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폴 스미스 / 철학적 플라뇌르

by 丹野 2010. 10. 1.

 

 

 

 

마네와 보들레르 그리고 '플라뇌르'로서의 예술가



    3. 철학적 플라뇌르

    보들헤르의 탐정 플라뇌르에 대한 비평에 가장 확실히 반응한 작품을 그린 화가는, 1555년경부너 시인과 가까운 사이였던 마네이다. 마네는 [튈르리의 음악회 Music in the TuiIeries](1862년)에서 보들래르와의 우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데. 이 그럼에서 우리는 왼족에 파란 모자를 쓴 젊은 여인 뒤에 있는 보들레르의 흐릿한 옆모습을 볼 수있다.

    그러나 보들레르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사의를 표하는 것은 회화가 작용하는 (또는 작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첫눈에 마네는 화면 안의 관람자를 스쳐 지나가는 군중들을 바라 보는 자의식이 없는 플라뇌르로서 규정하는 듯하다. 마네는 심지어 관람자가 상상력을 동원해 화면안으로 들어올 때 세 가지의 매우 대담한 장치를 사용하여 이런 역할을 조장한다.

    첫째, 그는 나소 산만하게 화면 안의 얼굴의 초점을 분산시킨다. 예를 들면, 관람자와의 거리에 따라 선명하거나 흐릿하게 조절함으로써 보들레르의 뒤에 있는 여성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장치는 관람자에게 군중을 훑어보는 느낌을 준다.
    둘째, 마네는 작업 후반에서 나무를 화면의 중앙으로 늘어뜨려서 전경으로 뻗어 나오게 하었는데, 이 장치는 관람자가 화면을 깊숙이 살펴보는 것을 방해하고(이를 막기 위해 화면이 뒤로 물러나 있다) 대신 그림 전체에 걸쳐 관심을 분산시킨다.
    마지막으로, 마네는 화면의 중앙을 아주 희미하게 처리해서 이런 효과를 강조한다. 이는 다시 관람자가 그곳을 주시하거나 관심을 고정시키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이런 장치들이 단순히 대중 속에 있다는 경험만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들은 화면과 일치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관람자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이해할 수 없고 모순된 상태로 남아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네Édouard Manet(1832-1883), [튈르리의 음악회])Concert in the Tuileries,
    1860-62,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at London

    [튈르리의 음악회]는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방해를 하기 때문에, 이것을 꿰뚫어 보려는 우리의 노력은 좌절당한다. 예를들어, 전경의 젊은 여성은 관람자의 관심을 붙러일으키지만, 관람자는그녀와 동반한 보호자의 날가로운 눈빛이나 그녀가 지닌 부채의 반은 열려 있고 반은 닫혀 있는 애매한 위치 때문에 그녀로부터 뒤로 물러나게 된다. 심지이 마네는 익명의 관람자를 이용해 농담을 하기도 하는데, 아는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의 친구들과 지인들을 회화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게다가 마네는 탐정 놀이를 하는 우리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시도하는 노력이 모두 헛된 것임을 힐난하는 것처럼 화면의 왼쪽 귀퉁이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최후의 승리를 만끽한다. 대체로 이회화는 포의 탐정 소설이나 보들레르식의 산문체 시와 같은 스타일로 우리를 약 올리기, 혼란에 빠트리면서, 그림을 확실하게 읽어내려는 우리의 시도에 찬물을 끼얹는다.

