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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남귀南歸 / 김옥성

by 丹野 2024. 4. 9.

남귀南歸


   김옥성



단풍이 오시려나
큰기러기 써레 끌고 정남향으로
남귀
하늘의 논바닥 포슬포슬 갈리어
구름에서 쑥부쟁이 향이 어룽어룽

데리고 가는 것들은 또
따라 내려가는 것들은
모도 다 빨간 맨발이라서
꾸룩 꾸룩 꾸꾸룩
자랑질하는 것인가 어린 것들도
한 뼘 자란 날개깃이 퍼득퍼득 퍼드득

낮달에 비끼어
겨울새와 여름새가 비켜 가는 저 허공 빈 들판
내어주어야 하는 땅, 둠벙, 늪, 저수지, 골짜기
내려앉아야 하는 벌판,
겨울 한 철 도란도란 쪼아대어야 하는
쌀겨 같은 낟알 같은
바람이 내려와 새들을 껴안는 계절
구절초는 마구마구 피어서 좋겠다

억새꽃 웃음이라도
닮아야 하나
남쪽으로 한참 내려가다가 물끄러미


              ―계간 《포지션》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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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성 / 1973년 전남 순천 출생. 2003년 《문학과경계》에 소설, 2007년 《시를사랑하는사람들》에 시로 등단. 현재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