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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타클라마칸 / 한영수

by 丹野 2024. 8. 17.

타클라마칸


   한영수


스스로 죽은 짐승은 먹지 않아요,
양치기의 네 번째 딸은 양을 삶는다

모래구름이 핀다
돌아 나올 수 있을까

가까이 어디에는 아름다움이 부조된 사원이 있다
초승달 눈썹을 비추는 샘도 있어 마르지 않는다는데

생활은 갓길이 없다
걸음마다 부서지며 모래 우는 소리가 난다

한 시간이
십 년같이
서천 서역으로 가는 평생같이

낙타 열네 마리
서로 소중한 말은 둘
말 위의 암탉 열 수탉 하나
개도 세 마리

행렬의 어디쯤에서 나는, 네 번째 딸은 맴을 도나

조용히 흰 터번을 쓰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나

이것은 죽은 양
이것은 죽인 양

선을 긋기도 전에

양은 양을 낳는다
양치기는 양치기를 반복하고

푸른 색 샌들이 갈색으로 흐릿해질 때까지
사구는 살아있는 것처럼 이동하며 모양을 바꾼다


            ―계간 《파란》202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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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수 / 전북 남원 출생. 2010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케냐의 장미』 『꽃의 좌표』 『눈송이에 방을 들였다』 『피어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