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이 땅의 모든 나무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 |
밤나무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평창 운교리 밤나무의 수피. | |
[2011. 5. 18] | |
낮은 비탈 위에 서서 사방으로 20미터 넘게 펼친 운교리 밤나무의 줄기와 가지. | |
그러나 나라 안의 모든 밤나무들을 다 찾아볼 수도 없고, 관련 기록도 없는 까닭에 제가 처음 펴낸 책 '이 땅의 큰 나무'에서는 이 나무를 포함해서 밤나무 항목을 아예 넣지 못했습니다. 책이 나온 뒤로 이어진 나무 답사에서 저는 이 나무 외에 몇 그루의 큰 밤나무를 찾아보게 되었지요. 여러 밤나무 가운데에 인상적이었던 나무로는 절집 언덕에 서있는 나무와 고택의 엣 대문에 서있는 밤나무를 꼽을 수 있습니다. | |
산골 지방도로 변 작은 식당 '들림집' 뒤 언덕에 우뚝 선 운교리 밤나무. | |
운교리 밤나무는 그 뒤로 몇 번을 더 찾아갔습니다. 평창 쪽을 지나칠 때에는 조금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꼭 보고 가려 한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무는 산림청 보호수였지요. 그냥 방치된 건 아니지만, 이 나무를 볼 때마다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나무 아래에는 '들림집'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그 집의 살림살이가 나무 주변에 어지러이 늘어져 있는 것도 그리 아쉬운 건 아니었습니다. 나무에 기대어 버섯 키우는 원목을 늘어놓은 것 역시 탓할 건 못 됐지요. 나무를 포함한 이 땅이 그 분의 개인 땅이니까요. | |
푸른 이끼가 세월의 더께처럼 소복히 내려앉은 운교리 밤나무의 줄기 한 가운데 부분. | |
그게 식당 주인의 탓은 아니지요. 오히려 그 분은 나무를 오랫동안 잘 보존해온 고마운 분이지요. 이 식당의 여 주인은 바로 이 집에서 태어나서 자라셨습니다. 재 너머로 시집 가서 잠시 살았던 때도 있긴 했지만 얼마 뒤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셔서 지금 '들림집'이라는 이름의 식당을 하고 있는 겁니다. 늘 친절한 좋은 분이랍니다. 제가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하러 찾아간 손님이어서가 아니라,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푸는 분이지요. | |
밤나무 가운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잘 생긴 천연기념물 제498호, 평창 운교리 밤나무. | |
점심을 거르고 돌아다니던 중이어서, 우선 식당에서 막국수 한 사발을 시켜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는 그간의 사정을 알리지 않고, 나무를 찾아온 나그네라고만 인사 올렸어요. 밤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달라진 게 없느냐고 여쭐 참이었지요. 그러자 들림집 주인은 예상 외의 답변을 건네왔어요. 이 나무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대개는 식당 집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다고 불평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무를 더 잘 보이게 할 수 있다면, 자신이 이 집을 버리고 조금 옆으로 이사를 나갈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 |
어두워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는 운교리 밤나무의 저녁 풍경. | |
나무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평화로운 것만은 아닐 겁니다. 때로는 나무의 자람이 사람의 삶을 방해할 때도 있을 것이고, 거꾸로 나무를 베어내야 할 만큼 사람살이가 나무의 삶을 방해할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어차피 사람과 나무가 서로를 떨어져서 사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면,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켜야 할 나무를 위해, 언젠가는 변화를 겪어야 할 사람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게 옳은 방법이지 싶습니다. 그게 무조건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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