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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시인을 닮은 농부와 농부를 닮은 시인, 그들의 나무

by 丹野 2011. 6. 16.

[나무를 찾아서] 시인을 닮은 농부와 농부를 닮은 시인, 그들의 나무

   젊은 시인 최인서씨가 하염없이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를 눈길로 어루만지는 모습. 나무 아래로 마을 농부가 지나갑니다.

   [2011. 5. 30]

   올에는 거의 모든 나무들이 그렇지만, 이팝나무도 예년에 비해 개화가 늦습니다. 대개는 어린이날 즈음에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올에는 그보다 열흘 정도 지나서야 하얀 이팝나무 꽃이 피어났습니다. 이팝나무는 옛날에는 남부 지방에서만 자라던 나무였지만, 기후 변화로 따뜻해진 요즘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적잖이 볼 수 있게 됐지요. 하지만 오래 된 노거수 이팝나무를 보려면 아무래도 오래 전부터 이팝나무를 키우던 남부 지방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의 남부 지방에는 수형도 좋고, 꽃도 아름다운 이팝나무가 적지 않습니다만, 그 많은 이팝나무 가운데에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이팝나무는 전남 순천과 전북 진안의 이팝나무입니다. 거의 해를 거르지 않고 찾아보는 나무이지요. 이번에도 또 개화기에 맞추어 그 두 그루의 나무를 찾아 보았습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서 있는 진안의 이팝나무는 짐작과 달리 아직 꽃을 덜 피웠습니다. 나무 앞에서 손수 제작한 물폭탄 실험을 하던 초등학교 5학년의 소년 나윤호 군의 이야기는 다음 칼럼으로 소개하겠습니다.

   마을 어귀의 정자와 절묘하다 할 만큼 잘 어울리는 평중리 이팝나무의 풍경.

   진안보다 남쪽인 순천에서는 이팝나무가 때마침 절정의 아름다움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36호인 전남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는 나무의 생김새나 건강 상태가 모두 탁월한 나무이지요. 게다가 나무 주변의 풍경이 이팝나무와 잘 어울려서 이팝나무 개화기가 되면 해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무입니다. 오래 전부터 농촌에서는 이팝나무의 꽃이 활짝 예쁘게 피어나면 풍년이 들고 그 반대일 경우에는 흉년이 든다고 믿어 왔는데, 바로 이 나무 앞으로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거든요.

   마치 나무 앞으로 펼친 마을 앞 논의 농사를 관장하는 듯한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서있는 평중리 이팝나무는 오래 된 농촌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합니다. 모내기 철에 피어나는 이팝나무 꽃이 나무 전체를 뒤덮을 듯 하얗게 피어나고, 그 앞으로 펼쳐진 앞논에서 마을 농부들이 일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우리네 농촌 풍경의 상징이라 해도 될 겁니다. 해마다 이팝나무 개화기를 그냥 스쳐 지나지 못하고, 이곳 평중리를 찾게 되는 이유입니다.

   4백 년을 살아온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의 우람한 줄기.

   개화기가 다른 나무에 비해 비교적 긴 편이어서, 이팝나무 답사는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번번이 절정의 시기를 맞추는 건 쉽지 않습니다. 올해처럼 개화기의 변동이 심해 꽃이 피어나기 전에 찾아갈 때도 있고, 또 일상에 쫓기다 개화 시기를 놓쳐 낙화 후에 찾아보는 경우도 있었지요. 4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그때는 마침 답사 바로 전 날에 하루 종일 내린 비로 풍성하게 피어났던 이팝나무의 꽃이 한 송이 남지 않고 죄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걸 바라보며 아쉬워 하고 있다가 나무 앞의 논에서 일하시던 농부 이순옥 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지요. 성함은 여성형에 가깝습니다만, 올해 예순 아홉 되신 남자 어른이십니다. 다음부터는 미리 전화를 해 보고 찾아오라며, 농부 이순옥 님은 선뜻 제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셨고, 또 여유가 되면 미리 전화를 넣어주시겠다시며 제 전화번호를 적어달라 하셨습니다. 그 이듬해부터는 그 분이 이끌어주는 꽃 소식 따라 평중리 이팝나무를 행복한 마음으로 찾아가게 됐지요.

   푸른 이끼가 얹혀진 평중리 이팝나무의 줄기 표면.

   이번 답사에서는 나무 앞에서 그 분을 전화로가 아니라, 직접 뵈올 수 있었습니다. 나무 앞에 한참 머무르면서, 오가는 마을 분들과 나무 이야기를 나눈 뒤에 돌아서려던 참이었지요. 나무 바로 앞으로 경운기를 몰고 나오시는 이순옥 님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꽃을 활짝 피운 이팝나무만으로도 마음이 벅찼는데, 거기서 꽃소식을 전해주시던 농부 이순옥 님을 오랜만에 다시 뵈올 수 있어서 그 날의 답사는 더 없이 행복했습니다.

   답사 길은 늘 혼자이지만, 이번 이팝나무 답사에는 동행이 있었습니다. 바로 평중리 이팝나무에서 멀지 않은 낙안읍성 마을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스무 살 될 때까지 자란 젊은 시인이 하루를 같이 했습니다. 제가 시인에게 동행해 주기를 청했습니다. 고향 마을의 나무를 바라보는 시인의 느낌을 알고 싶었던 때문이었지요.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고향의 나무가 화려하게 꽃피운 모습을 보면서 시인도 이번 답사를 흡족해 했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저도 좋았습니다.

   나무 옆으로는 오래 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커다란 바위가 줄을 지어 놓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시인의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집을 함께 찾아갔습니다. 낙안읍성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안 걸릴 듯한 그의 고향 집 뒤란 울타리에는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고, 앞 뜰에는 철쭉이 분홍 꽃을 활짝 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뒤란에서 앞마당까지 온통 나무로 가득했습니다. 나무를 좋아하시는 그의 아버지께서 정성 들여 가꾸신 온갖가지 나무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집입니다. 애써 꾸민 인공미가 아니라, 시골 집에 잘 어울리는 자연미가 넘쳐 흐르는 집입니다.

   마루에 걸터앉아 앞마당의 나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집입니다. 농부의 마음으로 나무를 가꾸시는 시인의 아버지 역시 오래 전부터 시작 활동을 해 오신 시인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후한 대접을 받으며 부모님들과 나눈 소중한 나무 이야기들은 아마 오래 기억하게 될 겁니다. 이번 답사는 그렇게 시인의 마음을 가진 농부, 농부의 마음을 가진 시인과 함께 한 행복한 답사였습니다. 그 행복한 마음으로 칼럼을 쓰게 됐지요.

    [신문 칼럼 다시 보기]

   오래도록 잊지 못할 만큼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 평중리 이팝나무.

   신문에 자세히 쓴 나무 이야기는 번번이 그렇게 한 것처럼 여기에 다시 베껴 옮기지 않습니다. 제게 지면을 배려해주시는 분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겠지요. 거의 한 면 전체를 털어서 쓰는 칼럼인데, 아쉬운 것은 신문에서 다양한 사진을 보여드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무 편지]에서는 신문에 실리지 않은 사진을 골라서 보내드립니다. 다시 보기로 보시기가 번거로우시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