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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먹지 못해 죽은 아가야, '쌀밥'꽃 피거든 눈으로라도 실컷……

by 丹野 2011. 6. 28.

[나무를 찾아서]  먹지 못해 죽은 아가야, '쌀밥'꽃 피거든 눈으로라도 실컷……

   [2011. 6. 7]

   아마도 아이들을 빼놓고 이팝나무를 생각하는 건 불가능할 듯합니다. 지난 주에 칼럼으로 쓴 천연기념물 제214호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가 있는 까닭입니다.
   [칼럼 다시 보기]
   이팝나무는 여느 큰 나무와 달리 화려한 꽃을 피우는 나무여서 될 수 있으면 꽃이 피었을 때 찾아가려 하게 되는데 이 나무의 개화기가 바로 어린이날 즈음이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게다가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는 마을 뒷동산의 아기 무덤 앞에 심었던 나무들이었고, 그 동산을 지금은 갈아엎고, 아이들의 학교를 세웠으니, 아이들을 빼고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를 생각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나무만으로 보아서 진안 이팝나무보다 더 잘 생긴, 훌륭한 이팝나무들도 많이 있지요. 그래도 봄을 보내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팝나무가 제게는 바로 이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입니다.

   올해는 이팝나무의 개화기를 맞추기 위해 여느 해보다 답사 날짜를 조금 늦추 잡았지요. 평소보다 열흘 정도 늦춘 셈인데도 개화는 덜 이루어졌습니다. 일곱 그루의 이팝나무가 평지리 마령초등학교 정문 양 옆으로 줄지어 서있는데, 모두가 막 꽃망울을 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일곱 그루의 큰 이팝나무의 꽃이 만개했을 때의 모습을 여러 차례 봐온 저로서는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요.

   나무 주변의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엇보다 나무의 키가 훌쩍 커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3백 년 가까이 살아온 나무가 갑자기 키를 키운 건 아니고, 나무 주변의 땅을 평평하게 하기 위해 돋웠던 흙을 걷어낸 바람에 나무가 커 보이는 것이었죠. 예전의 지나친 복토가 아쉽기는 했지만, 학교 울타리라는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싶었는데, 그 아쉬움을 걷어낸 겁니다. 여러 나무 중에 어떤 나무는 걷어낸 흙이 1미터는 넘어 보입니다.

   나무를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바로 옆의 운동장에서 '펑' '펑' 하는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폭음이 들려왔어요. 이 학교의 5학년 어린이 윤호가 손수 만든 물폭탄을 발사하는 소리였어요. 페트병을 이용해 윤호가 손수 만든 물폭탄은 발사음은 그겋다 해도 발사 거리는 무척 길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걸었어요. 물폭탄을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이야기에서 시작했는데, 곁에서 물폭탄 발사를 도와주던 같은 반 어린이 주영이가 으쓱하며, 윤호의 물폭탄 자랑을 늘어 놓았습니다.

   나무 이야기를 물어봤지요. 저 나무들이 어떤 나무인지 아느냐에서 시작했지요. 그러자 주영이가 쪼르르 교실로 뛰어들어가 지난 해의 교지 '마령 글동산'을 들고 나와서 뒤 표지에 실린 나무 이야기를 보여주며 읽어보라 하더군요. 성의껏 읽어본 뒤에 다시 이야기를 걸었어요. 옛날에 굶어 죽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어른들이 심은 나무라는 걸 아느냐 했더니, 선생님께 들어서 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너희들은 요즘 어떻게 사는지 물었지요.

   오른쪽이 물폭탄을 만든 당찬 아이 윤호입니다. 왼쪽은 같은 반 친구 김찬혁 군이고, 윤호의 물폭탄 발사를 돕던 빈주영 양은 나무 줄기 뒤편에 숨어있습니다.

   "굶지 않는 게 뭐 고마운가요?" 윤호의 당찬 반문이었어요. 굶지 않고 사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이야기지요. 흉년 들어 굶어죽는 걸 상상조차 못 했을 요즘 아이의 자연스런 반응일 겁니다. 요즘 아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겠지요. 짐작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아이들의 반응에 잠시나마 오늘의 풍요를 고맙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천천히 고개 들어 아기무덤 앞에서 자라난 이팝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무가 가만히 꽃을 잔뜩 피워올린 나뭇가지를 끄덕이며 긍정의 대답을 던져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부탁했어요. 나무 곁에서 사진을 찍자고요. 아이들은 즐거워 했습니다. 어디선가 윤호의 친구인 찬혁이가 쪼르르 달려나왔습니다. 윤호 주영 찬혁에게 나무를 둘러 싸 보라고 했지요. 환하게 웃으며 나무를 둘러싸고 손을 맞잡은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던지요. 윤호는 사진을 찍는 잠깐 동안에도 자신의 물폭탄을 들고 가서 나무 옆에 내려놓더군요. 카메라 파인더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그림에 순간적으로 옛 슬픈 아비들의 표정이 스치는 듯했습니다.

   지금부터 3백년 전 쯤, 이 마을에는 '아기사리'라는 지방말로 부르던 '아기 무덤' 동산이 있었답니다. 흉년 들어 굶어 죽은 아기들을 고이 묻은 마을 뒷동산이었지요. 아기들이 어미의 빈젖을 문 채 싸늘한 주검으로 스러지면, 아비는 말 한 마디 못 하고, 아기의 시체를 지게에 짊어지고 뒷동산에 올라 양지바른 자리에 고이 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살아서 입으로 먹지 못한 쌀밥을 죽어서 눈으로라도 실컷 먹으라'는 뜻으로 이팝나무 한 그루를 심었던 겁니다.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는 그런 슬픈 사연을 가지고 지난 3백 년 동안 아기 무덤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90년 전, 사람들은 이 동산을 갈아엎고 마치 지난 세월의 한이라도 풀려는 듯,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한 배움의 도량, 초등학교를 세웠습니다. 그게 바로 주영이 윤호가 다니는 마령초등학교입니다. 그때 동산 위의 거의 모든 이팝나무는 베어졌지만, 그 가운데 일곱 그루가 지금 남아있는 겁니다.

   그때의 사연과 현재의 모습, 그리고 마령초등학교 5학년인 윤호와 주영이의 이야기는 칼럼에 썼기에 여기에 다시 베껴 옮기지 않습니다. [칼럼 다시 보기]

   이팝나무 꽃 그늘 곁에서 손수 만든 물폭탄을 쏴 올리며 한껏 즐거워 하던 윤호와 주영의 그야말로 천진무구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언제까지라도 소중하게 우리가 끝내 지켜가야 할 이 땅 모두의 희망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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