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천년 은행나무 앞에서 살아오는 가죽나무의 푸른 추억 | |
1천 2백 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은행나무에서 새로 돋아나는 여린 잎. | |
[2011. 5. 23] | |
세월에 찢기고 뜯긴 상처를 붙안고 하늘로 솟아오른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줄기. | |
옛날에 우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살이의 상징으로 나무를 심고 키우며 사람처럼 아꼈어요. 때로는 조상처럼 모셨고, 또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받들기도 했지요. 1천2백 여 년 전, 강원도 영월 땅에는 중국 당나라에서 당시 임금이었던 현종이 새로 지은 악장(樂章)을 주변에 널리 알리기 위해 '파락사(波樂使)'라는 신분으로 신라에 들어왔던 분이 있었어요.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려 할 때,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서 그는 지금의 강원도 영월 지역인 내성군(奈城郡)에 머물렀습니다. | |
하송리 은행나무 앞에 영월엄씨 후손들이 세운 기념비. | |
지금은 적지않은 변화가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월엄씨들의 집성촌이었던 영월읍 하송리에는 시조인 엄임의 어른이 심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남아 있습니다. 나무 앞에는 영월엄씨 시조인 내성군 어른이 손수 심은 나무라는 돌 비석까지 세워두었지요. 안록산의 난이 일어난 게 서기 755년부터 763년 사이이니 이 은행나무는 1천2백 년을 넘게 살아온 셈입니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가 신라가 망한 서기 935년 즈음에 심은 나무이니, 그보다 적어도 180살 쯤은 더 된 나무입니다. | |
나무 주위의 마을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융융한 자태를 잃지 않고 서 있는 천년 은행나무. | |
나무는 마을의 수호목이자 정자나무로, 마을 사람들의 쉼터 노릇을 했지만, 요즘은 나무를 보호하려고 주위에 울타리를 둘러친 탓에 나무 가까이에 다가서기는 어렵습니다. 이제는 쉼터로서보다는 바라보기 위한 나무입니다. 게다가 마을 풍경이 달라지면서, 이제는 마을의 수호목으로서의 의미도 조금은 퇴색했지 싶어 보입니다. 그러나 바라보기 위한 나무로서의 의미는 여전합니다. 나무를 구경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척 많은 나무지요. 영월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은 코스 안에 천년 은행나무를 집어넣고, 버스를 타고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 |
나무 앞에는 오랫동안 당산제를 지낼 때에 제물을 올릴 자리로 놓은 소박한 제단. | |
살가운 전설을 가진 하송리 은행나무도 긴 세월 동안 많은 변화를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나무 앞에는 대정사라는 절집이 있었다고 해요. 어떤 연유로인지는 몰라도 절집은 얼마 뒤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옹기종기 낮은 지붕의 작은 집들이 모여 들었어요. 나무가 있는 자리는 도로의 막다른 곳 한가운데였고, 그 곳에서 시작되는 마을은 좁다란 골목길로 이어져 있었지요. 그런데 최근에 그 작은 집들이 모두 사라지고, 큰 길이 났습니다. | |
여느 은행나무처럼 아름다웠을 예전의 자태와는 또다른 장엄미를 드러낸 하송리 은행나무. | |
당황하며 나무에 이르렀을 때에는 마을 노파 두 분이 나무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도시락 점심을 나눠 드시고 있었습니다. 두 노파는 나무 주변을 정돈하기 위해 군청에서 할당한 일거리를 맡아서 이른 아침부터 풀 뽑기를 하던 중이었어요. 일년 중 일곱 달 정도 동안 두 분이 맡아서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노파들 곁에 함께 쭈그리고 앉아, 요즘 이 나무가 어찌 살아가는 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졸랐습니다. | |
앞으로도 천년을 더 살아갈 기세로 꼿꼿하게 뻗어올린 하송리 은행나무 줄기. | |
사람살이는 어쩔 수 없이 변화를 겪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살던 가옥들이 부서지고,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그 사이로 휑하게 널따란 길이 뚫립니다. 새로 뚫린 길 양쪽으로 사람들은 어김없이 나무를 심을 겁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잘 살아있는 나무의 몸뚱아리에 톱날을 들이밀고, 도끼날을 처박겠지요. 그리고는 새로운 나무들을 어디에선가 데려와 심으며 박수를 칠 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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