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행
김경성
형체도 없이 시간을 넘어서는 것이 존재의 이유다
산맥을 따라 굽이쳐 흐르는 흰색 줄무늬가 강인지 길인지 알 수 없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이 야생마처럼
갈기를 휘날리며 달린다
열리지 않는 창문으로 스며드는 한 줌의 빛이 테두리 없는 얼굴에 난사될 때
어떤 기억이 날짜변경선을 넘어가고 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이고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였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잠은 마음속까지 들어서고
방파제를 넘어서는 아쿠아마린 빛 물보라를 맞으며
후 우우 내뱉는
시가의 냄새가 다 벗겨지지 않는다
잠이라는 행성으로 떠나는 위험한 여행
접은 날개를 펴지 못한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깊이 빠져들수록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로
얼굴을 지우고 이름도 지우고
낯선 도시에 몇 날 며칠을 넣어두었을 때
비로소 잠이라는 동물이
물먹은 구름 자락을 몰고 와 길을 지우고
물이랑 위에 한 사람을 올려놓는다
-계간 《시와경계》202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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