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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노을 시편 모음

by 丹野 2009. 1. 30.

 

 

노을 / 나호열

-곰소바다

 

 

이 세상 어둠 밝히는
모든 불빛은
고기대신 
서해바다 노을을
끌고 돌아오는
곰소항 목선
그물 속에 있다

 

 

 

노을 / 나호열

 

한 잔의 붉은 술을
마신다 노을 속으로
뒷모습을 남기며
떠나간 사람
취하여 또 한 잔
노을은 자꾸
붉어지고
긴머리 그 사람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자꾸 나는 취하고

 

 

 

 

노을 / 나호열

 

어둠끼리 살 부딪쳐 돋아나는
이 세상 불빛은 어디서 오나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서해 바다 가득한 노을을 
끌고 돌아오는 
줄포항 목선 그물 속 
살아서 퍼득거 리는 
화약냄새 

 

 

 

노을 / 나호열


한 걸음 내딛어 그대를 바라보고
또 한 걸음 모두어 발 밑에 엎드리는
一步一拜의 하루
燒身供養하는 한 사내
불을 끼얹고 있다
어제도 죽고
오늘도 죽은 그 사내
아직도 남은 죽음이 있어
눈물 흘리는 그 사내
제 몸을 두드려 패는 몽둥이에게
얼마나 아프냐고 되묻는 사내
그의 몸에서 모래가 쏟아진다
그 마음에서 모래가 쏟아진다
주먹 한 줌의 그 사내



 

 

 

 

 

 

 

 

 

옛사랑을 추억함 / 나호열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나

꽃 피고 바람 불고 속절없이 죄다 헐벗은 채로

길가에 서 있었던 때가 있었나

이제는 육탈하여 뼈 조각 몇 개 남았을 뿐인데

얇아진 가슴에 돋아오르는

밟을수록 고개 밀어 올리는

못의 숙명을 닮은 옛사랑이여

나는 아직 비어 있는 새장을 치우지 않은 채로

횃대에 내려앉은 깃털과

눈물 자국을 바라본다

작은 둥지에는 무모했던 ,무정란의

꿈의 껍질 그대로

이제는 치워야지 하면서

또 누군가를 감금하기 위하여

시간을 사육하고 있다

덫 인줄 모르고 내 가슴에 내려앉으려면

튼튼한 날개가 필요하다

한 번 날아오르면 별이 된다고

죽어야 별이 된다고

눈물의 망원경은 막막하게

허공을 조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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