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많이 피어도 눈에 담아내기는 쉽지 않은 튤립나무의 꽃

by 丹野 2011. 6. 27.

[나무 생각] 많이 피어도 눈에 담아내기는 쉽지 않은 튤립나무의 꽃

   큰 키의 나무 가지 위에서 탐스럽게 피어난 튤립나무 꽃.

   [2011. 6. 27]

   튤립나무(Liriodendron tulipifera L.) 꽃을 봤습니다. 튤립나무가 언제 꽃을 피웠는지, 그리고 언제 시들어 떨어졌는지를 짚어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계절이 아쉬웠는데, 비교적 개화가 늦은 천리포수목원에는 튤립나무 꽃이 한창이었습니다. 사실 튤립나무의 꽃은 피어났다는 걸 알아도 자세히 살펴 보기는 쉽지 않지요. 큰 키로 훌쩍 솟아오른 나뭇가지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어서 웬만해서는 찾아내기도 어려운 꽃이죠.

   게다가 높은 가지 위에서 피어난 이 예쁜 꽃은 무성하게 돋아난 넓은 나뭇잎들에 가리워지기 십상이어서, 마음 먹고 살펴보지 않으면 일쑤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목련처럼 잎이 없는 상태에서 피어나는 것도 아니고, 또 한꺼번에 많은 꽃을 피우는 게 아닌 까닭에 더 그렇습니다. 큰 나무의 중간중간에 다문다문 피어나는 꽃을 찾아내는 건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봤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워지는 게 튤립나무의 꽃입니다.

   튤립나무는 튤립을 닮은 넓은 잎도 한번 눈에 담아두면 잊지 못할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쉽게 볼 수 없는 꽃이기에 찾아냈을 때의 반가움은 여느 꽃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크답니다. 주황 빛 꽃잎에 붉은 반점을 가진 이 꽃이 튤립 꽃을 쏙 빼닮았기에 이름도 튤립나무가 됐지요. 백합나무 혹은 목백합이라고도 부르는데, 꽃 모양에서, 튤립 꽃보다 백합 꽃을 먼저 떠올렸기에 붙인 겁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이 세 가지 이름을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기준으로 하는 이창복 선생님의 '대한식물도감'에는 '튤립나무'로 돼 있습니다. 이 도감의 옛 판에는 '튜울립나무'로 돼 있었지만, 최근 개정판에서 '튤립나무'로 고쳤습니다.

   워낙 큰 키로 자라는 나무의 가지 위에서 피어나는 튤립나무의 꽃을 사진에 제대로 담아 내기 위해서는 웬만한 카메라 렌즈로는 택도 없습니다. 적어도 200밀리 이상의 망원렌즈가 꼭 필요합니다. 물론 운 좋게 아직 덜 자란 튤립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을 볼 수 있는 행운이 있다면 좋겠지만, 최소한 그런 일이 아직은 제게 없었습니다. 제가 망원렌즈를 갖추게 된 것도 바로 튤립나무의 꽃을 사진에 담고 싶어서였습니다.

   영락없이 튤립을 닮은 꽃의 안쪽 모양은 목련을 닮았습니다.

   망원렌즈를 들고, 튤립나무 아래에 오래 머무른다고 해서 튤립나무의 꽃을 온전히 살펴보고, 또 원하는 만큼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기껏해봐야 꽃잎 바깥쪽을 쳐다보는 데에 만족할 수밖에요. 그래서 궁금한 건 튤립나무의 꽃술을 포함한 속살입니다. 튤립나무는 목련과에 속하는 나무여서, 꽃술은 목련을 닮았다는 걸, 식물도감을 통해 알 수는 있지만, 아직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어, 궁금합니다.

   튤립나무는 생각보다 흔하고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입니다. 집 앞 길가의 가로수 가운데에도 튤립나무는 많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사는 집 주위 뿐이 아니라, 아마 대개의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흔히 플라타너스라고 부르는 양버즘나무와 함께 가로수로 많이 심어 키우는 나무이니까요. 잎이 크다는 점에서 양버즘나무로 착각하는 분들도 많으십니다. 그러나 두 나무는 엄연히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입니다.

   높은 가지 위에서 피어나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튤립나무도 꽤 많은 꽃을 피웁니다.

