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치
김경성
꺾이지 않는 몸이어서
구부리거나 똬리를 틀어서 몸으로 말한다
모서리가 없는 것들이 부드럽고 온화하다고 하지만
꼿꼿이 서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뭇가지를 타고 바라보아도 언제나 어느 한 곳은 휘어져 있고
몸속에 독이 없어도 세상은 나를 똑바로 보지 않는다
풀숲을 빠져나와 저수지에 곡선을 그으며
연꽃 아래 숨어들 때 좋았다
깊게 꽂히는 빗방울 화살에 맞지 않기 위해
연잎 밑으로 들어갔을 때도 좋았었다
빗방울도 화살이 되어 꽃잎을 떨어트리는데
내 몸도 길게 펴서 화살이 되어보자고 단 한 번에 쭈욱
앞으로 나아가 보려 하지만
저절로 휘어지는 몸 어찌할 수 없는
너는 너 나는 나
네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
그 무엇으로도 닿을 수 없는
너와 나라는 본질
자꾸만 구부러지는 몸
지나가는 자리마다 긴 파문이 인다
물옷을 벗고 저수지 둑을 넘어갈 때에도
휘어져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나는 한 마리 무자치다
- 《경희문학》 2022년
#시낭송가최경애 #무자치 #김경성 #경희문학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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