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장수철
불꽃놀이가 있는 날의 오후
모카신을 신고 작약을 가득 담은 가죽가방을 들고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보러 간다
한낮의 광휘는 어둠의 제단에 바쳐지고
젖은 가죽가방처럼 축 늘어진 어둠이 지상으로 가라앉기만 기다리면서
어차피 오늘 같은 건 불똥이 되어 사라질 테고
검은 공중을 갈갈이 찢고 나온 금맥들은
주워담을 수도 없이 재가 되어 날릴 테고
밤의 환호와 작약에 목이 쉰 사람들이
쉰 목소리로 서로를 욕해대는 내일이 또 올 테고
이 황금광 시대
불꽃의 명멸을 가까이 확인하려고 사람들은 또 먼 길을 갈 것이고
젖은 가죽가방에 눅눅해진 환호와 작약을 가득 담고
기관지까지 가득 차오른 화약가루에 부싯돌 당기듯 마른기침을 해대면서
그러나 좀체 불이 붙지 않는 젖은 심지를
애타게 만지작거리면서
- 계간 『미네르바』 2023년 여름호
장수철
2009년 월간 『우리시』 로 등단
시집 『낭만적 루프탑과 고딕의 밤』 시와문화 젊은 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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