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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독한 연애가 생각나는 밤 / 권현영

by 丹野 2009. 3. 3.

 

 

 

독한 연애가 생각나는 밤

 

권현영

 

 

함부로 슬픔을 내보이지 않는 자의

혀가 저리 흰가

독한 연애의 끝이

저리 무심한가

어둠 속 흰 박꽃 같은 눈송이는

어떤 내성(內省)을 닮아 있다

백두산 어느 골에 산다는

우는 토끼의 눈망울이 생각나는 밤

 

우는 토끼라는 서글픈 학명처럼

눈 내리 퍼붓는 깊은 산골짝서

이승의  한 철을 홀로 견뎌야 하는

순한 짐승의 독한 발자국을

따라가 보느라

잠이 오지 않는 밤

 

진짜 연애는 칼날을 삼킨 듯 아파도

혀끝으로 나불거리는 게 아니라던가

선배의 연애론이 생각나는

함박눈 내리는 밤

명치끝이 저려 와

불도 켜지 않고

뜬 눈으로 가만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