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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생애 및 작품세계

by 丹野 2012. 1. 5.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생애 및 작품세계


■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프로필

1904년 7월 12일 칠레 남부의 파랄에서 출생.
1920년 "파블로 네루다"를 필명으로 채택.
1921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사범대학에 진학.
1924년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출간.
1927년 ~ 1931년 버마, 실론, 자바, 싱가포르 주재 칠레 영사를 지냄.
1933년 시집 "지상의 거처 1 " 출간.
1934년 스페인 주재 칠레 영사로 발령.
1935년 시집 "지상의 거처 2"를 스페인에서 간행.
1941년 ~ 1942년 멕시코 주재 칠레 영사를 지냄.
1945년 타라파카 주와 안토파가스타 주에서 상원의원에 당선.
1946년 대통령 선거에서 급진당의 후보 곤잘레스 비델라 당선.
1948년 도피와 망명생활 시작.
1950년 시집 "모든 이들의 노래"를 멕시코에서 간행.
1953년 레닌 평화상 수상.
1969년 '칠레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됨. 그 뒤 아옌데를 인민연합당의 단일 후보로 옹립하기 위해 대통령 후보 사퇴.
1970년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주프랑스 대사로 임명됨.
1971년 12월 노벨 문학상 수상.
1973년 9월 10일 아옌데 정권 붕괴.
1973년 9월23일 산티아고의 한 병원에서 69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


■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생애

그는 1904년 칠레 중부의 전형적인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다. 철도노동자인 아버지 호세 델 카르멘 레예스와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로사 바소알토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네루다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죽고 만다. 2년 뒤 가족은 남부의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테무코에 자리잡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재혼했다. 네루다는 계모를 친어머니처럼 사랑하였다. 그 뒤에 그는 그 당시를 회고하여 "조국의 개척지인 '머나먼 서부'에서 나는 삶과 대지, 시, 비속에서 태어났다" 라고 말했다.

그는 1910년 테무코 남자국민학교에 들어가 1920년 중등과정을 마쳤다. 10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일부는 나중에 학생잡지에 실렸다. 1920년부터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고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본명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이에스 바소알토Neftali Ricardo Reyes Basoalto이었다. 1946년에는 법적으로 파블로 네루다 라고 이름을 바꿨다. 12세 때 칠레의 저명한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을 만나 위대한 고전작가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은 남미 시인 중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미스트랄 역시 이탈리아 시인 가브리엘 다눈치오의 이름을 따 필명으로 삼았다. 이들은 그가 진로를 선택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전투적 무정부주의자가 되어서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한 탁월한 이론가 장 그라브의 저서를 번역했다.

1921년 테무코를 떠나 수도인 산티아고로 갔다. 그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수학하였다. 현실적인 목표는 사범대학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부보다는 시를 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방 출신의 이 로맨틱한 학생은 아버지가 쓰던 철도노동자 망토를 어깨에 두르고, 또 챙 넓은 솜브레로 모자를 쓴 차림으로 칠레 수도의 문학계를 뒤흔들어놓았다. 그 해 10월 〈제가祭歌 La cancion de la fiesta〉라는 시로 칠레 학생연맹이 주최한 백일장에서 일등상一等賞을 탔다. 이 연맹이 펴내는 잡지 〈클라리다드Claridad〉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23년 갖고 있던 가구와 아버지에게 받은 시계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처녀시집 〈황혼의 노래 Crepusculario〉를 출판했다. 이듬해에는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업자를 만나 〈스무 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on deseperada〉(1924)를 냈다. 이것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읽혔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성공을 거두었다. 그 뒤로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네루다는 그토록 고통스럽게 쓴 이 시들이 새 시대의 연인들에게 위안을 주었다는 사실에 놀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기적에 의해서, 이 고통스럽게 씌어진 책은 수많은 사람들을 행복에 이르는 길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이미 20세에 2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던 네루다는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불문학 공부를 그만두고 시에 몰두해 〈조물주의 시도 Tentativa del hombre infinito〉, 토마스 라고와 함께 쓴 〈반지 Anillos〉, 〈고무줄새총에 미친 사람 El hondero entusiasta〉을 발표했다. 네루다는 1927년 버마 랑군 주재 명예영사로 임명받았다. 그 뒤 5년 동안 아시아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다. 랑군에서 콜롬보, 실론, 바타비아(자카르타), 자바, 싱가포르로 옮겨다녔다. 자바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마리아 하게나르와 첫 결혼을 했다. 캘커타에서 열린 '범힌두인 회의'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행들을 회고하는 책들은 감동적이었다. 때로는 가슴 아픈 일화들로 가득 차 있다. 당시 그의 생활은 외로웠다. 버마 처녀 조시 블리스와의 연애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대지에 살다 Residencia en la tierra〉를 쓴 것은 남아시아에서 지낸 이 무렵이었다. 193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칠레 영사로 발령 받았다. 그곳에서 당시 그 도시를 방문중이던 스페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친구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바르셀로나로, 그 뒤에는 마드리드로 전출되어 그곳에서 델리아 델 카릴과 재혼했다.

칠레의 문단에 충격을 주었던 것처럼 유럽 문학계에도 그의 시는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빠른 속도로 알려졌다. 1934년부터 1938년까지 마드리드의 영사가 되어 R. 알베르티 등의 전위시인과 교제하였다. 스페인 시인들은 스페인의 대표적 지성인들이 서명한 〈파블로 네루다에게 바침 Homenaje a Pablo Neruda〉을 출간하여 그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시인으로서 발전을 거듭하던 이 시기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이 터짐으로써 중단되었다. 친구 가르시아 로르카의 처형과 미겔 에르난데스의 투옥을 비롯한 '거리의 유혈사태'는 이 칠레 시인의 정치적 태도를 성숙시켰다. 뒷날 "세계는 변했고 나의 시도 변했다. 시구 위에 떨어지는 피 한 방울은 그 속에서 숨쉬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 가슴속의 스페인 Espana en el corazon〉은 내전중 공화군 전선에서 출판되었다. 그는 1938년 스페인 망명객들을 이끌고 칠레로 돌아왔으나 칠레 정부는 곧 그를 멕시코로 보냈다. 이곳에서 왕성한 창작기創作期에 접어들었다. 이때 쓴 시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과 특히 독일군의 맹공격에 맞서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려는 영웅적 활약상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었다. 이 당시 멕시코의 벽화도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1943년 태평양 연안의 모든 나라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배를 타고 칠레로 돌아왔다. 1945년 상원의원으로 뽑혔고 3년 동안 조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문학에 바쳤던 것만큼이나 많은 열정을 바쳤다. 그러나 칠레에 우익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활동은 끝나게 되었다. 공산주의자인 네루다는 다른 좌익 인사들과 함께 몸을 숨겨야만 했다. 숨어살던 이 시기는 작품을 쓰기에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시기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쓴 가장 위대한 서사시 가운데 하나인 〈모든 이를 위한 노래 Canto general〉가 탄생했다. 그는 1948년 2월 칠레를 떠나 말을 타고 안데스산맥 남부를 가로질러 4월에 파리에서 열린 평화지지자회의에 참가했다. 또 1949년에는 알렉산드르 푸슈킨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했다. 그 뒤 유럽의 다른 지역을 돌아보고 다시 멕시코를 방문했다. 1952년 좌익작가와 정치인에 대한 검거령이 철회되자 칠레로 돌아왔으며 칠레 출신의 마틸데 우루티아와 세 번째로 결혼했다. 그는 계속 태평양 연안의 이슬라네그라에서 살았다. 1960년 쿠바, 1966년 미국 방문을 비롯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그의 시는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산티아고의 산크리스토발 언덕 기슭에 '라차스코나'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발파라이소에도 '라세바스티아나'라는 집을 지었다. 이 집들은 그가 여행하면서 모은 배의 선수상船首像과 그 밖의 갖가지 기념물을 진열한 심미적 분위기로 이름난 명소가 되었다.

파블로 네루다가 노벨 문학상(1971년)을 받은 지 불과 2년 뒤의 일이었다.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1973년 9월 11일 이른 아침, 파블로 네루다의 주치의는 시인의 부인 마띨데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시인의 병이 악화되면 안되니 쿠데타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네루다는 이미 라디오를 귀에 끼고 사태의 추이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사태의 추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네루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아옌데 대통령이 끝까지 대통령궁大統領宮을 사구死守하다 결국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는 낙담하여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고 말았다. 며칠 후 침대에 누운 채 쿠데타를 비판하는 글을 구술하던 중 창 너머로 무장한 군인들이 자신의 바닷가 집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병사들이 가택을 수색하기 위해 오는 것이었다. 부인이 받아 적던 것을 급히 감추자마자 장교 하나가 침실로 들어와 집안 수색하겠다고 통고했다. 네루다는 불쑥 장교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들에게 위험한 것이라고는 이 방에 단 하나밖에 없네." 장교는 깜짝 놀라며 권총에 손을 댔다. "그게 뭡니까?" 네루다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시(詩)라네." 실제로 그 마지막 순간은 1973년 9월에 왔다.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농민의 낙원을 꿈꾸었다. 그런 낙원을 일구기 위해 노력한 시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시의 품격을 잃지 않았던 위대한 시인은 칠흑 같은 암흑의 세계에 갇혀버렸다. 그러나 그의 시는 그 어둠을 밝히는 불꽃이 되었다. 피노체트의 철권 통치 아래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장례식에 하나둘 모여들어 수많은 군중을 이루었다. 그의 장례식은 쿠데타 이후 최초의 군중 집회가 되었다. 누군가 앞장서 <인터내셔널>가歌를 불렀다. 처음의 작은 합창은 커다란 메아리가 되어서 울려 퍼졌다. 지금도 그가 말년에 머물던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의 바닷가 집에 추모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낭송하고,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것을 맹세하곤 한다. 그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시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끊임없이 타올랐다. 칠레 국민들은 결국 군부 독재를 마감시킬 수 있었다. 피노체트는 권력의 정상에서 내려갔다. 그러나 그들 피노체트 일당에게 숨져간 살바도르 아옌데와 빅토르 하라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는 지금까지 칠레 국민들을 포함해서 전 세계 사람들의 추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작품세계

현대 중남미 시단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시인으로는 페루의 세사르 바예호와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를 꼽을 수 있다. 거의 동시대인이었던 이들 중 바예호는 세인의 몰이해 속에서 세상을 일찍 뜬 반면에 69세가 되어 세상을 뜬 네루다는 시인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생전에 누렸다. 네루다는 사랑의 시인, 민중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의 수많은 시중에서 로맨틱한 요소가 강한 초기 시집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듯이 시인의 시도 세월과 함께 변모를 겪는다. 20세에 펴낸 그의 시집 '스무 개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서 청년 네루다는 거대한 우주 앞에 선 고독한 인간의 사랑, 육체적 탐닉에 이어지는 공허, 이별, 그 아픔을 '사랑은 그리도 짧건만 망각은 너무도 깁니다' 라고 노래한다. 가난을 타개하기 위해 랑군, 콜롬보, 자바, 싱카포르에서 영사로 일했던 시인은 '끝없는 길을 한없이 지나왔다/ 어딘지 어디까지인지도 모르는 채' 라고 노래하며 '밤은 정말 왜 그리 거대하고 세상은 왜 그리 외로운 걸까'라고 절규한다.

