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로 만든 의자 (외 1편)
진혜진
나의 물푸레나무가 죽어
의자 옆의 의자로 앉아 있다
내 나무는 물끄러미가 있던 우주의 방
후손은 먼먼 선사의 이름까지 의자로 만들어
자신들의 자리를 만든다
이 의자의 혈액은 진씨의 것인데
평산 신씨의 피가 더 진하다
뒷마당 가문비나무는 그늘을 접어
첼로의 옥타브를 만들었다
거문고가 된 오동나무의 무현*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수혈도 받지 않고 평산을 먼저 넘은 것은
누구의 울음이었을까
울음을 켜던 나의 왼손을 잊었는지
지워지는 얼굴들도 의자가 되어
잘 지내나 보다
돌고 도는 이름마다 의자가 되어
서로에게 앉는다
뭐해? 누군가 물으면
무얼 했는데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오늘같이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내게 돌을 던진 자 없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파문이 인다
당신이 그래,
당신도 그래,
사람의 견해가 변하지 않는다고
나의 물푸레 의자가
물구나무의 평생을 바라본다
* 거문고의 여섯 번째 줄.
사람정거장
새벽 종소리로 물든 몸의 정거장에서 한 사람의 여름이 사라지고 있다
한 올만 툭 잡아당겨도
스르르 흩어져 버리는 환幻일지라도
더 이상 비뚤어지는 계절이 없을 때까지 서로의 목적지가 될 때까지 모든
결말을 끌어안았지만 푸르스름한 빛 속으로
사라지고
한 사람이 두고 간 시간이 그림자로 남아
지나가는 모든 발자국을 견딘다
어깨 너머의 꿈은 당신 밖으로 나오지 않은 연민이거나
멈추지 않고 지나간 연인의 이름이거나
의문이 많은 내일의 그림자
누구의 혀가 새벽의 체온을 더듬었을까
싱싱한 죄목들이 토해진 거리마다
팔딱거리는 그늘들
쓸만한 게 없어
함부로 던지는 눈빛을 밟고도
몰리는 무관심
사라지기 전 무엇을 하였는지
버려진 이름이 몇 개였는지
지켜봄이 사라질 때까지 당신을 통과해야 하는 것을
누구도 모른다
—계간 《포엠포엠》 2024 겨울, 진혜진 대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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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진 / 경남 함안 출생. 2016년 〈경남신문〉,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21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시집 『포도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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