끝없는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그는 (중략) 그의 현전을 (중략) 그의 내면으로부터 심장의 고동소리처럼 깊고 영원한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마뉘엘의 태도는 "가능한 한 광범한 경험을 의식으로 변형시킨다"는 말로 자신의 행동철학을 대변하고 있다. 말로는 그러한 자신의 행동철학 때문에 초기에는 『희망』의 주요 작중인물 가르시아처럼 마르크시즘에 대해서 어느 정도 호감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앙드레 지드가 모스크바 여행을 통해서 마르크시즘과 완전히 결별하고 있는 것처럼 중년 이후의 말로도 마르크시즘과는 완전히 등을 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는 이미 『희망』의 작중인물들에서 드러나고 있다.
4. 진정한 자유주의자
이 작품은 공산주의의 두 가지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독선적이며 광신적인 공산주의로서 엔리케, 다라스, 프라다스, 하인리히 등 부차적인 인물에서 드러나고 있고, 다른 하나는 관대하고 전문적인 아티니에스와 마뉘엘로 나타나고 있다. 첫번째 카테고리에 속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말로는 스탈린식 공산주의자라고 폭로하고 있다. 그들을 말로는 사제형(司祭型)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소련의 원격조종을 받고 있고 소련의 요원들과 기술과 장비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말로 자신과 같은 진보적인 지식인의 눈에 비친 그들의 교리란 당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자인 마넹과 공산주의자인 군대 지휘자 엔리케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면은 바로 그 무조건적 복종이라는 양상을 드러내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다. 엔리케가 선의의 충고로 마넹을 위협하는 압력은 신경질 나게 만드는 억지 교육과 비슷한 것이다. 그것은 책임을 맡은 개인의 결정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경직된 태도인 것이다. 더구나 엔리케의 말에 의하면 그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공산주의란 그의 희망을 강대국인 소련에 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장면은 또한 당파근성을 표현하고 있다. 왜냐하면 엔리케는 아무리 훌륭한 전투원일지라도 공산당에 소속되지 않으면 형편없는 공산당 전투원보다 못한 것으로 생각하며, 동시에 같은 공화파 속에서 비공산당원에 대해서 끊임없는 차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기독교인이면서 자유주의자인 헤르난데즈는 스페인 공산당과 자기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특히 무고하게 도둑 누명을 쓴 한 무정부주의자를 변호한 헤르난데즈는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말로 자신은 기독교인 헤르난데즈를 진정한 자유주의자로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헤르난데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고, 자신의 관대한 마음을 유지하려 하고 있으며, 스스로에게 도덕적인 요구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관용을 베풀 줄 모른다거나 도덕적인 가치관이 없는 경우에는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로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헤르난데즈의 태도가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는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다는 것을 말로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르시아와 헤르난데즈 사이에 있었던 토론의 과정에서 말로는 그 불편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이 토론의 과정에서 헤르난데즈의 성격적인 고귀성도 나타나면서 동시에 이상적인 성격도 나타난다. 그래서 가르시아는 헤르난데즈가 "그의 윤리적 욕망의 실현 방법"으로 혁명을 생각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 반 기독교도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그들의 헌신 취미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가장 나쁜 오류의 대가로 지불하기만 한다면 그런 오류라도 저지를 각오가 되어 있다.
가르시아에게는 헤르난데즈 같은 사람이 모든 혁명 속에 있는 모순을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평화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자기 방어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모순, 효과적인 것을 추구해야 하면서도 정의를 부르짖지 않을 수 없는, 이상과 현실의 모순이 그들에게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 속에서 앙드레 말로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이념이나 체제가 아니라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것이다. 그것을 말로는 남성적인 우정이고 인간의 존엄성이며 역사의 순간 속에서 체험하는 인간의 연대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가 아티니에스나 마뉘엘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그들이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인간의 고귀성을 찾으려는 사람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앞의 예문에서처럼 마뉘엘은 말로 자신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마르크시즘과 결별할 것을 예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말로는 스칼리 같은 예술가 출신이 공산주의를 비난하게 하고, 셰이드 같은 기자가 골로브킨이라는 소련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비난을 하게 한다.
당신네들은 모두 너무 가분수 같은 머리통을 가지고 있소. 게다가, 골로브킨, 당신네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너무 큰 머리통을 갖기 시작했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았소.
그렇다면 말로가 {희망}에서 모든 당파와 많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등장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실제로 이 소설에는 60여 명의 등장인물이 그들의 소속 당파와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 목적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유럽에 등장한 파시즘에 대항하는 것이다. 여기에 참가하고 있는 조직으로는 전국노동연맹(Conf d ration Nationale des Trailleurs, C.N.T.)과 이베리아무정부주의연맹(F d ration Anarchiste Ib rique, F.A.I.), 노동자총연맹(Union G n nale des Travailleurs, U.G.T.) 등과 공산당(엔리케, 아티니에스, 슈라이너), 좌파 사회당(마넹, 알베아르), 우파 사회당(발라드, 셈브라노), 자유파(헤르난데즈, 시비르스키), 가톨릭(크시메네스, 구에르니코) 등이지만, 이들의 현재의 목표가 달성된 다음의 세계에 대해서는 말로 자신이 언제나 자유파의 편에 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로 자신이 {희망}을 통해서 그리고자 한 것은 이처럼 당파를 초월한 파시즘에 대한 항쟁뿐만 아니라 국적을 초월한 파시즘에 대한 항쟁이었다. 여기에는 하이메, 알베아르, 셈브라노, 발라도, 네구스, 푸이그 외에도 이탈리아인 스칼리, 마르첼리노, 카무치와 독일인 슈라이너와 부르츠, 백계 러시아인 카를리치, 알제리인 사이디, 영국인 하우스, 그리고 마넹을 비롯한 프랑스 인들이 참가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서 거의 전체 유럽인들이 반파시즘 운동에 참가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 운동이 인류 전체의(적어도 유럽 전체의) 운동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 어느 사회에 한정된 문제가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소설의 보다 큰 중요성은 그것이 소설기법 상으로 새로운 시도라는 점이다. 말로는 이 소설에서 몇몇 인물들의 생애를 따라가는 전통적인 수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장(章)을 바꿀 때마다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속에 움직이고 있는 집단을 서술함으로써 스페인 전역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연대기 소설에 익숙한 사람이나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익숙한 독자에게 이 소설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서술이 개인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데 적합하다면, 이처럼 스페인이라고 하는 거대한 집단을 기록하는 데는 그것이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말로는 소설의 서술기법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서 말로는 한 개인의 내면의 느린 변화, 보이지 않는 변화를 추출하는 데 성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형성하고 있는 집단들 상호간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일어난 사건들의 연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말로 자신의 소설적 기법에 관한 깊은 성찰의 결과로 유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로의 예술적인 성격은, 그가 주인공들 가운데 예술적인 감수성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편에 서는 이유가 되고 있으며, 동시에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선택하는 데 있어서 치밀한 의도성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이 치밀한 의도 때문에 말로의 작품을 읽는 데에는 독자의 깊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이야기 자체가 독자의 의식을 빠져나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소설기법의 사용은, 말로 자신이 인류의 장래에 대한 "희망"을 역사 속에서 변모하는 개인에게서 찾고 있는 사실과 함께 주목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말로가 이 작품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은, 죽음과 운명과의 싸움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이 개인의 삶에 대한 의식(意識)으로 변형된 데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제로 이들 공화파가 역사적으로는 실패하지만 그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 개인의 성취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서로의 의지의 결합에 도달한 공동의 연대감을 느끼게 될 때 세계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로는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서 말로는 자기 자신의 구원의 가능성을 보았던 것 같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죽음의 위협과 삶의 수난 속에서 절망하지 않는 주인공들의 남성적인 세계는 그렇기 때문에 말로 소설의 영원한 주제일지 모른다.
말로는 분명히 20세기의 비극을 스스로 겪으면서 그것의 극복을 위한 남성적인 문학을 정립한 어쩌면 마지막 작가일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나 대문자로 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살고 쓰다가 자신의 일생을 마친 점에서 드골에 비유될 만한 프랑스 정신의 문학적 위대성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참고논문
*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의 「반회상록Antimemoires」의 서사기법
/ 한용택 서울대
1. 서언
수상록인가? 자서전인가? 아니면 회고록인가? 그것도 아니면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인가? 앙드레 말로가 드골 부의 문화부장관을 지내던 1967년에 출판한 「반회상록」은, 제목 그 자체가 암시하듯이 기존의 전통적인 장르개념에 의한 그 어떤 정의도 거부한다. 그 만큼 이 텍스트는 이야기되는 내용이 복합적이며 그 내용을 담고 있는 서술양식 또한 생소하다. 말로는 이 책에서, 제한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사유를 논리적으로 정리해 보여주지도 않고, 자신의 성장과정을 세밀하게 밝히는 것도 아니며, 특정한 사건, 특정한 시대에 대해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지도 않는다.
사실 이 텍스트는 pleiade 판의 500여 쪽을 점유하는 상당히 방대한 분량이다. 하지만 분량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텍스트 안에서, 그 동안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말로의 사생활이나 비밀스러운 또는 새로운 사실은 발견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들에 대한 확인조차도 쉽지 않을 만큼, 말로 자신에 대한 사적인 내용은 이 책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이 텍스트의 몇몇 부분은, 말로가 직접 체험한 과거의 경험을 육성으로 이야기하는 글이라기보다는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반회상록」의 제1부 제1장은 말로 자신의 소설 「알탕부르그의 호도나무Les Noyers de l"Altenbourg」의 일부분을 수록한 것이기도 하며, 소설 「인간조건La Condition humaine」의 한 작중인물인 끌라삐끄와 이름과 성격이 비슷한 한 인물과의 대화장면은 말로의 소설에 익숙한 독자에게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텍스트의 한편에는 네루, 마오쩌뚱, 드골 등 20세기 역사의 흐름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실제 위인들과의 대화가 녹취된 것처럼 수록되어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는 끊임없이 말로의 소설작품을 연상시키는 부분들 역시 공존해 있는 것이다.