20대 시인의 세상은 고독, 절망, 폭력으로 얼룩진 혼돈의 세계이다. 이 혼돈은 그의 시를 어두움, 밤, 무질서한 꿈으로 꽉 채운다. 네루다는 바로 이 어둠 속에서 환한 불을 밝히는 예언자적 존재가 시인이며 대지는 고독한 인간이 돌아갈 어머니임을 확인한다. 그의 시는 난해해진다. 초현실주의적 기법으로 주로 아시아에서 쓴 시를 모은 것이 바로 '지상의 거처'이다. 그러나, 30대에 마드리드 근무 때 목도한 스페인 내란은 시인의 삶을 완전히 바꾼다. 친구 가르시아 로르까의 죽음, 또 다른 문우들의 망명은 그에게 박해받는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때부터 그의 시는 자신만의 침잠에 어울리는 언어세계를 탈피해 민중을 향해 소박한 옷을 입는다. 그 변화는 '지상의 거처 3'부터 서서히 나타난다. 그러나, 40대의 네루다는 먼 이웃보다 가까운 이웃을 돌아보면서 사람들에게 '모두의 노래'를 들려준다. 자신의 뿌리인 아메리카 재발견을 보여주는 이 시집은 하나의 거대한 아메리카 노래이다. 잉카의 유적지 '마추피추 정상에서' 시인은 "빈 그물 같은 허공에서 허공으로/ 나는 거리를 대기를 거닌다"라고 노래한다. 거대한 돌의 유산 앞에서 시인은 '돌 그리고 돌,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 대기 그리고 대기,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 세월 그리고 세월,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라며 그 곳을 건설한 인디오의 혼을 부른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을 유린한 정복자들의 만행을 규탄하며 아메리카 태생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예찬한다. 그의 시 세계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독특한 이미지를 사용했다. 이 시들은 광산 노동자들과의 정치 모임에서 격론을 벌리는 틈틈이 서재를 오가며 썼다.

본질적으로 네루다의 시는 인간이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끊임없는 변화를 대변한다. 젊은 시절에는 서정적이고 관능적인 작품인 〈황혼의 노래〉와 〈스무 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를 썼다. 뒤이어 좀더 영적인 작품 〈조물주의 시도〉, 〈고무줄새총에 미친 사람〉을 쓰게 되었다. 외부세계와 이러한 세계가 주는 창조적 자극에서 내적 자아의 영역으로 침잠하게 되면서 독보적이고 신비로운 작품 〈대지에 살다〉가 탄생되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시형식에서 벗어나 개성적인 시적 기법을 창조해냈다. 그가 스페인 내전 기간에 쓴 시들은 더 사실성이 강하고 외부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더 많이 깨닫게 되었음을 나타내준다. 이러한 현실지향적이며 고발조의 시에 이어 장엄한 서사시 〈모든 이를 위한 노래〉가 나왔다. 그러나 이 웅장한 문체는 곧 사라지고 좀더 단순한 주제를 다룬 사회비평시가 등장하게 된다. 그의 주제와 기교의 다양함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했다. 〈100편의 사랑 노래 Cien sonetos de amor〉에서는 사랑이 주제로 다루어졌다. 〈이슬라 네그라의 회고록 Memorial de Isla Negra〉은 향수 어린 자서전이다. 네루다는 "나는 장대한 연작시를 계속해서 써나갈 계획이다. 왜냐하면 이 시는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의 말로써만 끝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고백했다.

네루다는 사랑의 시인, 민중의 시인, 그리고 자연의 시인이다. 비평가들은 그의 시세계를 둘이나 셋으로 혹은 다섯으로 나누며 불연속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훌륭한 시들이 그렇듯이 그의 시는 무엇보다도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언어의 대지 위에 아주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낸 것이다.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1924)의 첫 번 째 사랑의 시이다. ‘여자의 육체 - 대지’ 라는 다소 전통적인 도식이다. 그러나 3천 5백 쪽에 달하는 그의 시 전집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여자는 관념적이 아니라 감각적이고 시인은 '봄이 벗나무와 하는 행위'에 목말라한다. 그러나 짧은 사랑은 절망과 고통스런 망각이 된다. 시인은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고 선언하며 절망의 노래를 끝맺는다. 그러나 이 시집이 실연의 상처를 노래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고통은 수동적이면서 능동적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대지로 이어지고 대지는 시라는 생명을 잉태한다. '잘록한 허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된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바짝 마른' 그의 조국의 바다, 바람, 비, 나무는 생명과 죽음 사이를 배회하며 빛나는 언어로 재생산된다. 이때 가끔씩 삶에 대한 염증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대지의 생명력은 스페인 내란(1936-39년)이라는 계기를 통해 인간에 대한 애정을 회복시킨다. 내란 중에 반파시스트 진영에서 열정적으로 활동을 하던 그는 내란이 끝나자 아메리카 대륙의 민중에게로 눈을 돌린다. 그 시적 승화가 『총가요집』 이며 특히 『마추피추의 산정』 연작시들은 대지 위에서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절규하고 있다. 민중에 대한 희망, 열정, 사랑은 계속 된다. 다만 거대한 자연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사물을 통해 여과될 뿐이다. 즉 그는 몸을 낮추고 민중의 언어와 삶 속으로 들어간다. 고양된 감정은 양말, 수박, 소금, 질산염, 밤, 책, 새, 나뭇잎, 양파, 과일, 엉겅퀴 속으로 투영되어 차분해지지만 의식은 여전히 투철해진다. 그리고 삶을 돌아보면서 죽음의 징조와 함께 사랑도 다시 시속에 나타난다.




■ 주요작품



* 시詩 /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것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것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 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虛空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렸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 시인 / 파블르 네루다


옛날에 나는 비극적인 사랑에 붙잡혀
인생을 살았고, 어린 잎 모양의 석영石英조각을
소중히 보살폈으며
눈으로 삶을 고정시켰다.
너그러움을 사러 나갔고, 탐욕의 시장을
걸어다녔다. 아주 은밀한 시샘의 냄새를
맡으며, 가면들과 사람들의
비인간적인 적대감을 들이마시며,
나는 저 습지의 세계를 살았다.
그 돌연한 꽃, 흰 나리가
그 떨리는 거품 속에 나를 삼키고
발을 옮길 때마다 내 영혼이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빠져드는 곳,
내 시는 이렇게 태어났다 어려움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형벌처럼
고독에서 벗어나면서,
또는 놋쇠빛 정원에서 그건 어떻게
그 참으로 신비한 꽃을 흩었던가, 마치 그걸 묻듯이,
이렇게 깊은 수로에서 사는
검은 물처럼 갇혀서
나는 뛰었다. 모든 존재의 고독을,
나날의 증오를 탐색하며,
나는 그들의 반인간半人間의 삶을 물고기처럼
아주 낯선 바다에 잠금으로써
변성했음을 안다. 그리고 광대한 바다의
거대함 속에서 나는 죽음을 만났다.
문들과 길들을 여는 죽음.
벽 위로 미끄러지는 죽음.




*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 파블로 네루다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가장 슬픈 구절을.

이렇게 쓴다. "밤은 산산이 부서지고
푸른 별들은 멀리서 떨고 있다"

밤바람은 공중에서 선회하며 노래한다.

오늘밤 나는 가장 슬픈 구절을 쓸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때때로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이런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
끝없는 하늘 아래서 나는 여러 번 그녀와 키스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때때로 나도 그녀를 사랑했다.
누가 그녀의 그 크고 조용한 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밤 나는 가장 슬픈 구절을 쓸 수 있다.
나한테 그녀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에 잠겨서.

광대한 밤을 듣거니, 그녀 없어 더욱 광막하구나.
그리고 시가 영혼에 떨어진다 목장에 내리는 이슬처럼.

내 사랑이 그녀를 붙들어 놓지 못한 것이 뭐 어떠랴.
밤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녀는 내 옆에 없다.

그것이 전부다. 멀리서 누가 노래하고 있다. 멀리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은 것이 마땅하지 않다.

내 눈길은 마치 그녀한테 가려는 듯이 그녀를 찾는다.
내 가슴은 그녀를 찾고, 그녀는 내 곁에 없다.

같은 밤이 같은 나무를 희게 물들인다.
그때를 지나온 우리는 이제 똑같지가 않다.

나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것이 그렇지, 그러나 나는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가서 닿을 바람을 찾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사랑. 그녀는 다른 사람의 사랑이 되겠지. 지난날의 키스처럼.
그 목소리. 그 빛나는 몸. 그 영원한 두 눈.

나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것이 그렇지, 그러나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지도 몰라.
사랑은 그다지도 짧고, 잊음은 그렇게 길다.

이런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았으므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어버린 것이 마땅하지 않다.

비록 이것이 그녀가 나한테 주는 마지막 고통일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그녀를 위해 쓰는 마지막 시일지라도.





* 그 이유를 말해주지 / 파블로 네루다


당신들은 물을 것이다 라일락은 어디에 있느냐고
양귀비꽃으로 치장한 형이상학과
구멍과 새들로
가득 찬 언어는
끊임없이 두들겨 패는 비는 어디에 있느냐고
당신들에게 말해주지 내가 겪었던 모든 것을

나는 살고 있었다 마드리드
교외에서 종소리와 함께 시계와 함께 나무들과 함께
거기에서 나는 볼 수 있었다
가죽의 바다와도 같은
카스티야의 건조한 얼굴을

나의 집은 불리고 있었다 꽃집이라고
집 전체가 제라늄으로 만발해 있었는데 그것은
많은 개들과 아이들이 법석을 떠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라울이여 자네는 기억하고 있겠지
라파엘도 그렇고 페데리코여 자네도 생각나겠지
땅 속에 누워 발코니가 있는 내 집을 생각하고 있겠지
그곳에서 6월의 빛이 자네 입 속의 꽃들을 질식시켰다네

형제여 형제여

모든 것들이
저마다 커다랗게 외쳐대고 있었다 사고 팔리는 소금이 있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빵이 노적처럼 쌓여 있고
내가 사는 아르구에예스의 교회 시장에는
두릅나무 사이의 창백한 잉크병과도 같은 입상이 있었다
그리고 숟가락에서 기름이 흐르고
거리는 활기가 넘치는 손과 발의 깊은 율동이 있었다
또한 거기에 자질구레한 생활의 척도
미터와 리터가 있고
겹겹으로 쌓아올린 생선들이 있고
지붕의 구조 위에 차가운 태양에 지쳐빠진 첨탑이 있고
상아와 같이 하얗게 타오르는 감자와
토마토가 바다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 모든 것들에 불이 붙었다
어느 날 아침 화톳불처럼 시뻘건 불이
땅 속으로부터 솟구쳐 올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때부터 전화가 타올랐고
그리고 그때부터 화약이 작열했고
그리고 그때부터 피가 흘렀다

그리고 그때부터 비행기에
무어인人들을 태운 악당들은
반지를 낀 공작부인들을 태운 악당들은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검은 성직자들을 태운 악당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아이들을 살해했다
그리고 거리는 온통 어린 아이들의 피로 넘쳐흘렀다
아이들의 피처럼 천진난만하게
오 승냥이도 경멸해 마지않을 이 승냥이들아
목이 타는 엉겅퀴까지 물어뜯으며 침을 뱉을 돌멩이들아
살무사까지 혐오해 마지않을 이 살무사들아
나는 보았다 네놈들 앞에서
스페인의 피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긍지와 단도의 파도 속에서
네놈들을 질식시키기 위해

장군들
매국노들아
보라 살해당한 나의 집을
보라 파괴된 스페인을
그러나 살해된 모든 집에서
꽃잎 대신에
뜨겁게 달구어진 금속덩어리가 나와서
스페인의 모든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스페인이 나와서
살해된 아이들 하나하나에서 눈이 달린 총이 나와서
네놈들이 저질러놓은 범죄 하나하나에서탄환이 나와서
언젠가 명중시킬 것이다
네놈들의 심장을

그래도 당신들은 물을 것인가 왜 나의 시는
꿈에 관해서 나뭇잎에 관해서 노래하지 않느냐고
내 조국의 위대한 화산에 관해서 노래하지 않느냐고

와서 보라 거리의 피를
와서 보라
거리에 흐르는 피를
와서 보라 피를
거리에 흐르는




*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 파블로 네루다


하루가 지나면 우리는 만날 것이다.
그러나 하루 동안 사물들은 자라고,
거리에서 포도가 팔리며,
토마토 껍질이 변한다.
또 네가 좋아하던 소녀는
다시는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갑자기 우체부를 바꿔버렸다.
이제 편지는 예전의 그 편지가 아니다.
몇 개의 황금빛 잎사귀, 다른 나무다.
이 나무는 이제 넉넉한 나무다.
옛 껍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대지가
그토록 변한다고 누가 우리에게 말해주랴
대지는 어제보다 더 많은 화산을 가졌고.
하늘은 새로운 구름들을 가지고 있다.
또 강물은 어제와 다르게 흐른다.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세워지는가
나는 도로와 건물들,
배나 바이올린처럼
맑고 긴 교량의
낙성식에 수없이 참석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인사를 하고
화사한 네 입에 입맞출 때
우리의 입맞춤은 또 다른 입맞춤이요
우리의 입은 또 다른 입이다.

