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기로 시간 여행 떠나볼까
| |||||
겨울이 깊어 가면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여행이 그리워진다. 때문에 피한(避寒)여행을 위해 남도로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엄동설한의 한반도에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느 곳에도 없다. 코끝이 쨍하도록 시린 겨울바람을 맞아가며,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절경을 찾아가는 것이 겨울 여행의 묘미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따뜻한 실내에서 수 천만 년 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하는 공룡박물관 투어도 추위를 피하는 여행으로 좋은 대안이 된다. 우리나라 남해안은 공룡들의 천국이었던 모양이다. 공룡이 뛰어다니고 익룡이 날아다녔던 흔적들이 전남의 해남이나 보성, 화순, 여수, 그리고 경남 고성 등지에서 발견된다. 이 공룡화석지들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신청을 해 둔 상태이고 금년 6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세계문화유산대회 에서 등재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항리에서 처음 공룡발자국이 된 때는 1992년. 한국자원연구소의 지질학 연구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들은 백악기(약 9천만년 전)의 공룡발자국 화석 514점, 익룡발자국 화석 443점, 새발자국 화석 약 천 여점 등인데 동일지층에서 공룡, 익룡, 새발자국 화석이 동시에 발견된 세계 최초의 지역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의 지명을 딴 학명을 갖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익룡발자국은 해남 이크누스, 우항리 엔시스 이고, 물갈퀴 새발자국은 우항리 크누스전아이, 황산 이패스조아이라이다. 이렇게 지명이 들어가 있는 학명을 얻게 된 배경은 세계적인 신종학명으로 보고된 유일한 화석지라는 학술적 가치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우항리 공룡발자국화석지에는 2007년 4월 문을 연 공룡박물관을 비롯해 조각류 공룡관, 익룡·조류관, 대형공룡관 등 전시관과 보호각 건물들이 있다. 공룡박물관 가운데 국내 최대 규모로 평가받고 있는 라는 박물관에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알로사우루스 진품화석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3번째로 전시되는 조바리아, 티라노사우루스 등 공룡 화석들도 전시되고 있어 마치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서 있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박물관 구경 후 실제 공룡의 발자국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일. 공룡발자국 화석은 호숫가를 따라 어른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까지 이어진다. 발견당시 발자국은 화석지가 외부에 노출돼 있었지만 지금은 대형공룡관, 익룡·조류관, 조각류공룡관으로 분류하여 화석 주변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보호각을 씌워놓았다. 지금처럼 추운 겨울에는 실내에서 관찰을 할 수 있어 좋다. 공룡을 테마로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된 박물관이지만 겨울방학을 맞아 전남 무형문화재 탱화장 31호로 활동했던 故 고재석 선생의 유고작품과 동양화가 고성주 선생의 작품 22점이 전시하는 기획전도 진행되고 있다. 이밖에도 공룡탁본 찍기와 어린이 공룡교실 체험장 운영, 공룡스탬프 찍기, 공룡영화상영 등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체험교실도 운영되고 있다. 기획전과 체험교실 운영은 1월 30일까지. 관람시간은 매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이며(3~10월 토,일,공휴일에 한하여 1시간 연장/ 마감시간 1시간 전 입장완료)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해남군수가 정하는 날에 휴관한다. 관람요금: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우항리 공룡박물관 (http://uhangridinopia.haenam.go.kr/ 061-532-7225) |
.공룡 화석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
한반도의 공룡 화석은 전라남도 해남을 제외하면 경상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곳은 바로 중생대 백악기 호수 퇴적층이 있는 경상분지이다.
경상남도 고성군 덕명리 해안 |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공룡 화석은 1972년 경상남도 하동군 금산면에서 발견된 알껍데기 화석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의성, 대구, 경산, 경주, 울산, 고성, 함안, 창원, 거제 등 경상도와, 전라남도 해남 등지에서 약 6,500여개의 발자국 화석이 확인됐다. 이로써 한반도 남부지방은 중생대 백악기에 공룡 밀집지역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지역 가운데 특히 경상북도 의성군 탑리,경상남도 고성군 덕명리 일대, 전라남도 해남 우항리 일대는 대표적인 공룡 발자국 화석 지대이다.
경상북도 의성군에서는 1973년에 초기 백악기에 살았던 목긴공룡의 왼쪽 다리 뼈화석을 시작으로 많은 공룡 화석이 발굴되어 왔다. 이 왼쪽 다리 뼈화석은 탑리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길이가 60cm나 되었으며. 부근에서 공룡의 갈비뼈와 발톱화석,이빨화석 등이 발굴되었다. 또한 제오리 대추벌에 가면 천연기념물 373호로 지정된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이 곳에는 길 옆의 경사면을 따라 공룡 발자국 수십 개가 찍혀 있는데,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의 발자국이 함께 나타난다. 학미리에서도 공룡 발자국 20여 개가 발견되었다.
▲ 두발 공룡의 발자국(경남 고성군 덕명리) |
▲ 네발 공룡의 발자국(경남 고성군 덕명리) |
경상남도 고성군 덕명리 상족유원지에서 실바위까지 6km에 걸친 해안에도 백악기 한반도에 살았던 공룡 발자국 화석이 널려 있다.
이 곳 해안의 퇴적암은 거의 수평으로 놓여 있으며, 바닷물에 깎인 넓은 퇴적 암반 위에 직경 30cm가량의 물웅덩이가 일정한 간격으로 있다. 이 곳은 우리 나라 최대 규모이며, 세계 3대 공룡발자국의 하나이다. 네 발로 걸었던 공룡 발자국은 두 줄로 나타나고 두 발로 걸었던 공룡은 한 줄로 나타났는데, 이 곳에는 특히 초식공룡인 조각류의 발자국이 2,300여개나 발견된다.
▲ 새발자국 화석 |
또한 공룡의 발자국 화석 속에 다양한 새발자국 화석이 나타난다. 이 중에는 코레아노르니스 하마넨시스(Koreanorinis hamanensis)와 진동오르니페스 키마이(Jindongornipes kimi)라는 우리말 학명을 갖는 새로운 종류의 새발자국도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 우항리에도 목긴공룡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익룡발자국, 새발자국, 식물화석 등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익룡발자국은 세계 최대 규모이며, 큰 것은 그 길이가 30cm에 이른다. 물갈퀴가 달린 새발자국은 지금까지 발견된 새발자국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화석이다. 이 중에서 새로 발견된 우항리쿠스 추나이(Uhangrichus chuni), 황사니페스 조아이(Hwangsanipes choughi)라고 명명된 두 종류의 물새발자국은 우리 나라 지명이 붙은 고유한 학명을 갖게 되었다. 우항리 화석지대의 특징은 목긴공룡, 육식공룡, 익룡, 새들이 같이 나온다는 점이다.
그 밖에 울산시 두동면 천전리에서도 경상남도 문화재 212호로 지정된 공룡발자국 화석지가 있다. 여기에서는 발자국과 함께 신석기 시대에 그려진 그림,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도 볼 수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양구의 넓은 하천 암반에서는 척추화석 뼈가 나왔다.
어떤 공룡과 새들이 살았나
오랜 세월 동안 호수에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백악기층, 경상분지에서 공룡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땅덩어리에 비해서 공룡화석이 많이 발견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발자국 화석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다는 사실이 왜 의미 있고 중요할까?
결정적인 증거, 발자국
발자국 화석은 공룡이 그 지역에 살았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골격은 강물에 흘러가기도 하고 육식공룡에 의해 다른 곳으로 운반되기도 하기 때문에 공룡이 살았던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 그리고 공룡 연구가들은 발자국 화석만으로도 공룡의 종류, 크기, 걸음 속도, 걷는 자세 등을 알아낼 수 있다. 즉 공룡이 두 다리로 걸었는지, 네 다리로 걸었는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같은 종류의 발자국이 촘촘하면 걸어간 자국이고, 떨어져 있으면 뛰어 간 자국이라고 한다. 또한 공룡 다리의 길이는 발바닥 길이의 네 배쯤 된다고 한다.
▲ 두발 공룡의 발자국 |
▲네발 공룡의 발자국 |
초식공룡, 목긴공룡
목긴공룡은 대표적인 초식공룡으로서 쥬라기에 전대륙에 걸쳐 번성했던 공룡이다. 목긴공룡은 쥬라기 말기가 되면서 줄어들기 시작했고 백악기가 시작되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까지는 백악기 초기의 목긴공룡 화석이 발굴된 적은 거의 없었는데, 백악기 초기의 목긴공룡의 뼈화석과 발자국 화석이 한반도에서 무더기로 나왔다. 또한 목긴공룡의 이빨 화석도 세 개나 발견되었다. 이 이빨들은 유럽과 북미와 중국에서 발견된 목긴공룡의 이빨과도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백악기에는 북미와 유럽과 중국의 목긴 공룡이 연결되어 있던 대륙을 따라 한반도로 이동해 온 것이 아닐까?
조각류에서 오리주둥이 공룡까지
한반도에는 목긴공룡도 많았지만, 역시 초식공룡이었던 조각류도 많았다. 조각류는 새의 엉덩이뼈를 닮은 조반류로서 나중에 오리주둥이 공룡으로 진화한다. 오리주둥이 공룡은 백악기에 가장 흔했던 공룡으로 아시아와 북아메리카에 살았다. 입에 오리 부리처럼 평평한 부리가 있고 앞다리는 길고 가늘었으며, 앞발가락에 물갈퀴가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되는 공룡 발자국의 85%는 바로 이 조각류의 발자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뒷발로 걸어간 흔적이 3000여 개가 넘는다.
네발로 걸어다닌 익룡
또한 한반도 곳곳에서 육식공룡의 발자국, 발톱, 이빨 화석도 발견된다. 그렇지만 발자국이나 이빨, 발톱만으로 한반도에 살았을 육식공룡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내기는 어렵다.
익룡은 날아다니기 때문에 발자국 화석이 드물다. 그런데 익룡 발자국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반도에서 발견되었다. 이로써 익룡이 두 발로 걸었을까 아니면 네 발로 걸었을까하는 고생물학계의 오랜 논쟁거리가 해결되었다. 익룡 발자국을 보면 익룡은 날개를 접은 채로 네 발로 걸었다.
익룡 발자국 이외에도 물갈퀴가 달린 새발자국이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새발자국 화석은 백악기에 이미 다양한 새들이 번성해 공룡과 함께 살았다는 것는 보여준다.
▲ 육식공룡의 모습. 발톱이 날카롭고 앞발을 사용한다. |
▲ 초식공룡의 모습. 목이 길다 |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을 구별하는 방법 |
공룡의 종류는 엉덩이 뼈의 생김새에 따라 나누는데, 크게 새의 엉덩이뼈를 닮은 조반류와 도마뱀의 엉덩이뼈를 닮은 용반류로 나눈다. 초식동물은 대부분 조반류이고 육식동물은 용반류이다. 공룡의 엉덩이뼈는 장골,치골,좌골로 나뉘어 있는데, 좌골과 치골이 'ㅅ'의 각도를 이루면 용반류이고 나란히 평행을 이루면 초식공룡이다. 몸집이 아주 크고 네 다리로 걷는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초식공룡이면서도 골반은 용반류이다. 초식공룡은 풀을 잘 갈아서 먹을 수 있도록 평평한 이빨을 가졌고, 육식 공룡은 고기를 잘 찢을 수 있도록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다. 이빨 모양 외에도 공룡의 위 속에 남아 있는 음식물이나 똥 화석을 보면 구별할 수 있다. |
*백악 |
중생대의 마지막 시기인 백악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백악기에 만들어진 부드럽고 작은 알갱이로 된 하얀 석회암으로 우리가 흔히 쵸크하고 부르는 것이다. 백악이 석회암과 다른 점은 암석처럼 단단하지 않고 쉽게 부서진다는 점이다. 백악은 주로 탄산칼슘 성분의 작은 조개껍데기나 방해석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악층에는 주로 바다뱀, 파충류, 어류, 조류 화석이 들어 있다. 치약,분필, 부드러운 연마제, 페인트, 분가루 등을 만드는데 쓰인다. |
공룡 멸종의 수수께끼
1억 6천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해오던 공룡이 6천 5백만 년전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졌다. 왜 공룡들이 갑자기 사라졌을까?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밝히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제시되어 왔다. 공룡의 멸종을 설명하는 많은 가설들이 제시되었다. 기후가 악화되어 장기간 녹색 잎이 결핍되어서 먹이 공급에 영향을 줌으로써 멸종되었다는설, 또는 알을 훔쳐 먹는 포유류와의 경쟁에서 밀려서 멸종했다는 설, 또는 운석 충돌설, 질병설 등 다양하다. 원인이 무엇이든 갑작스럽게 전세계적으로 공룡을 포함한 여러 동물이 멸종은 학계의 오랜 수수께끼이다.
공룡 멸망의 원인, 운석 충돌설
이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신뢰를 얻고 있는 공룡 멸종 원인은 운석 충돌설이다. 엄청난 대폭발과 함께 운석충돌로 생긴 먼지가 지구 대기를 뒤덮어 햇빛이 차단되어 지구에 빙하기가 왔고 이어서 식물이 거의 죽었다. 그리고 공룡은 먹이가 없어져 멸종했다는 논리이다. 아마도 지구의 기온이 떨어지자 공룡은 동굴에서 추위를 피하기엔 덩치가 너무 컸고 또 털도 없어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공룡은 기온 변화로 한 가지 성의 새끼만을 낳는 등 생식 변화에 이상이 왔을 수도 있다. 반면에 작은 포유류나 조류는 추위를 막고 식물의 씨나 열매, 썩은 식물을 먹고 살아남았을 것이다.
운석이 충돌하거나 화산이 폭발한 지역에는 이리듐이나 고압석영이 많이 발견되는데, 공룡이 멸종된 백악기말 지층과 신생대 제 3기 지층 사이에서는 불탄 흔적이 발견되며, 이 지층에서 전세계적으로 보통의 지각보다 30배나 많은 이리듐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공룡이 백악기에 멸종한 것은 아니고, 신생대 초까지 살았던 공룡도 있다고 한다.
▲공룡들이 지층을 짓밟아 생긴 구조 |
▲공룡 발자국의 단면 |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약 600~700여종에 이르는 공룡 화석들이 남극을 포함한 전세계 대륙에서 발견되어 왔으며, 지금도 일 년에 평균 6종의 공룡 화석이 새로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수많은 공룡 발자국화석이 발견되고 있지만 그 발자국의 주인을 제대로 찾지는 못했다. 따라서 앞으로 보다 많은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면 우리도 곧 한반도 공룡의 뼈대 화석을 발굴해 우리 나라의 지명이나 인명을 딴 공룡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세계 최초의 공룡 화석 | ||
공룡 화석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1822년 영국에서였다. 의사였던 맨텔은 평소에 화석 수집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과 함께 환자를 치료하러 갔다가 밖에서 기다리던 그의 아내가 길에서 이상하게 생긴 이빨 화석을 발견해 맨텔에게 주었다. 맨텔은 그 이빨이 남아메리카에 사는 이구아나와 비숫한 도마뱀의 이빨일 거라고 생각하고, '이구아노돈'이라고 이름지었다. 이구아노돈이란 이구아나의 이빨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공룡의 이빨이었던 것이다.
|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발자국화석
동물들이 방금 드러난 호수 가를 걸어가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바닷가에는 중생대 백악기 지층이 층층이 나타난단다. 해남만을 바라보는 이 지층이 호숫가에서 쌓인 지층으로 공룡과 익룡과 물새발자국 화석들이 나와. 물새는 공룡이나 익룡에 견주면 아주 작고 가벼워 발자국도 작고 물갈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미해. 익룡의 날개에 있던 앞발에는 세 개의 발톱이 있어 사람의 귀 바퀴 같은 그 흔적을 알아 볼 수 있어. 반면 뒷발자국이 마치 사람발자국 같단다. 익룡 발자국 안에는 물갈퀴가 희미하게 보이는 물새발자국화석도 있어. 공룡발자국이 큼직한 발가락을 알아 볼 수 있어. 아주 작은 알갱이, 바로 펄로 된 지층에서 나오는 그 화석들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단다. 발자국이 어떻게 화석이 되었을까?