서술양식 또한 단순하지 않다. 우선 구체적인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이 많지 않으며, 텍스트에 사용된 동사의 시제 역시 단순과거, 복합과거, 현재시제가 혼용되어 있어, 실제 집필의 순간, 서술의 현재, 사건의 현재 사이의 상관관계 즉, 회상의 순간, 회상되는 사건의 순간, 회상 속에서 또 다시 회상되는 사건의 순간 등에 대한 시간적 상관관계에 대한 일목요연한 파악이 어렵게 되어 있다. 이야기되는 내용(histoire narree)의 구성도, 다른 자서전 류의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연대기적 서술에 충실한 단선적인 구성이 아니다. 어떤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도중에, 그 보다 먼저 일어난 또 다른 과거의 사건이 언급되는가 하면, 제2부의 5, 6장에서 보듯이, 문화부장관의 자격으로 인도에서 가진 네루와의 대화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겪은 포로의 경험, 그러니까 시공간적인 배경과 이야기되는 주제가 그 어떤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기도 한다.
우리가 이 글에서 살피고자 하는 것은, 「반회상록」의 내용과 형식의 이러한 난해함, 이질성, 복합성을 가져오는 서술양식에 관한 것이다. 말로가, 장 자끄 루소(Jean Jacques Rousseau)의 「고백록Les Confessions」, 장 뽈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자서전 「말Les Mots」 또는 샤를르 드 골(Charles de Gaulle)의 「전쟁회고록Memoires de guerre」 등,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서전류의 작품들에서 지배적으로 사용되던 형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형식의 서술체계를 시도했다는 것은,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에 "반(反)"이라는 접두어를 붙였다는 것은2), 기존의 서술체계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구현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용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말해, 이 작품의 고유한 서사체계 및 의미구조야말로 말로가 평생 가꾸어 온 문학, 예술, 역사에 대한 사상을 가장 잘 양식화해서 나타내주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말로는 이 책의 서론 부분에서, 루소의 「고백록」이 갖는 "불멸성의 약속(promesse d"immortalite")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을 자신이 지배하는 운명으로 바꾸는,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변신(metamorphose)"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3). 이 말은 말로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말로가 시도한 서사체계는 바로 이 "불멸성의 약속", 그 자신이 "예술작품의 생명 그 자체"4)라고 말하고 있는 "변신"을 담보하는 양식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구체적으로 서술에서의 시간성과 관계된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작품에 접근하고자 한다.
하나는, 필연적으로 화자에 대한 논의를 끌어들이는 서술시점(敍述時點, moment de la narration)의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서사물에서 일반적인 시간의 문제, 즉 순서(ordre), 빠르기(vitesse), 빈도(frequence) 등의 문제이다5). 서술양식과 관련해서는 "누가 보느냐?(qui voit?)" 즉 시점(視點, perspective narrative), 또는 "누가 말하느냐?(qui parle?)" 등의 여러 측면에서의 접근이 가능하지만, 특히 우리가 이러한 시간의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는, 서술에서의 시간성의 문제는 한 작품의 독창적인 의미구조를 가장 쉽게 드러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앙드레 말로의 초기작품에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인 존재론적 측면에서의 시간의 문제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2.. 서술시점과 화자
서사학에서 서술시점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내용의 현재, 즉 사건의 순간과 이를 서술하는 현재 즉 서술의 순간과의 시간적 상관관계를 지칭한다. 이는 다시 네 가지의 형태로 분류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전통적인 소설에서 사용되는 "사건 후 서술(narration ulterieure)", 이야기되는 사건을 미리 서술하는 "예시서술(narration anterieure)" 사건이 일어남과 동시에 서술이 진행되는 형식의 "동시서술(narration simultanee)", 일기형식의 글에 쓰이는 "삽입서술(narration intercalee)"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작품에서 어떤 형식의 서술시점이 취해지고 있는가는 항용, 텍스트에 사용된 동사의 시제와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들에 의해 드러나기 마련이다.
작가가 책을 집필하는 순간까지 겪어온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입장에서 기술하는 자서전류의 텍스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또 허용되는 것은 "사건 후 서술"의 형태이다. 이야기되는 사건의 현재, 즉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적 배경은, 그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과거에 속하므로 "사건 후 서술"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대부분의 문장들은 과거시제로 표현되게 된다. 물론 경우에 따라 현재시제가 사용될 수도 있다. 화자가 서술하는 순간에 있어서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느낌 또는 지나간 사건에 대한 현재의 해석에 서술의 무게가 주어졌을 때가 여기에 해당된다.
말로의 「반회상록」의 서술시점은 이원적이다. 책의 출판연도로 그리고 이야기되는 내용의 시간적 배경으로 비추어보아 집필시기라고 여겨지는(?) 1965년 이전의 사건들은 단순과거, 복합과거, 반과거 등의 여러 과거시제의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즉 "사건 후 서술"의 형태로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1965년에 일어난 사건들은 현재시제로, 그러니까 "동시서술"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제1부 3장을 보자. 이 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는 1934년에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말로가, 악천후, 연료부족, 원주민의 적대감을 무릅쓰고 전설 속에 존재하는 사바saba의 유적을 찾기 위해 경비행기로 지부티를 이륙해서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모험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말로가 1965년 예멘의 아덴을 방문했을 때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1934년의 사건은, 그 사건 자체에 대한 서술현재에 있어서의 해석을 제외하고는6), 반과거, 단순과거를 기본시제로 하고 있다. 사건이 진행되는 현재순간이 단순과거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의 예는 이 부분에서 발췌한 한 장면이다.
마치 어느 소설에서 발췌한 듯한 인상을 주는 위의 장면과 달리, 아덴의 방문을 다루고 있는 두 번째 부분은 현재시제(와 복합과거)의 문장을 사용하여 동시서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건의 현재와 서술의 현재 모두 현재시제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은 말로가 아덴의 박물관에서 돌아오는 장면의 예이다.
작중인물이자 화자인 말로가 외부세계를 인식함과 동시에, 그의 움직임과 동시에 작품 내의 세계가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결국 같은 장에서 이야기되는 사건들일지라도, 그 사건이 시간의 축에서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두 개의 서술양식이 병행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1965년 이전의 사건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을 경우에는 사건의 현재는 단순과거를 기준으로, 그 이전의 사건 즉 과거 속의 과거는 대과거로, 과거에서의 미래는 조건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1965년의 사건이 소재가 되는 경우에는, 이야기되는 사건의 현재는 곧 서술의 현재이며 이는 현재시제로, 과거는 복합과거로, 미래는 단순미래 등으로 표현하는 체계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이원적인 서술체계의 사용은, 위의 예에서 보았듯이, 동일한 장 내부에서 서로 다른 사건을 기술하는 데에서도 보이지만, 텍스트의 전체적인 구성을 살펴보았을 때는 그 분포가 편향적으로 나타난다. 텍스트의 전반부에서는 과거시제의 사용이 지배적인 반면, 후반부에서는 현재시제가 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텍스트의 전반부는 주로 1965년 이전의 사건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후반부에는 1965년에 일어난 연속적인 일련의 사건들에 서술의 중심이 놓여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텍스트에서 각 장을 시작하기 전에 기술되는 시간 또는 공간적인 배경을 지시하는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책의 차례에도 재록된 시공간 지표들은 다음과 같다.
1965 au large de la Crete
제1부 1. Alsace 1913
2. 1934 - 1950 - 1965
3. 1934, Saba - 1965, Aden
제2부 1. 1923 - 1945
2. 1945 - 1965
3. 1958 - 1965
4. 1958 - 1965
5. 1958 - 1965
6. 1944 - 1965
제3부 1. 1958 - 1965
2. 1940
3. 1948 - 1965
제4부 1. Singapour
2. [Je ne vous derange pas...](시공간 지표 없이 시작)
3. [Il me semble, dit Mery...](시공간 지표 없이 시작)
제5부 1. Hong Kong CantonLe lendemain
Pekin Pekin Yenan
Pekin, aout 1965
2. [Je regagne la France par le pole.](시공간 지표 없이 시작)
3 [La nuit de decembre a Paris...] (시공간 지표 없이 시작)
서론 외에 전부 5부 18장으로 구성된 텍스트에서, 제1, 제2, 제3부에는 중심이 되는 이야기의 현재에 해당되는 연대를 표기하고 있지만, 제4, 제5부에서는 시간적인 배경보다는 주로 공간적인 배경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이야기되는 내용과도 연관이 있는데, 과거의 사건에 치중된 전반의 세 부에서는 이야기되는 사건의 시간적 배경을 명시해줄 필요가 있지만, 후반 2개 부에서는 1965년 현재의 사건만을 소재로 하고 있음으로 특별히 시간적 배경을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제3부 3장의 후반부부터 텍스트의 끝 부분까지는 서술의 순간과 사건의 현재가 계속해서 일치해 일종의 연속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제1, 2, 3부는 전체 텍스트 분량의 60% 정도인 300쪽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제4, 5부는 200쪽 정도를 차지한다. "사건 후 서술"과 "동시서술"이 양적으로는 어느 한 쪽으로 크게 치우침 없이 대략 균형을 이루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텍스트의 선적인 구성 역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위의 표에 대한 일견에서도 드러나듯이, 텍스트는 1913년부터 1965년 이전까지 (정확하게는 1958년까지) 일어난 사건들을 단속적으로 다루는 부분과 1965년의 사건을 연속적으로 다루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질 수 있으며, 각각의 부분에는 서로 다른 서술양식이 균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서술시점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은 우리에게 두 가지 문제점과 시사점을 제기한다. 그 하나는 집필순간과 서술순간의 관계, 즉 확대해서 이야기하면, 앙드레 말로라는 자연인이자 역사적 인물인 작가와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화자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사용되는 시제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동시서술"이라는 서술양식이 제기하는 것이고, 두 번째 문제는 "사건 후 서술"의 양식과 관련되는 것이기도 하다.