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어제를 위해 그리고 오늘을 위해 건배,
그저께를 위해 그리고 내일을 위해 건배,

빵과 돌을 위해 건배,
불꽃과 비를 위해 건배.




* 언어와 술꾼들의 우화 / 파블로 네루다


그녀가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들어왔을 때
이 고귀한 분들께서 모두 안에 있었다
그들은 술을 퍼마시다가 그녀에게 침을 뱉기 시작했다
이제 막 강에서 올라온 그녀는 도대체 영문을 몰랐다
그녀는 길 잃은 언어였다
그녀의 매끄러운 살결 위로 욕설이 흘렀다
음란한 짓거리가 그녀의 황금빛 젖가슴을 뒤덮었다
그녀는 울 줄 몰라 울지 않았다
그녀는 옷을 입을 줄 몰라 입지 않았다
그들은 담뱃불과 불에 탄 코르크 마개로 그녀를 지져댔다
그리고는 낄낄거리며 술집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녀는 말할 줄 몰랐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두 눈은 아득한 사랑의 빛깔이었다
그녀의 두 팔은 한 쌍의 황옥黃玉으로 빚어졌고
그녀의 입술은 산호 빛으로 반짝였다
그녀는 갑자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강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깨끗해져
빗속의 하얀 돌처럼 빛났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헤엄쳤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을 향해 죽음을 향해 헤엄쳐 갔다.




* 한 여자의 육체 / 파블로 네루다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
네가 내맡길 때, 너는 세계처럼 벌렁 눕는다.
야만인이며 시골사람인 내 몸은 너를 파들어 가고
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다.
그리고 밤은 그 막강한 군단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버리고
내 활의 화살처럼, 내 투석기의 돌처럼 벼렸다.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피부의 육체, 이끼의 단호한 육체와 갈증나는 밀크
그리고 네 젖가슴 잔盞들, 또 방심放心으로 가득 찬 네 눈
그리고 네 둔덕의 장미들, 또 느리고 슬픈 네 목소리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경이로움을 통해 살아가리.
내 갈증, 끝없는 내 욕망, 내 동요하는 길
영원한 갈증이 흐르는 검은 강바닥이 흘러내리고,
피로가 흐르며, 그리고 끝없는 슬픔이 흐른다.




* 망각은 없다 / 파블로 네루다


나더러 어디 있었냐고 묻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서......" 라고 말할밖에 없다.
돌들로 어두워진 땅이라든가
살아 흐르느라고 스스로를 망가뜨린 강에 대해 말할 수밖에,
나는 다만 새들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알고,
우리 뒤에 멀리 있는 바다에 대해, 또는 울고 있는 내 누이에 대해서 알고 있다.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서로 다른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융합하는 것일까 어찌하여 검은 밤이
입 속에 모이는 것일까, 어째서 이 모든 사람들은 죽었나

나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나는 망가진 것을 얘기부터 할 밖에 없다.
참 쓰라림도 많은 부엌 세간,
흔히 썩어 버린 동물들,
그리고 내 무거운 영혼 얘기부터.

만나고 엇갈린 것이 기억이 아니다,
망각 속에 잠든 노란 비둘기도
그러나 그것은 눈물 젖은 얼굴들,
목에 댄 손가락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그런 것
어떤 날의 어두움은 이미 지나가고,
우리들 자신의 음울한 피로 살찐 어떤 날의 어두움도 지나가고.

보라 제비꽃들, 제비들,
우리가 그다지도 사랑하고
시간과 달가움이 어슬렁거리는
마음 쓴 연하장에서 긴 꼬리를 볼 수 있었던 것들.

허나 이빨보다 더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침묵을 싸고 자라는 껍질을 잠식하지도 말자,
왜냐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죽은 사람이 참 많고
붉은 태양이 흔히 갈라놓는 바다 제방이 참 많고,
배들이 치는 머리들이 참 많으며,
키스하며 몸을 감는 손들이 참 많고,
내가 잊고 싶은 것이 참 많으니까.




* 광활한 소나무 숲 / 파블르 네루다


아 소나무 숲의 광막함, 부서져 내리는 파도의 소문,
빛의 느릿한 장난, 고독한 종소리,
네 눈 속으로 가라앉는 황혼, 인형이여,
대지의 소라고동이여, 네 안에서 대지는 노래하나니

네 안에서 강물이 노래하면 내 영혼은 그 속으로 도망쳐 들어간다
그러길 네가 바랄 게고 그 곳은 네가 좋아할 곳이기에.
네 희망의 활에 재어진 나의 행로를 가르쳐 다오
그러면 미친 듯이 나의 화살을 무더기로 쏘아 보내리니.

나를 맴도는 네 안개 허리를 보고 있으면
너의 침묵은 쫓기는 듯한 나의 시간을 힘들게 한다,
너는 투명한 돌멩이 같은 품을 간직한 존재
그 곳에 나의 입맞춤이 닻을 내리고 음습한 고뇌가 깃들인다.

아 사랑이 물들여 곱게 접어놓은 너의 신비한 목소리는
해거름이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며 죽어가고 있구나
마음 깊은 곳의 시간 속에서 나는 보았다다오
바람의 입 속에서 꺾이고 마는 들판의 이삭을.




* 마추피추 산정 3 / 파블로 네루다


실패한 행동들의 곡창, 일어난 하잘것없는 일들의 끝없는 곡창에 있는 옥수수처럼 인간의 영혼이 탈곡되었다,
참을성의 그 끝까지, 그리고 거기를 넘어서,
그리고 하나의 죽음이 아니라 수많은 죽음이 각자한테 왔다
매일같이 아주 작은 죽음이, 먼지가, 벌레가,
도시의 끝에 있는 진창에서 튀겨 날리는 빛이, 조악한 날개를 단 작은 죽음이
짧은 창처럼 각자를 꿰뚫었고
사람은 빵이나 칼에 포위되고
소장사한테 포위되었다 항구의 아이, 경작지의 검은 우두머리,
또는 혼란스런 거리의 넝마꾼한테

모두들 낙담했고, 불안하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매일의 짧은 죽음을
그리고 매일 가혹한 불운은
그들이 손을 떨며 마시는 검은 잔 같았다.





* 내 양말을 기리는 노래 / 파블로 네루다


마루 모리가 나한테 가져왔다
양말
한 켤레,
그것은 그녀의 양치는
손으로 짠 것,
토끼처럼
부드러운 양말 한 켤레.
나는 두 발을
그 속에 넣는다
마치
황혼과
염소가죽으로 짠
두 개의 상자 속으로
밀어 넣듯이.
내 두 발은
양털로 만들어진
두 마리 고기,
금색 실 한 가닥이
들어가 있는
남청빛
두 마리 기다란 상어,
두 마리 근사한 검은 새,
두 개의 대포
내 두 발은

거룩한
양말들로 하여
이렇게
명예스러워졌느니.
처음에
그것들은
너무 훌륭해서
내 발은 도무지
두 늙어빠진 소방수처럼
거기에 걸맞지 않게
보였다, 그
짜여진 불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소방수,
그 불타는
양말에 어울리지 않는.

그러나
마치 학생들이
부나비를
보관하고,
학자들이
신성한 책들을
모으듯이,
그것들을 어디 넣어두고 싶은
강한 유혹을
나는 물리쳤다
그것들을
금으로 된
새장에 넣고
매일 모이와
분홍색 참외 조각을
주고 싶은
엄청난 충동을
물리쳤다.
아주 희귀한
녹색 사슴을
쇠꼬챙이에 꿰어 구워서
가책을 느끼며
먹는
정글의 탐험가들처럼,
나는 두 발을
뻗어
그 멋진
양말을 신고
그리고 구두를 신었다.

내 송시頌詩의 덕목은 이렇다 :
아름다운 것은 갑절로
아름답고
좋은 것은 두 배로
좋다, 그것이
겨울에
양털로 만든
한 켤레 양말의 일일 때에




* 산보 / 파블로 네루다


내가 사람이라는 것이 싫을 때가 있다.
나는 양복점에 들어가 보고 영화관에 들어가 본다.
벨트로 만든 백조처럼 바싹 말라붙고, 방수防水가 되어,
자궁들과 재의 물 속으로 나아간다.

이발관 냄새는 나로 하여금 문득 쉰 소리로 흐느껴 울게 한다.
내가 오직 바라는 것은 돌이나 양모羊毛처럼 가만히 놓여 있는 것.
내가 오직 바라는 것은 더 이상 상점들을 보지 않고, 정원들,
상품, 광경들, 엘리베이터들을 보지 않는 것.

내 발이 싫어지고 내 손톱과
내 머리카락 그리고 내 그림자가 싫을 때가 있다.
내가 사람이라는 것이 도무지 싫을 때가 있다.

그러나 멋진 일일 것이다
한 송이 자른 백합으로 법원 직원을 놀라게 하고
따귀를 갈겨 수녀를 죽이는 것 말이야.
참 근사할 것이다
푸른 칼을 들고 거리를 헤매며
내가 얼어죽을 때까지 소리 지르는 것 말이야.

나는 줄곧 암흑 속에서 뿌리로 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불안정하고, 길게 뻗어 있으며, 잠으로 몸서리치고,
땅의 축축한 내장 속으로, 계속 내려가,
흡수하고 생각하며, 매일 먹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너무 심한 비참함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계속 뿌리나 무덤이기를 원치 않는다.
시체들의 창고인 땅 밑에서 혼자
거의 얼어서, 슬픔으로 죽어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것이 바로 월요일, 내가 가책 받은 얼굴로
오고 있는 걸 볼 때, 가솔린처럼 불타고,
상처 입은 바퀴처럼 진행하면서 울부짖고,
밤을 향해 가며 따뜻한 피로 가득 찬 자국을 남기는 이유.

그리고 그것은 나를 어떤 구석으로 몰아넣고, 어떤 축축한 집으로,
뼈들이 창 밖으로 날아 나오는 병원들로,
식초냄새 나는 구둣방으로 몰아넣고,
피부가 갈라진 것처럼 끔찍한 어떤 거리로 몰아넣는다.

유황색 새들, 내가 증오하는 집들 문 위에 걸려 있는
끔찍한 내장들
커피포트 속에 잊혀진 틀니,
수치와 공포 때문에 울었을
거울들,
사방에 우산들, 독액毒液, 그리고 탯줄.

나는 조용히 거닌다. 두 눈을 가리고, 구두와
분노를 지니고, 모든 걸 잊어버리며,
나는 걷는다. 사무실 건물들과 정형외과 의료기구상들 사이로,
그리고 줄에 빨래가 널려 있는 안뜰들 -
속옷, 수건, 셔츠들에서 더러운 눈물이 떨어지고 있는 거길 지나서.




* 불빛 없는 동네 / 파블로 네루다


시가 사물들로부터 떠나는 것일까
아니면 내 삶이 시를 응축할 수 없는 것일까
어제 스러져 가는 황혼을 바라보며
나는 폐허 틈바구니의 이끼 얼룩덩이였다.

도시들 무수한 매연과 복수
변두리 지역의 회색빛 오물,
등을 휘게 만드는 사무실,
의심쩍은 눈빛의 사장,

언덕 위의 핏빛 저녁놀,
거리와 광장들 위에 뿌려진 피,
찢긴 가슴의 고통,
권태와 눈물의 고름.

어둠 속을 더듬는 싸늘한 손처럼
강은 도시 변두리를 감싸 안는다.
별들은 강물 위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한다.

번쩍이는 창문들 뒤로
욕망을 감추는 집들,
그 사이 밖에서는 바람이
장미꽃 송이송이마다 조금씩 흙을 실어 나른다.

저 멀리, 망각의 안개
자욱한 수증기, 무너진 제방,
그리고 들판, 땀에 흠뻑 젖은 사람들과 소들이
숨을 헐떡이는 초록빛 들판!

나 여기에 있다, 폐허 틈으로 싹을 내밀며.
통곡은 씨앗이고
나는 대지의 유일한 이랑인 양,
홀로 세상의 온갖 비애를 씹으며.