해남군의 발자국화석들은 주로 아주 가는 알갱이 또는 가는 모래가 섞인 펄이 굳어진 지층에서 나와. 가는 펄이 홍수가 지나간 뒤에는 호수 둘레에 쌓였을 수도 있어. 또는 동물들이 물깊이가 아주 얕은 펄 밭을 걸어 발자국이 남을 수 있어. 익룡발자국과 그 속에 있는 새 발자국 화석이 어떻게 만들어져 지금까지 보존되었을까 상상해 보자.
먼저 익룡이 방금 드러난 곳을 밟았다고 상상돼. 바로 익룡이 상당히 큰 새이고 날아다니는 새이므로 아무리 조용히 내려오고 날아올라도, 만약 물속을 밟았다면, 발자국이 무너졌으리라 상상되기 때문이야. 익룡이 걸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그러므로 익룡이 물 밖으로 살짝 드러난, 물에 젖은 진흙을 밟았다고 생각돼. 만약 물에 잠긴 곳이라면 발자국이 무너져 보존되기 힘들다고 보아야지?
또 물새의 발자국이 익룡의 발자국 안에 찍힌 것으로 보아 그 부분에도 물기가 있었다고 보아야 해. 실제 모래가 어느 정도 섞인 젖은 곳을 걸어갈 때 발을 든 뒤, 발자국 안에 물이 모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익룡이 밟은 자리에 물기가 있었을 거야. 익룡의 발자국이 진흙을 눌러 물이 약간 배어 오르면서 진흙이 물과 섞인 뒤 물기가 약간 마른 곳을 물새가 밟았을 수도 있어.
또는 물새가 물로 얕게 덮인 진흙을 밟았을 수도 있을 거야. 진흙에 석회성분이 있고 물새가 가벼운 새라 발을 조용히 들었다면 발자국이 무너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상상되기 때문이란다. 어쩌면 이런 것이 더 사실에 가까울 지도 몰라. 물로 덮여 펄이 부드러우므로 물새의 발자국이 흔적으로 남았다고 상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익룡 발자국 안에 물새발자국의 화석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물새의 먹이가 그 발자국 안이나 그 둘레에 있었던 것으로 상상할 수 있어. 익룡 발에 눌렸거나 놀라 고물거리던 지렁이나 벌레일 수 있어.
물새와 익룡과 공룡들이 아마도 물이 금방 빠지기 시작해, 물로 젖었던 펄 밭을 걸었던 것으로 보여. 마른 땅바닥을 걸었던 것은 아니야. 그런 곳에는 물새발자국이 생기지 않는다고 보아야 돼.
.
.
.
▣ 다시 물로 조용히 덮여
시간이 흐르면서 펄이 뜨거운 햇빛에 단단하게 말랐고 펄 위에 찍힌 발자국들도 단단하게 굳어졌어. 그 펄이 아주 가는 알갱이로 되어있으므로, 마치 진흙이 굳어지면 아주 단단해지듯이, 단단해졌어. 동물들이 아마도 장마나 홍수로 높아졌던 수면이 낮아지면서 나타났던 진흙으로 된 지면 위를 걸어 발자국을 남긴 것으로 보여.
시간이 가면서 그 발자국흔적 위에는 다른 물질들이 쌓였어. 예를 들면 화산재가 날려 와서 쌓일 수도 있고, 아니면 호수 면이 높아져 가는 모래가 다시 쌓일 수도 있어.
발자국이 나오는 바로 위의 지층은 아주 가는 모래가 굳어진 지층이야. 그러므로 발자국들이 날려 온 화산재로 덮이지는 않고, 호수 면이 높아지면서 흘러 온 가는 모래로 덮였단다. 그러나 물로 다시 젖은 발자국이 무너져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그 동안 발자국을 만든 물질이 단단해졌어. 바로 굳어진 거야. 아마도 석회질성분이 상당히 포함되었다고 상상돼. 그렇지 않았다면, 발자국흔적을 만든 펄이 물을 머금으면서 무너지고 씻겨, 지금 보듯이 그렇게 잘 보존될 수 없기 때문이야. 또한 물도 조용히 흘렀고 모래도 조용히 쌓였다고 보아야 해.
발자국이 보존된 다음 진흙과 모래가 두껍게 쌓였고 바위가 되었어. 이후 그 지역이 다시 땅위에 나타나 침식돼 우리 눈에 띄었어. 발자국이 찍힌 지층과 발자국을 덮은 지층을 만든 진흙사이에 알갱이의 크기와 조성이 달라 발자국을 덮은 지층만 침식되고 발자국만 나타났어.
발자국이 가는 모래로 일단 보호되면 모래나 펄 같은 다른 물질들이 자꾸 위에 쌓이면서 굳어져도 발자국이 없어질 위험은 크지 않아. 아주 심한 습곡이나 단층 또는 화산폭발 같은 큰 변동을 받지 않는다면 발자국이 보존되어 화석이 돼. 현재 우항리 지층이 거의 수평인 점으로 보아, 그렇게 심한 변동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 같은 환경이 상당히 오래 계속돼
발자국이 여러 층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위에서 상상했던 일들은 상당한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일어났던 것으로 보여. 아마도 같거나 비슷한 환경이 여러 번 있었다고 생각돼. 그러므로 당시의 환경이 크게 자주 바뀌었던 불안정했던 환경이 아니라, 작은 변화, 예를 들면 물이 넘치고 마르고 동물이 모이고 했던 환경이 상당히 오랜 동안 되풀이했던 것으로 상상돼. 그만큼 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았던 거야.
발자국 같은 흔적이 화석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한 번 생긴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굳어져야만 돼. 잘 굳어지려면 진흙 속에 석회질 성분이 있어야 될 거야. 그 다음에 가라앉아 다시 화산재나 진흙으로 덮여야만 돼. 그러므로 발자국화석이 잘 나오는 곳은 물가이고 또 해가 잘 나는 곳이면서도 활화산부근이거나 자주 물로 덮이는 곳일 거야.
공룡과 익룡과 물새들이 있었던 지역이 어떤 곳이었을까?
먼저 그 동물들이 모였다는 것은 그 지역이 물가로 익룡과 물새의 먹이가 되는 생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상상돼. 예를 들면 강 하구나 호수처럼 근처에 풀도 있고 나무도 있어 초식공룡이 살았어. 간간이 익룡도 날아들었어. 또 초식공룡을 잡아먹고 사는 육식공룡도 있었어. 초식공룡이 육식공룡보다 훨씬 많아 우항리에서 발견되는 공룡발자국화석 가운데 초식공룡들의 발자국화석이 90% 정도를 차지해. 이런 것은 생태계를 보아서도 가능한 일이야.
우항리층에는 물새 또는 익룡의 먹이가 되었다고 상상되는 생물의 흔적이 많지 않아.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벌레흔적화석이 그런 것을 가리켜. 먹이가 조개나 게처럼 단단한 껍데기가 없었거나 또는 먹이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을지도 몰라. 조개껍데기나 게 껍데기 같은 화석이 발견되지 않아 그렇게 상상돼. 먹이가 벌레였다면 벌레자체가 화석으로 나오기는 힘들다고 보아야 돼. 다만 그들이 살았던 구멍이나 기어 다녔던 흔적들이 화석으로 남을 가능성은 있어. 앞으로 더 넓은 지역이 발굴되고 화석들이 발견된다면 새로운 해석과 상상을 할 수 있을 거야. 지금은 작은 조개껍데기 화석 한 개가 발견되었을 따름이란다. 그러나 새발자국이 있다는 것은 새들이 살만한 환경이었다는 것을 말한단다. 단지 그런 흔적이 남아있지 않을 뿐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옳을 거야.
▣ 공룡이 물에 떠서 걸어가
우항리층에서는 아주 이상한 발자국화석이 나와. 어떤 발자국화석일까?
주인공 발자국화석은 70-80 cm 정도로 아주 크며 발자국 속에 마치 불가사리처럼 보이는 능선이 있어. 이런 능선은 먼저 발견된 경상남북도에서 발견된 발자국화석에서는 볼 수 없단다. 이 능선이 생긴 이유가 의문투성이야. 여러 설명 가운데 펄에 물기가 많아 공룡이 발을 들어 올릴 때 펄이 풀처럼 발바닥에 묻어 올라왔다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여. 그러므로 펄을 만든 알갱이의 크기와 물이 그 펄에 섞여 있었던 정도와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돼. 우리는 단순히 “펄”이라고 말해도, 점토와 모래가 섞였다면 섞인 모래알갱이의 크기와 섞인 정도가 다를 거야. 또 땅위에 나타난 시간의 길고 짧은 것에 따라 펄이 마른 정도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야. 펄이 섞인 층의 두께와 그 아래에 있는 펄이나 모래 층의 두께도 관련이 있을 거야. 어쩌면 공룡이 걸었던 속도도 관계가 있을지 몰라. 공룡이 걷는 속도나 걷는 방법에 따라 펄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것과 관계가 있으리라 상상되기 때문이야.
최근에는 그 발자국들은 공룡이 얕은 물속으로 걸어가면서 몸이 떠 앞발자국이 찍힌 흔적이라는 주장이 나왔어. 몸이 물에 뜬 채 걸어가 발자국의 열도 분명하지 않았고 발자국이 찍힌 깊이와 발자국 사이의 거리도 일정하지 않았단다. 또 발바닥의 흔적도 제대로 생기지 않았던 거야. 주인공은 초식공룡으로 몸무게가 20 톤에서 30 톤 정도가 되리라 생각되므로 얕은 물에 반쯤 떠서 걸어가면서 앞발자국을 남겨놓았던 거야. 그럴 듯 해.
우리의 상식이라면, 아무리 공룡이라도 물속을 걸어 몸이 떴다 하드라도, 네 발이 다 바닥에 닿으리라 생각돼. 그러나 그렇지 않단다. 공룡의 뒷부분이 무겁지만 부피도 커 부력을 많이 받아 뜨는 수가 많단다. 그러므로 뒷발자국도 찍히지만 그렇게 분명하게 또 많이 찍히지는 않아. 예를 들면, 미국 텍사스 주와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는 주로 앞발자국에 뒷발자국 몇 개가 찍힌 발자국흔적들이 나왔어. 그런 발자국은 모두 주인공이 물속을 걸으면서 몸의 앞부분이 무거워 주로 앞발자국이 찍힌 거야.
저작권자 : scienceall
.
.
.
.
남해안 삼천포에 있는 공룡발자국 화석
화성암에 발자국흔적이 생긴 과정은
삼천포에서 나오는 화석 가운데, 덕명리 신성수산에서 남동쪽으로 300 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오는, 공룡이 걸어갔던 흔적화석은 아주 드물고 신기한 화석이야. 왜 그럴까?
바로 그 화석이 두께 2 m의 암상에서 나오기 때문이란다. 암상이란 퇴적암의 층리에 평행하게 층리를 따라 들어간 화성암을 말해.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화성암에서는 화석이 원칙으로 나올 수 없는데, 여기서는 나온단다. 발자국화석이 나오는 바위는 화강섬록반암으로 꽤 큰 사장석의 결정이 섞여 있는 화성암의 일종이야. 이 암상은 색깔이 상당히 연하고 퇴적암과는 달리 잘게 깨어진 부분도 거의 없이 미끈해 주위의 퇴적암과 달라.
또 발자국과 모암 사이에는 얇은 각력암이 군데군데 남아있단다. 모암(母岩)이란 화성암 암상을 덮는 바위를 말하며 이암이야. 이암이란 약간 굵은 진흙이 굳어진 바위란다. 각력암이란 날카롭게 모가 난 자갈로 된 바위를 말해. 각력암을 만든 자갈들은 화산이 폭발할 때 생기는 게 보통이야.
또 지층 전체를 보아, 공룡발자국 아래와 그 위의 지층은 거의 쉬지 않고 쌓였다고 생각된단다. 발자국화석이 나온 지층은 중생대 백악기 초기에 생겼고 암상은 백악기 말에서 신생대 제 3기에 만들어졌어. 중생대 백악기는 약 1억4,400만 년 전에 시작해 6,500만 년 전에 끝났단다. 신생대 제 3기는 6,500만 년 전에 시작해 180만 년 전에 끝났어. 암상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큰 범위를 잡는 거야.
뒷발의 길이는 85 cm에서 86 cm이며 폭은 66 cm이며 깊이는 5.5 cm에서 7 cm야. 앞발의 길이는 40 cm이며 폭은 52 cm야. 보폭은 2.85 m에서 3 m에 이른단다. 네발동물의 발길이의 네 배는 보통 허리높이야. 허리높이와 보폭으로 추정한 속도는 1 초에 1.16 m로 한 시간에 4 km 정도야. 이렇게 천천히 네 발로 걸었던 것으로 보아 몸도 대단히 컸던 것으로 보여. 그렇지? 이 발자국화석을 만든 주인공은 아파토사우루스야. 아파토사우루스는 아주 몸이 큰 초식공룡으로 옛날에는 브론토사우루스라고 했단다.
위와 같은 관찰결과를 바탕으로, 어떻게 공룡의 발자국화석이 암상에 생겼을까 상상해보자. 또 어떻게 그 위에 각력암이 쌓였을까 상상해보자.
먼저 백악기 초에 그 근처에서 살았던 큰 초식공룡 아파토사우루스가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발자국을 남겼단다. 그 발자국은 발자국모양대로 굳어졌고 그 위에 모가 난 화산자갈들이 떨어졌고 물로 흘러온 굵은 진흙이 덮였어. 그래도 그 공룡발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단다. 그리고 쉬지 않고 모래와 진흙이 쌓였어.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곳은 가라앉았고, 발자국과 화산자갈과 진흙과 모래는 굳어져 각각 흔적화석이 되었고 퇴적암이 되었어.
수 천만 년이 지난 다음, 발자국이 찍힌 퇴적암이 땅 속 상당히 깊은 곳에 있을 때, 마그마가 발자국이 있는 층리에 평행하게 파고 들어왔단다. 마그마는 화산자갈이 굳어져 생긴 층과 바로 그 아래 층 사이를 파고 들어갔어. 그 때 암상의 위쪽에는 퇴적암에 있던 공룡의 발자국흔적이 생겼단다. 그 때는 퇴적암이 워낙 딴딴하게 굳어져, 마그마가 파고 들어왔어도 발자국의 흔적이 부서지지 않았어. 그러므로 암상에 발자국흔적이 생겼던 거야. 물론 마그마는 천천히 식어 두께 2 m의 암상이 되었단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솟아올라 비와 바람에 깎여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거야.
▣ 화석이 나타날 때까지를 머릿속에 그리면
이런 것을 이해했다면, 당시에 일어났던 일이 일어났던 순서대로 상상해보자.
먼저 약 1억4천만 년 전 남해안은 바닷가가 아니라 호수가나 강가였단다. 기후도 더웠고 근처에는 숲도 있어 공룡과 새와 도마뱀과 악어가 있었단다. 그 때인지 또는 좀 뒤인 어느 날 거대한 몸집의 초식공룡이 홍수가 쓸어버린 곳을 천천히 걸어갔어. 그 날 날씨가 뜨거워 땅이 곧 굳어지면서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혔어. 그 곳은 해마다 홍수로 덮였고 공룡들이 상당히 오랜 그 곳에서 살면서 해마다 공룡발자국이 찍혔단다. 또 그 때는 그 일대에는 화산이 많이 폭발했단다. 화산재나 바위들이 깨어진 작지만 날카로운 자갈들이 하늘에서 떨어졌어. 그 곳에는 화산재보다는 작은 자갈들이 좀 떨어졌단다. 그 후 그 곳은 물로 덮이면서 약간 굵은 진흙으로 덮였어.
시간이 가면서 그 지역은 천천히 가라앉았단다. 물론 그 초식공룡의 발자국은 땅속에서 화석이 되었어. 바로 딴딴하게 굳은 바위가 된 거야. 발자국 바로 위에 쌓인 화산자갈과 그 위에 쌓인 진흙도 굳어져 각각 각력암과 이암이 되었단다.
그 후 몇 천만 년이 지나서 언제인가 그 초식공룡의 발자국화석이 땅속에 있을 때, 마그마가 그 공룡발자국화석이 있는 층리에 평행하게 따라 들어와 굳어져, 곧 암상이 되었단다. 곧 발자국화석과 바로 그 위 각력암 사이를 뚫고 들어왔어. 그러나 그 공룡발자국과 각력암이 워낙 딴딴해, 마그마가 파고 들어와도 모두 부스러지지 않았어. 오히려 마그마가 그 공룡발자국 모양대로 굳어졌단다.