위에서 우리는 1965년이 서술의 현재이며 동시에 사건의 현재라고 했다. 적어도 동시서술을 택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그렇게 이해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텍스트에 나타난 서술의 현재순간이 작가의 집필 순간과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이 작품이 1965년에 씌어졌으므로, 1965년에 일어난 사건은, 상대적으로, 작가의 현재에 포함된다고도 할 수 있으나, 같은 날 일어난 사건을 적는 일기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과거형으로 기술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아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의 서사학적 특징은 텍스트 외적 존재인 작가(auteur)와 텍스트 내적 존재인 화자(narrateur) 그리고 작중인물(personnage)이 동일하다는 점에 있다9). 즉 텍스트에서 "je"로 표현되는 "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경우에 따라서는 사건의 증인),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이며, 동시에 그 자서전을 출판하는 작가인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소설의 형식과 달리, 작가, 화자, 작중인물의 정체성의 일치가 자서전의 필요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작가가 자서전을 쓰는 순간, 즉 집필의 현재와 화자가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러니까 서술의 현재는 일반적으로 동일시된다. 따라서 가장 보편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에서는, 여유로운 인생의 황혼기에 책상에 마주 앉아 바로 자기 자신인 작중인물이 겪은 사건들을 화자로서 회고하고 있는 그런 작가의 모습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 현재 집필의 순간을 제외한 모든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과거에 속하므로, 비록 그것이 아주 최근에 일어난 일일지라도, 과거형으로 기술하는 것이 사실임직한 것이다10). 그런 점에서 보면 말로의 「반회상록」은 이질적이다. 동시서술의 형식을 취해, 마치 한편의 소설을 또는 방송르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기실 말로의 텍스트에 있어서 집필의 순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다. 텍스트가 500여 쪽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그리고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1965년 12월까지의 사건들이지만 1967년에 책이 출판되었다는 현실적인 문제만 생각해보아도, 이 작품의 집필이 단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즉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그 집필의 현재는 텍스트 그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지 않다. 심지어는 자신이 과거를 회상하고 그 이야기를 하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는 서론 부분에서도 언제 어디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말로는 사건 후 기술이라는 전통적인 서술양식을 취하지 않고 동시서술의 형태를 취했을까? 또 그렇게 함으로써 집필의 현재를 감춘다는 것은 어떠한 효과를 주는 것일까?
집필의 현재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시간적인 측면에서의 선후관계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 작품에 사용된 서술기법 전체 또는 이 작품의 의미구조와 관련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집필의 현재를 드러내주는 단서가 없다는 것은 사실 자서전을 집필하는 작가로서의 말로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야기되는 사건의 중심인물로서의 말로의 모습, 또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화자의 모습은 뚜렷하지만, 과거의 개인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돌이켜보며 추억, 회한에 젖어 있는 60대의 말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비록 표면적으로는 작가, 화자, 작중인물이 동일하다는 조건을 만족시켜주지만, 내부적으로는 화자와 작가 사이에 일종의 간극이 있음을, 아니 서사행위(instance narrative)에 있어서 작가는 소외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말로가 책을 집필할 당시 이미 종료된 사건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현재진행형으로 독자에게 전달되면서, 그 사건들에 대해 추후에 갖게되는 말로 개인의 감정, 사고, 평가 등은 언급될 여지가 없게 된다. 작중인물이며 동시에 화자인 말로가 겪는 사건들의 현재만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동시서술의 형식을 취하기에 서술주체의 회고적인(retrospectif) 시각이 배제된다는 것은 당연히 과거사건을 회고하는 주체, 즉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11). 결국 이 작품에서 드러내지 않고자 한 것은, 즉 그 흔적을 지우고자 했던 것은 바로 텍스트 외적 존재인 작가이다. 개인적인 사생활과 이력을 갖고 있으며, 뼈와 살로 된 살아 있는 한 자연인으로서의 말로의 삶이 논의의 마당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텍스트에서 이야기되는 내용의 측면에서 보아도 확인된다. 우리는 텍스트 그 어느 부분에서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말로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그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학교에 다녔는지, 소년시절, 청년시절에는 무엇을 했는지, 결혼은 누구와 했는지 등등, 일반적인 자서전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작가란 텍스트 외부의 존재이며, 화자와 작중인물은 텍스트 내부의 존재이다12). 「반회상록」에서는 서술행위의 무게중심이 결국 텍스트 내부에 있는 화자와 작중인물들에게 주어져 있다. 앙드레 말로라는 자연인은 우리와 똑같은 현실세계의 인물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법칙에 비추어 텍스트를 읽게 되지 않는다. 현실세계와 텍스트에서 이야기되는 세계 사이의 어떤 일치점 또는 텍스트 내 세계의 사실성을 찾지 않는 것이다. 말로라는 개인의 이력에 초점을 두어 텍스트를 읽기보다는, 즉 이러저러한 사건에서 앙드레 말로가 어떤 역할을 실제 했느냐에 대한 관심, 또는 그 때 정말 그런 사건이 일어났구나 라는 생각 등을 갖기보다는, 현실과 유리된 (그래서 현실적인 법칙들을 적용하지 않는) 독자적인 하나의 세계로 읽게 되는 것이다.
서술시점에 대한 일차적인 분석이 가져다주는 두 번째 시사점은, "사건 후 서술"이 사용된 경우, 복합과거가 아닌 단순과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이것도 크게 보면 "동시서술"이 주는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사건을 기술할 때, 단순과거를 사용하느냐 또는 복합과거를 사용하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이다. 언술주체의 현재와의 단절을 강조하는 단순과거를 사용할 경우에는 이야기되는 사건들끼리의 인과적, 시간적 흐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언술행위가 이루어지는 현재, 즉 서술의 현재와의 연결성을 강조하는 복합과거를 사용할 경우에는 사건들끼리의 관계보다는 각각의 사건과 언술주체와 관계가 더 강조되어 나타나게 된다13).
따라서 단순과거로 기술된 사건은 서술주체의 주관성의 개입가능성이 줄어든 채, 사건의 독자성이 강조되며, 복합과거로 표현된 사건은 서술주체가 그 사건에 대해 서술순간에 갖고 있는 주관적인 생각, 감정, 판단 또는 회고적인 시각이 침윤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건들 사이의 시간적인, 인과적인 논리관계가 중시되며 나름대로의 독립성을 갖는 세계를 구축해야할 필요가 있는 소설에서 전통적으로 단순과거를 사용한다든지, 이야기되는 사건들에 대한 서술자의 주관적인 시각이 배제된 객관적인 기술이 요구되는 역사의 기록에서 단순과거가 사용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기인한다.
말로의 「반회상록」의 과거사건이 모두 단순과거로 서술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사건 자체를 전달하는 문장들은 대부분 단순과거로 되어 있지만, 그 사건이 미친 결과, 주석 등은 복합과거로 되어 있다. 앞에서 예로 들은 제1부 3장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즉 1934년 전설 속의 도시를 찾아 나서는 사건 자체는 연속적인 단순과거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 사건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도입부분은, 앞에서 들은 예처럼, 복합과거로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모험이 말로 자신의 인생 전반에 미친 영향에 대한 언급은, 사건에 대한 서술이 완전히 끝난 후, 복합과거의 문장으로 표현되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의 비행 후에 비행장에 안착함으로써 처음으로 "대지로의 귀환"을 경험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그러한 경험이 자신의 인생에 미친 중요성, 그리고 후에 그런 경험을 여러 차례 표현했다는 것15)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사건 당시 즉 1934년의 생각이 아니라 그 후에 지속적으로 가져왔던 또는 사건을 돌이켜보는 서술현재의 생각임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결국 복합과거를 사용한 문장은, 지나간 사건을 기술하는 연속적인 단순과거문장을 마치 액자의 테두리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반회상록」에서 이와 같은 복합과거의 사용은, 그 용법 자체가 보여주듯이, 매우 제한적이다. 텍스트 내에서 현재시제에서 단순과거로의 또는 단순과거에서 현재시제로의 급격한 이행이 야기하는 충격을 완화시키려는 듯 과거사건의 전말을 기술하기 이전 그리고 이후에 잠시 사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용법의 복합과거가 모든 과거사건의 기술에 앞의 예에서 보이듯 체계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일단 지나간 사건에 대한 언급이 있고 난 이후에는, 앞의 주7에서 보이는 것처럼, 연속적인 단순과거의 문장들이 사건을 표현한다. 따라서 과거의 사건들은 서술현재, 서술주체의 주관성과 절연된 채 독자에게 전달된다. 화자는 자신이 겪은 일이지만 마치 제3자의 이야기를 하듯 서술하고 있으며,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화자의 회고적 시각에서, 화자가 서술 당시 갖고 있는 주관적인 감정,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16).
따라서 과거의 사건들은 나름대로의 객관성을 유지한 채 사건 그대로 존재하게 된다. 「반회상록」에서 이야기되는 내용은 결국, 화자가 서술현재에 갖고 있는 프리즘에 비추어진 과거 사건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인과성과 논리성을 갖는 완결된 세계 안에서 자족적인 사건으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특성은,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화자로서의 "나"와 그 사건을 경험하는 작중인물로서의 "나"의 일체성이 보장되지 않는 효과를 가져온다. 아니 더 나아가서 각각의 사건들이 서술되는 그 순간에 화자의 존재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반회상록」에서는 동시서술과 사건 후 서술의 병행적인 사용에 의해 두 가지 측면에서 미묘한 불일치가 생긴다. 하나는 작가로서의 "나"와 화자로서의 "나" 사이의 간극이며, 또 다른 하나는 화자로서의 "나"와 작중인물로서의 "나" 사이의 간극이다. 이 두 문제를 개별적으로 접근해서 각각의 문제가 일반적인 자서전 형태의 글에 미치는 효과는 여러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또 다른 점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서술형태가 한 텍스트 안에서 병행적으로 동시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두 서술형태가 서로 어울려 빚어내는 효과는 어떻게 보면 단순할 수도 있다.
각각의 양식이 지향하는 바가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동시서술이 사용된 부분에서는 작가의 집필순간은 텍스트에 그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화자와 작중인물의 현재만이 독자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자서전 류의 글에서처럼 이야기되는 사건을 겪는 주인공인 작중인물과 이를 이야기하는 화자가 동일인인 경우 - 전통적인 의미에서 "일인칭 서술(narration homodiegetique)" - 화자의 존재는 작중인물의 존재에, 서술의 현재는 사건의 현재에 수렴되게 된다. 결국 작중인물, 사건의 현재만 강조되게 되면, 독자가 읽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 되는 것이다. 한편 사건 후 서술로 되어 있는 부분에서는, 우선 단순과거라는 시제의 선택에 의해 과거 사건에 서술의 무게중심이 놓이게 된다. 서술의 현재는 읽기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줄어드는 것이다. 또한 제한적이나마 서술의 현재가 드러나는 곳도 있지만, 이 때의 서술의 현재라는 것은 결국 "동시서술 부분"의 화자의 현재와 동일하다.
