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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바위 위에 자리잡고 큰 바위를 쪼개며 살아온 소나무

by 丹野 2011. 6. 27.

[나무를 찾아서] 바위 위에 자리잡고 큰 바위를 쪼개며 살아온 소나무

   산 중턱의 커다란 너럭바위를 뚫고 솟아오른 문암송의 늠름한 기세.

   [2011. 6. 13]

   바위를 뚫고 솟아오른 소나무 이야기는 '나무 편지'에서 여러 차례 예고해 드렸던 듯합니다. 가장 먼저 알려드린 건 지난 3월 초, 역시 바위를 ?b고 그 바위를 쪼개며 살아낸 절집의 느티나무 이야기를 담은 '나무 편지' (다시 보기) 에서였습니다. 신비로운 생명력의 느티나무 이야기를 하면서 그 끝에서 '문암송'의 존재를 알려드렸지요.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이 나무를 찾아서 멀리 경남 하동 지방을 다녀왔고, 지난 주에 '나무 엽서' (다시 보기) 에서 이 문암송 이야기를 신문 칼럼 원고로 작성 중이라고 알려 드렸습니다. 말씀 올린대로 연재 중인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칼럼에 문암송과 그 나무의 오묘한 생명력에 기대어 살아가는 경상남도 하동 축지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칼럼 다시 보기]

   바위 한가운데를 쪼개며 틈을 비집고 솟아난 듯한 모습의 문암송의 줄기.

   2008년 봄에 천연기념물 제491호로 지정된 문암송은 규모로 보아 그리 큰 나무는 아닙니다. 규모보다는 그가 자리잡고 살아가는 방식이 놀라운 거죠.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커다란 바위에서 자라는 소나무입니다. 그것도 바위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자리잡은 까닭에 서 있는 모습 자체가 적잖이 불안해 보이는 형상입니다.

   수백 년을 저리 불편한 자세로 살아왔을 그는 이제 그 불편함을 즐기는 듯 느긋한 모습이 됐습니다. 그래서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도 처음엔 불편하지만 조금만 더 가만히 바라보면 그의 불편함이 신비로움으로 바뀝니다. 바람에 날려온 먼지와 흙 한 줌이 고작이었을 바위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긴 세월을 저만큼 크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무가 자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 바위를 둘로 쩍 가르며 불편하지만 넉넉한 자세로 바위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형상을 한 문암송 뿌리 부분.

   뿌리가 파고들어야 했을 바위의 가운데 부분은 쩍 갈라졌습니다. 그 안쪽의 깊은 어둠은 눈을 들이박고 짚어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먹 하나 쯤은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는 그 안에서 뿌리의 속살은 잡히지 않습니다. 깊은 적막의 허공입니다. 그 적막궁산 위에 자리잡은 나무는 바위가 더 쪼개지지 않도록 뿌리를 옆으로 뻗어서 바위를 붙들어 안았습니다. 자기가 살기 위한 안간힘이었겠지요.

   쪼개진 바위에는 옛 사람들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바위의 평평한 부분을 조금 더 파낸 뒤에 '소나무를 노래함' 이라는 뜻으로 '?松'이라 쓰고, 알듯 말듯한 한자 글을 새겨 넣은 거지요. 멀리로 악양 들판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이 자리는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자주 모여 시회(詩會)를 벌이기도 했답니다. 바위에 새긴 옛 사람들의 흔적도 그런 시회의 흔적 가운데 하나이려니 생각해 봅니다.

   멀리 악양 들녘을 내다보며 詩會를 벌이던 옛 사람들이 바위에 남긴 흔적.

   나무 옆으로 난 조붓한 길은 언제부터인지, '지리산둘레길'의 한 코스로 끼어든 모양입니다. 나무 바로 아래의 정자 앞 길가에는 둘레길을 알리는 표지가 세워졌고, 바닥에는 화살표가 선명하게 표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 앞에 머물렀던 한나절 내내 지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무 아래 쪽으로 이어지는 마을 풍경은 여느 농촌 마을처럼 평화롭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문바위 나무'라고 부릅니다. 그 분들의 조금 센 발음을 그대로 옮기자면 '문빠위 나무'라고 써야 할 겁니다. 나무가 뿌리내린 바위가 문바위이기 때문이지요. 한자로는 문암(文岩)이라고 씁니다. '문빠위 나무'라는 이름이 훨씬 정겹지만, 천연기념물 이름은 그래서 문암송이라고 돼 있습니다. 나무를 지탱하고 있는 바위 위에 올라 옛 사람들의 시회를 떠올리며 홀로 나무의 시를 읊조리는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하늘로 뻗어올라 넓게 펼친 문암송의 싱그러운 가지.

   나무 그늘 곁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나무의 영험한 생명력에 기대어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처음엔 밭에서 김을 매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 아낙들에게 이장 댁을 물어 찾아갔습니다. 마침 연세 지긋한 이장님은 출타 중이시고, 이장 댁 사모님만 계셨어요. 문빠위 나무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자, 사모님은 그건 이장 님이 잘 들려주실 거라며, 이장 님의 휴대전화를 호출해 보시지만, 전화를 받지 않으셨어요.

   그러자 사모님은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 앞의 점방에 가면 이장의 형수님이 계실 거라며, 그 분이 이 마을에 오래 살았으니 나무 이야기를 잘 이야기해 주실 거라 했습니다. 사모님 말씀대로 이곳 대축마을 입구의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는 점방이 하나 있습니다. 점방에는 이장님의 형수인 팔순 가까이 되신 조분수 할머니가 계셨고, 마을의 다른 노파 두 분이 마실나와 있었습니다.

   문암송이 뿌리내린 바위 위에 오르면 널리 악양 들판이 훤히 내다보인다.

   문빠위 나무 이야기를 묻자 처음엔 더듬더듬하시더니, 곧바로 이야기에 속도를 내시며 세 분이 앞다퉈 옛 이야기를 풀어내셨습니다. 늘 그렇듯이 꽤 긴 시간을 점방 안방 문앞의 쪽마루 아래에 턱을 받치고 쪼그리고 앉아 노인들의 말씀에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문빠위 나무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긁어모은 게 지난 칼럼의 내용입니다. 노파들과 나눈 얼마 되지 않는 이야기는 칼럼에 실었습니다.

   [칼럼 다시 보기]

   노파들에게는 문빠위 나무 곁에 있는 또 한 그루의 나무도 자랑입니다. 꽤 큼지막한 서어나무인데, 이 나무 역시 바위 위에 서있습니다. 바위가 그리 큰 바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바위 틈을 뚫고 뿌리를 내리고 자란 겁니다. 물론 이 부근이 바위가 많은 지대여서 그렇긴 하지만, 바위를 쪼개면서 살아가는 큰 나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마을 노인들은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건강한 거라고 이야기하십니다. 문빠위 나무가 살아있는 경남 하동 축지리 대축마을은 사람과 나무가 더불어 살아가면서 빚어내는 생명력이 풍요로운 마을입니다.

   문암송 바로 옆에서 작은 바위를 뚫고 솟아오른 한 그루의 커다란 서어나무.

   봄 가고 여름 오는 계절의 질서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절입니다. 봄인 줄 알았다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화들짝 여름 기운에 놀라야 했던 것처럼 우리가 채 알아채기 전에 숲의 색깔이 바뀔 지 모릅니다. 그 흐름에 제대로 따르기 어려운 우리 몸 건강도 잘 보살펴야 할 겁니다. 바쁘고 힘들어도 하늘 한번씩 쳐다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 건강한 여름 맞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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