시간이 가면서 그 지역은 지각변동으로 천천히 솟아올랐어.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그 곳은 마침내 땅위로 솟아올랐고 비와 바람에 깎이기 시작했어. 또 그 근처가 바닷가가 되었단다. 마침내 바위가 비와 바람에 깎여나가면서, 암상 위에 있던 화산자갈과 진흙이 벗겨지면서 암상위에 있던 발자국화석이 나타났어. 그러나 고르게 깎여나가지 않아, 화산자갈과 진흙이 굳어진 바위가 군데군데 남았단다. 그러나 공룡발자국이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어.
▣ 다르게 상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다르게 상상할 수 있단다. 곧 초식공룡의 발자국이 찍힌 다음 화산재가 날려 오지 않았다고 상상하는 거야. 곧 그 발자국은 진흙으로 채워진 채, 그대로 땅 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굳어져 화석이 되었어. 그 다음 마그마가 파고 들어와 굳어진 암상에 발자국흔적이 찍혔어. 그 다음에 그 지역이 지각변동으로 솟아올라, 발자국 화석 위에 있던 퇴적암이 비와 바람에 다 깎여나갔다고 상상할 수도 있단다. 다시 말하면 암상에 생긴 발자국화석이 공기 속에 나타났다고 상상하는 거야. 그리고 그 다음에 가까운 데서 화산이 폭발해 날려 온 뾰족뾰족한 자갈들로 얇게 덮였고 그 위에 모암을 만든 진흙이 쌓였다고 상상할 수도 있어. 그렇게 상상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그러나 그런 상상은 적어도 여기에서는 옳지 않단다. 그러려면 그 초식공룡의 발자국이 찍힌 암상 바로 아래 지층과 그 위에 있는 화산 자갈층이 만들어진 시간이 크게 달라야 한단다. 곧 그 두 지층 사이에 긴 시간 간격, 예를 들면, 몇 천만 년에서 1억-2억 년 정도의 시간차이가 있어야 한단다 (이런 것을 지질학에서는 부정합(否整合)이라고 해). 곧 아래 지층이 쌓인 다음. 긴 시간이 흐른 다음에 화산자갈이 쌓이고 모암이 된 진흙이 쌓여야 해.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암상 아래 지층과 암상 위의 지층이 연속으로 쌓여, 지층 사이에 그런 시간의 차이가 없어. 실제 그 지층 전체는 백악기 초에 거의 쉬지 않고 계속해서 쌓였단다. 그 다음에 화성암이 그 지층사이를 뚫고 들어간 거야.
화성암에 있는 화석 |
♣ 이 초식공룡의 발자국화석은, 암상에 있는 화석으로는, 세계에서 처음 발견된 화석이란다. 그만큼 화성암에는 화석이 거의 없어. 예외로 있는 수가 있는 데, 위에서 이야기한, 용암에 갇힌 코뿔소가 그런 예의 하나야. 또 간혹 동물들이 화성암에다 발자국을 남기는 수가 있단다. 곧 미국 아이다호 주에 있는 현무암에 찍힌 50만 년 된 말발자국 화석이 그런 경우야. 아마 그 말은 현무암을 만든 용암이 굳어지기 전에 그 곳을 걸어갔던 것으로 보여. 그 말은 발굽이 상당히 두꺼워서 처음에는 뜨거운지를 몰라서 걸었겠지만 곧 뜨거워져 달아났다고 상상돼.
반면 화산재에는 사람의 조상이나 포유동물이 발자국을 남기는 수가 있단다. 화산재가 부드러워 인간조상이나 동물이 걷기가 좋았을 거야. 또 화산재가 흔적을 채워 화석이 된단다. 화산재에 따라서는 아주 딴딴해져 여간해서는 깎여 없어지지 않아. 그러나 생각해야 할 점이 바로 화산재는 화산이 폭발할 때 나오지만, 암상이나 현무암 용암과는 다른, 진흙이나 모래 같은 조각이라는 점이야. 다시 말하면 일종의 부스러기요 퇴적물이란다. |
▣ 남해안 삼천포
남해안에서는 공룡과 새의 발자국화석과 걸어간 자국화석이 많이 나온단다. 바로 아주 옛날에 그 곳에는 공룡과 새들이 살았다는 증거란다.
당시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우선 공룡들은 물가의 부드러운 진흙 위를 기어 다니거나 뛰어 다녔다고 생각돼. 새들은 진흙 위에서 먹이를 찾았어. 벌레나 조개 같은 새의 먹이는 진흙바닥에 많았어. 진흙바닥은 뜨거운 햇빛에 말라서 갈라졌으며 불어오는 바람에 인 물결자국이 얕은 물속에서 생기기도 했어. 공룡발자국이 나오면 지층면은 달라도 새 발자국도 보통 나오므로 공룡과 새는 상당히 비슷한 환경에서 살았다고도 볼 수 있어. 그러나 이 두 동물의 발자국이 같은 지층면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아. 이런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공룡과 새가 같은 곳에 살았으나 새는 몸이 가벼워 보존될 만한 발자국을 많이 남기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상상돼. 그러나 두 동물의 발자국화석이 나오는 지층면을 더 세밀하게 관찰해, 공룡과 새들이 살만한 조건을 더 잘 알고 지층 자체를 알게 되면, 새로운 설명이 가능하리라 믿어져.
저작권자 : scienceall
.
.
.
.
경기도 시화에서 발견된 공룡 알 화석
▣ 알껍데기가 모래로 차 있어
약 300 개의 알 화석이 잔자갈이 섞인 지층이나 굵은 모래로 된 붉은 지층에서 나와. 상당히 많은 숫자의 알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런 곳이 둥지화석으로 생각된단다. 공룡이 아무 데나 알을 낳지는 않았어.
대부분의 알이 침식돼 알의 둥근 단면만 나온단다. 단면이 원인 것으로 보아 알이 야구공 같은 완전한 구형으로 보여. 만약 타원으로 나왔다면 알의 둘레가 대부분 타원형으로 나오고 어쩌다 구형이 나올 거야. 이런 것은 우리가 사과나 참외를 잘라보면 금방 알 수 있어.
알껍데기 속에는 손가락 마디 정도의 큼직한 자갈들이 있단다. 이 자갈들이 어떻게 들어갔을까 상상해 보자.
당연히 알껍데기가 깨어진 다음에 들어갔어. 또 알 화석이 잔자갈이 섞이거나 굵은 모래 층 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아 물살이 상당히 빨랐다고 생각돼. 그러므로 공룡알껍데기가 무슨 이유로 깨어진 다음 흘러가다가 모래와 잔자갈들이 들어간 거야.
알껍데기가 깨어진 이유로는 알이 부화하면서 깨어지는 경우도 있을 거야. 가장 자연스럽게 깨어지는 거야. 다음이 태아가 속에서 크던 알들이 갑자기 빨라진 물살에 떠내려가면서 바위나 돌덩이에 부딪혀 깨어지기도 할 거야. 만약 그렇게 깨어졌다면 새끼공룡들이 햇빛도 못 보고 죽어 아주 아까워. 아니면 알이나 둥지를 습격해 살아가던 육식공룡이 깨어먹었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런 공룡이 있다고 보아야지. 만약 이런 내용을 알려면 무엇을 조사해야 할까?
알껍데기에서 깨어진 부분의 위치와 깨어진 전체모양, 알껍데기 조각 하나 하나의 모양, 공룡들의 식성과 크기와 생활방식, 공룡들의 배설물화석과 발자국화석, 함께 나오는 다른 생물의 화석들을 포함한 여러 가지야. 또 알과 껍데기가 깨어지는 과정을 실험도 해야 할 거야. 곧 그것들이 깨어지는 방식에 따라 생기는 조각들의 특징과 모양도 의미가 있을 거야. 이런 것들이 모이면 그에 바탕을 두고 상상할 수 있단다. 그래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시화호에서는 야구공처럼 완전한 알 화석이 어쩌다 한 개 씩 나온단다. 또 알껍데기의 조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주인공이 식물을 먹었던 공룡으로 생각돼.
▣ 중부지방에도 공룡이 살았어!
시화호에서 발견된 공룡 알 화석이 한반도 중부지방에서 발견된 처음의 공룡화석이란다. 지금까지 모든 공룡화석들이 남해안과 경상남북도 내륙지방에서만 발견되었단다. 그렇다면 시화호의 공룡 알 화석이 무슨 뜻이 있나 상상해보자.
바로 경상남북도와 경기도 사이의 지역으로 중생대 지층이 있는 곳에서는 공룡화석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야. 예를 들면, 전라북도 무주와 진안과 격포, 충청북도 옥천과 영동, 음성 같은 곳에는 그렇게 넓지 않은 중생대 지층이 있단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그런 곳에서 공룡의 발자국이나 알 같은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앞으로는 발견될 가능성이 있단다. 물론 그 지역들이 모두 공룡이 살기에 좋았고 화석이 보존되기에 좋았던 곳이라는 증거는 없어. 앞으로 연구하면 밝혀질 거야.
저작권자 : scienceall
.
.
.
고비사막의 공룡둥우리화석
▣ 알을 낳다가
몽고 고비사막에서 1993년 아주 신기한 공룡둥지화석이 발견되었어. 바로 오비랍터 공룡의 뼈가 스무 개가 넘는 공룡 알 위에서 나온 거야. 오비랍터가 1.8 m 크기의 새를 닮은 공룡으로 육식공룡의 일종이란다. 오비랍터의 뼈가 어떻게 공룡둥지에서 화석이 되었고 그 사실에서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우선 어미공룡의 뼈가 알 위에서 나오므로 어미가 닭처럼 둥우리 위에 앉아있었다고 볼 수 있어. 그렇다면 우리는 몇 가지 경우를 상상할 수 있어. 첫째는 어미공룡이 알을 낳던 중에 갑자기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묻혔다는 상상이야. 어미공룡이 알을 낳을 때는 쉽사리 몸을 움직이지 못했을 거야. 우선 알 하나를 낳는 시간이 길다고 보아야지. 보통 새가 알을 낳는데 20 분 정도가 들어. 공룡은 그 보다는 오래 걸린다고 보아야 돼. 또 알을 여러 시간에서 하루나 이틀에 걸쳐 낳을 수 있기 때문이야. 또 어미공룡도 모성애가 있었을 것이므로 쉽게 둥우리를 뜨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므로 바람이 분다고 어미공룡이 쉽사리 둥우리를 떠나지는 않았다고 상상돼. 둥우리에서는 스물 두 개의 알 화석이 발견되었으므로 알을 다 낳았거나 거의 다 낳아간다고 볼 수 있어.
모래바람은 주로 건조한 지역이나 사막부근에서만 분다고 생각되나, 만약 아주 큰바람이라면 공룡들이 살았다고 생각되는 호수 가나 풀밭을 덮칠 수도 있다고 생각돼. 공룡들은 오늘날의 아프리카 코끼리처럼 초원지대에 살았다고 생각된단다. 공룡들이 반드시 아마존 강의 밀림지대 같은 우거진 수풀 속에 살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영양이 풍부한 풀이 빨리 잘 자라면 초식공룡은 얼마든지 살 수 있으며 육식공룡도 있다고 생각돼. 물론 종류에 따라서는 밀림에서 살았던 종류도 있겠지만, 초식공룡 가운데 떼를 지어 살았고 이동했다는 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밀림 속에서 사는 것보다는 초원에서 산다는 게 더 그럴듯해. 떼를 지어 살고 이동하려면 울창한 숲이 방해가 된다고 보이기 때문이야. 육식공룡은 지금의 표범이나 호랑이처럼 숲 속에 숨어서 살았던 종도 있고 사자처럼 초원에서 살았던 종도 있을 거야. 먹이가 되는 초식공룡이 풀밭에서 살았으면 육식공룡도 마찬가지라고 보아야지. 그러나 공룡이 살았을 때는 지금보다는 지구가 더웠으므로 식물들은 더 번성했을 거야.
▣ 어미가 알을 품었을까?
다음은 어미가 알을 낳은 뒤 알을 보호하다가 덮였다고 상상할 수 있어. 어미가 둥우리를 감시할 때, 갑자기 모래바람이 불어 쳤거나 화산재가 날려 와, 어미는 자기도 모르게 몸으로 둥우리를 보호하다가 그 위에서 화석이 될 수 있다고 상상되기 때문이야.
만약 위의 상상대로 어미공룡이 둥우리에 앉아서 알을 보호했다면, 세 가지로 상상돼. 첫째는 둥우리 위에 나무 가지나 나뭇잎을 덮어놓고 어미공룡이 그 위에 앉아서 단순히 알을 보호했다고 상상할 수 있어. 그러나 그 둥우리화석에서는 나뭇가지나 나뭇잎의 화석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돼. 또는 그런 것들이 화석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어.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둘째 상상은 어미공룡이 체온으로 알을 부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만약 이 상상이 맞다면, 이는 오비랍터가 더운피 공룡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어. 더운피 공룡도 있었다고 믿어지므로 어미공룡이 체온으로 알을 부화했다고 상상할 수 있어.
셋째 상상으로, 어미가 너무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었다고 상상할 수 있어. 예컨대, 너무 뜨거우면, 알의 표면온도가 높아지고 알속의 수분이 날아가 알속이 너무 건조해져 좋을 게 없단다. 어미가 알을 몸으로 덮으면 몸에서 땀도 나고 그 땀으로 알도 약간은 시원해질 수 있을 거야. 물론 알속의 수분도 덜 날아갔겠지?
실제 알을 흙과 모래와 나무로 덮어 부화하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새는 날이 너무 뜨거우면 어미가 모래를 치워 온도를 낮춘단다.
혹시 오비랍터가 알을 훔쳐 먹다가 화석이 되었다고 상상할 수 있어. 그러나 그렇게 보기 어려운 게, 아래에 있는 알들이 모두 온전하고 뼈의 자세로 보아 바깥에서 알을 먹었던 자세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란다. 그 보다는 위에서 상상한 대로, 알을 낳거나 보호했다고 상상하는 게 이치에 맞다고 생각돼. 그럴지라도, 오비랍터 공룡이 막 알을 훔쳐 먹으러 와 한 개도 먹지 못하고 쏟아지는 모래를 피하지 못해, 마치 알을 보호하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한 채 묻혀 화석이 되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까?
그런 상상이 절대로 안 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여러 가지를 보건대는 그런 상상은 상상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 어미 몸에 깃털이 났던 더운피공룡일까?
만약 공룡이 체온으로 알을 부화했다면, 어미공룡의 몸, 적어도 알에 닿는 몸 아래쪽 부분에는 닭처럼 깃털이 났다고 상상할 수 있단다. 공룡의 껍질이 가죽이었다는 주장이 있으므로 공룡에 따라서는 몸에 깃털이나 털이 났다는 상상도 지나친 상상은 아니란다. 주인공의 몸에 깃털이 났다면 깃털은 좋은 보온재료라는 점에서 주인공이 더운피공룡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져.
어미공룡의 몸에 깃털이 났다고 상상해보자. 깃털이 오비랍터 공룡 암컷에게서만 났고 그것도 땅에 닿는 몸 아랫부분에만 났고 또한 공룡의 일생에서 언제나 났던 것도 아니고 알을 낳고 부화할 때만 났다고 상상할 수도 있어. 깃털이 그만큼 보기 드문 것이기에 화석으로 보존이 되지 않았다고 상상할 수 있어. 뿐만 아니라 깃털이나 털이 워낙 부드럽고 약해 화석으로 잘 보존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해. 바로 주인공의 몸이 털이나 깃털이 났을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야. 오비랍터가 새에 가장 가까운 공룡으로 타조처럼 상당히 잘 달렸다고 알려진 공룡이야. 그러므로 새와 비슷한 구조와 생리를 가졌다고도 상상할 수 있단다. 현재 살아있는 뱀이나 악어가 알과 둥우리를 돌보기는 해도 체온으로 알을 부화할 수는 없어.
이 둥우리의 주인공은 더운피 공룡이었을까? 오비랍터는 체온으로 알을 부화시켰을까? 오비랍터의 몸에는 깃털이 났으며 그 깃털이 특별한 경우, 곧 암컷이 알을 부화할 때 알에 닿는 몸 아래쪽에만 났을까?
