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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1716

제77회 셍 망데 국립프랑스예술가협회 가을 전람회 성료 https://www.mediapia.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153 제77회 셍 망데 국립프랑스예술가협회 가을 전람회 성료! - 미디어피아2024년 9월 26일부터 10월 6일까지, 파리 근교에 위치한 유서 깊은 셍 망데 시청 연회장에서 제77회 셍 망데 국립프랑스예술가협회 가을 전람회 LE SALwww.mediapia.co.kr 2024. 10. 11.
무르만스크 / 조용미 무르만스크 조용미 지구의 가장자리 무르만스크에 가볼까 몸이 좀 나으면 오로라를 보러 북쪽으로 가야 하니까 거기서 조금 더 북쪽으로, 25시간 북극행 열차를 타고 쇄빙선도 타고 무르만스크 미술관에도 가야지 생각할 틈도 없이, 지루할 틈도 없이 추위는 몸속을 파고들겠지 명징한 의식으로 우리의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북극에서도 얼지 않는 바렌츠해처럼 혹독한 겨울에도 얼지 않고 들끓는 고통이 필요하다 명징한 의식으로 무르만, 무르만, 가장자리를 찾아 끝의 끝으로 북극권의 북쪽으로 골수까지 추위가 스며들어 슬픔도 시시해져버리고 얼음 같은 언어가 반짝이며 생겨나는 곳 무르만스크로 가야지 ―계간 《문학동네》 2024년 가을호 ----------------------- 조용미 / 1990년 《한.. 2024. 10. 9.
하염없이 / 박성현 하염없이 박성현  하염없이 걷다가문득 하염이란 말이 궁금해졌다가로등 아래 내려 쌓이는 불빛도 하염없는데그 말은 어디서 왔을까 당신 곁에서 하염없이 울다가우리는 왜 하염을 버려둔 채로 울어야 하는지궁금했다 하염은 모래처럼 비좁고 분명한데스며들 때마다 차갑고 서러운데 하염없이 울다가칼바람이 모여드는 성난 골목과높은 파도를 생각했다 나의 안식이란하염없이 쏟아지는 부끄러움과 욕설뿐바람이 짊어진 구름의 무게는왜 한없이 투명한 걸까 왜 당신은 밤낮없이 눈을 감고 있었을까하루에 두 번 간이역에서 정차하는 낡은 버스처럼하염없이 툴툴거렸다그래서 하염이 궁금했다 2024. 10. 6.
관계 / 이해존 ] 관계  이해존       한 번도 뜯어낸 적 없는 것을 드러내자 바람이 빈틈을 메운다  코르크 마개처럼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것, 담 벽에서 무너져 내린 흙더미는 제자리에 있던 것보다 수북하다  오랫동안 붙들려 있던 것들이 어둠의 부피를 키운다  같은 것이 같은 자리를 찾아가도 아귀가 맞지 않아 다시 닫히는 초점을 맞추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  한 번 떠나간 마음을 되돌릴 수 없을 때, 어둠을 문지르면 더욱 짙어지는 날들  둘로 나뉘는 순간 연기처럼 빠져나가는, 두 번 다시 들일 수 없을 것 같은 간극  잠시 떨어져 지내보자는 말이 허공에 붙들린 마른 나뭇잎처럼 위태롭다     웹진 님Nim -  2024년 3월호 Vol.33 - 이해존  이해존 시인 2013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당.. 2024. 10. 6.
하북 / 박지웅 하북   박지웅      뼈도 살도 아닌 불그레한 것이 가을볕에 나서 마르고 있다   작은 돌조차 비켜가지 못하는 몸을 지그시 말고 장미줄지렁이는 반지가 되려나 보다  아무도 끼지 않은 반지가 되려고 한 번도 버려지지 않은 반지가 되려고 그을린 활자들이 바닥난 힘으로 환생하는 길바닥  그러고 보니 느린 우체통 속 광야에서 가을을 보낼 내 편지도 바닥이라는 생각   하북 바닥이 장미줄지렁이에게 세상 꼭대기이듯 편지는 높고 쓸쓸한 나의 바닥이라서 가을비 긋고 정인에게 가는 내 갈필의 바깥은 속이 다 비치는 행간이라서   당신이 맑은 종아리를 걷고 저리 건너가고 이리 건너오는가    하북, 하북 입안에 넣고 숨결처럼 발음하면 길고 부드러운 나뭇잎이 생기는 걸 아는지    햇살의 흰 종소리가 잎에 묻었다가 바닥.. 2024. 10. 6.
