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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너머의 새 외 2편 / 강영은

by 丹野 2024. 3. 24.

    시집 『너머의 새』  현대시.기획시선 96  2024년 3월

시간의 연대 (외 2편)

    강영은
  

돌 위에 돌을 얹고 그 위에 또 돌을 얹어
궁극으로 치닫는 마음

마음 위에 마음을 얹고 그 위에 또 마음을 얹어
허공으로 치솟는 몸

돌탑은 알고 있었다.

한 발 두 발 디딜 때마다 무너질 걸 알고 있었다.
무너질까 두근거리는 나를 알고 있었다.

그건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므로

조그만 돌멩이를 주워
마음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태어나기 전의 돌탑을
태어난 이후에도 기다렸다.

한곳에 머물러 오래 기다렸다.

돌멩이가 자랄 때까지
돌탑이 될 때까지



너머의 새



새가 날아가는 하늘을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으로 나눕니다.
방향이 틀리면 북쪽과 남쪽을 강조하거나
죽음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나의 흉곽을 새장으로 설득하기도 합니다.

사이에 있는 것은 허공
새가슴을 지닌 허공을 손짓하면
새가 돌아올지 모르지만
새의 노동이
노래를 발견하고 나무를 발명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크기를 가진 숲에
잠깐 머물러
나무와 나무의 그늘을 이해한다 해도

새 발자국에 묻은 피가 없다면
당신이 던진 돌멩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점点 하나가
돌에 맞은 공중을 끌고 갑니다.

제가 새라는 걸 모르고
새라고 하자
공중이 조각조각 흩어집니다.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없이
너머로 넘어가는 새

새라고 부르면 새가 될지 모르지만
나라고 발음하는 새는
누구일까요?


농담의 무게


당신은
누르기만 하면 시가 나오는
자판기잖아요!
진담보다 가벼운 농담이긴 해도
그 말을 듣고 알았어요.
고장 난 내 몸이
기계였다는 걸,
흐르는 물처럼 잔잔히
죽음에 닿을 줄 알았는데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로봇이라는 걸,
시인의 운명이
그런 것이라면
수술대 위에 누워
목숨을 구걸하는 시인이 되기보다
기계가 되는 편이 낫겠어요.
머리통이든 젖꼭지든
하다못해 눈물점이라도
누르기만 하면 지저귀는 기계*
쇠로 된 입술을 가진다면
모가지를 눌러도 지저귀겠죠?
전선줄에 앉은 참새처럼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찾아오는 새
시간의 손잡이를 돌려도
날아가지 않는 새,
찬바람에 놀란 갈참나무가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밤
농담처럼 나는 죽어도
새는 살아 있겠죠?

*파울 클레, 종이에 수채물감과 잉크, 1992.


           ―시집 『너머의 새』 2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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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은 / 서귀포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을 졸업. 2000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녹색비단구렁이』 『최초의 그늘』 『풀등, 바다의 등』 『마고의 항아리』 『상냥한 詩論』 『너머의 새』 외 2권, 시선집 『눈잣나무에 부치는 詩』, 에세이집 『산수국 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