이런 의문들이 생겨. 그러나 알과 둥지에 견주어 어미의 몸이 너무 작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어미가 둥지를 지켰던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단다.
▣ 두 개의 턱 뼈는
최근 오비랍터 공룡의 둥지화석에서 벨로시랍터의 새끼화석의 턱뼈 두 개를 발견했단다. 벨로시랍터도 고기를 먹는 공룡이야. 오비랍터는 아직 부화되지 못한 알 화석으로 나오고 벨로시랖터의 턱뼈는 그 둥지 속에 알 화석과 함께 있었어. 그렇다면 고기 먹는 공룡 두 종류가 어떻게 한 둥지에서 발견되었을까 함께 상상해 보자.
첫째 상상은 어미 오비랍터가 새끼에게 먹이려고 벨로시랍터 새끼를 잡아왔다고 상상할 수 있어. 그럴 듯해. 어미 오비랍터가 새끼 오비랍터를 먹여야 할 터이니까, 부근에서 돌아다니거나 벨로시랍터 어미가 소홀한 틈을 타 벨로시랖터 새끼를 잡아올 수 있을 거야.
둘째 상상은 새끼 벨로시랍터가 오비랍터의 둥지를 습격하려다 어미 오비랍터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상상이야. 가능한 상상이야. 벨로시랍터는 아무리 어려도 육식공룡이므로 어려서부터 먹이를 공격하는 본능이 있다고 보아야 해.
셋째 상상은 벨로시랍터는, 요사이 뻐꾸기와 비슷해, 자기둥지에 알을 낳지 않고 오비랍터 둥지에 낳아 부화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야. 벨로시랍터 새끼들은 새끼 오비랍터보다 먼저 부화된 다음 어미 오비랍터에게 들켜 죽음을 당했다는 상상할 수 있어. 그러나 이 상상은 약간 무리인 것이 어미 오비랍터가 자기새끼와 벨로시랍터 새끼를 구별할 터인데 새끼 벨로시랍터가 어미 오비랍터의 눈을 피할 수 있을까?
만약 어미 오비랍터가 자기새끼와 벨로시랍터 새끼를 구별하지 못했다면 가능한 이야기야. 그러나 벨로시랍터 새끼들이 죽음을 당한 것을 보아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현재 뻐꾸기는 개개비둥지에 알을 낳아. 개개비 알보다 먼저 부화한 뻐꾸기새끼가 등으로 밀어 개개비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단다. 개개비 어미가 뻐꾸기새끼를 자기새끼로 알고 먹이를 먹여 키워. 혹시 뻐꾸기의 이런 버릇이 새의 조상인 육식공룡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이 세 가지 상상 가운데 어느 상상이 사실인지는 확실하지 않아. 그러나 이 둥지화석이 많은 상상을 하게 해. 비슷한 둥지화석이 좀 더 발견되면 우리는 위의 상상 가운데 어느 상상이 맞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또는 아주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설명도 할 수 있을 거야.
옛날 고비사막 |
♣ 공룡 알 화석과 뼈 화석들이 몽고고비사막에서 많이 나오는 것을 알지? 공룡이 주로 호수가나 강가 같은 물가에서 살았다는데 공룡화석들이 왜 고비사막에서 나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 그렇지?
고비사막이 지금은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이지만, 공룡이 살았을 때인 7천만 년 전에는 공룡들이 살기에 아주 좋았던 곳이란다. 곧 그 때는 공룡들이 살기 좋아, 어미공룡들이 알도 낳고 새끼도 부화했어. 물론 그 때도 바람이 불어 모래에 공룡이 덮여 화석이 되었던 거야. 그 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환경이 변해 지금은 황량한 사막이 되었단다.
우리나라의 경상남도-전라남도 해안지역에서 나오는 공룡화석들도 마찬가지 원리야. 곧 공룡들이 살았을 때는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도 남해안을 중심으로 한 곳과 한반도 곳곳은 공룡들이 살기에 좋았던 호수나 강가 또는 삼각주였단다. 그 때 그 곳에 살았던 공룡들의 발자국이나 알들이 지금 화석으로 발견돼. |
저작권자 : scienceall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공룡화석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에는 가화천이라는 강이 있어. 비가 많이 오면 이 강에 물이 상당히 흐르나 그렇지 않으면 가운데만 물이 흐른단다. 강바닥에는 퇴적암이 잘 나타나 있어. 우리나라 최초의 공룡 이빨화석이 발견된 곳이야. 그 부근에서 잘 보면 나무화석도 볼 수 있단다.
상당히 잘 보존된 공룡 뼈 화석들이 1996년 3월 여기에서 발견되었단다. 그 공룡 뼈 화석이 두 층에서 발견되었어. 두 번째 공룡뼈화석이 첫 번째 화석 층의 8 m 위에서 발견되었으며 모두 석회질성분이 있는 붉은 색깔의 바위에서 발견되었단다. 발견된 뼈 화석이 공룡의 머리뼈 두 개와 어깨뼈와 위팔뼈와 엉치뼈와 발가락뼈를 넣어 모두 160 개 정도야.
뼈 화석이 발견된 지층이 범람원으로 생각되는 곳이야. 범람원이란 홍수 때 모래와 펄이 쌓이는 곳을 말한단다. 지금의 평야는 상당부분이 범람원이야. 첫 번째 지층에서는 뼈 화석이 적게 나오는 반면 큰 뼈 화석이 나와. 두 번째 지층이 그와 반대야. 그 화석의 주인공들이 어떤 곳에 쌓여 화석이 되었을까 상상해보자.
공룡이 생물이므로 병들어 죽을 수 있고 늙어 죽을 수도 있단다. 또는 늪에 빠져 죽을 수도 있으며 다른 공룡과 싸우다 죽을 수 있단다. 그러나 우리가 주인공 공룡이 초식공룡이라는 점을 생각해, 확실한 증거가 없지만, 육식공룡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가정하자.
초식공룡이 쓰러지자 육식공룡들이 몰려들었을 거야. 육식공룡들이 마치, 코모도섬의 도마뱀들이 염소를 뜯어먹듯이, 초식공룡을 뜯어먹었다고 상상돼. 공룡의 옆구리가 찢어지고 살과 내장이 없어졌단다. 어깨도 없어지고 뒷다리 하나도 없어졌어. 단지 단단한 머리뼈와 앙상한 등뼈와 다리뼈만 남았단다. 배부르게 뜯어먹은 육식공룡들이 떠나자 죽은 공룡의 근처에는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는 작은 도마뱀들이 몰려들었단다. 또한 전갈들과 공룡의 시체를 썩히는 파리도 덤벼들었어.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도 모여들었단다. 공룡의 갈비뼈 사이의 살이 파 먹혔어. 밤에는 작은 원시포유류들도 나타났단다. 공룡의 살이 점점 없어지면서 고기를 먹는 동물들도 나타나지 않았어. 시간이 가면서 공룡의 뼈대가 흩어지기 시작해 무릎아래와 옆구리가 완전히 없어졌단다. 설혹 큰 동물들이 없어도 공룡의 시체가 썩어 뼈만 남게 된단다. 커다란 구멍들이 뚫린 큼직한 머리에 갈빗대와 척추와 다리뼈 따위들이 앙상하게 남아.
공룡의 뼈가 뜨거운 태양아래서 말라가기 시작했단다. 당시 날씨가 건조해 비가 와도 뼈가 살짝 젖을 정도였어. 언제인가 날씨가 대단히 건조해 몇 달 째 뜨거운 태양만 비추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계절이 바뀌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구름에서 폭우가 쏟아졌어. 냇물이 불어 콸콸거리는 강물이 되고 드디어 공룡의 뼈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단다. 비가 더 오면서 물이 갑자기 불자 공룡의 뼈가 세찬 물에 흘러갔어.
공룡의 뼈가 떠내려 오다가 강물이 갑자기 넓은 들로 퍼지면서 물살이 약해지고 뼈가 흩어져 가라앉았단다. 이제 남은 뼈가 머리뼈와 어깨뼈, 위팔뼈와 골반 뼈와 발바닥뼈뿐이야. 작은 뼈들이 그 주위에 흩어졌단다. 큰 뼈들이 공룡이 죽었던 자리에서 가까운 곳에 가라앉았고 가벼운 뼈들이 멀리 까지 흘러갔어. 갈비뼈와 등뼈와 두 앞다리 뼈와 골반 뼈를 뺀 뒷다리 뼈가 흘러 내려오면서 떨어져 없어졌단다. 먼 곳으로 흩어지지는 않았다고 생각돼. 물이 빠지고 다시 뜨거운 태양 빛이 비추었고 뼈가 하얗게 마르기 시작했단다. 그렇게 상당히 오랜 시간을 가면서 뼈가 허옇게 변했고 금도 가기 시작했어. 이 때 동물들도 뼈에 가까이 오지 않았단다. 이 때 땅이 건조해 뼈가 다행스럽게도 썩지 않았어. 만약 흙에 물기가 있으면 흙이 산성이 되어 뼈가 오래 남아나지 못한단다.
▣ 묻힌 다음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공룡 뼈가 물에 잠기게 되었으며 그 위에 모래와 펄이 쌓이기 시작했단다. 남은 공룡 뼈 위에 모래와 펄이 두껍게 쌓여 눌리면서 산소도 없어 뼈를 썩히는 작은 박테리아도 없어졌어. 이제 공룡의 뼈가 박테리아에게 썩혀서 없어질 위험이 없어졌단다. 다시 말하면 화석이 되기에 좋은 조건이 되었던 거야.
시간이 흘러가면서 공룡 뼈의 성분이 서서히 녹아나가기 시작했어. 대신 지하수에서 녹아 흐르던 성분들이 공룡 뼈에 스며들어 뼈가 점점 딴딴해졌단다. 또 뼈를 싸고 있던 진흙도 물기가 없어지면서 굳어지기 시작했어. 드디어 돌이 되기 시작했던 거야. 바로 화석이 되기 시작했던 거야.
공룡 뼈가 묻힌 지층에 다행히 습곡이나 단층이 생기지 않아 뼈가 부서지지 않고 잘 보존되었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 공룡 뼈가 묻힌 지층이 바위가 되고 다시 육지가 되어 비와 바람에 깎이기 시작했단다. 드디어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시가 되었어. 하천바닥이 된 바위 면에서 드디어 돌같이 딴딴한 공룡뼈화석이 우리나라의 지층과 화석을 연구하는 학자의 눈앞에 나타났단다. 뼈와 뼈를 싸고 있는 진흙의 성분이 달라 뼈 화석은 표가 났던 거야.
그 공룡뼈화석이 비록 흩어졌어도 잘 보존되었던 편에 들어가. 골반 뼈와 아래턱에 있는 이빨로 보아 주인공이 살았을 때 풀을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골반 뼈 화석이 아주 작은 것으로 보아, 크기가 1 m도 되지 않는 공룡의 새끼화석으로 보여.
머리뼈가 두 개 나오고 새끼 것으로 보이는 골반 뼈도 나와 어미와 새끼공룡이 한꺼번에 죽었다고도 상상할 수 있어. 또는 수 십 년 또는 수 백 년의 시간 차이를 가지고 한 쪽이 죽은 뒤 다른 쪽이 우연히 죽을 수도 있어. 수십 년이나 수 백 년 정도의 차이를 가진 퇴적물은 거의 한 지층에 쌓일 수 있단다. 그런 작은 차이를 지층에서는 알아보기 힘든 수가 많아. 주인공이 육식공룡에 물려 죽었다고 가정했으나 다르게 상상할 수 있어. 예컨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거나 병들어 죽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야. 또는 다른 동물의 뼈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단다.
그러나 이런 자세한 문제를 그 두 화석이 과연 한 지층면에서 나오는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며 두 주인공이 과연 같은 종류인지를 밝힌 다음에 상상해야 한단다. 또 뼈 자체를 연구해, 뼈에서 육식공룡의 이빨자국이라든가 다른 공격의 흔적을 찾아야 돼. 또는 뼈가 부러진 부분과 그 정도도 알아야 한단다. 또 뼈의 주인공, 다시 말하면 종류와 크기와 살았던 시대와 환경들을 확실하게 알아야 돼. 뼈를 감싸고 있는 바위와 흙도 연구해야 하며 함께 나오는 물질들도 연구해야지.
저작권자 : scienceall
육식공룡이 초식공룡을 공격했던 흔적
▣ 공룡이 걸어갔던 보행흔적화석을 찾아내!
미국 텍사스 주에 가면 신기한 공룡발자국을 볼 수 있단다. 바로 미국자연사박물관 소속의 공룡학자 롤란드 버드가 1938년 11월 텍사스 주 글렌 로즈 부근 플럭시 크리크 하상(河床)에서 발견했던 공룡들이 걸어갔던 자국, 곧 보행자국화석이란다.
먼저 그 화석을 발견했던 과정을 알아보자. 버드는 그 해 계획된 화석발굴조사를 끝낼 때쯤 해서 플럭시 크리크 하천바닥에 아주 이상한 발자국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곳으로 갔단다. 그가 처음에는 대단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 그가 발가락이 세 개인 커다란 두 마리의 육식공룡이 만든 보존이 아주 잘 된 보행화석을 채집했을 따름이었단다.
이어서 다른 발자국이 전연 없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그가 화석을 채집한 주위 약 1 야드 정도를 깨끗이 치우려고 했어. 그가 삽질을 할 때 진흙이 조금 차 있는 지름 1 m 정도의 움푹 파진 둥근 곳이 나타났단다. 그 움푹 파진 곳이 바로 공룡의 발자국화석이었단다! 1939년에 발표된 그의 논문에서 그 발자국화석을 발견했던 순간을 알아보자. “내가 그 구멍을 파고 좀 보려고 몇 삽을 치웠을 때 내 가슴은 거의 터질 뻔했다. 거기, 바로 내 발 밑에, 내가 과거에 전연 본 적이 없는 파인 자국이 나타났으며 나는 곧 그 자국이 용각류의 발자국이라고 확신했다.” 그의 생각은 맞았으며 그 자국이 바로 풀을 먹는 용각류 공룡의 오른쪽 뒷발자국이었단다. 그가 공룡발자국에 관심이 커, 발자국화석을 많이 보았으나 그렇게 큰 발자국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그가 발톱의 방향을 따라, 같은 발의 다음 발자국을 보려고 진흙을 더 치웠어. 그러나 다음 발자국이 나타나지 않았단다. 그가 진흙을 한참 더 치워 드디어 다음 발자국의 가장자리에 닿았어. 그가 첫 발자국에서 4 m 앞에 있는 다음 발자국을 발견하고 또 한 번 크게 놀랐단다. 앞뒤발자국의 거리가 무려 4 m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 육식공룡의 발자국은
그가 다음해에 와서도 텍사스 주의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발자국을 발견해, 주인공 초식공룡이 걸을 때 체중을 뒷다리에 많이 둔다는 것을 발견했단다. 앞발자국이 작고 얕게 파인 반면 뒷발자국이 크고 깊게 파였기 때문이란다. 실제 대부분의 초식공룡의 골격에서도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더 굵고 튼튼해.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이 부근에서 발견된 발자국화석에서는 육식공룡발자국이 초식공룡발자국에 나란하게 나있으며 발자국의 방향이 같은 방향으로 바뀐다는 사실이야. 이런 것을 보아, 초식공룡이 육식공룡에게 둘러싸여 쫓겼는지도 몰라. 초식공룡이 플레우로셀루스이며 육식공룡이 아크로칸토사우루스야. 이 공룡들이 백악기 초기에 북아메리카대륙에서 크게 발달했단다.
그 보행자국화석이 천적관계에 있는 육식공룡과 초식공룡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그 가운데서도 발자국의 주인공들이 연출했던 놀라운 순간을 상상할 수 있단다. 약 40 m에 발달된 이 보행흔적화석에서는 네 발로 걸어간 흔적이 뚜렷한 초식공룡의 커다란 발자국의 보행 열 옆의 왼쪽으로 날카로운 발톱이 발달된 육식공룡의 작은 발자국이 바짝 따라 붙어, 육식공룡이 초식공룡을 추격했던 것으로 상상할 수도 있단다.
