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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Leeum]마크 로스코 숭고의 미학

by 丹野 2006. 8. 2.

 

 

[출처]삼성미술관 Leeum

 

 

 작가소개

 

마크 로스코(1903-1970)는 1950년대를 전후하여 미국에서 발생한 중요한 미술사조였던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1903년 러시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마크 로스코는 1910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어린 시절 겪은 혼란에서 비롯된 상실감과 소외감은 로스코의 예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예일대학교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였던 로스코는 1923년 학업을 중단하고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정식으로 미술학교에서 수업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였으나, 깊이있는 작품 세계로 곧 뉴욕 화파(New York School)의 중심인물이 된다. 1920~30년대에 로스코는 표현적인 터치로 풍경과 인물을 주로 그렸고, 1940년대에 들어 유럽에서 유입된 초현실주의에 경도되면서 신화를 바탕으로 한 유기적 형상을 탐구하였다. 1947년 무렵부터 형태를 색면으로 단순화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1949년에는 그의 대표적인 양식이 되는 두세 개의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추상회화에 도달했다.

유태인으로서 양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로스코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공포를 직접 경험하였고, 현실의 불안과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불멸의 정신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는 이를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믿고, 추상회화로서 인간의 보편적 정신에 호소하고자 하였다. 붉은 색면에 떠있는 색사각형이 마치 빛을 내뿜는 듯이 보이는 그의 작품은 1950년대 후반부터 규모가 더욱 커지고 색채가 어두워지면서 숭고미와 명상적 분위기가 한층 강해지게 된다. 붉은색과 밤색, 그리고 검정색이 주조를 이루는 색면과 미묘한 빛의 효과는 이후에도 1960년대를 관통하며 그의 화폭을 지배한다.

로스코의 회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실존의 비극과 이것을 이겨내는 숭고한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로스코는 인간의 존엄성, 정신의 숭고함의 가치가 상실되고 합리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해지던 시대에 예술을 통한 영원한 정신의 추구에 전념하였다. 그는 빛과 어둠, 수직과 수평, 현존과 부재 같은 대립 사이에서 탄생하는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였으나 인간 존재의 유한함에 절망을 느끼며 1970년 결국 자살로써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였다.

 

 

작품소개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이르는 동안 로스코는 누드, 자화상, 인물이 있는 실내 풍경, 도시와 자연경관 등을 그린 수백 점의 그림을 종이와 캔버스에 남기고 있다. 로스코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형태의 의도적인 변형과 물감의 절제된 사용은 로스코가 몹시 선망한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예술, 어린이 미술과 같은 비서구 시각 전통과 공유하고 있는 특징들이다. 그리고 흑연, 잉크, 투명과 불투명 수채, 유채 물감을 사용한 그림들에서 재료와 도구에 대한 초기의 실험적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로스코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도시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풍경에 나타나는 유기적인 곡선들은 기하학적인 구조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실내, 도시의 지하철, 해변 등 어떤 장소라도 반드시 한 명 이상의 인물이 존재한다. 이 익명의 인물은 무표정한 얼굴로 별 다른 특징이 없으며 마치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을 그린 위대한 화가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들의 초상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특정인을 떠올리게 하기보다는 그 인물을 그린 화가와 서로 닮아있다는 것이다." - 마크 로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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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에 이르러 로스코는 추상표현주의 화가라고 알려지면서 '뉴욕화파(New York School)'라고 불리는 화가들과 함께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 화가들이 전부 뉴욕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것은 아니며 추상화에 대한 접근방식도 서로 큰 차이를 보였다. 프란츠 클라인(Franz Klein),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은 움직임을 통한 예술적 표현에 천착한 반면, 로스코를 비롯하여 바넷 뉴먼(Barnet Newman) , 클리포드 스틸(Clifford Still)은 거대한 색면의 표현에 주력했다.

로스코는 추상 이미지가 '인간 드라마'의 속성을 반영할 수 있고 회화가 비극, 환희, 숭고함과 같은 불변의 주제들과도 맥을 같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상징성을 띠고 신체적 변형이 가해지는 그림을 그리면서 추상으로 나아갔다.
1947년 바야흐로 로스코의 회화에서 모든 구상적 이미지는 다 사라지고, 대신 '멀티폼(multiforms)' 이라고 불리는 색면이 등장한다. 멀티폼은 1949년까지 지속되는데 그의 작품 세계는 이 시기에 가장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변화는 캔버스의 방향과 모양, 그 위에 창조된 형태와 색조의 범위가 극도로 절제되고 색면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독자적인 양식의 기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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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경 로스코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여 '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이라는 그의 이상을 실현하였다. 이들 작품은 보통 1955년작 <무제>에서 나타나듯이 두 개에서 네 개의 직사각형이 큰 색면 위에 수직으로 배열되어 있는 구도를 보인다. 이런 형태 안에서 로스코는 폭넓은 색채와 색조, 여러가지 양식적 관계를 활용해 극적이면서 시적이기도 한 다양한 분위기와 효과를 자아냈다. 로스코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과 교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무엇인가를 반드시 믿어야 한다면 관습적으로 이해하지 않는 감상자의 섬세한 영혼을 믿는다. 그들이라면 어떤 정신적 열망을 위하여 이 그림들을 이용할 것이라고 염려하지 않아도 되며, 정신과 열망이 있다면 진정한 교류가 있기 때문이다."
"화가의 작품은 한순간, 한순간을 지날수록 하나의 명확한 사실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것은 화가와 그의 생각, 그의 생각과 관람객 사이의 벽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 마크 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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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삼성미술관 Le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