따라서 "사건 후 서술"이 사용된 부분에서의 서술의 현재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작중인물의 현재, 그러니까 또 다른 사건의 현재에 수렴되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텍스트의 대부분에서 강조되는 것은 이야기되는 사건 그 자체이며, 이 사건에 대한 감정, 해석, 평가 등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이야기되는 사건은, 그것이 1944년의 사건이건 혹은 1965년의 사건이건, 작가 또는 화자의 회고적 시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텍스트 안에서 존재하게 된다. 동시서술로 되어 있거나 사건 후 서술로 되어 있거나 건에, 「반회상록」의 하나 하나의 장면을 발췌해보면, 자서전이나 회고록에 가깝다 보다는 마치 소설의 한 장면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회고적 시각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이 텍스트에서 사용된 서술양식은 허구적 구성의 효과를 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회고적 시각의 부재>와 <허구적 구성의 지향>이라는 특성은 이 작품에 왜 "반"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지를 설명해줄 수 있는 하나의 이유이며, 이제는 서술에서의 시간성의 문제로 이 점에 대해 접근하려 한다.
3. 서술의 시간성
서술에서의 시간성의 문제는, 이야기되는 사건(histoire narree)과 이를 화자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서사물(recit) 사이의 시간적 관계를 의미하며,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서술의 "리듬(rythme)" 또는 "속도(vitesse)", "빈도(frequence)" 그리고 "순서(ordre)"의 문제이다. "속도"란 이야기되는 사건의 지속적인 시간(duree)과 - TH로 표기 - 이를 담고 있는 텍스트의 분량(시간) - TR로 표기 - 사이의 상관관계를 말한다. 사건의 시간과 텍스트의 시간이 1:1이라고 간주되는(TH=TR) "장면(scene)", 사건의 시간보다 텍스트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TH>TR)의 "요약(resumee"), 세밀한 묘사장면에서처럼 사건의 시간은 멈추어 있지만 텍스트의 시간은 흐르는 경우(TH<TR, TH=0)의 "휴지(pause)", 반대로, 사건의 시간은 흐르지만 텍스트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는(TH>TR, TR=0) "생략(ellipse)"의 네 형태로 일반적으로 구분된다.
"빈도"는 이야기되는 사건이 일어나는 횟수(H)와 텍스트에서 이를 언급하는 횟수(R)의 상관관계를 의미하는데, 한번의 사건이 한번 이야기되는 경우(1H=1R, recit singulatif), 하나의 사건이 여러 번 반복되어 이야기되는 경우(1H=nR, recit repetitif), 여러 개의 사건이 단 한번 이야기되는 경우(nH=1R, recit iteratif)의 셋으로 대별되며, 소설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일반적인 형태는 첫 번째 경우이다. 한편 "순서"는 이야기되는 내용의 선후관계와 이야기하는 서사물의 선후관계 사이의 비교를 의미한다. 즉 이야기되는 내용의 선후를 존중해서 연대순(ordre chornologique)로 기술할 수도 있고, 플레쉬 백 기법처럼 결말을 먼저 이야기한 뒤 그러한 결말에 이르게 된 과정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개별적인 문학작품이 다른 작품들과 구분될 수 있는 서사양식적인 특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각각의 작품들의 내면적인 구성이나 전체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도구로서의 역할도 한다. 기실 이 글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측면이며, 여기서는 앞에서 살펴본 "회고적 시각의 부재"와 "허구적 구성의 지향"이라는 「반회상록」의 특성이 구체적으로 텍스트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가를 간략하게 살펴보려 한다.
우선 서술에서의 "속도"와 관계된 문제를 살펴보자. 「반회상록」은, 말로의 다른 소설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장면"과 "생략"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약"이나 "휴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통적인 소설에서 또는 자서전 류의 글에서 특정한 사건의 서술을 유도하기 위해 향용 사용되는, 과거의 습관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반과거의 용법은 눈에 띄지 않으며, 사건의 진행 없이 묘사만 있는 부분도 찾아볼 수 없다. 말로의 이력을 구성하는 모든 사건들이 언급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단지 몇몇 중요한 사건만 상세하게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텍스트에서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장면위주의 구성(composition scenique)"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의 특징은 직접화법의 사용에서 두드러져 나타난다. 네루, 드골, 끌라삐끄 등과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말로와 이들과의 대화는 요약에 의한 내용의 전달이 아니라 대화 그 자체가 직접화법으로 소개되어 있는 것이다17). 또한 외부세계에 대한 묘사도, 그의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중인물이며 의식주체인 말로 자신의 의식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의식이 미치는 순서에 따라서 그대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그들은 나를 의무실로 데리고 가서 (부상당한 부위의) 붕대를 바꾸어 주었다. 내가 일어서 있을 수 있을까, 아마 몇 걸음은 가능하겠지.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나는 장갑화물차에 처넣어졌다. 앰뷸런스인 것 같았다. 뒤쪽으로는 이중의 문이 있었는데 밖에서 잠겨 있었다. 평상 네 개가 있었다. 나 혼자였다. 나는 누워서, 창살이 쳐진 작은 창문을 통해, 한 줄로 늘어선 트럭의 행렬, 그리고 밖의 풍경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레지스탕스가 공격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이 지역은 산악지대지만 매복할 만큼 숲이 우거져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가론 강 이쪽에는 대단위의 레지스탕스가 없었다. 아마 이 기갑사단은 일종의 토벌작전을 진행중인 것 같았다. 불타는 우리 프랑스 마을에서 연기가 비스듬하게 높이 올라오는 것이 도로와 구불구불한 강 너머로 보이고 있었다.
말로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호송되는 장면이다. 외부세계에 대한 모습은 차 안에 갇힌 말로가 창살이 있는 차창 밖으로 보는 모습, 즉 말로의 시선이 닫는 범위 안의 모습이 시선이 가는 순서에 따라 독자에게 전달된다. 아울러 "peut-etre", "sans doute", "Les maquis attaqueraient-ils?" 등의 표현들은, 말로가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의식 안에서 생각들이 이미 문장화되었음을 암시하며, 이렇게 의식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se dire", "penser" 등의 동사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은, 즉 간접화법의 종속절의 형태나 직접화법을 유도하는 표현 등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되는 사건의 시간에 충실한 서술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록 인용에 의한 직접화법의 대화 형태는 아니지만, 외부세계의 묘사도 서술속도의 측면에서는 이와 동일한 효과를 주고 있는 것이다.
「반회상록」의 각 부분은 직접화법에 의한 구성이나 위의 예문과 같은 장면으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 "장면"을 위주로 한 이러한 구성은 이야기되는 사건의 시간과 텍스트의 시간이 - 또는 읽기의 시간이 -, 최소한의 왜곡을 제외하고는 등시적(isochronique)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아가서는 서술주체 또는 회상주체의 개입이 최대한 억제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특히 "요약"의 용법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더욱 강조한다. 화자가 사건의 전말을 간략히 이야기하는 요약은 필연적으로 사건에 대한 화자의 해석을 전제로 하고, 따라서 "요약"이 사용되는 부분에서는 (이야기꾼으로서의) 화자의 존재가 더욱 뚜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장면위주의 구성"이라는 것은 사건이 일어나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양식이다. 화자의 해석이나 개입은 최소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에서의 화자의 역할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희곡텍스트를 가장 완전한 등시성이 이루어지는 표본으로 가정한다는 점이 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반회상록」의 텍스트 읽기는 결국, 서술이 이루어지는 현재의 발화상황이 투명할 정도로 작가 또는 화자의 존재가 깊이 느껴지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진다. 화자의 목소리가 느껴지기보다는 작중인물의 경험에 서술의 무게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한편 장면 위주의 구성, 직접화법 등은 세밀한 묘사와 함께 사실성보다는 허구성(fictionnalite)을 드러내주는 지표라고 이야기된다19). 일반적으로 다른 장르의 텍스트보다는 소설텍스트에서 이러한 특성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반회상록」의 각 부분들의 구성은 실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루는 자서전의 형식을 따르기보다는 허구의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의 형식을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서술에서의 "빈도"의 문제와 관련된 내용도 위에서 살펴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반회상록」의 서술은 한마디로 "특이성 또는 단수성(單數性, singularite)"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이야기되는 사건 자체가 일상적이지 않다. 전장에 참가해서 포로가 된다든지, 네루, 주은래 등의 역사적인 인물들과 공식적인 방문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든지, 할아버지가 도끼로 자살한다든지 하는 사건 등은 원한다고 해서 여러 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렇지 않고, 즉, 물리적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사건들일지라도, 적어도 이 작품에서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말로에게 있어서 어떤 뚜렷한 인상을 남긴 것들이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 미이라를 마주했을 때의 경험 같은 것이다.
내가 외양의 음성과 신성의 음성을 처음으로 들었던 때, 즉 스핑크스를 마주했을 때만큼 강렬한 느낌을 경험한다. 나와 조각품과의 깊은 관계, 그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바로 미이라이다.
미이라나 스핑크스를 본다는 행위 자체는 그다지 특별한 경험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특별히 말로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도 아니고, 또 사람에 따라서는 몇 번씩이나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문에서 보이듯이 그러한 행위는, 말로가 평생 간직하게 되는 조각, 예술에 대한 관심과 또한 평생 집착하게 되는 "외양"과 "신성한 것"이라는 예술작품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동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강렬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한편 이러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형식 또한 서사학적 측면에서 보아 한 마디로 "단수성"으로 정의될 수 있다. 즉 같은 사건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이야기하거나(recit repetitif), 단 한번의 언급으로 (유사한) 여러 사건을 이야기하는 경우(recit iteratif)가 드물다는 말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 이는 서술속도 측면에서 살펴본 "요약"의 형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 일반적으로 자신이 직접 체험한 과거의 이야기를 전개할 때 아주 용이한 형식인데도 불구하고 「반회상록」에서는 거의 그 용법을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사건을 한 번 언급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반복"이나 "압축"의 사용이 많지 않다는 것은 그 만큼 이야기하는 화자의 존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 때는 -하곤 했다" 등의 표현, 즉 과거의 습관적인 행동을 기술하는 "압축"의 표현이나, 동일한 사건을 수차에 걸쳐 자세히 반복할 경우는 필연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가 사건 전체에 대한 해석을 이미 갖고 있다는, 그리고 이러한 해석에 의해 사건을 재단해서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주게 마련이다. 사건은 이미 종료된 것으로 여겨지며, 화자의 존재가 사건에 앞서 드러난다는 말이다. 반면에 이러한 표현이 적은 경우 상대적으로 화자의 개입의 흔적은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서술의 무게 중심이 사건 자체에 두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특성은 "장면"위주의 구성과 맞물려 이야기되는 사건을 화자 또는 작가의 발화상황에서 최대한 독립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회상록」에서의 서술 순서는 앞서 예시한 시공간적인 지표가 보여주듯이 일정한 체계가 없이 무질서하게 배열된 것처럼 보인다. 특히 1965년 이전의 사건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제1, 제2, 제3부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서술의 현재에 해당하고, 또 그렇기에 거의 대부분의 장에서 한 번쯤 언급되는 1965년의 사건들을 제외하고 보면, 그 이전의 과거사건들의 시간적인 순서가 전혀 존중되고 있지 않으며, 이 사건들이 텍스트에 배열된 그 어떤 규칙성도 찾아볼 수 없다. 주로 과거의 사건을 다루는 제3부까지 이야기되는 사건들의 연대기적인 순서(TH)와 그 사건들이 텍스트에 배열된 순서(TR)를 비교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TR : A - B - C - D - E - F - G - H - I - J - K - L - M - N
TH : A - E - B - D - M - K - F - G - N - C - H - I - J - L
A : 1913(제1부1장) B : 1934(제1부2장) C : 1950(제1부2장)
D : 1934(제1부3장) E : 1923(제1부1장) F : 1945(제2부1장)
G : 1945(제2부2장) H : 1958(제2부3장) I : 1958(제2부4장)
J : 1958(제2부5장) K : 1944(제2부6장) L : 1944(제3부1장)
M : 1940(제3부2장) N : 1948(제3부3장)
표에서 보이듯이, 1958년의 사건이 제3부 1장의 내용인가 하면, 바로 그 다음, 그러니까 제3부 2장에 시간적으로 먼저 일어난 1940년의 사건이 기술되고 있으며, 이야기되는 내용의 시간적인 축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중간 부분에 있는 1948년의 사건이 텍스트에서는 가장 뒤에 배열되어 있기도 하다. 일반적인 자선전 류의 작품들이 주인공의 출생부터 집필의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들을 연대순으로 기술하는 것에 비해, 이러한 연대순의 거부는 매우 이질적이다.