    마네는 이 회화 안의 관람자를 단순한 플라뇌르로 규정한다. 관람자는 오히려 그 자신의 상황을 반영하고, 강한 자의식을 가질 것을 강요받고, 보들레르가 [근대 생활의 화가]에서 이상적인 플라뇌르로 묘사한 '철학자'나 '광활한 인간 사막을 덧없이 배회하는 ‥‥‥고독한 개인' 처럼 그가 보는 것에 대해 비평적익 것을 강요당한다. 이런 관점에 대해 마네와 보들레르의 의도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는 상당히 많다. 왜냐하면 이 시인과 화가 둘 다 철학자를 구걸꾼이나 주정뱅이로 묘사하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이, 보틀레르는 [악의 꽃 The Flower of Evel) (1857년)에 수록된 그의 시 <넝마주이의 포도주 Ragpickers' Wine>에서 시인이 어떻게 서정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은유로 세상을 향해 저항의 목소리를 외치는(그가 경찰 스파이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술 취한 넝마주이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넝타주이는 파리의 하층 시민계급으로, 주로 밤에 활동하고 쓰레기를 줍는 것으로 삶을 연명한다. 그러나 이 소외된 존재는 당대 문학에서 거리의 철학자나 고대의 가난에 찌든 나그네의 근대판으로 자주 비쳐졌다. 보들레르는 그의 시에서 시인과 주정뱅이와 철학자 사이에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이 시는 '철학자' 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마네 Édouard Manet(1832-1883)[압생트를 마시는 사람],The Absinthe Drinker,
    1859, Ny Carlsberg Glyptotek, Copenhagen
    마네의 그림은 1859년 살롱전에서 거절당했다. 그는 이것은 단순히 "내가 파리에서 관찰한 파리사람들의 특성이며. 벨라스케스에게서 발견한단순한 기법으로 제작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에콜 데 보자르에서 그를 가르친 토마 쿠튀르Thmas Couture는 하층민을 소재로 다룬 것과 그처리 방식에 분개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이라. 불쌍한 내친구여. 네가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이구나. 도덕적기능을 잃어버린 것은 바로 너다."

    마네는 아마도 넝마주이에 대한 대형 초상화인 [압생트를 마시는사람 The Absinthe Drinker)(1858-9년, 도판 24)을 그릴 때, 이 시를 알았던 것 같다. 이 그럼은 풍속화나 심지어 사회적 사실주의 회화로도 규정될 수 없다. 그 당시의 전통적인 작품들과 비교해 보면 이 그림은 아무런 이야기나 설명도 없는 대신, 모델을 고립되고 크게 그려 품위 있어 보이게 하였다. 그 후 1870년에 마네는 이 작품을 '철학자'를 그린 네 작품 중 하나라고 했으며, 이 그림은 마네가 매우 존경했던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1asquez 의 [메니퓌스 Mennipus)(1837~40년, 도판 26) 같은 고대의 술주정뱅이나 거렁뱅이 철학자에 대한 그림들에 필적할 만하다.

    보플레르와 마네는 넝마주이와 연관시킴으로써 상상 속에서 자신을 철학자와 동일시한 듯하다. 따라서 마네의 [늙은 음악가 The Old Musician)(1862년, 도판 25)는 '철학적' 메술가의 추방에 관한 알레고리allegory로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오스만이 이런 부류에게 내런 새롭고 정중한 허가 협정 때문에, 노시에서 쫓겨나 방랑하는 예술가와 연주자 옆에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이 다시 듣장했기 때문이다. 더 유사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림에서 가장 오른쪽의 유태민 인뭍이 추방당한 철학자로서의 화가를 나타낸 것이 틀림없는 것첨럼, 넝마주이가 철학자로서의 시인(<넝마주이의 포도주>에서 처럼)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귀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마네는 그를 알고 있었다)는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Bonjoul Mr. Courbet)(1854년)에서 그 자신을 '에피날 판화 images d' Epinal' 에 나오는 '방랑하는 유태인'과 같은 포즈로 그렸다. 자칭 보헤미안으로서, 쿠르베는 이 작품에서 일종의 방랑하는 칠학자로서 '방랑하는 유태인'과 동일한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항상 세상을 떠돌아다니먼서 예수의 못박히심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운명지워진 방랑하는 유태인' 의 전설에 기초하고 있다.)


    마네,[늙은 음악가]The Old Musician,
    1862,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t at Washington D.C

    출처 / 인터넷 검색 - 출처 / http://cafe.daum.net/jsseo43
 

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