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연애가 생각나는 밤
권현영
함부로 슬픔을 내보이지 않는 자의
혀가 저리 흰가
독한 연애의 끝이
저리 무심한가
어둠 속 흰 박꽃 같은 눈송이는
어떤 내성(內省)을 닮아 있다
백두산 어느 골에 산다는
우는 토끼의 눈망울이 생각나는 밤
우는 토끼라는 서글픈 학명처럼
눈 내리 퍼붓는 깊은 산골짝서
이승의 한 철을 홀로 견뎌야 하는
순한 짐승의 독한 발자국을
따라가 보느라
잠이 오지 않는 밤
진짜 연애는 칼날을 삼킨 듯 아파도
혀끝으로 나불거리는 게 아니라던가
선배의 연애론이 생각나는
함박눈 내리는 밤
명치끝이 저려 와
불도 켜지 않고
뜬 눈으로 가만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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