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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설도의‘춘망사春望詞’

by 丹野 2011. 1. 1.

  

 

 

 

 

 

 

한시 한 편의 여러 생각·5

                    

            - 설도의 ‘춘망사春望詞

 

 

                                                                                진경환(한국전통문화학교 교양과정부 교수)

 

 

  설도(薛濤; 대략 770~832)는 당대唐代의 명기名妓 겸 여류시인이다. 만년에 두보杜甫의 초당으로 유명한 성도省都의 서교西郊 근방에 은거하였는데, 그곳은 좋은 종이의 산지였다. 설도는 심홍색의 작은 종이에 시를 써서 명사들과 교유한바, 유명한 ‘설도전薛濤箋’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설도는 다른 것으로 더 친근한 시인이다. 우선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춘망사春望詞’의 한 수를 읽어보자. ‘춘망사春望詞’는 총 4수의 5언절구인데, 시방 우리가 읽으려 하는 것은 세 번째 수이다.

 

風花日將老 바람에 꽃은 떨어지려 하는데

佳期猶渺渺 님 만날 기약은 아득하기만

不結同心人 한 마음이건만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부질없이 편지만 접어보누나

 

  맺어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사가 절절히 묻어나고 있다. 그런데 세 번째, 네 번째 구절에 ‘結同心’이라는 말이 거듭 나타난다. ‘同心結’은 사랑하는 사이에 정표의 의미로 화초나 물건으로 만든 여러 가지 매듭이나 장식물을 총칭하기도 하지만, 대개 연서戀書, 곧 연애편지를 의미한다.

  그런데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마지막 구절의 ‘同心草’를 보고 가곡 <동심초>를 떠올렸을 것이다. 바로 안서 김억이 번역한 이 시에 작곡가 김성태가 곡을 붙인 노래가 바로 그것이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이 정도 번역이면 가히 창작이라 할 만하다. 마지막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로 해서 ‘동심초’가 풀이름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연애편지를 의미하니, 식물도감을 찾아볼 일은 아니다. 김성태는 이어 2절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날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김억보다는 좀 떨어지는 심상인 듯하나, 절창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시는 김억이 살았던 같은 시대에 일본에서도 佐藤春夫(사또 하루오; 18921964)에 의해 번역되었다. 역시 절창이라 할 만하다.

 

しづ心(こころ)なく散る花に 마음 흩뜨리며 날리는 꽃잎에

なげきぞ長きわが袂(たもと) 탄식으로 기나긴 나의 소매여

情(なさけ)をつくす君をなみ 정을 다 바친 그대 가고 없어

つむや愁(うれい)のつくづくし 헛되이 뜯는구나 슬픔의 풀잎

 

  한시 중에는 정말 절창인 노래들이 수없이 많다. 다만, 그것을 감상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다. 이제 시인들과 한학자들이 손을 잡고 한시를 어두운 골방에서 불러내 새로운 절창을 빚어내야 마땅하다. 김억이 한 작업(『김억한시역선』, 한국문화사, 2005)을 이어가야 한다. 재능 있는 시인들이여, 가곡 <동심초>를 틀어놓고 차 한 잔 하시면서 한시 살려낼 궁리를 해 보시는 것은 어떠신가?

 

 

 

 

 

출처 / 우리시회 http://cafe.daum.net/urisi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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