* 나의 당에게 / 파블로 네루다


그대 덕분에 나는
낯선 사람들과 형제가 되었다

그대 덕분에 나는
살아 뻗어 가는 모든 세력에 가담했다

그대 덕분에 나는
다시 태어나 조국을 되찾았다

그대는 나에게 주었다
외로운 사람들이 알지 못한 자유를

그대는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친절이 불처럼 타오르는 것을

그대는 똑바로 서게 해주었다
똑바로 뻗어 가는 나무처럼

그대 덕분에 나는 배웠다
사람들 사이의 일치점과 상이점을 분별하는 기술을

그대 덕분에 나는 알았다 한 사람의 고통이
어떻게 하여 만인의 승리 속에서 사라지는가를

그대 덕분에 나는 배웠다
형제들의 딱딱한 침대에서 자는 기술을

그대는 현실 위에 나를 붙박아주었다
꿋꿋하게 바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그대 덕분에 나는 악당들의 적이 되고
분노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벽이 되었다

그대는 내가 보도록 해주었다
빛으로 가득 찬 밝은 세계와 커져 가는 기쁨을

그대는 내가 사멸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왜냐하면 그대 속에서 나는 이미
나 혼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 절망의 노래 / 파브로 네루다


너의 추억은 내가 자리하고 있는 밤에서 솟아오른다.
강물은 그 끝없는 탄식을 바다에 묶고 있다.

동틀 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내 심장 위로 차가운 꽃비가 내린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 조난자들의 흉포한 동굴.

네 위로 전쟁과 날개가 쌓여 갔다.
노래하는 새들은 네게서 날개를 거두었다.

마치 머나먼 무엇처럼 너는 그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바다처럼, 시간처럼, 네 안에서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침략과 입맞춤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등대처럼 타오르던 혼수 상태의 시간.

항해사의 조바심, 눈 먼 잠수부의 분노,
사랑의 혼미한 도취, 네 안에서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희미한 안개의 유년 속에 날개 달고 상처 입은 나의 영혼.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너는 고통에 동여 매인 채, 욕망에 붙들려 있었지.
슬픔은 너를 쓰러뜨렸다, 네 안에서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나는 그림자 드리운 성벽을 뒤로하고,
욕망과 행위의 피안을 걸었다.

오 살이여, 나의 살결이여, 내가 사랑했고 나를 버린 여인이여,
이 음습한 시간 속에서 나는 너를 추억하며 노래한다.

하나의 술잔처럼 너는 한없는 애정으로 머물렀고,
또 어떤 술잔처럼 끝없는 망각이 너를 산산이 부숴 버렸다.

그것은 검은 빛, 섬들의 검은 고독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사랑하는 여인아, 네 품이 나를 반겼다.

그것은 갈증이었고 허기짐이었다, 그리고 넌 과일이었다.
그것은 비탄이었고 폐허였다, 그리고 넌 기적이었다.

아 여인아, 네 영혼의 대지 안에, 네 품의 십자가 속에
어떻게 네가 나를 품을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너를 향한 나의 욕망은 참으로 어마어마하면서 그토록 짧은 것,
가장 엉망진창 취해 있는 것, 그토록 위험하고 목마른 것이었다.

입맞춤의 묘지여, 아직 너의 무덤들에 불이 남아 있어,
새들의 부리에 쪼인 포도송이들이 이적치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오 깨물린 입, 오 입맞추며 엉켜 있는 팔다리,
오 허기진 이빨들, 오 비비 꼬여 있는 육체들.

우리가 맺어졌고, 우리 함께 절망한
희망과 발버둥의 미친 듯한 교접.

그리고 물과 밀가루 같은 사소한 애정.
그리고 입술에서 방금 떨어져 나온 그 단어.

그것이 나의 운명이었고 그 안에서 나의 갈망이 항해하였으며,
그 속으로 나의 갈망은 가라앉았다. 네 안에서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네 위로 모든 것이 추락하고 있었다.
네가 말로 다하지 못했던 고통이며, 너를 질식시키는 데 실패한 파도들이.

뱃머리에 선 뱃사람의 다리처럼 이리로 저리로
너는 불꽃을 일으키는가 하면 노래도 하였다.

노래 속에서 너는 꽃도 피워 내고, 시냇물에서 부서지기도 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활짝 열린 고통스러운 깊은 연못이여.

눈 먼 창백한 잠수부, 기가 꺾인 전사戰士,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다, 밤의 일정표가 꽉 찬
단단하고 냉랭한 시간이다.

바다의 소란스러운 허리띠는 해변을 휘어 감고 있다.
차가운 별들이 나타나고, 검은 새들이 날아간다.

동틀 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떨리는 그림자가 내 손아귀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아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 참고 도서


* 네루다 서정시집 : P. 네루다, 임중빈 편역, 한일문고, 1971
* 마추피추의 산정/ 파블로 네루다/ 민용태 옮김/ 열음사/ 1985
* 칠레의 모든 기록/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지음/ 조구호 옮김/ 크레파스/ 1989
*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추원훈 옮김/ 청하/ 1992
*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옮김/ 민음사/ 1994
* 라틴 아메리카를 찾아서/ 곽재성, 우석균 지음/ 민음사/ 2000년
* 노동하는 기타, 천 일의 노래/ 배윤경 지음/ 이후/ 2000
*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 서성철, 김창민 편/ 까치/ 2001





■ 별첨


* 파블로 네루다 - 사랑과 혁명의 시인
--- 이종민


I. 들어가며

이제 라틴아메리카는 더 이상 문학적 변두리가 아니다. 현대 문학을 논함에 있어서 중남미를 제외시켜서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소설에 있어서 중남미 현대 소설은 독특한 하나의 경지를 이루고 있으며, 시에 있어서도 그것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라틴아메리카 붐소설(1)은 대략 1950년대에 시작되어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 절정기를 구가한 소설군을 일컫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가져왔다. 간텍스트성(intertextualidad), 메타 픽션 등 포스트모더니즘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얘기되는 것은 Argentina의 Jorge Luis Borges(1899~1986)이며, 현대 작가 중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Colombia의 소설가 Gabriel Garci'a Ma'rquez(1928)의 Cien an~os de soledad은 1982년 노벨 문학상을 탄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되어 이미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실존주의 작가로서 Ernesto Sabato(1911)의 명성은 Argentina, 또는 라틴아메리카에 그쳐있지 않으며, 1968년 노벨상 수상자인 Guatemala의 Miguel A'ngel Asturias(1899~1974),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명되는 Me'xico의 Carlos Fuentes(1928), 그리고 Peru'의 Mario Vargas Llosa 등도 또한 그렇다. 중남미 현대 소설의 위대성을 논하자면 한이 없겠지만, 본고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므로 이쯤에서 접어두기로 하자.

그 출발에 있어서 조금 늦은 중남미 문학에 있어서 하나의 문학 사조가 중남미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영향을 준 것은 Rube'n Dari'o(1867~1916)의 경우가 처음이었다. 그 이후에 보여준 중남미 문학의 발전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중남미에서 배출된 세계적 시인으론 Peru'의 Ce'sar Vallejo(1893-1948), 창조주의를 주창한 Chile의 Vicente Huidobro(1893-1948), Cuba의 Nicola's Guille'n(1902), Chile의 Nicanor Parra(1914), Me'xico의 Octavio Paz(1914) 등과 앞서 언급한 Borges, 그리고 본 논문에서 다루게 될 Chile의 Pablo Neruda 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인간과 사랑, 그리고 민중을 노래하며 전 세계에 깊은 감동을 안겨다준 Pablo Neruda에 대해 연구해 보도록 하자.

그의 시세계를 논하기 전에 그의 문학 세계를 이루게 해준 그의 삶을 먼저 더듬어보자.


II. Pablo Neruda의 삶

Neruda는 1904년 Chile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인 Paral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Neftali' Ricardo Reyes Basoalto인데 아버지가 그가 시를 쓰는 것을 싫어하였으므로 Pablo Neruda란 이름으로 글을 발표, 그의 필명이 더 유명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철도 노동자였으며, 어머니는 초등학교 선생이었는데 그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못되어 세상을 뜬다. 1906년에 최남단인 Temuco로 이사를 가서, 불어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교육연구원이 있는 Santiago로 가는 1921년까지 그곳에서 소년기를 보낸다. 그의 시에 있어서 자연의 이미지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이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칠레의 숲에 서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이 지구를 모른다. 나는 그 풍경, 그 진흙, 그 침묵 속에서 벗어나 세계를 떠돌며 노래한다.
[중략]
비는 나에겐 잊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남극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혹은 케이프호온의 하늘에서 변경으로 떨어지는 남쪽지방의 비, 이 변경 거친 개척지에서 나는 처음 생명과 땅과 시와 비에 대해 눈을 떴다.(2)

Araucano(3)에 대한 호의적인 기억도 이 때 생긴 듯하다. Neruda는 인디언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으며 그들의 문화, 특히 그들의 언어에 향수를 느끼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이후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인위적인 것에 대한 혐오, 원초적인 인간 삶에의 접근 등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으며, 더 나아가 민중과 함께 하는 그의 시 경향과도 일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겨우 글을 읽을 줄 알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꼬마 시인 Neruda에게 러시아 소설 등을 가져다주며 그의 문학 수업에 도움을 준 여교사가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1945년 Chile에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여류시인 Gabriela Mistral이다. Neruda는 후에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가브리엘라가 나에게 러시아 소설가의 어둡고, 공포 어린 모습을 소개해주었고 그녀가 소개해 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홉이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나의 작품에 영향을 주고 있다.(4)

학창 시절 그는 학생 연맹의 기관지인 에 참여했는데, 과두 독재 정치에 항거하는 정신은 이미 이 때부터 그의 마음 속 깊이 자리했다. 그러면서 시작 활동을 계속해 1923년엔 첫 시집 Crepusculario를 발간한다. 그 뒤 그는 El hondero entusiasta의 시를 쓰기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그는 귀중한 경험을 한다. 어느 날 밤의 영감을 시로 옮긴 것이 우루과이의 시인 사바트 에르카스티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오해받는데, 이로 인해 그는 자기 목소리가 드러나는 새로운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o'n desesperada(1924)가 탄생한다. El hondero entusiasta는 10년이 지난 1933년에야 출판된다.

