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밤 카페와 당신 / 안차애

by 丹野 2024. 8. 17.

밤 카페와 당신

   안차애




밤 카페에 나와 통창 앞에 앉습니다.
커피는 시늉으로 들고
어둠이 불린 식구들을 둘러앉힙니다.
창 안의 사람과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이 나를 회전축으로
한 화면 속에서 다정하게 겹쳐집니다.

창밖의 남자들과 창 안의 아가씨가
식구처럼 무심한 사선의 건너편에 앉아 있습니다.
밤의 스크린은 검푸르고
열기와 밀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화면을 조절합니다.

밤의 테이블에
식구들을 차립니다.
떠다니는 입과 다소곳한 귀,
모서리 없는 시선과 피곤한 자세를 소복소복 차립니다.

귀만 내밀어 주어서 고마운 당신
입을 가려주어서 귀여운 당신
어깨가 둥글거나 시선이 다소곳한 당신
밤의 리듬처럼 조금씩 흔들리거나 풀어지는 당신들

떠난 기차처럼 밤은 멀고
다시 만날 일 없는 공기와 온도처럼
밤의 얼굴들은 제각각의 방향에 골똘합니다.

금 갈 슬픔이 없는 모자이크처럼,
엇갈린 이마와 조각난 어깨가
밤의 물질성을 밤 바깥으로 밀고 갑니다.



              —계간 《포지션》 2024년 여름호
----------------------
안차애 /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 외. 교육도서 『시인되는 11가지 놀이』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