   양버즘나무와 튤립나무를 구별하기 가장 쉬운 차이점은 줄기 껍질에 버짐(참고: 예전에는 '버즘'을 표준어로 했는데, 1988년의 표준어 규정 때에 '버짐'으로 표준어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식물이름은 옛이름 그대로 '버즘나무' '양버즘나무'로 표기합니다.)과 같은 얼룩입니다. 얼굴에 버짐이 피어나듯 흰 얼룩이 줄기 전체에 번져 있으면 그건 플라타너스, 즉 양버즘나무이고, 얕게 파인 굴곡이 고르게 뻗어있으면서도 매끈한 피부를 가진 나무라면 튤립나무입니다. 또 잎 모양이 불규칙한 양버즘나무와 달리 튤립나무는 위의 사진처럼 규칙적이면서도 예쁜 모습을 가졌으니 오가며 관찰하시면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을 겁니다.

   대개의 나무가 그렇긴 하지만, 튤립나무는 일단 정을 들이고 바라보기 시작하면, 분명히 아주 빠르게 깊은 정이 드는 나무입니다. 혹시 늘 다니시는 거리의 가로수 가운데에서 한 그루 쯤의 튤립나무를 찾으신다면, 그 나무는 아마도 오랫동안 걸음을 붙잡는 나무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튤립나무는 잎 모양이 예쁘기도 하지만 그 큰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도 참 예쁘거든요.

   튤립나무가 최근에는 아까시나무를 대체할 밀원식물로 관심을 끕니다.

   물론 꼭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서울과 같은 도시, 특히 양버즘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은 거리에서라면 튤립나무도 거의 찾아볼 수 있지 싶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튤립나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져서 도시에서도 많이 심거든요. 튤립나무의 음이온 생성 능력이 양버즘나무를 훨씬 능가할 뿐 아니라, 가로수로 심는 모든 나무에 비해 월등해서, 도시 가로수로서는 더 없이 좋은 나무입니다.

   지난 20일에는 우리나라 양봉농가의 대표적 밀원식물인 아까시나무를 대체할 나무로 이 튤립나무의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있기도 했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발표였지요. 아까시나무가 기후 변화와 병충해 등으로 쇠퇴하는 추세로 새로운 밀원 식물을 찾아내면서 얻어낸 연구 결과였습니다. 아직 대중화하지는 않았지만, 산림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꿀의 맛과 향을 다양하게 하는 말토스(Maltose)와 미네랄의 함량이 높아 튤립나무의 꿀은 인기가 높을 것이라고 합니다.

   강원 삼척 궁촌리 음나무 앞에서 나무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나무의사 이태선 님(오른쪽)과 김철응 님.

   국내 양봉농가의 새로운 기대주로 관심을 받을 정도라는 이야기는 달리 보면, 튤립나무에서도 아까시나무 못지 않게 많은 꿀을 가지는 꽃이 많이 피어난다는 이야기인데, 그걸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겁니다. 아마 앞으로 튤립나무 꿀을 생산하기 위해서 튤립나무 농원을 조성한다면, 그곳에 찾아가서라도 튤립나무 꽃을 더 세심하게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오늘도 마무리에서는 신문에 쓴 칼럼을 소개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 된 음나무를 소개했습니다. 무려 1천 살이나 되는 강원도 삼척 근덕면 궁촌리에 있는 훌륭한 음나무입니다. 나무를 찾아갔을 때 마침 나무의 건강을 돌보러 나온 나무의사 두 분을 만나뵈었습니다. 두 분 중 이태선 님께서는 제 이름을 듣고는 제가 전에 냈던 책들을 여러 권 보셔서 제 이름을 알고 있다고 반가워 하셨습니다.

   정초와 단오 때에 큰 굿을 올리는 궁촌리 음나무의 듬직한 줄기 부분.

   그 분의 나무 치료 이야기를 담아서 소개한 나무 이야기입니다. 음나무는 특히 잡귀를 막아준다는 믿음이 전하는 나무이지요. 이 궁촌리 음나무는 이같은 믿음 때문에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이 살해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기대어 살았던 나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나무입니다.

   [신문 칼럼 다시 보기]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2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