사바트 에스카르디의 편지는 과대 망상적인 시를 쓰고싶어하는 나의 끊임없는 욕구를 종식시켰다. 잘 알지도 못하는 수사학은 걷어치우고 내 스타일, 내 표현법을 신중하게 닦아 나갔다. 좀더 겸손한 품성과 나의 조화 있는 세계를 찾기 위하여 또 하나의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결산이 <스무 개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이다.(5)

그 후 Neruda는 세계 각처를 돌아다닌다. 1927년 스페인, 파리 등을 경유해 버마(미얀마) 랭군 주재 영사로, 실론의 콜롬보 주재 영사, 자바의 바타비아, 싱가포르 등의 영사로 있다가 1932년 귀국하고 1933년부터 다시 Buenos Aires, Barcelona, Madrid 주재 영사로 지낸다. 그러다가 스페인 내란을 겪고 파리로 간다. 그 뒤 파리에 본부를 둔 스페인 이주민단 영사, 멕시코 영사 등을 거치곤, 1945년 Tarapaca'와 Antofagasta 지방의 공화당 상원 의원으로 선출된다. 이렇듯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는 많은 작가들을 접하고 친분 관계를 맺게 된다. 서반아 27세대 시인들과 두터운 관계를 맺게 되고, 중남미의 세계적인 작가들과도 개인적으로 알게 되며 불란서의 문호들도 접하게 된다. 이러한 인간 관계는 그의 삶에, 또 그의 시에 깊은 영향을 준다. 특히 Federico Garci'a Lorca와 Rafael Alberti'를 알게 된 것은 스페인 내전을 더욱 깊게 경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스페인의 Guerra Civil 이전에 영사로써 동방의 나라에서 겪은 고독과 동양인들의 삶이 시화된 것이 Residencia en la tierra(1935)이고, 내전을 겪으며 글로 쓴 것이 Espan~a en el corazo'n(1938)이다. 이 Guerra Civil 이후로 그의 삶은 정치적이고 참여적인 것으로 일관한다. 내란이 일어나자 바로 그 해 11월 Nancy Cunard와 함께 이란 잡지를 발행하고, 1937년 4월엔 Ce'sar Vallejo 와 "Grupo Hispanoamericano de Ayuda a Espan~a"를 설립하며, 전 세계에 걸친 반파시스트 문인회의를 조직하기도 한다. 고국에 돌아와서는 란 잡지를 발행했는데,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히틀러가 연일 승리하자 그것으로 문학을 통한 반격을 하기도 했다. 상원 의원이 된 그는 억압받는 민중의 대변자가 되어 조국의 어두운 현실을 바꾸어 보고자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동료들과 더불어 나는 칠레의 상원에서 참혹한 현실을 이야기해보려 했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안락한 상원의 분위기는 버림받은 대중의 비명을 막아버리기 위해 방음 장치라도 해놓은 것 같았다. 야당의 동료들은 애국적 연설에는 기막힌 솜씨를 가졌지만 그들이 짜내는 사이비 비단결 밑에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6)

그러던 중에 Gabriel Gonza'lez Videla의 선거 운동을 하고, 결국 Videla가 대통령이 되나, 실망만 안겨줄 따름이었다. Videla를 비난하는 글과 상원에서의 혹독한 연설 때문에 체포 명령과 함께 Neruda의 정치적 시련은 시작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Alturas de Macchu Picchu」를 포함한 Canto general을 완성하여 1950년에 출판한다. 많은 나라를 돌아다닌 후 1952년 8월 체포 명령이 철회되자 귀국, 소련과 중국 등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을 여행하기도 하며, Versos del Capita'n(1952), Odas elementales(1954), Las uvas y el viento(1954), Nuevas odas elementales(1956), Tercer libro de odas(1957), Estravagario(1958), Navegaciones y regreso(1959), Cien sonetos de amor(1959)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활발한 시작 활동을 했다. 아옌데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는 등 정치적 활동도 계속했고, 1970년엔 파리 주재 대사로 있기도 했다.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여했고, 1973년 9월 생애를 마감했다.


III. 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o'n desesperada를 중심으로 살펴본 Neruda의 사랑의 시

Pablo Neruda의 대표작을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골라본다면 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o'n desesperada(1924)와 Alturas de Macchu Picchu(1945)를 꼽을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된 이 두 시집은 그의 시 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그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를 분류하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에게는 항상 서너 가지 관심사가 시속에 표현되어 있는데, 그에게 가장 흥미로운 주제로는 Odas elementales(1954)에서 뚜렷이 나타난 '사소한 일상적인 것'에 대한 관심, 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o'n desesperada에 두드러진 '사랑'의 주제, Arte de pa'jaros(1966)에서 보이는 '자연' 등을 우선 꼽을 수 있으며, 말년에는 Isla Negra 주변의 바다의 경치를 주제로 한 글들을 발표하기도 했다.(7)

그밖에 다양한 주제들을 두 가지 큰 줄기로 묶는다면 '사랑'과 '혁명'으로 말할 수 있다. 이 두 주제는 매우 다르기도 하지만, 인간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데 어울려 Neruda만의 시 세계를 이루고 있다. 전기한 대표적 두 시집을 중심으로 그 두 가지 주제가 그의 시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살펴보기로 하자.

그의 사랑의 시를 언급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손꼽히는 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o'n desesperada는 그의 초기 작품을 대표하는 것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21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사랑의 시'가 20편 등장하는데, 이들 역시 달콤하고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프고 절망적인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집은 다른 말로 하면 결국 하나의 갈망과 고통과 절망의 노래일 뿐이다."(8) 여기서 Neruda는 두 여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데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에 나오는 두 여인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는 언제나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우울과 열정의 시속에 여기저기 등장하는 두 여인은 마리솔과 마리솜보라이다. 그녀들의 이름은 바다와 태양, 바다와 그림자를 의미한다. 마리솔은 아름다운 시골에 사는 애인으로 마 리솜보라는 도시에 사는 학생이었다.(9)

이 시집 전체에서 스무 살의 시인은 과거와 현재의 삶, 빛과 어둠, 소유와 부재 등을 노래한다. 사랑하는 여인의 부재의 아픔,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과거 등을 아름답게 시화하고 있다.

시인의 삶은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그 가운데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간다. 그것은 여인의 육체였다. 물론 이는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거기에서만 머무르진 않는다. 그에게 있어 여인의 육체는 고뇌의 피난처이며 또한 바로 그 고뇌를 함께 하는 곳이다. 그리고 네루다가 그토록 사랑하는 자연이다.

여자의 몸, 하얀 구릉, 하얀 허벅지,
너를 내어주는 모습은 꼭 이 세상을 빼어 닮았구나. (POEMA 1)(10)

너는 밤이 날개를 치는 깊디깊은 눈을 가지고 있다.
신선한 꽃의 품속과 장미의 무릎을 가졌다.

네 젖가슴은 하얀 달팽이들을 닮았다.
네 뱃속에는 그림자 나비 한 마리가 잠자러 들어와 있다. (POEMA 8)

나는 네 몸이 볕에 잘 말려진 진주조개이던 시절부터 사랑했다.
지금은 네가 우주의 여주인이라는 것까지도 믿는다. (POEMA 14)

그녀는 이 세상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여자였다. (POEMA 10)

황혼녘 나의 하늘에서 너는 한 조각 구름 같고 (POEMA 16)

즐거운 네 육체, 나긋나긋하고 가냘픈 네 목소리를 사랑한다.
밀밭 같기도, 태양 같기도, 양귀비 같기도, 물결 같기도 한,
달콤하면서도 단호한, 가무잡잡한 나비야. (POEMA 19)

여자의 육체는 자연과, 또 이 세계와 동일한 것이고 자연은 또한 여인을 닮아 있다. 여인과 시인과 사랑, 모든 세계가 합일되어 노래한다. 낭만주의 시처럼 감정이입이 된 구절도 여러 군데 눈에 뜨인다. 시인의 아픔은 모든 것의 아픔이다. 바꿔 말하면 시인은 모든 것에 아파하고 고뇌한다.

가장 크낙한 별들이 네 눈과 함께 날 바라본다.
그리고 내 너를 사랑하기에, 바람 속의 소나무들은,
그 철사줄 같은 이파리들로 네 이름을 노래하고 싶어한다. (POEMA 18)

꽃들은 풀이 죽고, 그녀는 슬픔으로 가득하다. (POEMA 2)

어릴 적부터 Temuco의 자연 속에서 성장한 네루다는 그의 시속에 많은 자연의 이미지를 삽입한다. 그가 시골에 있든 도시에 있든 그는 자연 속에 있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삶의 근원이요, 희망과 행복이 넘치는 곳이다. 또한, 그와 함께 아파하고 고통 하는 것도 자연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시집은 시인의 아픔이 그 주를 이루고 있다. 삶 자체가 그렇다. 그 아픔이 사랑을 통해 치유된다. 그 아픔은 삶을 포기하거나,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삶을 사랑하기에 오는 아픔이다. 시인은 후에 이 시집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그 책은 내 가장 고통스러운 청춘의 열정과 내 조국 남부의 황폐한 자연이 뒤섞인 목가적인 시들이 담긴 오뇌의 책이다. 깊은 우울함이 어려있기도 하지만, 살고 있다는 기쁨이 그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책을 사랑한다.(11)

그러한 고통스러운 청춘의 열정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사랑은 아픈 사랑이다.

나의 목마름, 끝없는 나의 번민, 막막한 나의 행로여!
영원한 목마름이 계속되는 어두운 수로들,
끊이지 않는 피로, 그리고 한없는 고통. (POEMA 1)

시집 전체에서 '고독', '고통', '고뇌', '슬픔' 등의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나를 맴도는 네 안개허리를 보고 있으면
너의 침묵은 쫓기는 듯한 나의 시간들을 힘들게 한다.
너는 투명한 돌멩이 같은 품을 간직한 존재
그 곳에 나의 입맞춤이 닻을 내리고 음습한 고뇌가 깃들다. (POEMA 3)

그것들은 덩굴나무처럼, 나의 오랜 고통을 기어오른다.
[중략]
고뇌의 바람은 아직까지도 종종 단어들을 질질 끌고 다닌다.
꿈속의 폭풍은 지금까지도 종종 단어들을 쓰러뜨린다.
나의 고통스런 목소리에서 너는 다른 음성들만 듣고 있다.
해묵은 입들의 오열, 해묵은 바램의 피,
[중략]
이 고뇌의 파도 속에서 나를 따라와 다오, 벗이여. (POEMA 5)

나 여기 너 없는 고독을 안고 있다. (POEMA 8)

내가 슬퍼할 때나, 네가 저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면,
왜 사랑의 아픔은 내게로만 다가오려 하는 것일까? (POEMA 10)

내 몸뚱이엔 그토록 커다란 통곡의 열정이 맺혔다.
[중략]
즐거웠다가, 슬펐다가, 내 영혼은 한없이 구르고 있었다. (POEMA 17)

이러한 그의 고뇌의 몸부림 속에 Quevedo의 시에서 대표적으로 보이는 '죽음'의 주제가 엿보이기도 한다. 스페인을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작가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삶을 깊이 다루고 있는 이들이 죽음이란 것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죽음의 불꽃 속에 빛은 너를 휘감아 돈다.
[중략]
벙어리여, 나의 친구여,
이 죽음의 시간에 외로움의 한가운데 홀로
삶의 불꽃들로 가득 차 있는,
무너져 내린 하루의 유일한 상속녀여. (POEMA 2)

아아, 길을 계속해서 가는 거다 이슬 사이로 눈을 활짝 열고,
고뇌와 죽음과 겨울을 막아 주지 않는,
모든 것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가는 길을. (POEMA 11)

그는 또한 반복의 구조를 매우 잘 사용하고 있다. POEMA 5에선 "네가 내 얘길 들을 수 있도록(para que tu' me oigas)"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같은 구절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변형시켜 간다. 17행에선 "para que tu' oigas como quiero que me oigas"로 반복된다. 또 "단어(palabra)"란 단어가 계속 반복되는데, 이는 의사 소통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시의 주제와 잘 연결되고 있다. 내용과 형식을 일치시켜 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수법이다.

POEMA 15에선 "나는 네가 말없을 때가 좋다", POEMA 18에선 "나 여기 널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POEMA 20에선 "나는 오늘 밤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시를 쓸 수 있습니다(Puedo escribir los versos ma's tristes esta noche)"를 반복하고 있다. '절망의 노래'에선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가 반복된다. 이러한 반복은 마치 후렴구처럼 반복되기도 하나 대개의 경우 같은 자리에 놓이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조금씩 바뀌면서 독특한 시적인 맛을 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아직은 시의 깊숙함이 부족한 것도 같으나, 시어의 묘미, 젊은 날의 고뇌와 사랑 등이 담긴 멋진 스물 한 편의 시가 담긴 이 시집은 과연 Neruda의 시를 대표하는 걸작 중의 하나라 하겠다.


IV. Neruda의 민중시

전기했듯이 Neruda는 학창 시절, 이란 학생 연맹 기관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젊은 시절부터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진 않았다. 그는 항상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며 살아 갔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관심이었고 사랑이었다. 그의 '사랑의 시'들도 그런 그의 성향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사랑의 시, 정치시로 뚜렷이 구분되지는 않는다. 하긴 정치시, 혹은 사회시란 용어 자체도 그에게 아주 알맞은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가 정치에 밀접하게 관여했고, 또 실제로 상원의원을 지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시는 정치시라기 보다는 삶에 대한 사랑의 노래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적합하다.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바로 억압받는 이들에게 향한 것이었다. 서반아인들에게 내몰렸던 토착 인디언들, 가진 자들에게 핍박받는 민중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 삶이 즐거울 수만은 없는 사람들을 네루다는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가난했던 그의 삶과도 연관이 있다.

