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와 보들레르 그리고 '플라뇌르'로서의 예술가
1. 탐정으로서의 플라뇌르
근대 생활을 파악하지 못하는 플라뇌르의 반응 중의 하나는, 우리가 바쟁 A.Bazin 같은 작가로부터 들어 알다시피 일종의 아마추어 함정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에서 그를 도와주기 위해, 그 당시의'푀유통feuilleton(팜플렛 시리즈)' 문학은 누가 누구인지를 가려낼 수있는 <생리학.phystologies> 이라는 무기-또는 사회적 유형에 대한 분류학-를 제공하고 있다. 플라뇌르는 심지어 외출할 때 <생리학>을 가지고 다녔고, 신체 유형과 의복에 대해 비정상적일 정도까지 관찰자가 되었다. 파리는 지사인 오스만 Baron Haussmann에 의해 10년에 걸쳐 오늘날과 같이 넓은 길과 긴 조망을 가진 도시로 재개발되었다. 도시의 이런 모습은 미적 측면을 지니고 있어서 관광객을 불러들였지만, 파리의 재개발은 도시가 법과 질서에 의해 쉽게 감시되고 관찰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가로등과 번호를 매긴 집도 감시를 용이하게 해주었다.
이런 체제로 인하여 수많은 불법적인 행위들은 위장한 채로 행해져야 했다. 예를 들어, 매춘부들은 경찰에 들키지 않으면서 고객을 재빨리 유인하는 법을 찾아야 했다. 그들은 변장에 능했고 그들의 고객들은 그런 변장한 모습을 알아보는 데 탁월했다. 경찰과 매춘부 사이의싸움을 좌아온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8시에 우아한 의상과 화려한 치장을 하고 다니는 여성이, 7시의 여점원과 10시의 시골소녀와 동일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는 그리 큰 기술이 필요없다." 실제로 범죄자들은 이런 식으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플라뇌르는 진짜와 가짜 인사를 구별하고 형사처럼 범죄자 유형을 찾아내기 위해 <생리학> 같은 것에 의존했다. 플라뇌르의 망상은, 만약 그가 형사라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형사일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더 고조되었다.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은 누구 - 잠재적인 친구, 연인, 또는 살인자- 일지 모르는 수많은 이름 모를 도시거주자들을 만나게 됨을 의미한다.
보들레르는 <근대 생활의 화파>에서 플라뇌르 화가를 탐정으로 다양하게 언급한다. 그가 화가를 '군중 속의 사람'으로 부른 것이 그 단서이다. 이것은 보들레르가 1851년 번역해 출간한 에드가 알란 포 Edgar Allan Poe의 탐정 소설 <군중 속의 남자> The Man of the Croud에서 참조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 이야기는 런던의 한 카페에서 창문 쪽에 앉아있는 남자가 지나가는 군중들을 구체적인 생리학적 유형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드가,[카페 테라스의 여인들, 저녁] Women on a Cafe Terrace, Evening
관람자를 탐정 플라뇌르로 명백히 규정하는 작품으로는 드가의 모노 타이프 [카페 테라스의 여인들, 저녁] Women on a Cafe Terrace, Evening(1877년) (카페 테라스 앞의 여인들, 저녁 Women in front of a Cafe Terrace, Evening으로도 알러져 있다)을 들 수 있다. 우리는 화면 오른쪽의 남자가 카페 테라스에 모여 앉아 손님을 유혹하는 매푼부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한 해석가는 그가 의자를 비운 여성에게 어떤 신호를 보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어쨌든 왼쪽에서 두 번째 있는 여성은 거리에 가까운 더 좋은 자리로 앉으려는 듯 자리를 일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해석들이 정확하지는 않을 지라도, 관람자를 탐정 플라뇌르로 만들어 등장인물들이 흘렸을지도 모르는 그 어떤 것을 찾기 위해 화면을 꼼꼼히 샅펴보게 만든다. 게다가 드가는 그 자신을 '요한 카스파어 라바터 Johann-Kaspar Lavater'라고 불렀던 사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림 안의 여성들을 다룬다. 라바터는 18세기 생리학자로서, 인물유헝의 특징에 대한 그의 분석은 나중에 보들레르 세대의 생리학에 기초를 마런해 주었다. 드가는 여성을 희화화된 인상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여성들의 변질되었을지도 모르는 본성을 묘사해 낸다. 특히 그들의 우묵한 이마와 튀어나온 턱은 그들이 진화가 낮은 단계의 유인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드가는 관람자를 그림 안에 놓아서, 그가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거나 적어도 사람들이 그의 존재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나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는 그의 관찰이 들키지 않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보들레르의 플라뇌르처럼.
르누아르의 [우산]Les Parapluies (The Umbrellas),
1881-82 and 1885-86,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at London
또 다른 탐정 플라뇌르 회화라 할 수 있는 르누아르의 [우산 The Umbrellas](1881년경이나 1885년경, 도판 22)은 보이지 않는 탐색의 스릴을 훨씬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 그림에서 관찰자는 멋진 공원의 남자가 된다. 이는 화면 왼쪽의 매럭적인 젊은 여성이 관람자의 관심을 끌고 있는 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여성은 상하기 쉬은 물건이나 판매용 꽃을 담은 유포로 닾인 바구니를 들고 있다. 그녀의 의상은 그녀가 화면 속의 잘 차려입은 다른 사람들보다 낮은 계급임을 나타낸다. 노동 계급의 여성들은 종종 플라뇌르의 '기사도적인'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 그림은 관람자로 하여금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그녀는 이에 대한 아무런 방책도 없기 때문에 그는 그녀에게 우산을 건네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프를 들고 있는 전경의 어린 소녀가 그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관람자에게 부정한 의도가 숨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 반대로 화면 왼쪽의 남자는 그녀를 관찰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 그 가족의 아버지이거나 더 젊은 여성을 넘보는 잠재적인 경쟁자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만약 관람자가 바구니를 들고 있는 여성에게 부정한 접근을 시도한다면, 그는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한다. 특히 그는 소녀의 어머니가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관람자의 의도와관련된 화면 왼쪽의 남자를 눈치채기 전에 일을 해치워야 한다. 즉 이 회화는 주변 사람들의 탐색을 피하기 위해 상황을 신중히 고려하고 빨리 행동해야 하는 그시대의 고민을전 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회화는 플라뇌르의 시각이 상실감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황과 사건들이 너무 빨리 일어나서 잡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보들레르가 그의 시 <지나간 여인에게 To a Woman Passing By>에서 묘사하듯, 심지어 첫눈에 반한 사랑도 마지막에 보이는 사랑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시적인 순간에 어떤 불변성과 접근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바램은 인상주의에서 되풀이되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확실히 르누아르의 [클리시 광장]같은 그림에 동기를 부여하는 듯하다. 이 회화에서 관람자의 시선은 마치 금방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붙들고 그 주변에서 장차 일어날 이야기를 설명하려는 것처럼 지나가는 여성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다.
- 출처 / 인터넷 검색 - 출처 / http://cafe.daum.net/jsseo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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