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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말랑말랑한 벽 / 박설희

by 丹野 2009. 2. 24.

 

 

 

말랑말랑한 벽

 

박설희

 

끙 하고 누가 돌아눕는다

내 귀가 먼저 달려간다

물 흐르는, 쿵쾅거리는, 흥얼거리는 소리

벽에 달라붙은 귀

 

천장의 얼룩이 점점 커진다

날림 공사를 했는지 온통 손볼 데 투성이다

누수 되고 있다는 걸

못 박는 게 취미인 위층 남자는 모를 것이다

내 시선은 오래 그 얼룩을 더듬는다

물 만난 벽지에 남아 있는 흉터,

쭈글쭈글하고 약간 딱딱해진

 

벽에 생긴 틈이 그새 더 벌어져 있다

이 틈을 누구의 것이라고 해야 할까

요리나 샤워를 하면서

끊임없이 옆방 여자가 건너오는

 

부드러운 원룸,

걷는다 구른다 뛴다

다만 그뿐

문고리도 문도 보이지 않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으로

얼룩 번져간다

틈이 점점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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