실업 사태가 만연하자 전국의 조직이 동요하게 되었다. 나는 매주 <끌라리다드>지에 기고했다. 우리 학생들도 이에 가담, 민중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나섰다. 물론 산티아고 거리에서 경찰의 곤봉 세례를 받았다. 수천 명의 직업을 잃은 초속 공장 노동자, 구리 광산 노동자들이 수도로 몰려들었다. 데모와 그에 이은 탄압은 칠레의 삶에 비극적인 상처를 남겼다.

그때부터 때때로 단절도 있긴 했지만 정치는 나의 시와 인생의 일부분이 되었다. 시속에서, 젊은 시인의 가슴속에서 사랑과 인생, 기쁨과 혹은 슬픔에 대해 문을 닫아 버릴 수 없듯이 나는 거리의 민중을 외면할 수 없었다.(12)

그의 민중시 중 대표작은 Canto general(1950)을 우선 꼽을 수 있는데, 이는 총 15편의 노래 및 송가(Canto)로 구성되어 있는 대서사시이다. 이전부터 그는 "우주의 위대한 신비, 인간의 잠재력을 노래하는 서사시를 써보고 싶었다."라고 얘기한 바 있는데, 여기서 그것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삶과 혁명을 노래하게된 데는 스페인 내란이 크게 기여한다. 내란을 겪으며 그의 시 경향은 새롭게 변모하는데, 그는 후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지식인의 역사상 스페인 내란만큼 시인들에게 풍요한 소재를 줬던 것도 없을 것이다. 스페인 땅에 뿌려진 자유의 붉은 피가 이 시대의 위대한 시인들에게 그저 달콤한 연가나 쓰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13)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결국 하나의 노선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했다. 그 비극적 시기에 암흑과 희망의 틈바구니에서 이루어진 나의 결단에 대해 조금도 후회할 이유는 없었다.(14)

이제 그의 시는 본격적으로 민중을 위한 시, 해방을 위한 시가 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한 것이 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시가 쓰여지는 것은 강건함과 기쁨, 그리고 인간의 진실한 본성을 토대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시가 비록 소리를 낸다 할지라도 그것은 노래가 될 수 없으리라.(15)

최초의 탄환이 스페인의 기타를 관통하고 거기서 음악대신 피가 솟구쳐 나오자 나의 시는 인간의 절망이 널려있는 길거리에서 유령처럼 멈춰 섰고 그 길을 통해 무수한 뿌리와 피가 한꺼번에 나의 시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 뒤부터 나의 길은 모든 사람의 길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갑자기 나는 나 자신이 홀로 있던 남쪽에서 북쪽으로 옮겨갔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민중이었고, 나는 보잘것없는 나의 시가 그들의 칼이 되고 그들의 손수건이 되어 그 엄청난 고통의 땀을 닦아주기를,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어주기를 바랐다.(16)

이제 그의 시는 깊어지고 넓어진다. 인간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사회 속으로 뛰쳐나온다. 민중의 심장을 향한다.

나는 세계의 온갖 것에 대해 깊이 생각했었지만 인간 자체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했었다. 냉혹하게, 고통스럽게 나는 인간의 심장을 헤쳐보았다. 인간에 대한 생각이 없이 바라본 도시는 텅 빈 도시였을 뿐이었다.(17)

내 시 속의 냉소주의적인 태도는 끝장을 내야 했다. <스무 개의 사랑의 ......>에 보이는 사변적 주관주의나 <지상의 거처>의 고통스런 우울함 따위는 끝나가고 있었다.
[중략]
시가 우리의 동지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의 투쟁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불합리하고 부정적인 것들을 충분히 거쳐왔다. 이제는 잠시 멈춰 서 서 휴머니즘으로 가는 길을, 현대 문학과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인류의 열망 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나는 <대서사시>에 대한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18)

바로 이렇게 해서 나온 시가 총 340여 편에 달하며, 약 14년 간을 투자해 출판된 Canto general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가 정치화되면 그 맛을 잃는다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그의 시는 그가 정치에 뛰어들고 좌경화된 이후에도 살아 움직이며 멋진 구절들을 만들어내었다. 그의 시들은 정치시면서도 낭만적이고, 초현실적이면서도 삶에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광범위한 모든 주제를 다루면서도 일관된 무언가를 보여준다.

Canto general에 포함된 Alturas de Macchu Picchu(1945)는 총 12편으로 구성된 서사시인데, 역시 그 주인공은 영웅이 아니다. 고통받는 서민이 노래의 대상이다. 이제 삶은 더 이상 아름답고 달콤한 것만은 결코 아니다. 민중의, 억울하고 아픈, 상처받은 삶이다. 그들과 네루다는 시속에서 하나가 된다. 그리고 마추삐추도 그렇다. 그들의 상처, 그들의 분노를 마추삐추는 보았다. 세상이 어그러지는 것을 마추삐추는 보아왔다.

온 땅을 파헤쳐 빈한했던 자의 그 꽝꽝한 빵을 끌어내 다오
그 노예의 옷들을 보여 다오, 그리고 그의 창문을.
살았을 때 어떻게 잠들었는가를 이야기해 다오.
그의 잠은 어떠했는지, 축성공사에 지친 검은 구멍 같은, 반쯤 눈감은,
곤하게 코를 골던 그의 자는 모습을 이야기해 다오. (10)(19)

죽음 또한 이 시집의 주된 주제로 등장한다. 죽음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 없는 삶이다.

모두들 자기의 죽음을 기다리며 사위어가지, 날마다 조금씩
죽는 죽음 :
그리고 날마다 당하는 숨막힌 불행은 떨면서 마시는 검은 잔 같은 거. (3)

함께 가는 길, 투쟁하며 전진하는 길, 대자연의 순리와 맞물리는 길을 Neruda는 택했고, 몸을 던졌고, 이제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것이다.


V. 맺으며

지금까지 중남미 최고의 시인 Pablo Neruda의 삶과 시와 사랑과 혁명을 광범위하게 살펴보았다. 물론 네루다의 다양한 시세계를 '사랑'과 '혁명(민중)'으로 반듯하게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다. 『지상에서의 주거』에서 볼 수 있는 실존적 고뇌의 모습, 『기본 송가들』과 『새로운 기본 송가들』에서 보여지는 일상의 하찮은 모습들의 시화도 그의 시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이다.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시를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은 '사랑'과 '혁명'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주제는 맞물려 있다. 그의 '사랑'은 연인을 넘어, 사람, 나아가 우주에까지 펼쳐진 것이고 그의 '혁명'은 민중에 대한 사랑에 근간 한다. 그는 결국 '사랑과 혁명'의 시인인 것이다.

이후 Neruda의 영향으로 중남미에서는 사회시니 정치시니 민중시, 해방시가 커다란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 깊이 또한 매우 깊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바라보며, 또 우리의 시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하겠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며, 참여시라면 어떠해야 하는가, 시인의 의무는 무엇인가를 더 생각해보게 하는 Neruda의 위대성을 이 나라가 알게 되기를 바라며 마무리한다.


VI. 참고 서적

1. Neruda, Pablo. 1991. <스무 개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 서울: 공간.
2. Neruda, Pablo. 1992.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추원훈, 역. 서울: 청하.
3. Neruda, Pablo. 1986. <마추삐추의 山頂>. 민용태, 역. 서울: 열음사.
4. 민용태. 1989. <서중남미 문학론>. 서울: 전예원.
5. 민용태. 1995. <로르까에서 네루다까지>. 서울: 창작과비평사.
6. 김현창. 1994. <중남미 문학사>. 서울: 민음사.
7. Franco, Jean. 1990. Historia de la literatura hispanoamericana. Barcelona: Editorial Ariel.
8. Ji'menez, Jose' Olivio. 1984. Antologi'a de la poesi'a hispanoamericana contempora'nea. Madrid: Alianza Editorial.





주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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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붐소설이란 용어는 당시 라틴아메리카 소설들의 엄청난 상업적 성공에서, 또한 묘하게도 일치한 경제적 붐(Boom)에서 따온 용어인데, 마술적 사실주의(realismo m gico) 등의 용어로는 그 일련의 소설들을 다 포함할 수 없어 그냥 붐소설이라고 포괄적으로 명명된다. 이는 Nueva novela, Nueva narrativa 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나 용어상의 애매모호함은 마찬가지이다. (back)
(2) 파블로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 (서울 : 공간, 1991), p.17
이 책은 원래 Neruda의 자서전 Memorias를 영역한 Memoris(Penguin Books, 1978)를 공간편집실이 우리말로 옮겨 소개한 것인데, Neruda의 시집 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o'n desesperada와 같은 이름이 붙어 있다. 앞으로 이 책을 인용함에 있어 편의상 <Memoris>로 쓰기로 한다. (back)
(3) Chile의 토착 인디언을 말함. Arauco는 현재의 Chile의 한 주에 있던 나라. (back)
(4) <Memoris>, p.39 (back)
(5) 같은 책, p.87 (back)
(6) 같은 책, p.273 (back)
(7) Franco, Jean, Historia de la literatura hispanoamericana, (Barcelona : Editorial Ariel, 1990), p.267 참조 (back)
(8) 민용태, 『서중남미 문학론』, (서울 : 전예원, 1989), p.231 (back)
(9) <Memoris>, p.88 (back)
(10) Neruda, Pablo, 추원훈 譯,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서울 : 청하, 1992) 본 논문에서 이 시의 구절을 인용한 것은 전부 이 책에서임. 이 시집의 서반아어 TEXTO로는 Jose' Olivio Ji'menez가 엮은 Antolog a de la poesi'a hispanoamericana contempora'nea (Madrid : Alianza Editorial, 1971, Se'ptima edicio'n en "El Libro de Bolsillo" : 1984)의 Pablo Neruda 편에서 POEMA V와 POEMA XX를, Jean Franco의 Historia de la literatura hispanoamericana의 p.258에서 POEMA II를 사용하였다. (back)
(11) <Memoris>, p.87 (back)
(12) 같은 책, pp.89-90 (back)
(13) 같은 책, p.206 (back)
(14) 같은 책, p.222 (back)
15) 같은 책, p.224 (back)
(16) 같은 책, pp.238-239 (back)
(17) 같은 책, p.238 (back)
(18) 같은 책, pp.225-226 (back)
(19) Neruda, Pablo, 민용태 譯, 『마추삐추의 山頂』, (서울 : 열음사, 1986) 본고에서 이 시집의 인용은 모두 여기서임. (back)




■ 별첨


* 소설 속의 파블로 네루다
- 우석균 서울대 강사, 중남미 문학

파블로 네루다가 죽은 지 25년이 되는 올해도 칠레에서는 대대적인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1971년 노벨상 수상 경력이 입증하듯 주옥같은 시를 남겼고,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좌파의 상징적 존재였으며, 1973년 피노체트군부 쿠데타로 유토피아적 전망에 가득 찼던 한 시대가 종언됨과 동시에 극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비장한 최후를 맞이한 네루다였으니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칠레에서의 시인의 위상은 단순히 대문호 혹은 깨어 있는 의식을 지녔던 양심적 지식인 정도 이상이다. 1990년 민주화가 되기 전까지 독재 정권하에서 폐쇄되어 있다가 그 후 박물관이 된, 이슬라 네그라(에 소재한 시인의 바닷가 집에는 해마다 시인과 마지막 부인 마띨데의 결혼기념일에 탐스러운 붉은 꽃이 바쳐졌다. 또한 칠레의 대표적 소설가 호세 도노소(José Donoso)의 '절망(La desesperanza)'(1986)의 등장 인물로, 호르헤 에드와르즈(Jorge Edwards)의 '시인이여 안녕(Adiós, poeta...)'(1990)이라는 시인에 대한 회고록을 통해 끊임없이 되살아났다. 뿐만 아니다. 그가 죽은 지 꼭 20년 만인 1993년, 시인의 유해가 드디어 생전의 소원대로 이슬라 네그라로 돌아와 영원한 안식을 찾게 되었을 때의 국민적 열광과 추모도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세월의 무심함과 죽음의 장벽을 뛰어 넘어 어느 덧 모든 칠레인에게 존경받고 사랑 받는 국민 작가로 변모했음을 시사하는 일이었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인 안또니오 스까르메따(Antonio Skármeta, 칠레, 1940-)의 '불타는 인내'(Ardiente paciencia) 역시 네루다를 주인공으로 하여 시인의 광채를 소설화한 것이다. 이 작품에는 비록 비극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지만 무엇보다도 민중시인으로 고착된 네루다의 이미지를 탈색시켜 시인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네루다 시의 ‘무거움’에 ‘가벼움’을 섞음으로써 가능했으며 이로 인해 독특한 네루다의 이미지를 형상화시킬 수 있었다.