한편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텍스트에서의 배열순서만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 또한 그 어떤 일관성도 내포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 그 어떤 자서전이라도, 또 그 어떤 소설이라도, 자신의 또는 작중인물의 모든 일상사를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특히 말로의 「반회상록」에서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그 사건들 사이에 표면적인 공통점을 상실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즉 텍스트 내에서 서로 인접해서 배열되어 있는 사건들을 그 성격이나 소재 면에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분모가 결핍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특히 1965년 이전의 사건들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이러한 점이 더욱 두드러져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제2부 5장과 제3부 1장은 모두 인도를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 두 개의 장은 텍스트 안에서 공간적으로 연속되어 배열되어 있지 않다.
항독 레지스탕스 활동 중에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제2부 6장이 그 사이에 삽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포로가 되었던 경험이나, 전차병으로 플랑드르 지방의 전투에 참전했던 사건이나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일들이지만, 하나는 제2부에, 또 다른 하나는 제3부에 수록된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사생활은 차치하더라도, 앙드레 말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스페인 내전에 의용항공대장으로 참전한 경험이나,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 누구나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인도차이나에서의 "비밀스러운 활동"에 관한 이야기는 아예 수록조차 되어 있지 않다. 결국 「반회상록」에서는 연대기적인 기술을 철저히 배제하며, 이야기되는 사건의 선택이나 그 사건들의 텍스트 내에서의 배열순서는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어떤 기준이 있지 않을까라는 가정을, 나아가서는 이 기준 또는 체계가 「반회상록」의 의미구조를 밝혀주지 않을까라는 가정을 가능하게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대기적인 기술의 거부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그이 자기 자신의 삶이건 또는 타인의 삶이건, 한 인물의 생애를 그리는 데 있어 연대기적인 기술은 기실 매우 보편적이며 또 자연스럽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술은 각각의 이야기되는 사건들의 선후관계와 인과관계가 이미 완전히 정리되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즉 어떤 사건을 시간의 축에 위치시키는 것은, 이 사건이 이미 종료되었고, 앞, 뒤에 있는 다른 사건들과의 관계가 명확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서전에 있어서 연대기적인 기술은 이야기되는 사건들에 대한 사후의 그리고 회고적인 조망이 전제조건이며, 이 사후의 회고적인 조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결국 사건의 순간보다는 집필순간 또는 서술순간에 더 가까운 법이다. 따라서 연대기적인 기술은, 이야기되는 사건의 추이에 따르는 가장 자연스러운 양식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화자의 지적인 노력과 개입이 있었음을, 화자가 이야기되는 사건들을 의식적으로 시간의 축 위에 재배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대기적인 서술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그것이 여러 다른 텍스트에서 사용되는 익숙한 방법이기 때문에 읽기 자체가 자연스러운 상태로 이루어질 뿐인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연대기적인 기술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오히려 화자의 회고적인 개입이 없었다는 것을, 이야기되는 사건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자서전에서의 연대기적인 서술은 자신의 생애를 거슬러 올라가서 출생부터 현재까지 차례로 기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각각의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그 자체가 된다. 각각의 사건들은 생애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며, 이야기되는 것은 그러한 부분들이 모여서 이루고 있는 전체로서의 삶인 것이다. 생애중심, 인물중심의 서술에서는 그러므로 하나 하나의 사건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들이 모여 이루는 인생 자체에 서술의 무게 중심이 놓여 있으며,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인생을 설명하기 위한, 이해하기(시키기) 위한 종속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말로의 「반회상록」에서는 연대기적인 기술이 사용되지 않음으로써 서술이 자신이나 자신의 인생이 아닌 사건을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작품에서 이야기되는 사건들이 앙드레 말로의 인생역정이나 이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사건 자체로서, 어떻게 보면 작가로서의, 자연인으로서의 앙드레 말로와는 유리된 채 존재하는 것이다.
서술의 "속도", "빈도", "순서"의 측면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반회상록」의 서술 양식은 일반적인 다른 자서전과는 다른 일정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화자의 회고적 시각의 부재, 사건 중심의 서술 그리고 허구성의 지향이 그것이며, 이러한 특성들은 서로 맞물려 최대한의 상승효과를 주고 있다. 「반회상록」에서 이야기되는 내용이 독특한 점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우리는 이 텍스트가 앙드레 말로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를 많이 담고 있지 않다고, 즉 보통의 사람들이 흔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건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이야기한 바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서술의 무게 중심이 말로의 인생 그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되는 사건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인생에 초점이 맞추어질 경우, 보통의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력을 중심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야기되는 내용은 현재의 개인의 모습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과거의 사건이 이야기되는 작품 내의 세계는 현재 그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일부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말로의 「반회상록」에 기록된 것은, 60여 년 동안 동, 서양을 넘나들며 인생의 풍파를 겪어온 한 자연인으로서의 말로의 삶이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으로서의, 한 자연인으로서의 모든 꼬리표를 떼어낸 한 인간의 삶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고, 누구와 결혼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따위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한 인간으로서 죽음 또는 자신의 미약성에 대한 인식, 그러한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써의 예술, 문명, 역사에 대한 관심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이 이야기되는 작품 내의 세계는 우리가 또는 말로가 한 개인으로서, 자연인으로서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르다. 현실의 연장선 위에서의 작품 내의 세계가 아니라 일종의 개념화된, 허구화된 세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 말로가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내온 앙드레 지드와의 관계조차도 일정한 주제에 대한 대화만 소개되었을 뿐이며, 드골과의 인연도 개인적이고 내밀한 부분은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여러 부분에서 확인되는 허구성의 지향도 사실은 바로 이런 점을 강조해서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말로의 「반회상록」의 서술양식은 자신의 인간조건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한 인간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4. 결어
서술기법은 이야기되는 사건을 독자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의 문제이다. 살펴본 대로, 말로의 「반회상록」에서 사용되는 서술기법은, 반(反)이라는 접두어에 걸맞은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회고적 시각의 부재, 작가 또는 화자의 발화상황의 투명성, 작중인물 혹은 이야기되는 사건에 초점이 맞추어진 서술, 허구성의 지향 등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들이며, 이러한 점들이 이질적이다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서술특성이 자서전보다는 소설에 더 적합한 용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전 경험이나 악천후 속에서의 비행 경험 등 모험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는 개인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부분은 각각이 하나의 소설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이 점과 관련해 우리는 작품의 제일 첫 번째 장, 즉 제1부 1장에 대한 언급을 생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텍스트 읽기가 하나의 텍스트를 매개로 해서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라고 했을 때, 텍스트의 모두부분(incipit)은 이 두 주체 사이에 텍스트 읽기에 대한 일종의 계약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화자는 화자대로 장르의 또는 시대적인 관습에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독자는 독자대로 과거의 독서경험에 의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예측하면서 적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회상록」의 첫 번째 장에 자신의 출간된 소설의 일부를 수록했다는 것은 텍스트의 전체적인 읽기와 관련해 매우 시사적이다. 텍스트 전체가 소설적인 구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울러 작품 내의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세계와는 유리된 세계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는 자신이 호흡하며 살고 있는 현실의 법칙에 의거해, 자연인으로서의 앙드레 말로와의 관계 안에서 이 작품을 읽게 되지 않는다. 독자가 마주치는 세계는 어찌 보면 나름대로 자족적인, 완결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서술양식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텍스트 외적 존재인 작가의 배제, 화자의 투명성은 바로 작품 내의 세계와 현실세계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반회상록」의 작품 내의 세계는 일반 소설의 작품 내의 세계와는 다르다. 후자의 작품 내 세계가, 현실과 유리는 되었지만, 작중인물들이 현실의 인물들과 똑같이 호흡하며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완벽한 공간임에 반해, 「반회상록」의 세계에는 일반적인 소설에서의 심리적 공간을 채우는 질투, 배신, 사랑, 동경, 추억, 야망 또는 희로애락, 인생유전 등의 단어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감정적인 것, 개인적인 것, 일상적인 것들이 빠진 추상화된, 개념화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되는 사건들이 대부분 예술, 문명, 죽음, 역사 등의 주제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이 점을 확인해준다.