한편 버드가 발견한 공룡보행흔적이 공룡연구에서 의미가 커. 바로 그때까지 고생물학자 사이에서 계속되던 논쟁을 끝맺었기 때문이란다. 곧 그 전까지는 일부고생물학자들이 체격이 아주 큰 공룡이 몸이 너무 무거워 자기 발로 걷지 못하고 얕은 물에 반쯤 떠서 걸어 다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야. 그러나 버드가 발견한 보행흔적으로 보아 초식공룡이 확실히 땅위를 걸어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공룡발자국화석이 발자국화석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온단다. 이는 공룡이 많았고 생활 장소가 넓었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으나 상당수의 공룡들이 주로 강변이나 호숫가에 살면서 그 곳의 부드러운 진흙 밭에 발자국을 남겼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 공룡들의 몸이 크고 무거워 발자국도 크고 분명하게 찍혔단다.
▣ 요즈음 동물을 관찰하니
최근 앞에서 이야기한 롤란드 버드가 발견한 펄룩시 하천의 발자국화석을 연구해, 육식공룡이 초식공룡을 공격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단다. 육식공룡의 오른쪽 발자국이 두 번 연달아 찍힌 것으로 보아, 그 순간 육식공룡이 초식공룡을 공격했다고 믿게 되었어. 육식공룡이 뜀뛰기를 하면서 왼쪽발자국이 찍히지 않았던 거야.
위의 사실을 해석한 미국 인디아나주의 인디아나-퍼듀대학교 교수인 제임스 팔로우교수와 공룡조각가인 데이빗 토마스는 사자가 들소를 공격하는 장면을 관찰했단다. 사자가 들소를 따라 갈 때 들소 가까이 와서는 들소의 걸음걸이에 맞춘단다. 곧 두 동물의 뒷발이 함께 앞으로 나가고 다음에 앞발이 앞으로 나가고 사자가 들소를 공격하기 직전에는 뒷발이 함께 앞으로 나가. 이는 사자가 먹이를 공격하기에 편리하고 안전한 자세를 갖추기 위한 동작이란다. 그러다가 잘못하면 먹이의 뒷발에 차이는 수도 있단다.
그들이 육식공룡도 사자와 같았다고 생각했어. 곧 육식공룡이 초식공룡을 따라 와 적당한 거리에 이르면 발을 맞추어 공격했단다. 육식공룡이 초식공룡의 왼쪽 뒷다리의 넓적다리 윗부분을 물고 왼발을 들고 오른발로 뜀뛰기를 하며 따라 갔다는 것이 오른쪽 발자국이 두 개 연속되고 그 사이에 왼쪽 발자국이 없는 이유라고 그들이 설명해. 육식공룡이 먹이를 물고 따라갔다면 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란다. 이어서 초식공룡의 보행방향이 약간 오른 쪽으로 굽어진 것으로 보아 초식공룡이 방향을 바꿨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천적이 덤벼드니 피하느라 방향을 바꾸었다고 보아야지. 롤란드 버드가 오른쪽 발자국 두 개가 계속된다는 것을 알았으나 다른 설명을 하지는 않았단다.
여기에서 한 가지를 상상하면 초식공룡이 공격당하는 순간 그 공룡의 걸음걸이가 흐트러졌을 수 있고 또 육식공룡이 과연 뜀뛰기를 했다면 그 흔적이 발자국화석에 남았을 수 있다고 믿어져. 곧 초식공룡의 발자국이 약간 흩어졌거나 육식공룡의 두 번째 오른쪽 발자국이 다른 것보다 더 깊고 클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에 관한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단다. 그런 것으로 보아 공격이 그렇게 심하지 않아 충격이 작았다고도 상상돼. 다시 말하면 초식공룡이 어미이고 육식공룡이 새끼였을 수 있다고 상상돼. 또는 초식공룡이 몸을 피해 육식공룡이 큰 충격을 주지 못했다고도 상상할 수 있단다. 그렇드라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발자국의 보존상태가 그 정도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좋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돼.
공룡의 속도는? |
♣ 네발동물이나 두발동물의 뒷다리 높이와 보폭, 곧 같은 발자국 사이의 거리로 그 동물이 걷거나 달리는 속도를 계산한단다. 속도를 계산하는 공식은 상당히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보폭이 크면 클수록 빠르고 뒷다리길이가 높아서, 곧 길면 늦단다. 그래도 뒷다리가 길어지면 보폭이 커지므로 결과는 뒷다리가 긴 동물이 빨리 달려. 또 걷거나 빨리 걸을 때와 빨리 걷거나 달릴 때의 공식이 다르며 이때는 뒷다리의 길이가 길수록 빠르단다. 이렇게 이론만 생각하면, 풀을 먹는 큰 네발 공룡들이 가장 빨랐어. 다리가 길고 보폭이 컸기 때문이야.
그러나 달릴 때 속도는 몸무게와도 관계가 있어. 곧 몸무게가 무거우면 빨리 달리지 못해. 또 걸음을 재게 걷지 못해도 마찬가지야. 사람도 키가 커 다리가 길어도 뚱뚱하고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면 빠르지 않아. 이런 것들을 모두 생각하면 크기가 작지만 몸이 날렵한 육식공룡들이 아주 빨라서, 최대시속이 느려도 20 km는 되고 대부분이 30 km는 넘고 아주 빠른 공룡들은 50 km도 넘어. 반면 몸이 큰 풀을 먹는 공룡들은 속도가 아주 느려서, 보통 10-20 km야. 등에 넓적한 판이 솟은 스테고사우루스는 6-7 km로 사람이 빨리 걷는 정도야.
위의 방식대로 계산하면,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속도는 20 km가 조금 넘어, 몸집이 큰 공룡치고는 빠른 편에 들어가. 그러나 얼마 전에는 티 렉스의 최대속도가 시속 47 마일, 72 km라는 연구가 나왔단다. 이 속도라면 몸무게 5-6 톤에 이르는 공룡치고는 굉장히 빠르다는 기분이 들어. 두 발로 쿵쿵거리면서 이렇게 빨리 달리는 것을 상상만 해도 무서워. 그러나 공룡의 속도는 추정하는 방법에 따라 차이가 너무나도 크단다. 실제 최근의 연구로는 공룡의 몸집이 너무 커서 그렇게 빨리 달리지 못했대. 이 연구는 코끼리를 이용한 연구란다. 무게 4 톤이 되지 않는 타이의 코끼리는, 몸이 너무 무거워, 아무리 빨리 달려도 시속 24 km를 넘지 못해. 그러므로 6 톤이 넘는 티 렉스가 시속 72 km로 달렸다는 것을 믿기 힘들어. 이런 차이는 바로 지금 살지 않는 동물을 상상하면서 생기는 어려움이야. 코끼리가 빨리 달리지 못하므로 공룡이 빨리 달리지 못했다고 상상할 수도 있어. 반대로 코끼리는 빨리 달리지 못해도 공룡은 공룡이라서 상당히 빨리 달렸다고도 상상할 수도 있어. 어느 상상이 맞는지는 파고 들 문제야.
공룡도 천천히 걸을 때는 다리를 벌리고 걸었단다. 그러나 달릴 때에는 오늘날의 네발동물처럼 발이 몸 아래로 모여. 물론 달릴 때는 걷는 속도의 두 배 이상으로 빨라져. |
저작권자 : scienceall
공룡의 몇 가지 비밀
▣ 어미공룡이 알을 정리한 까닭은?
공룡이 신기하게도 알을 땅에 시계방향이나 직선으로 상당히 정리해서 눕혀놓거나 비스듬하게 반쯤 박아 놓았어.
공룡이 알을 박아놓은 이유를 함께 상상해 보자. 우선 땅에 박힌 알이 땅위에 놓인 알보다 쉽게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러므로 공룡이 알을 보호하려고 박아놓았다고 생각돼. 어미공룡이 알을 돌보드라도 알이 쉽게 움직인다는 것이 공룡의 새끼가 부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
또한 둥글게 박아놓은 알은 더 잘 부화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어. 실제 알을 둥글게 묻어 놓은 둥우리화석에서는 두 줄로 길게 박아놓은 둥우리보다 알화석이 더 적게 나온단다. 이는 그 둥우리의 알들은 더 잘 부화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돼.
또는 다른 이유, 바로 알의 생리나 부화의 차이일 수도 있어.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공룡이 알을 박아놓았다는 것을 당시 살았던 공룡과 그 환경 사이의 관계, 바로 공룡의 고생태를 생각해서 해석해야 한단다. 알을 둥글게 박아놓은 공룡이 사는 모습과 둥글게 박아놓지 않은 공룡이 사는 모습이 좀 다를 수 있어. 모든 공룡이 다 똑 같게 살았다고 상상할 필요는 없어.
악어 가운데 땅을 파고 알을 세 층으로 낳아 쌓아 놓고 흙을 덮는 종류도 있으며 땅위에 나뭇가지를 쌓아놓은 다음 알을 낳고 나뭇가지로 덮어놓는 종류도 있어. 앞의 악어의 행동은 공룡과 어느 정도 닮은 생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돼.
한편 공룡새끼도 부화할 때 병아리처럼 알껍데기를 깨고 나왔어. 또 공룡새끼도 코끝에 난 알니라고 부르는 작은 이빨로 껍데기를 깬단다. 그 알니가 곧 없어졌어. 지금의 악어새끼도 그렇게 나와. 새끼가 부화되어 내는 소리를 듣고 어미가 새끼가 나오도록 알 껍질을 찢어주는 어미악어도 있어.
▣ 공룡의 혈압은
공룡이 키가 컸다면 혈압의 변화도 중요했으리라 상상돼. 공룡이 혈압문제를 어떻게 풀었는가 함께 상상하자.
혈압이란 핏줄에 가해지는 압력이란다. 그러므로 심장에서 멀어질수록 혈압이 낮아져. 사람의 경우 혈압이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가 약 10이야. 우리가 앉아있다 갑자기 일어나면 어지러워. 바로 피가 머리까지 충분히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야.
동물들이 그런 일이 없을까? 또 그 때 어떻게 할까?
또 목이 긴 기린이 물을 마시려 머리를 갑자기 낮추면 머리로 피가 몰려 머리가 아플지 몰라. 기린이 이를 막으려고 앞다리를 벌려, 곧 몸 전체를 낮추어 머리를 낮춘단다. 그만큼 머리만 급하게 낮추지 않는 거야. 그렇다면 기린보다 훨씬 컸던 공룡이 반대로 어떻게 머리끝까지 피를 보냈을까 상상해보자.
몸길이 38 m 정도에 키가 가장 큰 공룡의 키가 적어도 15 m 정도는 되었다고 상상돼. 약 9천만 년 전 남아메리카에 있던 아르헨티나공룡이이야. 이 공룡이 어떻게 머리끝까지 피를 공급했을까 의문이란다. 먼저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사람의 다리에 있는 정맥에는 피가 거꾸로 흐르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밸브가 있단다. 곧 정맥피가 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있어. 또 다리근육이 강하게 수축해 피를 심장으로 보낸단다. 또 사람의 뇌는 혈압이나 심장박동처럼 꽤 크게 변하는 압력에 영향을 덜 받도록 만들어졌어.
그러므로 공룡도 몸에 피를 보낼 정도의 큰 심장을 가지고 있었고 목 부분과 다리아래에 사람처럼 피를 역류하지 않게 하는 밸브가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단다. 또 목 근육이 잘 수축했다고 상상할 수 있어. 공룡의 목이 육중하지 않아 가볍게 움직였으며 뼈 사이에는 큰공간이 있어 근육과 혈관이 잘 발달된 것으로 생각된단다. 또 물을 마실 때에는 기린처럼 다리를 벌려 머리를 낮추었다고 상상할 수 있어. 과거 한 때 공룡의 목에는 제2의 심장이 있어 피를 펌프질했다고 상상했으나 지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또 아르헨티나공룡은 더운피동물보다는 찬피동물로 생각돼. 그렇게 큰 공룡의 몸 구석구석, 예를 들면, 머리를 들었다고 상상하고 그 끝까지 피를 보내려면 심장의 크기는 지름 2 m에 가까워야 되기 때문이란다. 또 심장의 무게가 7 톤은 되어야하고 심장 벽의 근육두께는 60 cm가 되어야 해. 이는 그 공룡의 힘이 아무리 세어도 무리야. 화석으로 보면, 그 공룡의 몸통은 1 m가 약간 넘어. 그러나 찬피동물이라면 심장의 크기가 50-60 cm 정도면 된단다. 그런 것을 보아, 그 공룡은 찬피동물이 확실하다고 생각돼.
▣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씹는 힘은
우리가 잘 아는 무서운 티 렉스가 먹이를 씹는 위력을 얼마나 될까?
초식공룡의 엉치뼈에 난 티 렉스의 이빨자국을 보고 실험실에서 씹는 힘을 실험했단다. 육식동물의 큰 이빨자국은 작지만 깊은 삼각형으로 나와 이빨자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사람과 여러 동물의 이빨모형을 만들고 기계로 힘을 주어 암소의 엉치뼈에 흔적을 내는 실험이었단다. 그 실험으로는 티 렉스가 씹는 힘이 악어보다 조금 더 세고 사자의 3 배 정도야. 사람이 씹는 힘은, 뉴파운드랜드의 사냥개인 라브라도르 개보다는 세어도, 늑대의 반밖에 안되고 사자의 1/5에서 1/6 정도야.
실제 악어에게 힘을 잴 수 있는 계기를 씹게 해, 씹는 힘을 재어본 결과, 악어가 힘껏 씹는 힘이 1 제곱 인치에 약 3천 파운드야. 그러므로 1 cm2에 약 220 kg의 무게가 가해지는 것과 같은 힘이란다. 가로 1 cm, 세로 1 cm인 조각을 이 무게로 누른다고 상상해보렴. 엄청난 힘이야. 이 정도의 무게라면 웬만한 뼈는 글자 그대로 가루가 되고 부스러질 거야. 실제 악어는 살아있는 동물 가운데 씹는 힘이 가장 세어. 그러므로 악어는 먹이를 찢어도 먹지만 보통 잘라먹는단다.
초식공룡 트리세라톱스의 엉치뼈에 난 이빨흔적의 폭과 깊이가 1 cm 정도이고 길이가 4 cm로 V자로 길게 파였단다. 아마도 티 렉스가 트리세라톱스의 엉치뼈를 씹어서 찢었던 것으로 보여. 티 렉스가 고기가 많은 부분을 앞니로 몇 번을 씹어 구멍을 내고 찢으면서 이빨이 긁은 자리를 남겼던 거야. 뼈에 이빨흔적이 많으면 58 곳이나 되는 수도 있어. 또 티 렉스는 등뼈와 등뼈 사이처럼 고기가 많지 않으면 앞니로 고기조각을 벗겨먹었던 것으로 보인단다. 바로 그 뼈에도 이빨에 긁힌 흔적이 있어.
티 렉스가 트리세라톱스의 어느 부분을 주로 씹었을까?
트리세라톱스 화석으로 보면 이빨흔적이 주로 코 구멍 주위, 턱의 양옆과 아래쪽, 머리의 뒤쪽과 위쪽에 많단다. 그런 것을 보아 티 렉스가 트리세라톱스를 공격할 때 먹이가 덤벼들지 못하게 하고 먹이를 질식시키려고 먹이의 입과 머리를 주로 씹어 뜯었다고 생각돼. 그런 부분의 뼈화석에는 이빨의 흔적들도 남아있지만 깨어지고 부스러진 뼈 조각들도 모여 있단다. 바로 뼈가 깨어지고 부스러진 채 흩어져 없어지지 않고 화석이 된 거야.
사자도 아프리카 들소나 얼룩말을 공격할 때 옆구리나 목을 물어 쓰러뜨리지만 반드시 코 주위를 씹어 질식시킨단다. 악어도 영양이나 얼룩말을 같은 방법으로 공격해.
육식공룡의 이빨흔적 |
♣ 우리가 공룡의 뼈에 있는 이상한 자국을 보고, 그것이 이빨의 흔적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먼저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이상하거나 불규칙하거나 억지로 깎여나간 흔적이 있으면 의심해야 한단다. 또 긁힌 흔적 또는 구멍이 있으면 육식공룡의 이빨흔적으로 보아야 한단다. 공룡의 뼈에 그런 흔적을 남길 정도면 육식공룡의 이빨밖에 없기 때문이야. 그런 구멍에다가 치과에서 쓰는 부드러운 물질을 채워 흔적의 모양을 떠, 티 렉스의 이빨과 비교하면, 똑 같은 수도 있단다. 바로 그 이빨이 그 구멍을 만든 거야. 또 뼈 표면이 찢긴 흔적이 길게 남는 것으로 보아, 이빨흔적을 알 수 있단다.