1. 민중시인으로서의 네루다의 이미지

파블로 네루다의 시세계는 다채롭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시인’, ‘자연의 시인’, ‘민중시인’, ‘전위주의 시인’ 등의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파블로 네루다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 ‘민중시인’, ‘제 3세계의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일 것이다. 김수영, 김남주 시인의 네루다에 대한 관심이 이런 경우이다. 1948년 국회에서 당시 칠레 대통령 곤살레스 비델라를 탄핵하는 연설을 한 후 이듬해 망명길에 올랐을 때 이탈리아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민중시인으로서의 명성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칠레와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고 시인을 추방시키려고 했지만 이탈리아 민중들의 네루다 지지 데모로 결국에는 정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일 포스티노' 속의 네루다의 이미지 역시 같은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우체부가 네루다의 영향으로 의식화되어 가는 과정이 원작보다 훨씬 더 강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중시인으로서의 네루다의 이미지는 전기적 요소와 작품 내적 요소에 두루 관련된다. 무엇보다도 스페인 내전 이래의 반파시스트 운동, 공산당 입당 및 상원 의원으로서의 정치 활동, 우익 보수 노선으로 회귀한 대통령의 변절을 질타하는 국회 연설, 정치적 망명, 스탈린 평화상 수상, 1970년에 수립된 살바도르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 지지, 군부 쿠데타로 인한 비극적 분사(憤死) 등의 인생 편력이 민중시인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또 네루다 자신이 그의 다른 면모를 살펴 볼 수 있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ón desesperada, 1924)나 '지상의 거처'(Residencia en la tierra, 1933, 1935)를 각각 우수적인 주관주의와 고통스러운 감상주의에 빠진 작품들이라고 자아비판하며 민중으로 파고드는 시를 부르짖었었다. 중남미의 역사, 지리, 민중에 대한 장편 서사시인 '총가요집'(Canto general, 1950)이 출판되고, 쿠바 혁명의 성공으로 새로운 역사적 시대가 임박했다는 유토피아적 전망이 중남미를 휩쓸었던 1960년대에는 시인에게서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이단에 가까운 일이었다.

물론 네루다가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민중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노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사 네루다’의 모습이 부각되면서 ‘인간 네루다’의 진면목이 가리는 부작용도 야기했다. 우선 문학적으로 보아 네루다의 다양한 시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을 가로막았다. 칠레의 경우 1960년대 이후 쿠데타까지 문학 연구 자체가 문학의 사회 참여도 만을 따지는 극도의 경직성을 띠어 작품의 내재적 가치보다는 사회적, 역사적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을 때

시인의 작품 중 민중시만이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폐해가 있었다. 시인을 민중시인으로만 기억하게 되면서, 네루다는 사람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우러러보는 동상, 화석화된 상징으로 변해 갔다. 이제는 시인이 동상에서 내려와 따스한 인간으로 되돌아오기를 갈망하는 이들이 생긴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2. ‘가벼운’ 네루다의 핍진성

스까르메따는 1960년대 쿠바 혁명의 열기가 고조되었던 때에 지적 형성기를 보냈던 좌파 인사답게 맑시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실존적 고뇌에 빠진 문제적 인간의 형상화, 사회비판적 시각, 민중주의 등은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난다. '불타는 인내' 역시 주인공 중의 하나인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Mario Jiménez)의 이데올로기화, 피노체트 쿠데타 이후 네루다의 처연한 죽음, 시인과 친했다는 이유로 어디론가 연행되어 실종되는 우체부 등이 시대적 치열함과 아픔을 회피하지 않으려는 스까르메따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스까르메따는, 문학이 엄숙하고 진지하기만 하기보다는 ‘가벼움’과 ‘무거움’이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삶은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것이니, 삶의 활력과 즐거움도 문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스까르메따가 대중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대중매체가 현대인의 삶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한 문학이 그것을 배제한다는 것은 삶과 예술을 격리시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아르헨티나의 신세대 작가군이나 멕시코의 온다(Onda) 문학 그룹과 유사한 사고 방식이다. 스까르메따는 진지한 문화에다가 대중 문화, 그리고 일상적 삶을 뒤섞는 이러한 자신의 미학을 “잡탕의 미학”이라 정의한다.

스까르메따는 '불타는 인내'가 자신의 작품 중에서는 길이 남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 소설이야말로 ‘가벼움’과 ‘무거움’이 절묘하게 조화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타는 인내'는 칠레 현대사의 격변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면서도, 해학적 성 묘사와 속담, 간결한 문체, 일상적인 대화 등을 통해 ‘무거운’ 주제를 훌륭히 소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존의 ‘무거운’ 네루다의 이미지보다는 훨씬 ‘가벼운’,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네루다를 형상화한다.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비틀즈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며, 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하고, 사회주의 정부를 대표하여 프랑스 대사라는, 당시 상황으로는 중요하기 이를 데 없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이슬라 네그라를 그리워하는 감성적인 면도 보여 주는 것이 '불타는 인내' 속의 네루다이다.

친근한 성격의 네루다를 형상화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또다른 요소는 스까르메따가 선택한 네루다 시의 면면이다. '불타는 인내'는 시인의 시, 회고록, 연설 등이 픽션과 어우러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비롯한 사랑의 시와, 1954-1957년 사이에 출판된 송가 연작 시집(Odas elementales, Nuevas odas elementales, Tercer libro de las odas)의 시들이 이야기 전개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주인공인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가 처음 접한 네루다의 시집은 송가 연작 시집으로 네루다와의 우정이 싹트게 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또 마리오가 베아뜨리스(Beatriz)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이용했던 시는 바로 전 세계 독자의 심금을 울렸던 네루다의 사랑의 시였다. 스까르메따가 인생사에서 누구나 겪는 사랑의 테마를 다룬 네루다의 시나,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늘 접하는, 사소하지만 없으면 아쉬운 사물들이나 인간 본연의 기본적인 감정을 다루었으며, 형식적인 면에서도 짧은 시행과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평이한 어투로 구성된 송가를 택했다는 점이 바로 네루다를 좀더 친근한 인물로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스까르메따의 이런 선택은 네루다 시에 대한 일종의 해체적 글읽기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네루다를 논할 때 준거가 되었던 작품인 지상의 거처'와 '총가요집' 대신 비교적 주변적 작품으로 꼽히는 시집들을 통해 네루다의 시세계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벼운’ 네루다가 핍진성 있는 인물로 느껴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네루다의 ‘무거움’은 전기적 요소뿐만 아니라 '지상의 거처'나 '총가요집' 같은 작품 자체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지상의 거처'는 전위주의적 기법을 많이 사용한 작품으로 네루다 시중에서는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 네루다 자신이 이 시집에 대해 자아비판 하였으므로 '지상의 거처'는 논외로 친다 해도, '총가요집'은 민중시이면서도 역시 ‘무거움’을 풍기는 시집이다. 민중시인으로서의 네루다의 이미지를 고착시킨 이 시집이 분명 '지상의 거처'보다는 쉬워졌지만 그것은 거대담론으로서의 민중과 역사를 웅변적으로 논하고 있다. 또, 네루다 자신의 말처럼 일상 생활보다는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따라서 사랑의 시나 송가 연작 시집처럼 좀더 인간 본연의 일상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시를 네루다 시세계의 준거적 작품으로 삼는 새로운 글읽기를 제시하지 않았더라면 소설에서 구현된 ‘가벼운’ 네루다의 인물적 성격이 핍진성 있는 것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3. 일상성 속의 혁명성

사랑의 시와 송가 연작 시집을 네루다 시세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내세운 것은 허구적 네루다에게 핍진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또한 네루다 시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다. 스까르메따의 의도는 사랑의 시와 송가 연작 시집이야말로 일상성을 지닌 진정한 민중적 시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그 일상성이 세계를 바꿀 수 있을 만큼 혁명적이라는 것을 역설하려는 것이었다.

사실 네루다는 사랑의 시인으로서는 스페인어권 최고의 대중적인 작가라 할 수 있다.'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시인의 생전 전 세계적으로 이미 수백만 부가 팔렸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 점에 있어서나, 송가 연작 시집 같은 서민풍의 시를 썼다는 점에서 도대체 ‘무거운’ 시인으로 여겨질 이유가 전혀 없는 시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네루다가 ‘무거운’ 시인으로 여겨져 왔던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일반적으로 네루다 시학이 완성되기 이전의 작품으로 간주되어 보통 그의 시세계를 논하는 데 제외되고는 했다. 게다가 이 시집을 접하는 비평가들은 시에 영향을 준 작가라든가, 영감을 주었을 만한 여인들의 정체를 밝히는 데에 골몰했을 뿐 진지하게 예술성을 논한 예는 극히 드물었다. 다른 사랑의 시들도 마찬가지 운명을 겪었다. 한편 송가 연작 시집은 분명 형식과 주제 면에서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와 민중을 장중하게 논하는 '총가요집'과는 차이가 있기에 진정한 민중시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기존의 ‘무거운’ 네루다의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못했던 것은 어째서였을까? 송가 연작 시집의 첫 번째 작품인 '일상 송가'가 출판된 1954년은 칠레 시단에 있어 의미 깊은 해였다. 니까노르 빠라(Nicanor Parra)의 '시와 반시'(Poemas y antipoemas)가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칠레 문단에 있어서 네루다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 경향이 탄생했음을 의미했다. 빠라의 시에는 구어체가 도입되고, 시적 화자는 독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그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이는 곧 네루다처럼 현실을 해석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태도에 대한 반발이었다. 칠레 문단은 네루다의 '총가요집'이나 송가 연작 시집보다 빠라의 시가 더 일상적이고, 민중시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즉, 네루다가 주제나 형식을 쉽게 했다는 사실보다 빠라가 시와 삶 그리고 시적 화자와 독자의 거리를 최대한 좁혔다는 사실이 더 민중적이고 일상적인 시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스까르메따가 송가 연작 시집을 주요 작품으로 부각시킨 것은 네루다의 견자(見者)로서의 시인상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네루다의 일상성을 재조명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네루다는 낭만주의 시대 이래의 시인상, 즉 시인은 특별한 존재라는 관념을 물려받았다. 그가 랭보와 보들레르를 흠모한 반면 말라르메에 대하여 밀폐된 방의 시인이라며 비판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현대시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19세기 프랑스 시는 보들레르로부터 크게 견자로서의 시인과 예술가로서의 시인의 계보로 나뉜다. 전자는 시인이 일반인들이 가지지 못한 통찰력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하며, 후자는 시인은 완벽한 미학을 추구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하였다. 견자로서의 시인상은 랭보가 계승하였고, 예술가로서의 시인상의 계승자는 말라르메와 폴 발레리였다. 네루다는 '지상의 거처'의 '시학'(“Arte poética”)에서 밝히고 있듯이 시인은 예언성(“lo profético”)을 지닌 견자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네루다는 민중시를 쓰게 되면서 일상의 빵과 같은 소박한 시, 즉 삶과 예술이 일치되는 시를 목표로 하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실제로 이런 목표를 구현했는가 하는 물음에는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인어와 술꾼들의 우화'(“Fábula de la sirena y los borrachos”)는 선/악, 이상/현실, 고귀함/저속함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간극 때문에 영원히 바다로 돌아가 버린 인어를 노래한다. 즉 여전히 일상적 삶보다 고귀한 영역을 상정하고 있다. 또 '시'(“La poesía”)는 시가 영감의 산물이며 남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신비한 우주에 이르