한편 「반회상록」에서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대부분 현재 진행중인 사건처럼 그리고 어떠한 체계도 없는 것처럼 기술되어 있다. 이 점은 「반회상록」에서 이야기되는 사건들이 말로 자신도 뚜렷한 해답을 얻지 못한 근본적인 수수께끼라는 것을 암시한다. 사건을 회고적인 시각에서 과거형으로, 연대순으로 배열한다는 것은 그 사건의 핵심에 대한 파악과 통제가 일목요연하게 이루어져 있음을 전제한다. 반면에 해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은 그 어떤 체계도 거부한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문득 찾아오지만 여전히 그에 대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지 못하는 그래서 뇌리에 남아 있는 그런 질문들인 것이다21). 그것은 한 개인의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유한한 존재인 한 인간이, 시간의 흐름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인간조건을 의식하는 과정에서, 또 그 유한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져보지만 결코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지 못하는 질문인 것이다. 이야기되는 사건에 서술의 무게가 주어져 있고, 전체적으로 이원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바로 그 사건들이 여전히 질문으로만 남아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예술작품의 근원은 "변신"이라고 말한다. 예술작품을 만들어 낸 문명과 예술가는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지만, 예술작품은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또 다른 문명과 다른 사회 속으로 부활하는 변신을 거치며, 예술작품의 불멸성을 담보하는 것은 바로 이 변신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반회상록」의 서사양식은 형식면에서 바로 이러한 변신의 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질되고 사라져 가는 모든 일상적인 것, 일시적인 것들이 제거된 추상화된 세계, 개념화된 세계를 그리고 있기에 「반회상록」에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는 보편성을 갖게 된다. 환언하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 망각 속으로 사라져가게 되는, 또는 시대에 따라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들이 논의의 장에서 제외되는 서술체계를 갖고 있기에, 또 인간이기에 제기해보지만 영원히 그 해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반회상록」은 다른 시대,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독자에 의해 언제든지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한 개인의 주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한 인간의 근본적인 수수께끼를 다룬 기록이기에, 말로식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이 한 개인인 Andre의 회상록이 아니고 한 인간인 Malraux의 회상록이기에, 이 작품은, 또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들은 시간의 흐름이 강요하는 망각의 늪에서 언젠가는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그 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숙명이기도 한 유한성의 극복은 그러니까 시간의 흐름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마치 예술가가 불멸의 가능성이 있는 예술작품을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듯이, 말로는, 세월의 흐름이나 이에 따른 변화에 무관한 한 인간으로서의 기록을 남김으로써,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과정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 참고자료
* 앙드레 말로 소설로 쓴 평전 / 저자 : 레미 코페르
앙드레 말로(1901~1976)의 인생 동반자였던 귀여운 여인 클라라는 남편에게 인사하는 것조차도 어려웠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젊은 말로는 "나에게만 중요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라고 자주 되물었다. 이는 한 개인의 껍질을 벗겨낸다고 인간의 본성을 만나는 것이 아님을 믿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벗기기 싫은 개인사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지 그는 체질적으로 추억이나 마음 속 깊이 간직한 비밀보다는 평생 굵직한 모험을 찾아 헤매었다. 캄보디아에서는 앙코르 사원의 약탈자, 사이공에서는 혁명가, 스페인 내란에서는 투사였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 대원에다 드골주의자였던 말로는 자신의 삶이 대서사시가 되기를 바랐다.
우리는 작가이자 기자이며 역사가인 레미 코페르의 이 책에서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불꽃같은 그의 삶의 여정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 왜 한낱 댄디였던 말로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불꽃처럼 태울 수 있는 모험을 찾아 나선 것인가? 이 질문의 대답은 그가 어느 날 줄리앙 그린에게 던진 말, "열 여덟에서 스무 살 사이일 때는 인생이란 마치 시장과도 같습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돈으로 가치를 사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사지 않습니다"(31쪽)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그가 찾아다닌 모험은 소설이 되고 또 소설은 그의 삶의 모델이 된다. 인도차이나에서의 모험은"정복자" "왕도" "인간의 조건" 등의 소설로, 스페인 내란 참전 경험 "희망"으로, 레지스탕스 대원으로서의 활동은 ‘알텐부르그의 호두나무"라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하나의 작품이 출판될 때마다 그는 니체적 영웅이나 형제애의 화신쯤으로 여겨졌고, 작품의 주인공을 닮기 위하여 그는 다시 기이한 모험의 길로 나섰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서사시를 스스로 창조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그는 결코 고갈되지 않는 정력으로, 20대에 자신에게 다짐했던 자기 자신의 상(像)을 조각하였다. 레미 코페르의 "앙드레 말로, 소설로 쓴 평전"의 원제는"한 야바위꾼의 소설"이다. 코페르는 말로가 스스로 창조한"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실존적 앙가주망(engagement참여)의 신화를 한 꺼풀 벗겨내고 진정한"인간 말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코페르는 신화의 이면에 있는 그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당히 객관적으로 살아있는 말로을 그리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말로가 캄보디아 사원 약탈로 유죄판결을 받은 후, 프랑스 작가들의 구명 운동으로 프랑스에 돌아왔을 때 말로에 대한 소문은 그를 정의의 투사로 만들었다. 이것을 미리 예감한 그는 사람들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신비가 신비를 강화시키도록 하였다. 이 책의 첫머리에 인용된 말로의 ‘반회고록"의 고양이처럼, 말로도 평생 "말라르메 씨 댁의 고양이인 척"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작품에 개입하여 자신의 도덕적 잣대로 말로를 질타하기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비록 보헤미안 스타일의 낭만적 참여가 때로 자신의 신화를 창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평생 역사의 현장을 쫓아다니며 말에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했다. 말로의 열정은 오늘날도 신선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말로의 인간미를 부각시키면서 그를 진지하게 또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무엇보다 실화를 소설처럼 보이도록 만든 점이다.
특히 젊은 시절 별났던 말로가 노년에 죽음을 저항 없이 맞이하는 ‘고아"라는 마지막 장은 슬픈 감동을 자아낸다. 인간의 조건에 도전했던 말로가 죽음 앞에서 인간의 조건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칫 짜증스러울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이나 말로가 만났던 인물 등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작품 속에 잘 녹아있다.
탄생 100주년 계기 평전 봇물
‘국민적 영웅"이나 "위대한 작가"보다 "명암이 엇갈리는 인간" 말로에 주목한다. 그동안 말로의 전기는 많지 않았다. 말로 자신의 글과 말에서 보이는 과장과 희극성, 불분명한 입장 표명 등으로 "인간"말로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은 탓이다.
프랑스에서 메리 코페의 "앙드레 말로 - 소설로 쓴 평전"과 함께 저널리스트인 올리비에 토드의 "앙드레 말로, 일생(Andre Malraux,une vie)"이 주목을 받았다. 토드는 미공개 공문서 등 사료를 샅샅이 뒤져서 말로의 허세와 거짓을 드러낸다. 말로가 신경질환을 앓았다. 대학졸업 이력을 속였으며 레지스탕스 지하운동 지휘자를 사칭했다는 게 토드의 주장이다.
앙리 고다르 교수는 "앙드레 말로의 우정(L" amitie Andre Malraux)(갈리마르)을 통해 말로의 영웅적인 인간상을 부각시켜 좋은 대조를 이룬다. 막스 케리앵의 "새로운 장관상을 정립한 말로(Malraux, l" antiministre fondateur)"는 프랑스 문화를 세계화시켰던 문화성 장관시절의 행적을 관련자의 증언으로 생생하게 재생시킨다.
■ 참고자료
* 프랑스 문화정책 20년의 반성 / 이복남(수원대 프랑스어과 교수)
앙드레 말로의 문화부
1959년 문화부 창설 이후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오늘에 이르렀는가? 문화행정의 영역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인적,물적 자원은 불충분했으나 새로 발족된 앙드레 말로 문화부의 3대 문화정책목표는 문화의 민주화와 보급 그리고 예술창작의 장려에 있었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한, 흔히 말로 시기의 업적으로 후일 평가되는 활동을 열거해보면 ①"국가 사회??경제 현대화 5개년 계획"에 문화계획이 수렴된 점, ②예술창작활동의 관장, ③"문화의집" 창설, ④문화보급정책의 일환인 음악정책, ⑤유산 관련 정책, ⑥지방 분권화 정책을 들 수 있다.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국가 사회??경제 현대화 5개년 계획"에 문화계획이 편성됨으로써 문화예산을 확보하게 되어 문화사업은 연속성을 띠게 되었다. 과거 제4공화국 시기에는 전례가 없던 정책이었다.
예술창조 지원부"가 1961년에 신설되고 1965년, 프랑스 지방별로 예술심의관이 임명된다. 1967년, 국립현대예술센터"가 신설되었으며, 유적 보수가 주업무였던 건축국에 건축창작부가 도입되어 예술창작활동을 관장한다. 산업부에서 영화 업무를 분리시켜 지원한다. 말로는 각 도(道)에 하나씩"문화의 집"을 건립하고자 했다. 모든 계층의 프랑스인에게 문화민주화와 문화발전의 상징으로 문화의 집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아홉 도시에만(르아브르, 부르주, 캉, 그르노블, 토농, 아미앙, 렝스, 크레테으, 보비니) 문화의 집이 세워진다. 건립 비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50%씩 분담했다. 문화의 집은 1973년 이후에는 보다 규모가 작은 30여개소의 문화활동센터(CAC)로, 1980년 이후에는 문화발전센터(CDC)로, 오늘날에는 국립무대(Sce`nes nationales)로 변화를 거듭하는데 프랑스 국내에서는 별 진전이 없었으나 프랑스 밖에서는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말로는 문화보급정책의 일환으로 과거 국가의 무관심 속에 침체 일로에 있던 음악 분야를 활성화시킨다. 문화부에 마르셀 란도스키가 주도하는 음악국을 설치해 파리 오케스트라 등을 창단, 교향악단을 육성하였다. 문화유산 분야에 있어서 주요 유적 15개소의 보수를 지원했으며, 옛 주거지 복원을 지원하는 보존지구법을 만든다. 또한 예술사가 앙드레 샤스텔과 함께 《프랑스 예술목록》을 편찬하며 ‘국립발굴부"를 설립하였다.
지방분권화는 행정현대화의 효율적인 형태라는 관점에서 1969년 3개소의"문화업무지방국(DRAC)"이 신설된다. 이 기구는 말로의 계승자들에 의해 발전하게 된다. 말로는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화정책을 펼칠 재원을 정부로부터 충분히 조달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말로 시기 문화부 예산은 국가 총예산의 0.43%에 불과했다. 드골과 숙명적인 인연을 맺었던 동반자 말로는 1968년 5월 사태로 물러나게 된다.
