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코트
강기원
이른 아침
회색 코트 속에 몸을 구겨 넣는다
날로 헐거워진다
몸이 줄어드는 걸까
할 일은 점점 늘어나는데
헐렁한 코트를 입고 지하철 속에
몸뚱이를 간신히 밀어 넣는다
날로 사람들이 많아진다
인구가 줄어 큰일이라는데
사무실에 도착해
바퀴 달린 검은 의자에 털썩
의자는 날로 움푹 패인다
체중은 줄어드는데
바퀴가 달렸으나 달리지 않는
의자
점점 웅덩이가 되어간다, 언젠가
의자 속에 빠져 죽었다는 기사가 뜰지도 모른다
후줄근한 회색 코트 한 벌이
퇴근 시간의 지옥철 속을 비집고 들어간다
코트 속에 있어야 할 몸이 없다
아뿔사!
코트는 몸뚱이를 잊고, 잃고
혼자서 실려간다
통조림 속 정어리처럼 꽉꽉 들어찬
사람들 사이에서
발도 없이 붕 뜬 채
―계간 《시인시대》 2024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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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원 /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 『바다로 가득 찬 책』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지중해의 피』 『다만 보라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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