▣ 배설물화석은
공룡의 배설물이 화석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어. 또 그런 배설물화석을 연구해 주인공의 식성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야. 어떻게 배설물화석으로 주인공의 식성을 알 수 있을까 상상해보자.
먼저 배설물화석을 현미경으로 잘 들여다보면 먹이가 무슨 공룡인지 알 수 있단다. 예를 들어 배설물 속에서 곤충껍데기나 날개조각이 나오면 곤충을 먹었다는 증거야. 반대로 물고기 비늘과 가시가 나오면 물고기를 먹었다는 증거란다. 만약 두 가지가 다 나오면 두 가지 먹이를 다 먹었다고 보아야지. 그러므로 먼저 배설물화석에서 이렇게 간단한 식성을 알 수 있어.
그러나 초식공룡의 뼈화석이 따로 나오고 배설물화석에서 뼈화석이 나온다고 가정하자. 게다가 그 초식공룡의 뼈화석에 이빨자국이 있다면 우리는 배설물의 주인공과 그가 살았던 환경을 어느 정도는 상상할 수 있어. 바로 배설물의 주인공이 육식공룡이고, 아마도 티 렉스일 것이고 먹이가 그 초식공룡이라는 식이야. 바로 뼈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곳을 상상하면서 그들이 살았던 생활방식을 상상하는 거야. 예를 하나 들어볼까?
현재 몬태나 주에서 발견된 육식공룡의 배설물화석이 길이가 44 cm이고 폭이 14 cm 정도로, 육식동물 배설물 화석 가운데 가장 커. 뭉툭하고 너무 모가 나지 않은 것이 바위가 깨어진 것과는 달라. 또 이 배설물화석을 현미경으로 보면 수많은 뼈 조각들이 보여. 아마도 배설물의 주인공이 티 렉스로 생각돼.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먼저 그 배설물화석이 나온 지층의 시대가 백악기 끝으로 티 렉스가 많았던 때야. 또 부근에서는 티 렉스의 뼈화석도 나와. 또 배설물 속에 뼈 조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육식공룡의 배설물화석이야. 또 크기도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육식공룡의 배설물화석 가운데 가장 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그 배설물의 주인공이 거의 틀림없이 티 렉스라고 생각돼.
또 배설물 속에 있는 가장 큰 뼈 조각이 3 cm 정도야. 다 부스러졌단다. 그러나 뼈가 모두 조각이 났다는 점에서 몇 가지가 궁금해. 먼저 큰 뼈를 먹었을까? 만약 안 먹었으면 괜찮지만 만약 먹었다면 어떻게 먹었을까? 아니면 작은 뼈만 골라 먹었을까? 티 렉스가 고기를 먹는 대표격인 공룡이지만 어금니가 없어 먹이를 씹지 못했다는데, 뼈를 어떻게 조각을 냈을까?
아마 먹이의 넓적다리를 씹어서 부수고 살을 찢어내어 한 입씩 삼킨 것으로 상상돼. 그러면서 살덩어리와 크고 작은 뼈 조각들이 넘어갔을 거야.
공룡의 위장 속 |
♣ 초식공룡은 말할 것도 없고 육식공룡도 먹이를 소화시키느라 위 속에는 작은 자갈들이 들어있단다. 이 자갈을 “위 속에 있는 돌”이라는 뜻으로 위석(胃石)이라고 해. 바로 육식공룡들이 작은 뼈를 골라 먹은 것이 아니란다. 먼저 고기와 뼈를 물어 끊어 깨뜨려 잘라먹었고 다음으로 위장에서는 위석으로 갈아서 작게 부스러뜨렸어. 물론 소화효소와 위산이 뼈를 녹여 쉽게 부스러지게 만들었을 거야. 그러므로 티 렉스가 큰 먹이를 찢어 좀 큰 뼈 조각 채 삼켜도 소화를 잘 했단다. 실제 그런 큰 육식공룡이 살만 골라 먹었다고 생각하면 이상해.
반면 작은 육식공룡은 고기만 골라 먹었다고 상상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나 작은 육식공룡은 그대로 작은 뼈도 먹었다고 상상하는 게 이치에 맞을 거야. 고기를 먹는 동물이 살만 골라먹기는 쉽지 않았을 거야. 왜 그렇게 상상할까? 육식동물이 고기만 골라 먹으려면 버리는 게 많고 대개는 먹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란다. 버리는 게 많다는 말은 먹이를 더 많이 잡아야 한다는 뜻이니 육식동물이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단다. 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말은 그 동물이 천적에게 공격받을 수가 많아진다는 거야. 이런 것은 그 육식동물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안 될 거야.
저작권자 : scienceall
공룡의 천재 존 호너 박사
존 호너 박사라고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어?
그는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 공룡을 책임졌던 공룡학자란다.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공룡들의 모양과 행동과 얼굴표정과 몸의 색깔에 이르기까지 설명해, 영화에서 공룡이 공룡답게 보이고 실감을 내게 한 주인공이야. 그의 삶을 알아보고 그의 연구에 바탕을 두고 신기한 상상을 하자.
▣ 일곱 살 때 공룡화석을 모아
미국 몬태나 주에서 태어난 호너 박사가 공룡과는 아주 일찍 인연을 맺었단다. 그는 일곱 살 때 벌써 아버지와 함께 공룡화석을 모으고 이름을 붙이면서 가지고 놀기 시작했던 거야. 그는 몬타나 대학교의 학부에서 지질학강의를 들었으나 교양과목, 예를 들면 불어를 공부하지 않아 졸업을 하지 못해 학사학위도 없단다. 대학원에서도 지질학강의를 다 들었으나 석사학위도 없어. 그가 과정을 다 끝낸 후 잠시 형님과 함께 집에서 하던 골재사업을 했단다. 바위를 깨뜨려 골재를 만드는 사업의 수입이 화석발굴수입보다 나았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그가 여기저기에 편지를 썼어. 마침내 그는 프린스튼 대학교에서 화석발굴을 준비하는 자리를 얻었단다. 그가 그 곳에서 척추고생물학자를 도와주면서 화석에 대한 더 깊은 지식을 얻게 되었어.
그가 몬타나주 시골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공룡화석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을 도와주면서 공룡둥우리화석을 1978년 8월에 발견했단다. 그가 발견한 둥우리의 주인공이 오리부리와 비슷하게 생긴 부리를 가진 초식공룡 마이아사우라야. 그가 발견한 둥우리화석은 붉은 이암 속에 있으며 둥우리 안의 뼈 화석이 들어있는 물질이 초록색 이암이었어. 둥우리는 지름이 1.8 m 정도에 깊이가 0.9 m 정도의 큼직한 샐러드그릇 모양이었단다. 이암이란 모래보다 작은 알갱이들이 굳어진 바위야. 그가 어미공룡이 파놓은 둥우리가 훗날 다른 진흙으로 메워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어.
둥우리들이 6.9 m 떨어져 있으므로, 어미공룡의 평균크기도 그 거리와 비슷하다고 상상돼. 바로 땅에 둥우리를 만들고 모여서 사는 새들이 어미 새의 크기 정도로 둥우리를 떨어뜨려 짓기 때문이야.
왜 새들이 그렇게 집을 지을까?
이는 새들이 가장 가까이 모이면서도 상대방을 가장 적게 방해하기 때문이란다. 새가 모이는 것은 좋지만 머리가 꼬리와 닿거나 부딪히면 좋지 않아. 그렇지? 그러므로 어미 새의 크기 정도를 떨어지면, 새들이 가까이 모이면서도 상대방에게 방해가 되지 않아. 새가 공룡의 후손이므로 공룡도 새와 비슷했다고 상상하는 이런 상상이 바로 “공부한 상상” 또는 “교육받은 상상”이란다.
▣ 공룡태아화석을 발견해
호너 박사가 1983년 9월 14일 그 해 여름 발굴을 끝내기 나흘 전에 처음으로 알에서 부화되던 공룡태아의 화석을 발견했어. 그가 알이 아홉 개와 열아홉 개 모여 있는 둥우리화석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알 열아홉 개가 모인 둥우리화석의 알속에는 모두 태아화석이 들어있었던 거야. 풍화된 알껍데기 가까이 태아의 작은 뼈화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란다. 그가 다른 알 화석을 깨어보자 부화되던 공룡태아의 화석들이 보였어. 그가 알 화석을 X-선과 컴퓨터를 써서 내부를 조사했단다. 대부분이 뼈의 관절들이 빠져 알의 아래쪽에 모여 있었어. 이는 아마도 부화 초기에 화석이 된 것으로 보여. 그러나 단 한 개가 관절들이 충분히 결합되어 있어 더 빨리 부화되다가 화석으로 되었다고 믿어지는 태아화석도 있었어. 열아홉 개의 알에서 공룡태아화석이 발견된 것이 그야말로 인류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단다. 아마도 그 공룡태아들이 부화되어서 갑자기 죽었던 것으로 보여. 이 공룡이 오리부리계통의 오로드로메우스란다.
공룡태아화석이 고비사막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으나 태아화석으로 보기에는 아주 불완전했단다. 1972년 소련의 학술지가 그 태아화석이 보이는 깨어진 알의 조각 한 개를 연구한 논문을 게재했던 적도 있었어. 그만큼 공룡태아화석이 귀했다고 생각돼. 그에 견주면 태아화석 열아홉 개가 완벽하게 발견되었다는 것이 그야말로 행운이요 노다지야. 호너가 이 발견으로 공룡의 태아화석에는 자신이 생겼단다.
한편 그 때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는 프로토세랍토스의 태아화석이 들어있다고 믿었던 알 화석을 몇 년 동안 전시한 적이 있었대. 그러나 호너 박사가 그 화석을 자세히 검사한 결과, 이상한 모양으로 결정된 광물이었단다. 방해석이란 나란히꼴이나 이상한 모양의 결정으로 된 석회암을 만드는 광물이야. 공룡의 태아화석이 신기한 것이고 아무도 태아화석을 본 적이 없어서 생긴, 박물관이 실수했던 거야.
▣ 박물관에서 화석을 맡고 있어
호너박사가 또 마이아사우라의 태아화석과 함께 수많은 새끼공룡화석도 발굴했어.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굴한 공룡 뼈의 숫자로 보아, 그들이 발굴했던 3 km2의 지역에는 약 1만 마리의 마이아사우라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 엄청난 무리야. 그가 주로 발굴했던 오리부리공룡 두 종류는 무리를 지어 살았단다. 그 가운데 마이아사우라가 둥우리에서 새끼를 돌보았고 때에 따라 이동했다는 공룡의 행동과 생활방식을 처음 밝혔어. 그가 다른 곳에서도 수많은 공룡둥지화석과 공룡새끼화석과 태아화석들을 발굴했단다.
그가 공룡 알과 새끼와 둥우리화석을 많이 발굴하면서 공룡화석, 그 가운데 알과 새끼공룡의 화석이 많이 나오는 곳을 자신하게 되었단다. 그가 화석이 많다고 자신하는 곳은 어떤 곳일까?
그 곳이 바로 강 하류와 바다에 가까운 아래쪽 낮은 곳보다는 위쪽 높은 곳에서 아주 얕은 물에 쌓인 붉은 색 또는 초록색의 석회질 이암층이나 석회질 셰일층 같은 지층이란다. 하류근처의 땅에는 아무래도 물기가 너무 많고 토질이 강한 산성이어서 공룡의 알과 뼈가 쉽게 썩어 없어질 환경이라고 생각돼. 그의 설명을 따르면, 공룡화석이 많이 나오는 몽고의 지층도 상부해안평지란다. 또한 그 곳의 기후가 아주 건조해 화석들이 아주 잘 보존되었어.
그가 공룡 알, 새끼, 둥지, 태아 같은 공룡화석들을 발굴하고 책도 쓰면서 갑자기 유명해졌단다. 그가 공룡학자로 유명해지자 몬태나대학교에서는 1986년에 명예박사학위를 주어 그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했어. 드디어 그가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 공룡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책임지게 되었단다. 대머리에 더부룩한 턱수염을 가지고 청바지를 입는 호너 박사가 현재 몬타나주 보즈만에 있는 로키산맥 박물관에서 화석들을 관리하고 있어.
호너 박사도, 화석을 찾는 사람답게, 숙소에서 화석발굴지로 오갈 때는 언제나 땅을 내려다보면서 걷는단다. 바로 그의 눈이 화석을 찾는 거야!
▣ 공룡둥우리의 알껍데기 조각
호너박사가 공룡화석을 발굴해 공룡가운데, 알에서 부화되어서 얼마 동안 둥우리에서 생활했던 공룡도 있었던 반면, 부화되자마자 걸었던 공룡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풀을 먹었던 마이아사우라가 앞이고 고기를 먹었던 오로드로메우스가 뒤란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두 가지 증거가 있단다. 첫째 증거가 마이아사우라의 둥우리에는 알껍데기조각뿐이라는 사실이야. 이 사실이 새끼공룡이 알에서 부화된 후, 둥우리에서 시간을 보냈거나 둥우리를 들락거리면서 알껍데기가 조각으로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 바로 어미와 새끼들이 둥우리에서 살면서 알껍데기가 완전히 부스러진 것으로 생각돼. 반면 오로드로메우스의 둥우리에서는 아랫부분이 그런 대로 완전한 알 조각, 곧 윗부분만 부스러져 없어져 버린 알껍데기화석이 나오기 때문이야. 바로 새끼가 빨리 둥우리를 떠나, 알껍데기가 모두 부스러지지는 않았던 거야. 둘째 증거는 공룡태아들의 뼈대가 발달된 정도야.
둥우리화석으로 미루어 상상한 마이아사우라 공룡의 생태가 요사이 초식동물의 생태와 비슷한 점도 있었고 다른 점도 있었단다. 비슷한 점이란 마이아사우라가 누영양이나 순록처럼 떼를 지어 수 백 km 이상 1천 km를 이동했다는 점이란다. 이는 마이아사우라와 오늘날의 초식포유동물과 같은 점이야. 초식동물이 수백 km를 이동하는 것이 기후에 따라 생장하는 풀을 따라가는 거야. 또 건조한 곳을 피해 비가 오는 곳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어. 그러므로 마이아사우라가 이동했다는 것도 먹이나 기후와 관계 있으리라 추정돼. 반면 오늘날의 초식동물의 생태와 다른 점이란, 예컨대 아프리카 평원의 누영양이나 순록 같은 초식동물의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일어나 어미를 따라가는 데, 초식공룡인 마이아사우라의 새끼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야. 같은 초식동물이면서도 마이아사우라의 새끼가 둥우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간간이 어미를 따라 둥지 둘레를 돌아다녔다고 상상돼. 그러므로 새끼가 어느 정도 큰 다음 이동했을 거야. 반면 갑각동물을 먹었다고 믿어지는 오로드로메우스의 새끼들이 곧 둥우리를 떠나 모여서 컸다고 생각돼.
깨어진 조각도 소중히 |
♣ 공룡 알 화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화석 조각 하나라도 무심하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작은 알껍데기 조각 하나가 큰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야. 그러므로 공룡 알 화석을 연구하는 사람은 알 조각 껍데기를 유심히 살펴. 바로 공룡의 알껍데기도 어떻게 깨어졌느냐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예를 들면, 공룡새끼가 부화된 뒤의 빈 공룡알껍데기는 마치 사람이 먹고 버린 달걀껍데기가 깨어지는 것과 비슷해. 그런 알껍데기조각이 단단하지만 하나하나 조각으로 나와. 그러나 온전한 공룡 알이 진흙에 묻혀 깨어지면 표면이 깨어진 모습이 마치 삶은 달걀의 껍데기가 깨어진 것과 비슷하단다. 그 알이 단순히 빈 알껍데기가 눌려서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속이 꽉 찬 알이 눌려 깨어지는 것이므로, 깨어지는 모양이 삶은 달걀을 눌렀을 때 깨어지는 것과 비슷하게 깨어져. 또 천적이 알을 깨어먹으면 그 알이 깨어진 모양이 특징이 있을 거야. 그런 특징을 상상해야 한단다.