김재근 시집 『같이 앉아도 될까요』 같이 앉아도 될까요 김재근 너는 아프다 아픈 너를 보며 같이 우울해야 할까 혼자 즐거워도 될까 처음 걷는 사막처럼 처음 듣는 빗소리처럼 어디서부터 불행인지 몰라 어디서 멈추어야 할지 몰랐다 너를 위한 식탁 창문은 비를 그렸고 빗소리가 징검다리를 건널 때까지 접시에 담길 때까지 그늘이 맑아질 때까지 고요가 주인인 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너를 위한 식탁 촛불은 타오르고 촛불 위를 서성대는 그림자 너를 밝히는 시간 너를 기다리는 시간 시간을 함께 나누려면 얼마나 더 멀어져야 할까 너를 처음 읽는 것 같아 헤아릴수록 빗소리 늘어나는데 너는 오늘의 불안인가 식탁은 불멸인가 수프는 저을수록 흐려지고 빗소리에 눈동자가 잠길 때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너를 위한 식탁 너를 본 적 없어 너를 부를.. 2024. 9. 17.
달걀 / 고영 달걀 고영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창을 닫았다. 어둠을 뒤집어 쓴 채 생애라는 낯선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집은 조금씩 좁아졌다. 강해지기 위해 뭉쳐져야 했다. 물속에 가라앉은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까지 있는 힘껏 외로움을 참아야 했다. 간혹 누군가 창을 두드릴 때마다 등이 가려웠지만. 방문(房門)을 연다고 다 방문(訪問)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가 되지 못하는 머리가 아팠다. 똑바로 누워 다리를 뻗었다. 사방이 열려 있었으나 나갈 마음은 없었다.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나는 아직 더 잠겨 있어야 했다.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장석주 시인 문학평론가 달걀은 알의 한 종류다. 알은 상징세계에서 영(零), 중심, 생명의 배자(胚子)를 가리킨다. 우.. 2024. 9. 13.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이성복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이성복 詩는 '머리의 언어' 전복시키는 '몸의 언어' “여배우의 모습 밑에서 수녀를 사랑하다니!…” 19세기 프랑스 작가 네르발의 ‘실비’라는 소설의 이 한 구절은 30년의 내 문학적 삶의 도정을 드러내는 적절한 비유로 쓰여질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지금까지 내가 문학을 애지중지해 왔던 것은 구두 밑창을 파고든 압정처럼 좀처럼 빠지지 않는 신경증적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책 제목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끌어와 말하자면, 지난 세월 내 혼곤한 문학적 삶은 ‘야심’이라는 의지와 ‘문학’이라는 표상의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대체 난공불락의 그 신경증적 야심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까닭으로 하필 문학이라는 탄두를 가지게 되었는.. 2024. 9. 10.
호두나무 잎사귀가 있는 저녁 / 장철문 호두나무 잎사귀가 있는 저녁 장철문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 하늘에 막 생겨나는 달이 있었다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 마음에 막 생겨나는 사람이 있었다 어스름 속에서 막 돋아난 달처럼 막 피어난 호두나무 푸른 잎사귀 사이로, 돋아나는 사람이 있다는 데 놀라고, 그 사람이 지금 곁에 없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데 또 놀랐다 어스름 바람에 팔랑이는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로, 그 사람도 달을 보고 내가, 그 사람에게 생겨나는 달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사람의 씽긋 웃는 얼굴이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 하늘에 떠 있었다 어두워지는 호두나무 잎사귀 아래서 그 사람을 보고, 다시 보고 호두나무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이 살을 감고, 달이 싱거워지고 검은등뻐꾸기 소리와 호랑지빠귀 소리에 귀가 기울고, 하늘에 떠 있는 그 사람.. 2024. 9. 6.
너는 / 전윤호 너는 전윤호 왜군이 독립군의 목을 작두로 자를 때 가족들을 교회에 몰아 놓고 불을 지를 때 지진이 났다고 조선인을 사냥해 죽일 때 사내들은 잡아가 탄을 캐게 하고 처녀들을 잡아가 노리개로 삼을 때 쌀은 다 실어가고 콩깻묵을 먹일 때 무슨 공덕으로 이 땅에 다시 태어나 김구를 죽이고 소녀상을 욕보이고 이 나라의 녹을 받으며 왜놈 편이 되는 게냐 배워서 친일하고 정치해서 친일하고 이 나라 군대 계급장 달고 친일하면 누구에게 칭찬 받고 누구에게 충신이 되는 게냐 홍범도가 만주에서 왜놈들을 무찌를 때 총알 하나 보태지 못한 것들이 유관순이 안중근이 옥에서 죽어갈 때 입도 뻥끗 못한 것들이 무슨 낯으로 지금 이 땅에서 푸닥거리나 하면서 떵떵거리며 사는 게냐 —월간 《문장 웹진》 2024년 9월호 ---------.. 2024. 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