는 비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네루다는 민중시를 주창하면서 근본적으로 시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상의 거처'의 '시학'이 시사하는 시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네루다는 '총가요집'의 '마추삐추의 산정'(Alturas de Macchu Picchu) 마지막 시에서 “나의 핏줄과 나의 입으로 달려 오라/나의 말과 나의 피로 말하라”고 외친다. 민중들의 아픔을 대변해 주겠다는 태도이다. 즉 일상성을 추구하면서도 민중의 계도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태도는 그가 열렬한 랭보주의자였다는 사실에 기인할 지도 모른다. 네루다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랭보의 “여명이 밝아올 때 우리들은 불타는 인내로 무장한 채 찬란한 도시로 입성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이는 네루다가 시인은 단순히 통찰력을 갖춘 존재로 만족하기 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실천적 행동을 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그런데, 인고의 삶 속에서도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기를 꿈꾸는 랭보의 이상은 시를 통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기인한다. 칼리니스쿠는 랭보의 이상을 모더니티적인 특수한 현상의 하나, 특히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파악한다. 그에 따르면 아방가르드는 ‘예술가는 전위에 서서 사회를 이끌고 가야 한다’는 생시몽의 관념에서 비롯되었다. 즉, 예술이 공리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술의 공리성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근대 미학의 대전제와 모순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랭보는 예술적 아방가르드와 정치적(공리적) 아방가르드의 양립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이상주의자였다. 랭보에게서 예술의 자율성과 공리성이 날카롭게 충돌했다면, 네루다에게서는 일상성과 공리성이 모순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스까르메따의 의도는 네루다가 원했던 일상성과 공리성의 양립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스까르메따의 작업은 빠라 때문에 퇴색된 네루다의 일상성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네루다의 자필 싸인을 받아 소녀들에게 우쭐댈 양으로 송가 시집을 들고 시인의 주변을 맴돌던 마리오는 우연한 기회에 그의 관심을 끈다. 외워두었던 송가 시집의 메타포를 이용하여 시인과 대등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야?
-뭐라고요?
-마치 전봇대처럼 서 있잖아.
마리오는 고개를 돌리고 시인의 눈을 찾아 올려다 보았다.
-창처럼 박혀 있다고요?
-아니, 마치 체스말처럼 얌전히.
-자기(瓷器) 고양이보다 더 고즈넉하게요?

마리오처럼 시 근처에도 가 본적이 없는 이까지 시인의 메타포를 일상 대화에 사용한다. 이로써 네루다의 시는 일상적인 ‘가벼움’을 획득하게 되었다. 네루다가 진정으로 바랬으면서도 쉽게 얻을 수 없었던 일상의 빵과 같은 시가 마리오를 통해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네루다의 시는 이제 견자의 예언에서 서민의 일상적인 대화로 내려왔다.

이와 함께 마리오는 세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다. 마리오에게 메타포의 뜻을 가르쳐 주려고 비를 하늘이 우는 것이라고 비유해서 설명하고, 바다를 관찰하면 메타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권하던 시인은 뜻밖의 질문을 받는다: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믿으시는 겁니까?”(“¿Usted cree que el mundo entero es la metáfora de algo?”, p.24). 따분한 일상 혹은 평범한 삶을 시적으로 보게 된 마리오의 태도, 그것은 바로 송가 연작 시집을 통해 네루다가 시도했던 것이다. 또한 시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꿈으로써 사회 변혁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했던 랭보나 앙드레 브르통의 이상이기도 했다. 이로써 스까르메따는 네루다의 ‘가벼운’ 시에서 견자로서의 시인의 태도의 진정한 구현이 가능함을, 그리고 일상성과 공리성이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을 때 구체적으로 마리오에게는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불타는 인내'에서 가장 두드러진 에피소드인, 베아뜨리스의 사랑을 구하려고 네루다의 시를 이용하는 대목에서 그 한 예를 볼 수 있다. 스까르메따의 소설에서 중요한 점은 단지 사랑의 시를 네루다의 대표적인 시집이라도 된 양 전면에 내세웠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가 아니라도 네루다를 등장 인물로 하는 소설 속의 사랑 이야기에 그의 사랑의 시를 이용하는 것은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을 법한 상황 설정이다. 스까르메따의 소설적 장치는 좀더 교묘하게 네루다 시의 일상화를 추구한다. 마리오는 처음 베아뜨리스를 보았을 때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사실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시인에게 달려와 그녀를 위해 시를 써줄 것을 부탁한다. 마리오의 생각에는 시인만이 유일하게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파블로씨, 그럼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할까요? 시인 님은 이 마을에서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세요. 다른 모든 이들은 아무런 말도 엮어낼 줄 모르는 어부들일뿐이란 말이에요.

네루다는 시를 써주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시를 외우고 있었던 마리오는 결국 시인의 사랑의 시들을 이용하여 베아뜨리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를 통해 사랑을 이루었음은 물론, ‘말’을 할 줄 아는 존재로 재탄생한 것이다. 물론 남의 시를 도용하는 것이 어째서 말을 할 줄 알게 되는 것이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이에 답하기 위한 스까르메따의 소설적 장치는 단연 빛나는 것이다. 네루다는 자신이 부인 마띨데를 위해 쓴 시를 마리오가 베아뜨리스에게 사용했다고 화를 낸다. 그러자 마리오가 당차게 맞선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고 사용하는 사람의 것이에요!”(“¡La poesía no es de quien la escribe sino de quien la usa!”, p.68). 이처럼 마리오가 시는 한 번 쓰여진 후에는 독자의 것이라는 ‘민주적’인 주장을 할 때, 네루다의 ‘무거움’은 또 한번 탈색되고 일상성은 더욱 부각된다.

말을 할 줄 알게 되면서 마리오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선거 운동을 위해 마을에 들른 우파의 상원 의원에게 어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말을 할 줄 알게 된 것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스까르메따는 시와 정치를 양립시키려 했던 현실 지향의 네루다의 많은 시들을 다 제쳐 두고 사랑의 시를 통해서도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고 깨어 있는 의식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이는 곧 네루다 시에는 일상성과 예술성이 양립한다는 견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이제 스까르메따는 네루다의 시가 랭보의 이상이었던 예술성과 공리성의 조화까지도 구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마리오가 진정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고, ‘말’을 획득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스까르메따는 살바도르 정권 밑에서 파리 대사직을 수행하는 중 자연과 칠레의 바다에 향수에 빠진 네루다의 전기적 사실을 이용한다. 소설에서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녹음기와 편지를 보낸다. 파리의 눈이 지긋지긋하다고 토로하며 이슬라 네그라가 그리우니 그곳의 소리를 녹음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마리오는 부탁을 실행하기에 앞서 우선 시인의 송가 형식을 모델로 하여 그를 위로하는 '파리의 네루다를 뒤덮는 백설 송가'를 지어 낭송한다. 네루다가 일상적인 사물이나 인간 본연의 감정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는 취지에서 송가 연작 시집을 썼듯이 마리오는 파리의 눈에 따사로운 정감을 느끼기를 권한다. 그리고 그 눈이 네루다를 사뿐히 칠레로 모셔올 배로 비유하여 시를 통해 그를 향한 살폿한 흠모의 정, 시인이 그토록 삶의 지표로 삼았던 인간들끼리의 진정한 연대감을 보여 준다.

은은한 걸음걸음의 정감 어린 동반자,
천상의 풍요로운 우유,
학교의 하이얀 교복,
호주머니에 사진 한 장을 구겨 넣고
이 여관 저 여관을 전전하는
묵묵한 여행자의 시이트.
가뿐하면서도 풍성한 귀공녀,
수천의 비둘기 날개,
미지의 이별을 머금은 손수건.

나의 창백한 아름다운 여인이여,
파리의 네루다님에게
정녕 푸근히 내려다오.
네 하이얀 제독의 성장(盛裝)으로
정녕 그를 치장해다오,
그리고는 우리 모두가
그를 사무쳐 그리는 이 항구까지
네 사뿐한 순양함에 태워 모시는 거야.

마리오는 이어 부탁받은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를 녹음하였다. 그것은 ‘세상이 메타포로 이루어졌다’는 그의 깨달음, 세계를 시적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아름답게 나타난 한 편의 시라 할 만하다. 바람에 울리는 네루다의 집 종소리,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과 날개 짓, 벌집의 윙윙거림, 바닷물이 해변에 들이쳤다가 물러 날 때 모래를 휩쓰는 소리 등 네루다에게 시상을 떠올려 주었던 자연의 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소음도 더해 있다. 개 짓는 소리, 마음에 드는 갈매기 소리가 잡히지 않아 상스러운 욕까지 해대며 갈매기를 닦달하는 마리오의 목소리 등, 삶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정겨운 소음이다. 이렇게 하여 스까르메따는 자연과 인간의 삶이 시로 승화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녹음의 대단원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일곱째(분명히 서스펜스가 감도는 격앙된 음성이었고 침묵이 뒤를 잇는다), 파블로 네프딸리 히메네스 곤살레스군.(갓 태어난 아기의 쩌렁쩌렁 우는 소리가 십 분쯤 지속된다.)

네루다가 파리에 간 뒤 태어난 마리오의 아기 울음 소리다. 파블로 네루다는 체코의 시인 얀 네루다(Jan Neruda)의 이름을 딴 필명이고, 본명은 네프딸리 레예스(Neftalí Reyes)이다. 따라서 아기 이름은 네루다의 본명과 필명에서 하나씩 따온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마리오는 대단한 경의를 표한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네루다의 시가 문학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사랑의 씨앗이 되고, 새 생명의 열매를 맺게 했다는 점이다. 시가 삶이 된 순간이며, 이로서 스까르메따는 네루다에 대한 최고의 경의를 바친 것이다.


결론

민중시인으로서의 네루다는 살아 생전 많은 지식인들과 민중의 사표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그의 시세계나 인간적 면목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 1960년대만 해도 국내적 상황과 쿠바 혁명의 영향으로 혁명적 전망이 가득찬 칠레에서 그를 사랑의 시인으로서, 혹은 송가 연작 시집을 통해 민중들에게 한 발 더 친근하게 다가가려 했던 시인으로서 파악하려는 시도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비극적 죽음은 기존의 이미지를 더욱 증폭시켰다. 뿐만 아니라 네루다의 시 자체도 그를 ‘무거운’ 시인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시인이 견자라는 인식에는 시인은 남들보다 더 뛰어난 예지력을 지닌 존재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민중시인으로 재탄생한 네루다의 경우 그 예지력은 사회를 계도하는 지식인의 사명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예술성과 민중성을 양립시키려는 풀기 힘든 과제에 직면해야 했다.

'불타는 인내'는 ‘무거움’과 ‘가벼움’이 조화된 네루다를 형상화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기존의 ‘무거운’ 네루다의 이미지를 고려해 본다면 분명 ‘가벼움’이 더 눈에 띄는 작품이다. 이를 위해 스까르메따는 네루다의 주변적 작품으로 여겨져 왔던 사랑의 시와 송가 연작 시집을 바탕으로 마리오가 시적 세계관을 획득하고 ‘말’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그리고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는 '지상의 거처'나 '대가곡집'이 주로 네루다의 이미지와 시학의 판단 기준이 되었던 기존 시각을 해체한 것이다. 또한 네루다의 시를 철저히 삶과 연계시킴으로써 그의 시의 일상성을 강조하려 했을 뿐 아니라, 시인이 추구했던 일상성과 공리성의 양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한 셈이다.

스까르메따의 네루다는 한갓 허구화된 네루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이 시인에 대한 어떤 극찬의 말보다, 또 그 어떤 성대한 추도식이나 전기보다 값진 것이라는 점이다. 한 시인의 시가 서민들의 삶 자체와 어우러지고, 세상을 시로 인식할 수 있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안겨준 데다가, 사랑의 결실과 새 생명의 탄생도 이로 인해 가능했으니 네루다보다 더 행복한 시인이 어디 있으랴. 결국 스까르메따의 네루다는 실제 모습에 가깝든 아니든, 어느덧 시인이 칠레 최고의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랐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 참고문헌

* 양과 솔방울(네루다와의 대담), 정현종역,
*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민음사, 1994.
*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 모더니티/아방가르드/데카당스/키치/포스트모더니즘, 이영욱역, 시각과 언어, 1994.
* 프랑스 현대시사: 보들레르에서 초현실주의까지, 김화영역, 문학과 지성사, 1983.
* 사랑의 시편,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추원훈역, 청하,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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