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먹지 못해 죽은 아가야, '쌀밥'꽃 피거든 눈으로라도 실컷…… | |
[2011. 6. 7] | |
올해는 이팝나무의 개화기를 맞추기 위해 여느 해보다 답사 날짜를 조금 늦추 잡았지요. 평소보다 열흘 정도 늦춘 셈인데도 개화는 덜 이루어졌습니다. 일곱 그루의 이팝나무가 평지리 마령초등학교 정문 양 옆으로 줄지어 서있는데, 모두가 막 꽃망울을 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일곱 그루의 큰 이팝나무의 꽃이 만개했을 때의 모습을 여러 차례 봐온 저로서는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요. | |
나무를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바로 옆의 운동장에서 '펑' '펑' 하는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폭음이 들려왔어요. 이 학교의 5학년 어린이 윤호가 손수 만든 물폭탄을 발사하는 소리였어요. 페트병을 이용해 윤호가 손수 만든 물폭탄은 발사음은 그겋다 해도 발사 거리는 무척 길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걸었어요. 물폭탄을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이야기에서 시작했는데, 곁에서 물폭탄 발사를 도와주던 같은 반 어린이 주영이가 으쓱하며, 윤호의 물폭탄 자랑을 늘어 놓았습니다. | |
오른쪽이 물폭탄을 만든 당찬 아이 윤호입니다. 왼쪽은 같은 반 친구 김찬혁 군이고, 윤호의 물폭탄 발사를 돕던 빈주영 양은 나무 줄기 뒤편에 숨어있습니다. | |
"굶지 않는 게 뭐 고마운가요?" 윤호의 당찬 반문이었어요. 굶지 않고 사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이야기지요. 흉년 들어 굶어죽는 걸 상상조차 못 했을 요즘 아이의 자연스런 반응일 겁니다. 요즘 아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겠지요. 짐작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아이들의 반응에 잠시나마 오늘의 풍요를 고맙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천천히 고개 들어 아기무덤 앞에서 자라난 이팝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무가 가만히 꽃을 잔뜩 피워올린 나뭇가지를 끄덕이며 긍정의 대답을 던져왔습니다. | |
지금부터 3백년 전 쯤, 이 마을에는 '아기사리'라는 지방말로 부르던 '아기 무덤' 동산이 있었답니다. 흉년 들어 굶어 죽은 아기들을 고이 묻은 마을 뒷동산이었지요. 아기들이 어미의 빈젖을 문 채 싸늘한 주검으로 스러지면, 아비는 말 한 마디 못 하고, 아기의 시체를 지게에 짊어지고 뒷동산에 올라 양지바른 자리에 고이 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살아서 입으로 먹지 못한 쌀밥을 죽어서 눈으로라도 실컷 먹으라'는 뜻으로 이팝나무 한 그루를 심었던 겁니다. | |
그때의 사연과 현재의 모습, 그리고 마령초등학교 5학년인 윤호와 주영이의 이야기는 칼럼에 썼기에 여기에 다시 베껴 옮기지 않습니다. [칼럼 다시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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