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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불꽃놀이 / 장수철

by 丹野 2023. 6. 7.

 

 

불꽃놀이

 

장수철

 

불꽃놀이가 있는 날의 오후

모카신을 신고 작약을 가득 담은 가죽가방을 들고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보러 간다

한낮의 광휘는 어둠의 제단에 바쳐지고

젖은 가죽가방처럼 축 늘어진 어둠이 지상으로 가라앉기만 기다리면서

어차피 오늘 같은 건  불똥이 되어 사라질 테고

검은 공중을 갈갈이 찢고 나온 금맥들은

주워담을 수도 없이 재가 되어 날릴 테고

밤의 환호와 작약에 목이 쉰 사람들이

쉰 목소리로 서로를 욕해대는 내일이 또 올 테고

이 황금광 시대

불꽃의 명멸을 가까이 확인하려고 사람들은 또 먼 길을 갈 것이고

젖은 가죽가방에 눅눅해진 환호와 작약을 가득 담고

기관지까지 가득 차오른 화약가루에 부싯돌 당기듯 마른기침을 해대면서

그러나 좀체 불이 붙지 않는 젖은 심지를

애타게 만지작거리면서

 

 

 

 - 계간 『미네르바』 2023년 여름호 

 

 

 

 

장수철

2009년 월간  『우리시』 로 등단

시집 『낭만적 루프탑과 고딕의 밤』 시와문화 젊은 시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