▣ 먹이를 갖다 주었다면
존 호너 박사의 생각으로는 공룡 마이아사우라의 새끼들이, 위에서 말했듯이, 둥우리에 머물러 있었단다. 새끼가 둥우리에 머물러 있었다면 어미가 새끼를 어떻게 먹였을까 상상해 보자.
첫째 상상이 어미가 풀이나 열매를 한 입 가득히 물고 일일이 가져왔다는 거야. 현재 매나 독수리 같은 새는 먹이를 잡아와 새끼에게 줘. 이는 이들이 육식성이기 때문에 가능해. 반면 곡식을 먹는 닭은 어미 닭이 병아리를 불러 모아. 그러나 새든 포유류든, 초식동물 가운데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갖다 주는 예가 거의 없다고 생각돼. 그러므로 마이아사우라를 육식공룡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호너박사의 연구로는 초식공룡이 분명해.
둘째 상상이 어미공룡이 어미 닭처럼 새끼공룡들을 데리고 다녔다는 거야. 예를 들면 풀이 많은 곳으로 데리고 가 먹이를 먹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돼. 이 상상이 맞다면 어미공룡이 하루에 몇 번 새끼공룡들을 데리고 돌아다녔다고 보아져. 바로 어미와 새끼들이 함께 외출했던 거야. 새끼들이 먹이를 먹는 동안 어미공룡이 주위에서 망을 보았겠지.
셋째 상상이 어미공룡이 풀을 먹어 어느 정도 소화시킨 다음 둥우리에 있는 새끼공룡들에게 토해 주었다는 상상이야. 갈매기나 펭귄처럼 고기를 먹는 물새는 어미가 먹은 먹이를 어느 정도 소화한 다음, 둥지의 새끼에게 먹이를 토해 줘. 반면 현재 식물을 먹는 새 가운데 먹이를 토해서 새끼를 키우는 새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러므로 이 상상이 조금 무리하게 생각돼. 그러나 셋째 상상이 틀리지 않았을 지도 몰라. 당시 공룡 가운데 그렇게 살았던 공룡이 있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모든 공룡들이 반드시 지금의 동물처럼 살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야. 만약 마이아사우라가 먹이를 토해주었다면, 요즈음 물새가 이런 본능을 초식공룡에게서 물려받았다고 상상돼. 고기를 먹는 물새가 초식공룡의 방식을 배웠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여도 물새가 잘 살아가므로 좋은 방식을 배웠다고 말 할 수 있어.
저작권자 : scienceall
익룡의 이빨
▣ 고래수염 같은 빗살을 가진 익룡은
익룡은 모두 고기를 먹었던 동물로 이빨을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단다. 첫째는 400 개가 넘는 마치 수염고래의 수염 같은 빗살이 아래턱에 촘촘하게 발달한 이빨이야. 둘째가 작은 익룡으로, 띄엄띄엄 난 작은 말뚝 같은 크기가 거의 같은 날카로운 이빨로, 주인공이 곤충을 먹었던 것으로 보여. 당시에도 곤충이 많았단다. 셋째는 길고 날카로운 앞 이빨이 앞쪽으로 삐죽삐죽 나있고 안쪽이빨이 작고 날카로운 칼날 같은 이빨이란다. 넷째는 아주 큰 익룡으로 이빨이 없는 경우야. 그러나 마지막 두 경우는 익룡의 갈비뼈 사이에서 물고기화석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이빨의 주인공이 물고기를 잡아먹었던 것으로 보여. 날개길이가 12 m 정도인 이 익룡이 날면서 물고기를 잡았다고 믿는 학자도 있단다. 만약 그렇다면 날개가 크기 때문에 먼 거리를 날았을 거야. 또는 물가에서 조개나 게를 잡아먹었던 것으로 보여.
위에서 이야기한 고래수염 같은 빗살을 가졌던 익룡의 생태와 그 주변을 상상해보자. 먼저 그 익룡이 물 속에 있던 플랑크톤을 걸러 먹었던 것으로 보여. 그러므로 당시의 바다표면 가까이 플랑크톤이 아주 많았다고 상상돼. 익룡이 자주 바닷물 위에 앉아서 먹이를 걸러먹었을 거야. 또 익룡의 부리가 물을 많이 거를 수 있도록 입이 크고 특수하게 생겼을 수도 있단다. 이 기관은 펠리칸 새의 물고기를 잡는 주머니와 비슷할 수도 있어. 물론 많이 뜬 물을 빨리 거를 수 있도록 턱의 힘도 강했다고 상상돼. 그러나 현재 플랑크톤을 걸러먹는 새는 없어. 그러므로 위의 상상은 모두 물속에서 플랑크톤을 걸러먹는 새 아닌 다른 동물에서 상상한 거야. 그러나 화석에서는 위에서 상상한 주머니는 나오지 않고 턱뼈와 수염 같은 빗살만 화석으로 나와.
이 주인공 익룡은 동물플랑크톤이 바다표면으로 올라 올 때, 예를 들면 새벽이나 어두울 때 동물플랑크톤을 많이 잡아먹었다고 상상돼. 만약 그렇다면 익룡의 눈은 컴컴할 때도 먹이를 볼 수 있었을 정도로 좋았을 거야.
또한 현재 상어가 바다물 위에 앉은 신천옹새끼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익룡, 그 가운데서도 익룡새끼가 물위에 앉아 플랑크톤을 걸러먹었다면 상어의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돼. 그 때도 상어가 있었단다. 현재 신천옹새끼 열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상어의 먹이가 돼. 만약 익룡새끼가 상어의 공격을 전연 받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이는 무엇을 뜻할 가를 상상해 보자.
바로 새끼익룡이 어미가 되기 전에는 바다물 위에 전연 앉지 않았다는 뜻이야. 그러려면 어미익룡이 새끼익룡이 완전히 클 때까지 먹이를 갖다 주었을 거야. 지금도 물수리가 잡은 먹이를 둥지까지 가지고 가는 것을 보면 이런 상상이 가능해. 익룡도 둥지가 있었을 것이고 새끼가 둥지에 있었다고 상상하면 이런 상상이 가능해. 익룡의 먹이가 플랑크톤이라고 생각되므로 어미가 반쯤 소화된 플랑크톤 먹이를 토해 주었을 거야.
그러나 새끼든 어미든 익룡이 물에 앉으면 상어의 공격을 받았다고 보아야 할 거야. 곧 상어가 물위에 앉는 것은 무엇이라도 공격한다고 생각되므로, 익룡이 전연 공격을 받지 않았다는 상상은 힘들어. 바로 그 때에는 익룡은 플랑크톤을 먹고 상어는 익룡을 먹는 먹이 망이 있었다고 상상돼.
▣ 이빨이 없는 익룡은
위에서 이야기한, 이빨이 없었던 익룡의 몸 안에서 물고기화석이 발견돼. 그 익룡이 물고기를 어떻게 잡았을까 상상해보자.
첫째 상상으로는 그 익룡이 물총새가 물고기를 잡듯이 먹이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실제 물총새가 이빨이 전연 없는 부리로도 물고기를 잘 잡는단다. 만약 익룡이 부리로 먹이를 잡았다면 실제 어떻게 했을까 상상해 보자. 만약 익룡이 물고기를 잡았던 방법이 물총새와 비슷했다면 이 익룡이 짧은 순간이나마 잠수를 했거나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을 거야.
둘째 상상으로는 그 익룡이 대머리 독수리처럼 발톱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었다고 상상돼. 그러나 과연 그 익룡의 발톱이 그렇게 강한지는 의문이야.
셋째 상상으로는 그 익룡이 지금의 가마우지처럼 물속을 잠수해 들어갔다고 상상할 수 있어. 물속을 잠수하면서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도 상상되기 때문이야. 그러나 익룡의 발에 물갈퀴가 없으므로 물속에서 헤엄을 쳤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그러나 물갈퀴가 없다고 해서 물속으로 전연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란다. 예를 들면 물까마귀의 발에 물갈퀴가 없어도 날개의 힘으로 물고기를 어느 정도 따라가 잡아. 익룡이 과연 그렇게 먹이를 잡았는지는 의문이야. 만약 익룡이 그렇게 먹이를 잡았다면 작은 먹이를 많이 잡아먹기보다는 큰 먹이를 하나씩 잡아먹었다고 보아야 해. 물속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이야. 그러나 그렇게 큰 익룡이 물속으로 들어갔다는 게 의문이야. 그러므로 그 익룡은 물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을 거야. 대신 표면이나 물가에서 먹이를 잡았을 거라고 상상돼.
네 번째로 그 익룡이 다른 익룡이나 동물이 잡은 먹이를 뺏어먹었다고 상상할 수 있어. 지금도 아프리카 대머리독수리는 사자나 치타가 잡은 먹이를 뺏어먹고 살아. 대머리 독수리가 사자나 치타에게 덤벼드는 게 아니라 워낙 숫자가 많아 사자나 치타가 먹이를 놓고 슬며시 사라진단다. 그런 것도 먹이를 뺏어먹는 한 방법이야. 그러나 익룡이 나는 것으로 보아 남의 먹이를 뺏어먹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남의 먹이를 뺏어먹으려면 뼈대가 먹이를 뺏어먹기에 적합하고 동작이 아주 빨라야 될 것 같은데 익룡이 과연 그렇게 빨랐는지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야. 지금까지 나온 익룡화석을 보면 익룡의 자세와 행동이 땅 위에서는 상당히 불편하게 보여.
마지막으로 그 익룡이 죽은 물고기를 주워 먹었다고도 상상할 수 있어. 그러나 물고기는 보통 물 밖에서는 죽지 않으므로 어쩌다 한 두 마리를 주워 먹는다는 것은 가능해도, 익룡이 그런 것을 주워 먹고 일생을 살지는 못할 것 같아. 물론 물고기가 떼죽음을 하는 수가 있지만 자주 또 자연히 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야. 물고기는 보통 사람 때문에 갑자기 많이 죽는단다.
아마도 첫 번째 상상이 사실에 가깝고 세 번째 상상도 가능해. 두 번째 상상은 익룡의 발이 약해서 어려울 거야. 다섯 번째 상상도, 옛날에 물고기가 자연히 많이 죽지 않았다면, 힘들 거야. 그러나 만약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이유로, 물고기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자연히 많이 죽었다면, 가능할 지도 몰라. 다시 말하면 익룡이 그런 물고기만 먹고도 살 수 있을 정도였다면 그럴 듯 해. 또 익룡이 물고기를 먹기도 했지만, 다른 동물의 시체도 먹었다면 이 설명은 좀 더 그럴 듯 해.
네 번째 설명은 상상은 할 수 있지만, 화석을 보고 그 상상을 증명하기는 아주 힘들 것 같다고 느껴져. 그러나 그런 경우가 완전히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단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 눈에 띄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만약 네 번째 경우를 알려면 어떤 화석이 나와야 할까 생각해보자. 익룡이 다른 익룡이나 동물과 함께 먹이를 물고 있는 것이 화석으로 나오면 어느 정도 그런 상상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꺼야. 예를 들면, 익룡끼리 물고기를 물고 싸우다 갑자기 몰아친 모래바람에 덮인다거나 화산재에 덮여, 싸우는 모습 그대로 화석이 되었다면, 익룡들이 먹이를 놓고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아직 그런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보고는 없어.
저작권자 : scienceall
제주도 바닷가의 새 발자국 흔적
▣ 화산재 위에
제주도 남쪽 모슬포 부근에 있는 바닷가에서는 물새 발자국의 흔적이 나와.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바닷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화산재가 굳어진 바위 위에는 36 개의 물새발자국이 길게 S 자 모양으로 나와. 바다 쪽으로 걸어간 이 발자국들을 잘 보면 물갈퀴가 보여 물새의 발자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이 발자국에서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먼저 물갈퀴가 찍힌 것으로 보아, 두 가지로 상상이 돼. 먼저 화산재가 발자국이 찍힐 정도로 두꺼웠다고 상상할 수 있어. 만약 화산재가 너무 얇게 쌓였다면 발자국이 찍히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야. 그러므로 적어도 화산재는 그 물새의 발자국이 찍힐 정도, 곧 4-5 mm 이상으로 두껍게 쌓였다고 생각돼. 실제 발자국이 찍힌 부분의 바로 아래 부분도 같은 바위로 보여. 그러므로 화산재가 상당히 오래 동안 쌓였다고 생각돼. 또는 화산재가 살짝 물에 젖었던 것으로 생각돼. 바닷물에 가까운 모래바닥이 바닷물로 젖어있듯이 그럴 수 있을 거야. 또는 가랑비가 온 직후일지 몰라. 그러나 화산재가 파도 같은 물결에 씻기지는 않았다고 보아야 할 거야. 파도에 씻길 정도면 발자국이 찍히지 않았다고 상상되기 때문이란다. 곧 주인공 물새는 비에 살짝 젖었거나 바닷물에 젖은 화산재 위를 먹이를 찾아 걸어가면서 발자국을 남겼던 거야.
발자국의 방향과 찍힌 간격으로 보아, 한 마리의 새가 만든 거야. 그러나 발자국의 방향이 바다 쪽으로 길게 난 것을 보아, 몇 가지가 상상돼.
먼저 만약 먹이를 찾았다면, 큰 먹이가 좀 떨어진 곳에 있어서 그리로 급하게 갔을지도 몰라. 그러므로 주인공이 있었던 바닷가 화산재 위에는 먹이가 그렇게 흔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바닥에는 그 주인공의 먹이인 벌레들이 있었다고 상상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거야. 여기에서 그 새가 먹이를 찾지 않았다고 상상할 수도 있어. 만약 먹이를 찾았다면 대개는 있는 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먹이를 찾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란다. 먹이가 아주 많다면 그렇게 했을 거야. 그러나 그 새가 먹이를 찾지 않았다고 상상할 필요는 없는 것이 동물이란 먹이를 찾는 것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야.
다음으로는 친구가 불러서 갔다고도 상상이 돼. 곧 그 새는 먹이를 찾지는 않고 바닷물 쪽에 있는 친구에게 조르르 달려갔던 거야.
다음으로는 천적에게 쫓겨 갔다고도 상상할 수 있지만 그렇게는 상상이 되지 않아. 천적에게 쫓겨 갔다면 날아갔을 거야. 그러나 만약 천적에게 쫓겨 갔다면 새끼처럼 제대로 날지 못하는 새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걸어간 흔적이 그래도 질서가 있단다. 만약 작은 새가 쫓겨 갔다면 질서가 없었을 거야. 대부분의 새가 날아가므로 그 새가 어린 새라고 보기도 어려워.
마지막으로 제자리에서 날아오르지 못하므로 날아오르려고 한참 달려갔던 흔적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어. 물새인 신천옹(알바트로스)이나 큰 바다 섬새(자이언트 페트렐) 같은 새는 그렇게 날아오른단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 힘든 게, 발가락에 물갈퀴가 없고 발자국 흔적들이 곧지 않고 약간 휘었기 때문이야. 또 발자국이 너무 많아, 그렇게 오래 달려갔다고 상상이 되지 않아. 날아오르려고 달려갔다면 직선으로 달려갔을 거야. 만약 그렇다면 발자국이 찍힌 세기도 다를 거야. 그러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아.
▣ 어떤 물새일까?
이 발자국의 주인공이 어떤 물새일까 상상해보자. 바닷가 모래밭에서 먹이를 찾는 물새는 갈매기나 쇠오리 같은 바다오리 계통의 새일 수도 있어. 그러나 발자국이 물오리의 발자국보다는 커, 물오리보다는 약간 큰 물새라고 생각된단다.
이 발자국흔적들이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해보자.
