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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이 땅의 모든 나무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by 丹野 2011. 5. 26.

[나무를 찾아서] 이 땅의 모든 나무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밤나무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평창 운교리 밤나무의 수피.

   [2011. 5. 18]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밤나무를 찾아갔습니다. 강원도 평창 운교리의 밤나무입니다. 이 밤나무를 처음 만난 건 10년 전이었습니다. '이 땅의 큰 나무'라는 책을 쓰던 중이었지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정선의 밤나무와 함께 찾아본 나무입니다. 정선의 밤나무는 어느 공장의 울타리 안쪽에 서있었는데, 주변 환경도 안 좋고, 굳이 공장 분들의 허락을 받아 안쪽에 들어가야 할 만큼 수세가 그리 좋은 것도 아니어서 흘긋 보고 돌아왔지요.

   정선의 밤나무와 달리 이곳 평창 운교리 밤나무는 찾기도 어렵지 않았고, 생육 환경도 나쁘지 않았어요. 또 나무의 규모가 짐작보다 컸을 뿐 아니라, 생김새가 아름다워서 처음 찾아 보고는 무척 흥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밤나무로서 천연기념물로 등록된 것도 없고, 밤나무와 관련한 노거수 기록이 없어서, 다른 밤나무와 이 나무를 비교하는 게 불가능했지만, 그저 느낌만으로 이 정도면 아마도우리나라 안에서는 견줄 만한 나무가 없을 큰 밤나무라고 생각했지요.

   낮은 비탈 위에 서서 사방으로 20미터 넘게 펼친 운교리 밤나무의 줄기와 가지.

   그러나 나라 안의 모든 밤나무들을 다 찾아볼 수도 없고, 관련 기록도 없는 까닭에 제가 처음 펴낸 책 '이 땅의 큰 나무'에서는 이 나무를 포함해서 밤나무 항목을 아예 넣지 못했습니다. 책이 나온 뒤로 이어진 나무 답사에서 저는 이 나무 외에 몇 그루의 큰 밤나무를 찾아보게 되었지요. 여러 밤나무 가운데에 인상적이었던 나무로는 절집 언덕에 서있는 나무와 고택의 엣 대문에 서있는 밤나무를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영월의 어느 고택에 서있는 밤나무는 원래 있던 대문 양옆에 서 있었는데,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 키우는 보기 드문 경우였어요. 규모도 무척 큰 한 쌍의 밤나무였습니다. 이 고택의 밤나무와 절집의 밤나무도 운교리 밤나무 못지 않게 크고 잘 생긴 나무인데, 나중에 따로 기회를 만들어 [나무 편지]를 통해 보여드리겠습니다. 이후로도 몇 그루의 밤나무를 더 찾아보긴 했지만, 크기나 아름다움에서 운교리 밤나무를 따를 나무는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산골 지방도로 변 작은 식당 '들림집' 뒤 언덕에 우뚝 선 운교리 밤나무.

   운교리 밤나무는 그 뒤로 몇 번을 더 찾아갔습니다. 평창 쪽을 지나칠 때에는 조금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꼭 보고 가려 한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무는 산림청 보호수였지요. 그냥 방치된 건 아니지만, 이 나무를 볼 때마다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나무 아래에는 '들림집'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그 집의 살림살이가 나무 주변에 어지러이 늘어져 있는 것도 그리 아쉬운 건 아니었습니다. 나무에 기대어 버섯 키우는 원목을 늘어놓은 것 역시 탓할 건 못 됐지요. 나무를 포함한 이 땅이 그 분의 개인 땅이니까요.

   무엇보다 아쉬운 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무 뿌리 부분에 쌓은 돌 축대였습니다. 비탈에 서 있는 이 밤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쌓은 축대였지만, 그게 나무의 생육을 방해할 뿐 아니라, 뿌리의 호흡을 방해할 만큼 옹색했습니다. 산림청에서 쌓은 것이라는 데도 그리 무심했던 겁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식당 집의 지붕에 가려서 나무의 풍광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는 겁니다. 주변 풍광은 아름답지만, 유독 이 나무 앞 부분의 식당 집이 자연 풍광을 거슬리게 하는 거죠. 좋은 사진을 찍는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겁니다.

   푸른 이끼가 세월의 더께처럼 소복히 내려앉은 운교리 밤나무의 줄기 한 가운데 부분.

   그게 식당 주인의 탓은 아니지요. 오히려 그 분은 나무를 오랫동안 잘 보존해온 고마운 분이지요. 이 식당의 여 주인은 바로 이 집에서 태어나서 자라셨습니다. 재 너머로 시집 가서 잠시 살았던 때도 있긴 했지만 얼마 뒤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셔서 지금 '들림집'이라는 이름의 식당을 하고 있는 겁니다. 늘 친절한 좋은 분이랍니다. 제가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하러 찾아간 손님이어서가 아니라,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푸는 분이지요.

   이 밤나무가 천연기념물 제498호로 지정된 것은 2008년 12월입니다. 당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는 운 좋게 제가 이 나무의 생육 상태를 포함한 주변 사정을 문화재청에 보고하는 일을 맡기도 했답니다. 그러저러하게 제게는 인연이 깊은 나무죠. 지난 주에 이 나무를 찾아간 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나무 옆의 돌축대도 깔끔하게 철거하고 주변 땅을 평평하게 정비했더군요. 나무로 오르는 길에도 나무 데크를 놓아서 보기는 훨씬 좋아졌습니다.

   밤나무 가운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잘 생긴 천연기념물 제498호, 평창 운교리 밤나무.

   점심을 거르고 돌아다니던 중이어서, 우선 식당에서 막국수 한 사발을 시켜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는 그간의 사정을 알리지 않고, 나무를 찾아온 나그네라고만 인사 올렸어요. 밤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달라진 게 없느냐고 여쭐 참이었지요. 그러자 들림집 주인은 예상 외의 답변을 건네왔어요. 이 나무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대개는 식당 집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다고 불평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무를 더 잘 보이게 할 수 있다면, 자신이 이 집을 버리고 조금 옆으로 이사를 나갈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50년 넘게 살아온 집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주변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겪어야 할 번거로움 때문에 아예 문화재 지정을 반대하는 게 대부분이지, 오히려 문화재로 지정된 나무를 위해서 몇 대를 이어 살아왔고, 지금은 자신의 소유로 남은 땅과 집을 모두 내놓고 이사를 하겠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요. 심지어 집 주위에 지정된 천연기념물 나무를 찾아보다가 야단을 맞은 일도 있지요. 저처럼 문화재 찾아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고생만 한다는 게 그 분들의 생각이거든요.

   어두워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는 운교리 밤나무의 저녁 풍경.

   나무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평화로운 것만은 아닐 겁니다. 때로는 나무의 자람이 사람의 삶을 방해할 때도 있을 것이고, 거꾸로 나무를 베어내야 할 만큼 사람살이가 나무의 삶을 방해할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어차피 사람과 나무가 서로를 떨어져서 사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면,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켜야 할 나무를 위해, 언젠가는 변화를 겪어야 할 사람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게 옳은 방법이지 싶습니다. 그게 무조건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요.

   석양의 노을 빛이 짙어질 때까지 나무 앞에 머물고 돌아오면서 자연에 기대어 혹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주에 쓴 신문 칼럼 '나무와 사람 이야기'가 바로 그 평창 운교리 밤나무와 그 아래 달림집 여자 주인장 최정자씨의 이야기였습니다.

   [신문 칼럼 다시 보기]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