자크 뒤아멜 시기
자크 뒤아멜은 문화부장관 취임사에서 "문화발전의 개념이란 독서, 음악, 연극, 조형예술 등 예술 및 지적 분야에서 개인을 충실화한다는 소수 특권층에 한정된 과거 문화를 초월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문화를 확대하고, 특히 교육 및 생활수준의 차이에서 비롯된 불평등의 희생물이 된 사람들을 최우선 대상으로 한다. 이들이 가장 탈개성적인 구속을 당하고 있으며 수동적인 대상물이나 모호한 관중의 처지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이 취임사에서 1968년 5월 사태의 반향을 읽을 수 있으며, 대중교육에의 의지와 왕정 양식의 문화공급보다는 시민문화에 주력하겠다는 의지가 확인된다. 즉 기존의 예술공급 방식이 아니라 문화를 사회의 중심인 일상생활에 자리잡게 한다는 것이 정책목표였다. 이 당시 수상이었던 자크 샤방-델마는 1969년, 자유화, 현대화, 사회 진보의 의지가 담긴 "새 사회" 라는 기치를 드높였는데 그는 뒤아멜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작가 피에르 에마뉘엘이 관장하는 문화위원회의 작업에 근거해서 뒤아멜은 문화의 수요와 공급면에서 새로운 정책을 추구한다.
당시 문화부의 사업 목표는 예술작품에 대한 아동의 감수성을 민감하게 하는 것, 성인 대중에게 다가가기, 시청각 기술을 활용하는 것 등이었다. 뒤아멜 문화부의 사업추진 방식은 말로 시기와는 현격하게 달랐다. 첫째, 부처간, 예술 분야간의 교섭에 의해, 또한 지역공동체나 단체들과의 협의를 통한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규범적인 예술이 아닌 실험적인 예술 형식일 경우 관련 부서간의 협력으로 시행되는 방식이었다. 둘째, 계약제 방식, 끝으로 개방 방식을 들 수 있다.
계약제 방식이란 일종의"문화헌장"을 체결하는 것을 말한다. 프로그램 내용과 관련해서 텔레비전 방송과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또한 영화의 티브이TV 방영으로 인해 야기된 손실을 충당하기 위해 영화지원기금에서 연간 500만 프랑을 영화산업에 지원했다. 수익성이 미약한 프랑스-퀼튀르(France-Culture) 방송의 예산이 삭감되지 않도록 했으며, 지방으로 분산된 극단은 3년 계약 시스템이 적용되어 연차 예산의 구속에서 벗어나 체질이 강화되었다. 지방에 오페라단이 재창단 되었으며, 실험적인 시도인 경우 타부서 및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문화관여기금(FIC)"을 공동 지원했다. 10년 동안 이 기금은 2000여 건의 작업을 수행하면서 10억 프랑을 지원하게 된다.
개방 방식이란 유산 분야에 적용되었다. "1000년 동안 50개소의 대궁전을 보전하기보다는 50년 동안 1000여 개의 사적(史蹟)을 구제하겠다"는 것. 그리하여 체계적으로 대중에 개방한다는 것이 뒤아멜의 소신이었다. 조형예술 분야에서 뒤아멜은 데뷔 예술가의 첫 전시회를 지원했다. 이와 함께 대학 건물을 비롯한 모든 공공건물의 건축비 1%를 예술품 설치에 할당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한다. 박물관, 음악, 영화 분야에서도 같은 방식의 자극이 가해졌다. 제도보다는 사람을 중시하는 정책으로서 예술가, 전문인, 지식인을 방향수립에 결집시키고자 한 민주적인 성격의 정책이었다. 뒤아멜 장관 또한 선동적인 활동이나 매스미디어에 다가가기보다는 의회에서 설득과 설명으로 시간을 보냈다. 자크 뒤아멜은 지병으로 2년 남짓밖에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지만 민주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이 기간의 정책은 이후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계승된다.
그리고 다시 6명의 장관
뒤아멜의 뒤를 이어 1973년에서 1981년까지 6명의 장관이 연속적으로 발루아 가의 주인이 된다. 모뤼스 드뤼옹, 알랭 페레퓌트, 미셸 기, 프랑수아즈 지루, 미셸 도르나노, 장-필리프 르카가 바로 그들이다. 이 기간 동안 문화예산은 하원에서 정기적으로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1973년 문화부 예산은 0.55%로 높아졌으며 국립예술문화센터인 일명 퐁피두센터가 착공되면서 1974년도 예산은 문화부 창설이래 최고치인 0.61%에 달하게 된다.
말로와 뒤아멜을 계승한 이들 장관은 제각기 프랑스 문화에 새로운 기여를 하게 된다.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재임한 7년 동안에도 네 명의 문화부장관이 교체되어 새로운 시도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특히 예술애호가인 미셸 기 장관은 2년의 재임기간 중 몇 가지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즉 인구 2만 이상의 100대 도시의 사적을 분류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정책 비용을 분담하는 문화헌장을 체결하여 지역 선량들로 하여금 문화활동에 대한 책무를 지도록 했다. 1981년 21개의 헌장이 체결되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점차 증대되었다. 오페라 좌에서 공연된 <돈 조반니>의 티브이TV 중계를 허가하여 수백만 시청자들이 감상하도록 조처했으며 장-뱅상 등 여러 신인 연출가들이 지방에 자리잡도록 했다. 영화박물관을 창설하였으며 사진을 시각예술장르에 포함시켰다.
말로 장례식에서 조사를 한 바 있는 전 엑스프레스지(紙) 사장 프랑수아즈 지루 장관은 불과 7개월 동안 문화부에 머물렀다. 데스탱 임기 후반기에는 정치가들이 문화부장관직에 등용되었다. 데스탱의 오른팔로 알려진 도르나노 장관은 그의 영향력을 행사하여"문화업무지방국"을 배가시킨다. 르카 장관은 2000만 프랑의 예산을 배정하여 유산진흥정책을 펼쳤다. 그는 오르세 역 건물을 19세기 미술관으로 만드는 계획을 세운다. 이 시기 도서 분야에서 권장가격 체제가 파기되고 가격 자유화가 시행됨으로써 소규모 서적상들과 출판사가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때까지 보호되어 왔던 분야에 대해 시장 자유논리가 도입된 결과였다.
프랑스에서 6, 70년대는 국가가 문예옹호를 선도하고, 문화발전을 위해 가장 큰 몫을 부담해야 한다는 의욕에 찬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문화부 창설 시기 및 문화의 집을 구상하던 60년대에, 24세 이상의 프랑스인 3% 정도만이 미술관을 방문한 경험이 있었으며 보통 시민의 55%가 한 명의 화가 이름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 시기와는 달리 점차 문화사회적 지형이 변화한다. 국가가 주도했던 문화정책 20년에 대한 분석과 반성의 분위기도 나타난다. 80년대를 예고하는 전환의 시기가 다가왔던 것이다.
■ 별첨
* 스페인 내란의 전개
(1) 서론: 제2공화정의 창립
국내에서 프리모 드 리베라(Primo de Rivera)장군의 독재정권은 1930년까지 집권했으나 왕권을 강화시키지는 못했다. 여기에서 권력의 진공상태가 나타나고 다양한 사회세력은 제각기 권력투쟁을 벌였다. 상층부는 귀족층, 보수주의적인 카톨릭 위계질서, 군부, 지식층이고 하층부는 대단히 빈궁하고도 문맹률이 높은 농민들이었다. 스페인은 농업국이었다.
알폰소 8세가 1931년 스페인을 떠났을 때, 민주주의자들과 개혁사회 주의자들은 프랑스와 바이마르공화국을 모방한 의회의 헌법을 채택했다. 대통령의 권력은 리베라장군과 알폰소 8세에 대한 반감으로 용의주도하게 제한되었다. 그러나 반 승려주의로 1931년 수십 개의 교회가 불타고, 계속되는 농민반란으로 의회의 토지개혁과 지주계급을 위협했다. 여기에 두려움을 느낀 보수주의자들은 점차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권위주의적 해결책을 받아드리려고 했다. 1931년의 어떤 공화국정권도 이런한 문제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2) 스페인 내란의 전개
스페인은 인민전선연합이 권력을 장악한 프랑스를 제외한 유일한 유럽국가였다. 인민전선은 1936년의 선거에서 승리하여 제2공화국이 선포되고 왕은 추방되었다. 이것은 4-5월 사이의 프랑스선거에서 성황과 흡사한 인민전선의 승리였으나 공화국의 진로는 서로 대립하는 극단주의파의 주장에 휩쓸려 매우 험난하였다.
1936년 정권을 장악한 인민전선은 마누엘 아자나(Manuel Azana)를 수상으로 내세워 11만 농민이 3개월 안에 새로운 땅을 가지도록 하는 토지개혁을 실시했으나, 농민들은 지주를 위한 일체의 작업을 중단하고 스페인역사에서 가장 긴 파업인 투지강점을 시작했다. 그 해 봄 군장교들의 정권장악기도가 구체화되었다. 프랑코 장군은 영국비행기 를 빌려서 카나리 섬으로부터 탈출하여 모로코로 날아왔다. 장군들은 1936년 7월 18일 모로코를 침입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려왔고, 운송비행기들은 무솔리니로부터 빌려온 것이었다. 지부랄타 해협을 건너서 안달루시아로 외인부대를 수송했고, 드디어 내란은 시작되었다.
스페인 내란은 본래 스페인사회의 심각한 모순에서 발생한 계급투쟁이며, 1930년대 의 국제환경 속에서 "국제적 내란"으로 발전된 것이다. 국제적 환경에서 볼 때, 스페인 내전은 국제파시즘과 국제인민전선과의 대결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내란은 3년 간 지속되었고, 50만 이상의 사상자를 낸 참혹한 전쟁이었다. 어느 쪽도 결정적 승리를 확보할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 반란자들은 대부분을 스페인의 농업 지대의 중산층과 상층부와 이탈리아와 독일로부터 군대의 대부분과, 돈, 무기 그리고 병력을 의존했다. 반란군은 북서부의 포루투갈 국경근처와 안달루지아에 강한 교두보를 확보했고, 인민전선은 스페인 공군과 해군의 정예로 및, 외국으로부터 온 지원병들로 구성되었고, 소련과 멕시코로부터의 원조를 받았고, 산업지역, 수도, 동부연안의 지지를 받았다. 인민전선은 더 많은 생산물을 생산했고, 더 많은 인구의 지지에 의존했다.