먼저 송악산에서 화산이 터지면서 화산재가 날려 와 쌓였어. 그리고 화산재가 약간 젖었어. 그 위를 물새가 먹이를 찾거나 친구가 불러 바다 쪽으로 약간 휘게 달려가면서 발자국을 남겼단다. 그 후 다시 화산재가 덮이면서 발자국을 채웠어. 그 후 발자국이 찍힌 화산재와 발자국을 덮은 화산재가 굳어졌어. 그러면서 발자국이 찍힌 화산재와 그 발자국을 덮은 화산재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어 발자국이 보존되었어. 그 후 어떤 일로 발자국을 덮었던 화산재가 벗겨지면서 발자국이 드러났던 거야. 그러나 이 발자국흔적들은, 흔히 공룡의 뼈화석이나 발자국이 화석이 되기 위하여 땅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가 조산운동을 받았던 것과는 달리, 조산운동을 받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단다. 그 보다는 뜨거운 화산재가 식으면서 바닷물에 닿아 조용히 굳어진 것으로 보여. 만약 가라앉아 조산운동을 받았다면 화산재 층에 작은 변화라도 있어야 하는 데, 그 화산재 층과 그 둘레의 송악산 지층에서도 그런 변화를 보기 힘들단다. 그 지층을 연구했던 학자들은 화산재와 화산모래는 공기 속에서 조용히 굳어진 것으로 믿는단다. 실제 송악산 화산재도 바닷물에 닿은 부분 말고는 그렇게 딴딴하지 않아. 새발자국이 나오는 화산재 층은 바닷물에 닿으면서 굳어진 것으로 보여. 그러므로 송악산 화산재가 굳은 것은 화산재와 바닷물 사이의 특별한 관계로 보여.
한편 그 부근에서는 도요새 계통이거나 백로계통의 새로 생각되는 발자국도 몇 개가 나와. 도요새는 나그네새이고 백로는 여름철새야. 이 새들은 현재 제주도의 동쪽해안인 하도리와 성산포에 있는 철새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산단다. 이곳이 모슬포에서는 상당히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새에게는 그렇게 먼 곳이 아닐 거야. 또 이 화석이 만들어졌을 때에는 새들이 그 부근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단다.
이 흔적은 우리나라에 있는 단 한 곳의 신생대, 그것도 아주 최근, 겨우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새 발자국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아주 귀중하단다. 또 화산재위에 만들어진 물새발자국이라는 점에서 아주 드물어.
저작권자 : scienceall
펭귄 화석
새끼는 물에 못 들어 가
남극을 상징하는 펭귄을 알지?
펭귄은 먹이를 찾을 때를 빼고는 주로 얼음 위나 바위나 자갈땅에서 살아. 펭귄은 물갈퀴가 있고 물에서 먹이를 구하는 물새지만 갈매기와는 다르단다. 또 그 차이는 펭귄의 조상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여. 무슨 차이가 있을까?
펭귄새끼는 수영을 배울 때까지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반면 갈매기새끼는 솜털이 났을 때에도 물속에 들어간단다. 이 사실이 무엇을 뜻할까 상상해 보자.
먼저 펭귄이 발달하면서 물에 떠서 살았던 때가 없었거나 아주 짧았다고 상상할 수 있어. 다시 말하면 펭귄이 물에 떠서 살지 않았을 수가 있어. 바로 펭귄의 조상이 곧장 물 속 생활에 적응했다고 상상돼.
그러므로 펭귄의 조상은 땅에서 살았거나 하늘에서 살았던 새보다는 물새나 물가에서 살았던 새로 생각돼. 곧 물가에서 먹이를 찾던 새가 먹이가 많은 물속으로 들어가 펭귄이 되었다고 상상할 수 있어. 그러나 펭귄의 몸 구조, 곧 다리가 짧고 몸을 똑 바로 세우고 뚱뚱하다는 점을 보아 물가에 사는 다리가 긴 새, 예를 들어 논병아리나 도요새 또는 저어새나 홍학 같은 새들이 펭귄의 조상과는 먼 새로 상상돼. 반면 다리가 짧고 뚱뚱한 물새가 펭귄의 조상과 비슷하리라 상상돼.
또 펭귄은 오리나 갈매기와는 달리 물에 뜨지 못한단다. 이런 것으로 보아, 물새가 펭귄으로 진화하면서 물에 떠서 살던 방식을 잊어버리고 헤엄치는 방식으로 완전히 바꾸었다고 상상돼. 물속에서 먹이를 찾으면서, 물위에 뜰 필요도 없고 공중을 날 필요도 없어진 거야. 그래서 펭귄 뼈는 속이 꽉 차고 무거워 보통 날아다니는 새의 뼈와는 근본이 달라. 펭귄조상이 물에 뜨는 생활을 포기하면서 뜨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생각돼. 물론 날지 않으면서 나는 것도 잊어버렸고. 현재 펭귄과 상당히 비슷한 새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포토중코라는 섬새 계통의 물새란다.
현재 펭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펭귄의 조상이 지금부터 약 4,500만 년 전에 온대지방에 살았던 물새라고 생각해. 당시 물위에서 살면서 잠수해 먹이를 찾던 물새가 완전히 물속에서만 먹이를 잡으면서 살기로 작정해, 펭귄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고 있어. 새의 화석이 많이 나오지 않고 게다가 펭귄의 조상화석이 더 나오지 않아 펭귄조상을 찾기는 쉽지 않아.
지금까지 발견된 옛날 펭귄 가운데 하나인 약 3,500만 년 전의 펭귄은 지금 펭귄보다 훨씬 커, 키 1.6 m에 몸무게가 136 kg 정도 나갔다는 점이야. 아주 뚱뚱한 사람의 무게와 비슷했어. 이런 펭귄화석이 뉴질랜드와 남극반도 가까운 섬에서 발견돼.
그러나 거의 모든 화석이 그렇듯이 펭귄의 화석도 완전한 것이 나오지 않아. 날개 뼈나 발 뼈로 몸의 크기를 추정해. 그러나 이렇게 추정한 화석 펭귄의 크기가 서로 달라. 왜냐하면 지금 펭귄도 마찬가지여서 그 크기가, 발 뼈의 17-19 배나 다리뼈의 7.5-9 배 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란다.
▣ 펭귄이 물로 들어간 방법은
펭귄이 어떻게 물속에서 살게 되었을까 상상해 보자. 먼저 펭귄이 물속으로 들어가야겠지? 그러나 공중을 날거나 땅위에서 살던 새가 어떻게 물속으로 들어갔을까?
펭귄이 물 속 생활에 적응하게 된 과정이 크게 세 가지로 설명돼. 첫째는 땅위를 걸어 다니면서 살던 새가 곧장 물속으로 들어와 물속을 헤엄치게 되었다는 설명이야. 다음은 날아다니던 새가 나는 능력을 잃고 땅 위에 살다가 물속으로 생활영역을 넓혔다는 설명이야. 마지막 설명은 날아다니던 새가 물에서도 날고 물위에서 헤엄치다가 물 속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 물속만 헤엄치기 시작하면서 물 위 생활을 버렸다는 설명이야. 펭귄을 오래 연구한 학자가 펭귄의 생리와 뼈대와 생물 발달방식을 생각해, 마지막 설명을 지지했어. 첫째 방법이 생물이 갑자기 살던 방식을 바꾸기 힘들어 맞지 않다고 생각돼. 두 번째 설명도 비슷해. 실제 땅 위에서 살거나 공중을 날아다니던 새가 갑자기 사는 곳을 물속으로 갑자기 바꾼다는 것이 어렵게 보여. 그 보다는 세 번째 설명이 이치에 맞는 것으로 생각돼. 물위에서 살았던 동물이 사는 곳을 물속으로 바꾸었다는 것은 그럴 듯하게 보여. 한편 수면에 닿을 듯이 날아가면서 살았던 물새가 물속으로 사는 곳을 바꾸어 헤엄치면서 물속에서 살게 되었다는 의견도 있어.
비슷한 모습의 펭귄들 |
♣ 큰 거북이 살고, 또 진화론으로 유명한 갈라파고스 제도를 알지? 적도에 있는 이 갈라파고스제도에도 펭귄이 있단다. 갈라파고스펭귄들은, 남극의 펭귄들과는 달리, 시원한 곳에 적응했어. 갈라파고스 제도의 기온은 높아도 바닷물은 상당히 시원하단다. 바로 남동 태평양에서 발원한 페루해류 또는 훔볼트 해류라고도 부르는 찬물이 남아메리카 서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갈라파고스제도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란다. 한편 남아메리카 서해안에는 훔볼트 펭귄이 있으며 남쪽 마젤란해협에는 마젤란 펭귄이 있어. 갈라파고스펭귄을 넣어 이 세 종류의 펭귄은 가슴에 줄이 있고 몸이 작다는 점에서 거의 비슷해. 이는 아마도 한 종류의 펭귄이 먼 지역에 흩어져 오래 떨어져 살면서 새로운 종류의 펭귄으로 각각 진화한 것으로 보여. 곧 갈라파고스펭귄에서 훔볼트 펭귄이 나오고 다시 마젤란 펭귄이 나온 것으로 보여. 펭귄조상이 온대지방에서 살았다니 그렇게 상상돼. 아니면 마젤란 펭귄이 가장 먼저 생긴 다음 북쪽으로 올라갔을 지도 몰라. 남아프리카 해안에도 마젤란 펭귄과 비슷한 검은 발 펭귄이 있단다. 이런 것을 보면, 펭귄이 같은 조상에게서 나왔어도 환경에 따라 여러 종류로 진화했다는 생각이 들어.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는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를 탐험했던 독일의 박물학자이자 지리학자란다. 그 분이 훌륭한 일을 많이 해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있어. |
공룡 알 화석과 새알 화석
모양과 껍질표면이 달라
공룡 알 화석과 새알화석이 어떻게 다를까 상상해 보자.
먼저 공룡 알과 새알과 모양이 다르단다. 곧 새알은 한쪽이 굵고 한쪽이 가늘어 갸름한 반면 공룡 알은 완전한 구형이거나 타원체이다. 또는 한쪽이 굵어도 달걀과는 달라.
다음은 공룡 알과 새알이 크기가 다를 거야. 이는 대부분의 공룡이 새보다 크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상상이야. 그러나 아주 작은 공룡, 예컨대 길이 1 m 정도에 몸무게 2 kg 정도 되는 공룡의 알과 상당히 큰 새의 알을 비교해보면, 그 크기만으로 주인공을 알기 어려울 거야. 실제 타조 알이나 지금도 가끔 땅 속에서 발견되는 모아 새의 알이 아주 커, 알의 크기가 절대기준이 될 수 없단다.
다음은 새알이나 공룡 알 표면에 가는 줄, 작고 무딘 톱니, 작은 돌기 같은 특유한 조직과 문양이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단다. 물론 줄의 굵기나 톱니나 돌기의 크기나 많은 정도도 달라. 그러므로 이 특징 있는 구조와 문양이 어느 정도의 기준이 된단다. 그러므로 공룡 알과 새알의 특징이 있는 조직과 문양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공룡 알 화석이 워낙 많이 나와 껍데기의 특성이 많이 알려졌단다. 반면 새알화석이 많이 나오지 않아. 그러므로 현재 새알에 있는 무늬나 특징들이 옛날 새알 껍데기에도 있었는지는 잘 몰라.
다음은 알껍데기의 수증기 전도성을 구해보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져. 수증기 전도성이란 수증기가 알껍데기를 통과하는 정도를 말해. 이 값이 크면 잘 통과했다는 뜻이란다. 수증기 전도성은 알껍데기에 나있는 숨구멍의 길이와 숨구멍의 면적으로 구할 수 있어. 곧 수증기 전도성은 알껍데기에 있는 숨구멍의 면적이 넓어지면 커지고 숨구멍이 길면 작아진단다. 또 실험으로 알아낸 바로는, 새알의 수증기 전도성은 알이 무거우면 커져. 공룡 알의 전도성은 새알의 전도성보다 훨씬 높아서, 예컨대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발굴한 공룡 알 화석의 전도성이 새알의 전도성보다 열 배 정도 높단다.
▣ 알껍데기 조각이 나오면
공룡 알 화석이나 새알화석이 완전하게 나오면 전체 모양이나 크기 또는 주위의 지질과 산출되는 화석을 보아 쉽게 구별할 수 있으리라 생각돼. 그러나 공룡알껍데기 조각화석과 새알껍데기 조각화석이 섞여 나올 수도 있을 거야. 그 때는 껍데기 두께나 다른 특징으로 구별해야 할 거야. 우선 공룡화석이 많이 나오는 지역에서 알껍데기가 화석조각으로 나온다면 이는 거의 대부분 공룡알껍데기화석으로 생각해도 될 거야. 그러나 아주 드물겠지만 새알껍데기화석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거야. 예를 들면 부근에 있던 새둥우리에서 새알껍데기조각이 바람에 날려 오거나 다른 고기를 먹는 새가 둥우리에서 훔쳐와 깨어 먹은 알껍데기가 섞이는 수도 있겠지. 어떻게 알껍데기화석조각에서 새알과 공룡 알을 구별할 수 있을까?
우선 알껍데기의 두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단다. 아무래도 알이 크면 알껍데기도 두꺼우리라 생각되기 때문이야. 물론 이 때 위에서 말했듯이 아주 작은 공룡 알과 큰 새의 알을 단순히 껍데기의 두께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수 있단다. 이 경우에는 알 표면 조직과 문양도 함께 보아야겠지. 알껍데기구조는 알이 부화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내어보내는 생리작용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 공룡의 알껍데기의 단면이 부화되기 전에는 문패 같은 주상결정으로 두꺼우나 부화되면서 원추형이 되고 얇아진단다. 이는 알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공룡의 골격을 만드는 데 쓰이기 때문이야. 또 다행히 알의 구형도(球形度), 곧 둥근 정도를 잴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알껍데기조각이 화석으로 나온다면 알의 크기와 모양과 부피도 알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의 해답은 될 거라 상상돼.
공룡 알 화석이 많이 발견되지만 새알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이 새가 나무 위나 땅 위에 만든 둥우리에 살면서 알이나 알껍데기가 화석이 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상상돼. 실제 알이 부화된 다음 어미 새나 새끼 새에게 눌려 알껍데기가 부스러지거나 바람에 날려간다면 화석이 되기 힘들어. 또 대개의 화석이 물속에 가라앉아 화석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새알이나 알껍데기가 화석으로 나오지 않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알 만해. 그만큼 화석이 될 기회가 적다고 보아야지. 그러나 땅위에 있던 새둥우리가 모래바람이나 화산재에 덮인다면 그 속에 있던 새알들이 화석이 될 가능성이 있어. 그러므로 새알화석을 찾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만 생각되지 않는단다. 한편 알 화석을 찾을 때 악어나 도마뱀의 알 화석도 생각해야 할 거야. 그러나 도마뱀 알이나 악어 알도 화석으로 많이 나오지는 않아.
한편 알의 크기를 알면 알의 부피와 표면적을 어림짐작으로 알 수 있겠지?
곧 알 길이와 알 폭을 알면 알의 부피와 표면적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 알의 밀도에 부피를 곱하면 알의 무게를 금방 알 수 있어. 새알의 밀도가 1 cm3에 1.09 g이란다. 공룡 알도 이와 같다고 가정하고,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산출된 지름이 20-23 cm 정도의 구형인 공룡 알의 부피가 5천2백 cm3에 평균무게가 5천7백 g에 가깝고 표면적이 1천5백 cm2에 가깝단다. 그러나 위의 공식이 온전한 공룡 알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며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어. 그런 때에는 관찰되는 사항을 최대한 이용하면 어느 정도 해결되리라 믿어져.
새알과 공룡 알의 차이 |
위에서 새알과 공룡 알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했어. 곧 새알은 갸름하고 공룡 알은 완전환 구형이거나 타원형이야. 이게 무슨 뜻일까?
이는 간단하게 보여도 깊은 사연이 있단다. 바로 새와 공룡의 생태의 차이야. 곧 새는 더운피동물로 어미가 알을 부화시켜. 그러므로 알이 어미 품에서 빠져나가면 죽어. 그러므로 새알을 굴리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 반면 공룡의 알은 어미가 모래 속에 낳은 뒤 태양의 열로 부화돼. 그러므로 갸름하지 않아도 돼. |
저작권자 : scienceall
'이탈한 자가 문득 > 풍경 너머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을 닮은 농부와 농부를 닮은 시인, 그들의 나무 (0) | 2011.06.16 |
---|---|
화석탐정, 공룡 화석의 비밀을 풀어라 (0) | 2011.05.27 |
봄 숲 길에서 여름 숲 길에게로 걸어 나오며 (0) | 2011.05.26 |
이 땅의 모든 나무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0) | 2011.05.26 |
천년 은행나무 앞에서 살아오는 가죽나무의 푸른 추억 (0) | 2011.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