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의 집
김경성
소리로 어둠을 읽는 두더지는
눈의 꽃술로 빛을 들이며 소리를 보는 귀를 가졌다
꿈꾸는 지상의 날들을 모두 땅속에 묻어두고
혼자만의 방을 만들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 있어 귀를 열면
허락도 없이 들어오는 검은 소리, 그때 두더지는
미로를 만들며 빠르게 멀어진다
몽상가의 집은 두더지의 방을 지나 늪에 있다
바람이 잠잠한 날에 더 잘 보이는
물속의 집과 나무들
물옥잠은 공작 깃털 같은 꽃을 피워 올려 섬을 만들고
새들도 구름을 밀고 다닌다
누구라도 집으로 가는 길을 걸으면
물을 잔뜩 머금은 나무와 하나가 되어
물의 내밀한 속에 들어가게 된다
멀리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가까이 가면 바라보는 사람의 눈 속에서 아슴해진다
당신의 이름을 적어 대문 앞에 걸어두는 날이면
두더지는 미농지를 펼쳐놓고 앞다리를 저어서
길 밖으로 나가는 길을 그리고
작은 것들의 씨앗도 바람을 타고 와서 꽃눈을 뜬다
그때쯤 몽상가의 집에서도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물꽃들이
소리도 없이 피어난다
- 『포엠포엠』 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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