내란의 첫해는 수도 마드리드에 대한 반란군의 공세가 초점이었다. 인민전선은 완강히 반란군의 공격을 막아내었으나, 영국과 프랑스의 비 개입위원회는 반란군보다는 정 부군에게 들어가는 더 많은 원조를 절단시켰다. 이 시기에 프랑스의 블룸 수상은 강압 적이지도 못했고 호전직이지 못했다. 8월 1일 그는 열강들에게 스페인에 대한 개입 을 자제해 줄 것을 제의했다. 프랑스의 이 제안은 스페인 상황이 복잡하게 될 가능성 을 최소화하자는 명백한 의도로서, 영국과의 유대관계를 확보하자는 의도를 가졌다. 애당초 스페인에 대한 불개입의 원칙을 지지한 영국은 스페인의 혼란이 확대되는 것을 피하자는 입장에서, 스페인의 지배형태가 변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프랑스의 제의에 따라 런던에서 불개입위원회를 설치했다. 반란군은 외국의 원조를 구했고, 이탈리아와 독일은 신속히 행동했다. 이탈리아로서는 스페인의 현존 정권이 파시스트 형태로 유리하게 변화한다는 것은 분명히 유쾌했을 것이고 적어 도 재빠르게 지원함으로서 프랑스에 대한 잠재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데서 장차 유리한 정권을 확립시킨다는 이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36년 12월에서 1937년 4월까지 이탈리아는 10만의 병력을 파견했고, 1936년 11월 독일은 대포와 탱크부대 를 포함한 6천명의 공군 콘도르군단을 파병했다.
스페인의 사건은 독일의 입장에서 볼 때 아주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새로운 전쟁물자를 기술적으로 실험하는 것도 중요하지 만 보다 중요한 것은 내란의 정치적 측면이다. 이탈리아의 개입이 증대함에 따라 중부 유럽에서 이탈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제한되고 또한 이탈리아를 서부 진영에 복귀시키는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이중효과가 주어졌다. 스페인에 개입하면서 이탈리아는 독일과의 사실상의 협조관계를 강화하고 이것을 공개협정으로 공식화하려 했다. 이리하여 로마-베를린 주축이 탄생되었다.
그러나 이런 원조에도 불구하고 마드리드를 함락할 수 없었다. 인민전선은 효과적 전쟁수행을 위한 조치를 취할려고 노력했으나 공산주의자들은 이 기회에 지방의 자치를 강화하고 공장을 인수하여 노동자위원회에서 그것을 관리하려했다. 이 시기에 소련만이 유일하게 인민전선에게 구체적인 군사원조를 감행했다. 소련의 스페인에 대한 원조는 스페인의 反코민테른적 좌익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러시아인들은 1936년 말 불간섭조약이 항구를 닫을 때까지, 1백대의 탱크, 50대의 비행기, 4백대의 트럭, 4백 명의 조종사, 탱크 운전병, 그리고 수많은 군사고문단을 보냈다. 러시아의 고문단들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자, 공산당의 힘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잘 장비된 반란군은 마드리드의 함락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을 공략했다. 처음으로 그들은 바스크 지역을 관통하여 비스케이 만으로 진격했고, 그곳에서는 영국자본가들이 광산과 은행업으로 프랑코와 거래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나서, 반란군은 1938년 에브로 강을 따라 지중해연안까지 공화국을 반으로 절단했다. 그 결과는 수천 명의 피난민들이 카탈로니아에서 프랑스로 도망을 쳤고, 유럽의 민주국가들은 프랑코 체제를 승인해야하는 지의 여부를 토론했다. 3월 28일 미드리드의 함락으로 내란 은 종말이 가까워 졌다.
스페인 내란은 양쪽에서 강렬한 이념을 가지고 싸웠다. 인민전선의 투쟁은 전 세계의 지식인들과 좌익의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약 4천명의 지원병이 공화국을 도우러왔다. 반군의 입장에서는, 15세기와 16세기의 통일전쟁의 재현이었다. 그러나 그 잔혹성에서는, 1937년 4월 26일 독일 콘도르군단의 바스크 시장타운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이 상징하듯이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주곡이었다. 1930년대의 세계공황과 파시즘의 등장은 유럽지식인들로 하여금 활동적인 사회주의로의 전향을 유도했다. 유럽의 대다수의 지식인과 화가들은 인민전선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앙드레 말로나 헤밍웨이 같은 작가들은 직접 국제의용군으로 전선에 참가하여 파시즘에 대항하여 싸웠다. 스페인내란은 또한 영국과 프랑스의 여론을 둘로 분열시켰다.
(3) 프랑코의 승리와 인민전선의 패배의 원인
첫째, 프랑코군에서 가장 뛰어난 경험 있는 장교를 중핵으로 구성되었으나, 인민 전선은 노동자들의 무장과 국제지원병이 주축을 이루어 군사훈련은 물론 효율적인 군사작전을 실행하기 어려웠던 점이다. 인민전선은 군사적으로 각 정당, 분파 맟 각 조합에 의해 독자적인 무장조직이 생겼고, 각각 경쟁하며 프랑코 측과 싸웠다. 이러한 분열상태를 통합하려고 시도한 것이 공산당이다. 둘째, 인민전선 측이 정치적으로 분열되어있었다는 점에 대해 프랑코 측이 통일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공화정부는 명목상으로는 인민전선의 정부였으나, 실제적인 권력은 무장된 노동대중에 의해 장악되었다. 더구나 대중을 조직하는 정당 내지 조합의 세력관계에 따라, 어떤 지역에서는 아나키스트가 강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공산당이 강한 상태였다. 게다가 카타루시아나 바스크의 지역적 분리주의가 분출되어, 스페인 공화국 내부는 사실상 분열상태에 빠졌다. 더구나 군사적 위기가 가중됨에 따라 농지개혁을 비롯한 개혁정책도 철저하게 실시되지 못했다.
전선이 인민전선 측에 불리해지자 인민전선 측의 정당(공산당, 공화파 부르주아지, 사회당 우파,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대립이 표면화되었고 내각은 효율적인 전쟁수행을 하지 못했다. 셋째, 독일, 이탈리아의 원조가 소련에 의한 원조를 질적으로 능가하고 있었고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서구 민주주의국가들의 불간섭정책은 결과적으로 반군을 도와준 셈이 되었다 점이다. 넷째, 프랑코 측은 점령지역에서의 파시즘국 가를 모방한 사회적 재편성이 중산계급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4) 결론
1939년 4월 1일 내전종결을 선언했다. 그리고 6개월 후에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프랑코의 승리는 유럽파시즘의 승리로서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서부진영의 유화정책에서 용기를 얻어 침fir전쟁을 감행한 것이다. 따라서 스페인내란은 유럽공산주의가 서구 민주주의와 서로 밀접히 상호협력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긴 대가라고 말할 수 있다. 스페인이 파시즘국가로 변질함에 따라 유럽의 세력균형은 민주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이란 3각의 세력균형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독-이 주축 동맹도 스페인내란을 양국이 원조하는 과정에서 발생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코가 히틀러의 요청을 거부하고, 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것은 무엇보다, 내전후의 피폐상태로 말미암아 참전할 국내적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내란의 희생은 실로 큰 것이었다. 총인구 2천1백만 중 약 1백만 명이 사망했다. 종료 후에도, 40만이 외국으로 망명하고, 공화국 파 1만이 처형되고, 25만이 투 옥 되었다.
■ 별첨
* 공쿠르상賞
프랑스의 공쿠르 아카데미(L"Academie Goncourt)가 해마다 프랑스에서 가장 우수한 소설 작품 하나를 뽑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 공쿠르상(Le Prix de Goncourt)이다.
공쿠르(Goncourt)는 소설가인 에드몽 드 공쿠르(Edmond de Goncourt, 1822~1896)와 쥘 드 공쿠르(Jules de Goncourt, 1830~1870) 형제를 말한다. 이들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에밀 졸라(Emile Zola), 알퐁스 도데(Alphonse Duadet), 모파상(Guy de Maupassant) 등과 함께 프랑스 사실주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사색가인 형과 문장가인 동생이 공동으로 작품활동을 하였다.동생인 쥘은 문체 쪽을 맡았고, 형인 에드몽은 작품의 창조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동생 쥘이 사망할 때까지『18세기의 예술 L"Art du 18e Siecle』『르네 모프랭 Renee Mauprin』『제르미니 라세르퇴 Germinie Lacerteux』『관념과 감각 Idees et Sensations』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인상주의적 문체(Style Impressionniste)" 라는 고유의 특징을 창조해 냈다. 당시 문학계에서 18세기 문화와 일본 미술 애호에 대한 유행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이들 형제가 그날그날 적었던『일기 Journal』는 19세기 후반의 풍속과 문단에 관한 귀중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일기 문학의 걸작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공쿠르 아카데미는 에드몽 공쿠르의 유언에 따라 가난한 예술가를 돕기 위해 1902년 세워졌고 이듬해인 1903년부터 공쿠르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현재 공쿠르상은 매년 11월 파리의 드루앙(Drouant) 레스토랑에서 공쿠르 아카데미를 대표하여 문인협회(La Societe de Gens de Lettres)에서 수상자를 발표 시상하고 있으며, 수상자에게는 상금으로 50프랑을 수여한다. 상금이 겨우 50프랑(약 7,300원)이라는 것이 의아스럽긴 한지만 상금은 단지 형식적인 전통일 뿐이며 수상자들은 공쿠르상 자체의 가치로서 충분히 만족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공쿠르상은 1903년 존 앙트완느 노(John Antoine Nau)의『Force Ennemie』를 시작으로 2000년 장자크 쉴(Jean-Jacques Schuhl)의『잉그리드 카벤 Ingrid Caven』까지 매년 1명씩 한해도 거르지 않고 수상자를 배출해 왔다. 이들 수상자 가운데는 1919년『꽃핀 처녀들의 그늘에서 A l"Ombre des Jeunes Filles in Fleurs』의 프루스트(Marel Pourst), 1932년 『인간의 조건 La Condition Humaine』의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1954년『만다린 Mandarin』의 시몬느 드 보롸르(Simone de Beauvoir), 1970년『마왕 La Roi des Aulnes』의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1984년『연인 L"Amant』의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많은 불문학의 거장들이 공쿠르상을 수상하였거나 공쿠르상 수상을 계기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특히 프루스트의 경우『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연작 가운데 첫 번째 권인『스완댁 쪽으로 Du C?te de chez Swann』를 출판할 당시만 해도 무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두 번째 권인『꽃핀 처녀들의 그늘에서』의 공쿠르상 수상을 계기로 이후에 발표된 연작들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었으며, 뒤라스의 『연인』은 영화화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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