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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사라져가는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거푸 짚어보며

by 丹野 2011. 6. 27.

[수정 재송]-[나무 생각] 사라져가는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거푸 짚어보며

   [알려드립니다] 오늘 아침에 보내드린 '나무 편지'에 잘못 된 부분이 있어서 다시 보냅니다. 특히 '멸종위기 생물'을 이야기한 좋은 책을 소개한 앞 부분 한 단락이 빠지고, '찔레 꽃'을 이야기한 부분이 중복돼 들어가는 바람에 책의 제목을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워드프로세서로 먼저 글을 작성한 뒤, 사진의 링크 주소와 함께 HTML 에디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다른 부분은 모두 똑같은데, 네번째 '작약 꽃' 사진 아래 두 단락을 중복했습니다. 지금 다시 보내드리는 편지에서 빨간 색 돋움체로 표시한 부분만 바꾸어 새로 보내드립니다.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싱그럽고 예쁘게 피었던 장미도 이젠 시들었습니다.

   [2011. 6. 20]

   아침 저녁 오가는 길 위에 피어난 장미 꽃이 이제 시들었습니다. 더러는 꽃잎을 모두 떨구기도 했습니다. 앙증맞게 피어 있던 쥐똥나무의 꽃도 한참 때의 싱그러움은 잃었습니다. 시간 흐르면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시든 꽃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언제나 아쉬움이 틈입합니다. 꽃 진 자리에는 열매가 하나 둘 맺혔습니다. 벚나무에 맺힌 버찌 열매가 까맣게 익었습니다. 바라보는 이 없는 열매는 길 위에 떨어져 뭉그러졌습니다.

   매일 지나 다니는 길이지만, 그의 변화를 채 눈치채지 못한 나무도 적지 않습니다. 가죽나무가 그랬습니다. 언제 가죽나무에서 꽃이 피어났는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아침 길 위에 소복히 쌓인 노란 무더기를 보고서야 아, 가죽나무 꽃도 피었다가 지는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튤립나무 꽃은 아예 피어나는 것도 지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높은 가지 위에 피어나는 꽃이어서, 바라보지 못한 거죠.

   찔레 꽃도 한창 때를 조금 넘겼지만, 아직은 무더기로 피어난 꽃잎이 싱그럽습니다.

   꽃 지고 난 뒤에야 겨우 깨닫게 되는 나무의 뒤늦은 존재감입니다. 하루에 한번씩은 하늘을 바라보자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그게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까지는 아니라 해도 매일 지나치면서도 바라보지 못하는 것들만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잃지 않는 것, 그건 곧 내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인 때문이지요.

   강원도 정선 지역을 답사하던 엊그제에도 똑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답사 길에서 까다로운 일 가운데 하나가 밥 먹는 일입니다. 혼자 식당에 들어서는 일도 그리 탐탁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 또 장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아서지요. 일쑤 낮 동안 밥 먹는 일을 잊고 돌아다니다가 해질 녘에 파김치가 되어서야 비로소 끼니를 걸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합니다.

   노란 꽃가루를 그대로 달고 있는 꽃송이가 몇 남아있는 정선 지방도로 변 식당 화단의 찔레 꽃.

   한적한 지방도로를 지나다가 예쁘장한 식당이 눈에 들어오자 갑자기 심한 허기가 통증 되어 몰려왔습니다. 허겁지겁 아무 생각 없이 식당에 들어가 여느 때보다 맛나게 늦은 점심을 챙겨 먹었습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 순간, 입구 양 옆으로 예쁘게 꾸민 화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얀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는 아담하지만 예쁜 화단이었습니다.

   바로 문 옆의 화단이지만, 들어갈 때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허기를 떼워야 한다는 생각만 했던 모양이지요. 생각은 그렇게 눈까지 멀게 했어요. 오로지 먹을 생각만 가득 찬 상태에서 하릴없는 청맹과니가 되고 만 겁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바라보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통증처럼 밀려온 허기로 가득찬 마음에 찔레꽃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겁니다. 말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식물을 마음에 담아두려면 마음을 비우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찔레와 해당화 사이에서 큼지막한 꽃송이를 화려하게 피워올린 작약 꽃.

   찔레 꽃은 한창 때를 좀 넘겼습니다. 꽃술 위의 노란 꽃가루는 이미 벌들이 죄다 낚아챘습니다. 아직 꽃잎은 싱싱한 채이지만, 노란 꽃가루를 안고 있는 꽃송이는 몇 안 됩니다. 아마 며칠 지나면 저 꽃잎도 하나 둘 시들어 떨어지겠지요. 찔레 옆에는 이미 낙화를 마친 해당화도 있었어요. 찔레와 해당화 사이에 작약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도대체 이 예쁜 꽃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책상 위에 놓인 한 권의 책 '멸종 위기의 생물들' [언론의 책 소개 기사 보기] 이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라져가는 것들, 혹은 말없이 스러지는 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환기시키고 싶은 까닭이지 싶습니다. 가까운 친구가 정성 들여 만든 이 책은 세계 3대 백과사전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라루스 출판사에서 펴낸 '세계지식사전'의 첫째 권입니다.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는 생명들의 의미를 짚어본 좋은 책입니다.

   임금의 아픔을 치유했던 강원 영월 청령포 관음송의 줄기.

   멸종위기 생물을 다룬 감동적인 책은 여러 권이 있습니다. 새로 나온 이 책은 멸종 위기 생물에 대한 개괄적 이해를 돕는 쉽고도 편한 책입니다. 저는 금세 빠져들어 한 호흡에 다 보았습니다. 그러고서도 책상에서 치우지 못했습니다. 책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한 마음 탓에 이 책은 아마 오래도록 곁에 놔둘 겁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청맹과니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두고두고 곱씹어 읽어야 할 책이지 싶네요.

   지난 주 칼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열마 전에 나무 편지에서 소개했던 '영월 청령포 관음송' 이야기입니다. 555년 전 숙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된 어린 단종의 슬픔과 고통을 치유한 나무입니다. 문득 "나무의 거친 껍질에 등을 대고 앉으면 나무에서 전해오는 미세한 에너지의 변화를 통해 스스로의 호흡 리듬을 바꾸고 고통과 통증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 프랑스의 숲 치료 전문가 패트리스 부샤르동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임금의 아픔을 치유한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의 치유 이야기를 담아 쓴 칼럼이었습니다.

   [칼럼 다시 보기]

   강원 평창 오대산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 걷기만 해도 지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숲길입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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